<긴급대담> 박지원, 위기의 새정치민주연합 진단

"내가 새누리당 대표로 가겠다면 받아주겠나?"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요즘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들에게는 ‘안녕하시냐’는 가벼운 인사조차 건네기가 민망하다. 당 내부의 자중지란이 이어지면서 당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까지 폭락했고, 박영선 원내대표의 거취문제는 한때 탈당설로까지 번지면서 당은 최대위기를 맞았다. <일요시사>도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오늘은 쓴소리를 좀 하러 왔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이 끝없이 표류하고 있다. 당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 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웠고, 당대표 격이었던 박영선 원내대표가 탈당을 언급하며 당무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온종일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보여준 행태는 ‘이전투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안 그래도 시원치 않았던 국회는 아예 멈춰버렸다. 뭐 하나 잘한 것 없는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의 연이은 자살골로 손쉽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녕 난파선이 돼버린 ‘제1야당’을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일반 국민들은 물론, 야권의 지지자들까지도 야권을 향해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는 이때에 새정치연합의 중진이자 유력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일요시사>가 만나봤다.

1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내내 박 전 원내대표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고,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은 박 전 원내대표와의 일문일답.

- 박영선 원내대표의 탈당시사로 당이 한때 발칵 뒤집혔습니다. 평소 박 원내대표와 친분이 두터우신 것으로 아는데, 박 원내대표의 탈당시사부터 당무복귀까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 잘 아시다시피 저와 박 원내대표는 국회 내에서 ‘박남매’로 불릴 정도로 긴밀한 사이입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6년간이나 함께했고, 같이 청문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낙마시킨 사람이 8명이나 돼 ‘청문회 8관왕’이라고 불립니다. 이번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선 국민과 당원들께 죄송했습니다. 박 원내대표가 왜 평소 본인답지 않게 저렇게 소통 없이 중대한 결정을 했을까? 개인적인 원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의 선당후사 정신만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비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세월호 협상을 마무리한 후 거취를 결정하기로 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 일단 분당의 위기는 넘겼지만 정치권에선 여전히 분당의 불씨가 남아 있다고 얘기합니다. 당내 강경파와 중도온건파는 같은 당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생각이 다릅니다.
▲ 우리 새정치연합은 동교동계, 친노계, 노동계, 시민사회계, 안철수 세력 등 다양한 세력이 통합되어 한 정당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당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강경 및 중도온건 세력 간의 생각차이는 당연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당이 건강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또 당 소속 의원들의 생각이 다양할수록 스펙트럼도 넓어지기 때문에 집권에도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정계개편 및 신당창당은 선거가 임박해 일어났습니다. 아직 선거가 2년이나 남아 있는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인재영입을 하기도 힘든 시기입니다. 총선 때나 대선 때는 공천이나 임명직을 바라고 사람들이 모이지만 아무런 선거도 없는 지금 신당을 창당한다고 해도 신당에 합류할 인사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 박 원내대표가 새정치연합에 완벽하게 복귀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 원내대표가 ‘탈당하겠다’고 하자 당내 강경파 의원들이 이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출당시키자’고 했다고 합니다. 일단 복귀하긴 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으로는 박 원내대표가 더 이상 당에 남아 있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탈당한다는 사람이나, 출당시키자는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감정을 앞세워 당을 파괴하려는 행동입니다. 박 원내대표는 이미 비대위원장직을 내려놨고 세월호법 협상결과에 따라 원내대표직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 이상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당의 모든 것이 정상화되는 일만 남았습니다. 박 원내대표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새정치연합의 일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새누리당 혁신행보, 우리 야당도 발상 전환해야"
"아직 선거 2년이나 남았는데 분당설 말도 안돼"

- 이번 사태를 촉발한 이상돈 비대위원장 카드에 대해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수혈도 혈액형이 같아야 한다”며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한광옥 위원장 등을 영입해 톡톡히 효과를 봤습니다. 새정치연합이 너무 폐쇄적인 것은 아닙니까?
▲ 이상돈 교수가 비대위원장이 아니고 비대위원 혹은 당대표 산하인 혁신위원장으로 오는 것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개혁과 혁신의 전문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엊그제까지 새누리당을 변론하고 오늘부터 새정치연합을 변론하는 것은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치인은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영입을 하더라도 혈액형은 같아야 합니다. 비대위원장은 단 하루를 하더라도 당의 대표고, 당의 얼굴입니다.

새누리당의 비대위원이었던 이 교수를 우리 당의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것은 우리 당의 60년 정통성과 정체성을 흔드는 일입니다. 우리 당원들의 자존심 문제도 있습니다. 다른 직을 맡을 수는 있겠지만 비대위원장만큼은 안됩니다. 제가 새누리당 대표로 간다면 새누리당 사람들은 과연 용납을 하겠습니까? 한광옥 위원장도 새누리당 가서 대표를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일각에선 이상돈 카드가 새정치연합의 외연을 넓힐 좋은 카드였는데 외부인사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 개혁에 나설 경우 기존 의원들이 기득권을 잃을 것을 두려워해 반대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앞서 설명 드린 그런 문제점들이 있었던 것이지 기득권을 잃을 것이 두려워 이상돈 교수 영입을 반대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됐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제3지대에 건전한 정당이 나오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침몰한다”며 제3지대 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 그 주장은 그 분이 학자로서 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뭐라 평가하기는 곤란합니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정치에는 서생(書生)적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적 현실감각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양당제 체제하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양당제 체제하에서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양당제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부르짖었는데 저는 진정한 국가개조를 위해서는 (제3지대 정당 창당보다는)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내려놓고 분권형 개헌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 원내대표 측은 탈당을 시사하면서 당 내부의 박영선 흔들기가 도를 넘었다고 반발했습니다. 그간 있었던 박 원내대표에 대한 당 내부의 비판이 ‘박영선 흔들기’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박 원내대표의 실책에 따른 당연한 비판이었다고 보십니까?
▲ 비판을 두려워하면 지도자가 아닙니다. 제가 원내대표를 두 번 해봤습니다.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의원들로부터 두들겨 맞는 재미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잘 취합해서 오히려 여당 원내대표와 협상하면서 협상카드로 사용해야 합니다. 비판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결정’과 ‘책임’ 이 두 가지밖에 없다고 합니다. 모든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해서 잘되면 공로를 당과 조직에 돌리고, 잘못됐을 때는 책임을 지면 됩니다.


책임을 지라는 것은 무조건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라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면 된다는 뜻입니다. 이번 이상돈 파동도 박 원내대표가 결정한 일입니다. 이걸 문재인 의원도 동의했다 안 했다 진실게임을 벌여서 무얼 얻겠다는 겁니까? 그냥 책임지면 됩니다. 저는 문재인 의원도 이번에 굉장한 손해를 봤다고 봅니다. 자기가 이상돈 카드를 동의했다고 하면 되는데 자꾸 자기는 안 그랬다고 며칠간 변명을 하니까 둘 다 상처를 받았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도자는 결정과 책임만 있으면 됩니다.

- 세월호특별법 대치정국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KBS>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 가까이가 장외투쟁에 반대를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 최근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으로 장외투쟁의 동력이 크게 상실됐습니다. 이쯤 되면 장외투쟁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저는 먼저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감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박 대통령께서는 유가족들과 만나서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눈물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내 책임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이렇게 말씀하시고 5개월이 넘도록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에서는 청와대와의 조율과정에서 늘 벽에 부딪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국무회의에서 세월호법은 끝난 것으로 정리를 해버리면 되겠습니까?

우리 새정치연합의 정체성은 다수의 잘 사는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어려운 약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중정당이기 때문에 집권이 목표지만 우리 당 지지도가 10%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누군가는 그 세월호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도 그들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세월호 유족, 새정치연합에 국민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세월호법 투쟁에 피로를 느끼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손을 놓아버리면 그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 그렇다면 장외투쟁을 언제까지 지속할 생각이십니까?
▲ 저는 세월호특별법은 제정해야 하지만 장외투쟁은 당장이라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야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장소는 국회라고 했습니다. 제가 18대 국회 때도 ‘주국야광’하자고 했습니다. 낮에는 국회에서 싸우고 밤에는 광화문에서 싸우자는 뜻입니다. 국회를 버리면 우리 야당에게 무조건 손해입니다. 국회에 등원해야 합니다. 국정감사도, 예산심의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거 때 “나를 당선시켜주면 장외투쟁 잘 하겠습니다” 하고 당선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고,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회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국회 안에서 싸워야 합니다.

"박영선 원망도 했지만 선당후사 정신 높이 평가"
"비판여론 알지만 세월호 유가족 손 놓을 순 없어"

- 정의화 국회의장이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직권으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일정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 정의화 의장은 평의원 때부터 줄기차게 호남을 옹호해주고 야당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입니다. 심지어 정 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위원장까지 맡은 전력이 있습니다. 19대 국회 하반기에 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의장으로서 어찌 고민이 없겠습니까?

국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지 정 의장이 국회법을 무시하고 직권 상정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아직도 날짜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야 대표가 합의를 해야 하고 저는 합의가 되리라고 봅니다. 정 의장은 여야가 합의하라고 압력을 가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정 의장님을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 야당에는 ‘호기’가 될 수 있는 정부의 세금 인상안에 대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잇따른 세제 인상안 발표로 민심이 흔들리고 있는데 새정치연합이 이 문제를 집중 공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저도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SNS에 올렸더니 가장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국민들은 우리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이 누가 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빨리 세월호법 통과시키고 국회에서 일해라, 경제 좀 살려줘라 합니다. 세월호 정국을 틈타서 정부가 사실상 증세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서민 돈 걷어다가 부자들 도와주는 것입니다.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부자 감세만 철회해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우리 당은 현재 경제전문가인 김진표, 이용섭 이 두 분이 안 계시기 때문에(※ 지난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 사퇴) 정부의 경제정책을 효과적으로 비판도 못하고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두 의원의 공백이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분이 비록 원외에 있지만 당직을 맡게 해서 이런 것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담뱃값 인상은 증세가 아니라고 했지만 얼마나 웃긴 이야기입니까? 하루에 담배 1갑을 피는 흡연자가 내는 1년 세금이 9억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내는 1년 재산세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런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새누리당에서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보수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고 혁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혁신이 더 시급한 새정치연합은 정작 별다른 혁신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처럼 ‘정치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자신의 대권 경쟁자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보수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보고 김무성 대표가 정말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새누리당이 부러웠습니다. 우리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처럼 인물을 키우려 하지 않고 경쟁자를 자꾸 없애려고 합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누가 뭐라 하더라도 수도권의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였습니다.

원래 수원 영통에 출마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팔달로 보내서 낙선하게 했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 지금도 현역 정치인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을 몰고 다니는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을 4개월 실패했다고 해서 버려야 되겠습니까? 모두 다 링 위에 올라와서 경쟁하고 협력하고 투쟁하면서 당원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국민으로부터 검증받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어야 합니다. 새누리당은 이렇게 장을 깔아주는데 우리는 장을 걷어 버리는 것을 보고 큰 실망을 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차기 당대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 대표가 되신다면 당을 혁신시킬 복안은 무엇입니까?
▲ 아직 출사표도 안 던졌습니다. 지금 당이 어려운 시기에 제가 벌써부터 당권 관련 이야기를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다만 당의 중진으로서 자중지란을 겪었던 당을 잘 수습하고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들을 잘 실천해서 당을 혁신시키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mi737@ilyosisa.co.kr>

 


<박지원 전 원내대표 프로필>

▲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
▲ 미국 뉴욕한인회 회장
▲ 제14, 18, 19대 국회의원
▲ 제2대 문화관광부장관
▲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 민주당 원내대표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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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