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대담> 박지원, 위기의 새정치민주연합 진단

"내가 새누리당 대표로 가겠다면 받아주겠나?"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요즘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들에게는 ‘안녕하시냐’는 가벼운 인사조차 건네기가 민망하다. 당 내부의 자중지란이 이어지면서 당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까지 폭락했고, 박영선 원내대표의 거취문제는 한때 탈당설로까지 번지면서 당은 최대위기를 맞았다. <일요시사>도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오늘은 쓴소리를 좀 하러 왔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이 끝없이 표류하고 있다. 당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 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웠고, 당대표 격이었던 박영선 원내대표가 탈당을 언급하며 당무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온종일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보여준 행태는 ‘이전투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안 그래도 시원치 않았던 국회는 아예 멈춰버렸다. 뭐 하나 잘한 것 없는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의 연이은 자살골로 손쉽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녕 난파선이 돼버린 ‘제1야당’을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일반 국민들은 물론, 야권의 지지자들까지도 야권을 향해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는 이때에 새정치연합의 중진이자 유력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일요시사>가 만나봤다.

1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내내 박 전 원내대표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고,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은 박 전 원내대표와의 일문일답.

- 박영선 원내대표의 탈당시사로 당이 한때 발칵 뒤집혔습니다. 평소 박 원내대표와 친분이 두터우신 것으로 아는데, 박 원내대표의 탈당시사부터 당무복귀까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 잘 아시다시피 저와 박 원내대표는 국회 내에서 ‘박남매’로 불릴 정도로 긴밀한 사이입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6년간이나 함께했고, 같이 청문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낙마시킨 사람이 8명이나 돼 ‘청문회 8관왕’이라고 불립니다. 이번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선 국민과 당원들께 죄송했습니다. 박 원내대표가 왜 평소 본인답지 않게 저렇게 소통 없이 중대한 결정을 했을까? 개인적인 원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의 선당후사 정신만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비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세월호 협상을 마무리한 후 거취를 결정하기로 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 일단 분당의 위기는 넘겼지만 정치권에선 여전히 분당의 불씨가 남아 있다고 얘기합니다. 당내 강경파와 중도온건파는 같은 당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생각이 다릅니다.
▲ 우리 새정치연합은 동교동계, 친노계, 노동계, 시민사회계, 안철수 세력 등 다양한 세력이 통합되어 한 정당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당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강경 및 중도온건 세력 간의 생각차이는 당연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당이 건강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또 당 소속 의원들의 생각이 다양할수록 스펙트럼도 넓어지기 때문에 집권에도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정계개편 및 신당창당은 선거가 임박해 일어났습니다. 아직 선거가 2년이나 남아 있는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인재영입을 하기도 힘든 시기입니다. 총선 때나 대선 때는 공천이나 임명직을 바라고 사람들이 모이지만 아무런 선거도 없는 지금 신당을 창당한다고 해도 신당에 합류할 인사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 박 원내대표가 새정치연합에 완벽하게 복귀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 원내대표가 ‘탈당하겠다’고 하자 당내 강경파 의원들이 이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출당시키자’고 했다고 합니다. 일단 복귀하긴 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으로는 박 원내대표가 더 이상 당에 남아 있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탈당한다는 사람이나, 출당시키자는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감정을 앞세워 당을 파괴하려는 행동입니다. 박 원내대표는 이미 비대위원장직을 내려놨고 세월호법 협상결과에 따라 원내대표직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 이상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당의 모든 것이 정상화되는 일만 남았습니다. 박 원내대표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새정치연합의 일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새누리당 혁신행보, 우리 야당도 발상 전환해야"
"아직 선거 2년이나 남았는데 분당설 말도 안돼"

- 이번 사태를 촉발한 이상돈 비대위원장 카드에 대해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수혈도 혈액형이 같아야 한다”며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한광옥 위원장 등을 영입해 톡톡히 효과를 봤습니다. 새정치연합이 너무 폐쇄적인 것은 아닙니까?
▲ 이상돈 교수가 비대위원장이 아니고 비대위원 혹은 당대표 산하인 혁신위원장으로 오는 것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개혁과 혁신의 전문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엊그제까지 새누리당을 변론하고 오늘부터 새정치연합을 변론하는 것은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치인은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영입을 하더라도 혈액형은 같아야 합니다. 비대위원장은 단 하루를 하더라도 당의 대표고, 당의 얼굴입니다.

새누리당의 비대위원이었던 이 교수를 우리 당의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것은 우리 당의 60년 정통성과 정체성을 흔드는 일입니다. 우리 당원들의 자존심 문제도 있습니다. 다른 직을 맡을 수는 있겠지만 비대위원장만큼은 안됩니다. 제가 새누리당 대표로 간다면 새누리당 사람들은 과연 용납을 하겠습니까? 한광옥 위원장도 새누리당 가서 대표를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일각에선 이상돈 카드가 새정치연합의 외연을 넓힐 좋은 카드였는데 외부인사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 개혁에 나설 경우 기존 의원들이 기득권을 잃을 것을 두려워해 반대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앞서 설명 드린 그런 문제점들이 있었던 것이지 기득권을 잃을 것이 두려워 이상돈 교수 영입을 반대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됐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제3지대에 건전한 정당이 나오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침몰한다”며 제3지대 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 그 주장은 그 분이 학자로서 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뭐라 평가하기는 곤란합니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정치에는 서생(書生)적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적 현실감각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양당제 체제하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양당제 체제하에서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양당제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부르짖었는데 저는 진정한 국가개조를 위해서는 (제3지대 정당 창당보다는)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내려놓고 분권형 개헌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 원내대표 측은 탈당을 시사하면서 당 내부의 박영선 흔들기가 도를 넘었다고 반발했습니다. 그간 있었던 박 원내대표에 대한 당 내부의 비판이 ‘박영선 흔들기’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박 원내대표의 실책에 따른 당연한 비판이었다고 보십니까?
▲ 비판을 두려워하면 지도자가 아닙니다. 제가 원내대표를 두 번 해봤습니다.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의원들로부터 두들겨 맞는 재미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잘 취합해서 오히려 여당 원내대표와 협상하면서 협상카드로 사용해야 합니다. 비판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결정’과 ‘책임’ 이 두 가지밖에 없다고 합니다. 모든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해서 잘되면 공로를 당과 조직에 돌리고, 잘못됐을 때는 책임을 지면 됩니다.


책임을 지라는 것은 무조건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라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면 된다는 뜻입니다. 이번 이상돈 파동도 박 원내대표가 결정한 일입니다. 이걸 문재인 의원도 동의했다 안 했다 진실게임을 벌여서 무얼 얻겠다는 겁니까? 그냥 책임지면 됩니다. 저는 문재인 의원도 이번에 굉장한 손해를 봤다고 봅니다. 자기가 이상돈 카드를 동의했다고 하면 되는데 자꾸 자기는 안 그랬다고 며칠간 변명을 하니까 둘 다 상처를 받았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도자는 결정과 책임만 있으면 됩니다.

- 세월호특별법 대치정국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KBS>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 가까이가 장외투쟁에 반대를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 최근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으로 장외투쟁의 동력이 크게 상실됐습니다. 이쯤 되면 장외투쟁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저는 먼저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감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박 대통령께서는 유가족들과 만나서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눈물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내 책임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이렇게 말씀하시고 5개월이 넘도록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에서는 청와대와의 조율과정에서 늘 벽에 부딪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국무회의에서 세월호법은 끝난 것으로 정리를 해버리면 되겠습니까?

우리 새정치연합의 정체성은 다수의 잘 사는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어려운 약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중정당이기 때문에 집권이 목표지만 우리 당 지지도가 10%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누군가는 그 세월호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도 그들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세월호 유족, 새정치연합에 국민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세월호법 투쟁에 피로를 느끼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손을 놓아버리면 그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 그렇다면 장외투쟁을 언제까지 지속할 생각이십니까?
▲ 저는 세월호특별법은 제정해야 하지만 장외투쟁은 당장이라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야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장소는 국회라고 했습니다. 제가 18대 국회 때도 ‘주국야광’하자고 했습니다. 낮에는 국회에서 싸우고 밤에는 광화문에서 싸우자는 뜻입니다. 국회를 버리면 우리 야당에게 무조건 손해입니다. 국회에 등원해야 합니다. 국정감사도, 예산심의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거 때 “나를 당선시켜주면 장외투쟁 잘 하겠습니다” 하고 당선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고,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회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국회 안에서 싸워야 합니다.

"박영선 원망도 했지만 선당후사 정신 높이 평가"
"비판여론 알지만 세월호 유가족 손 놓을 순 없어"

- 정의화 국회의장이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직권으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일정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 정의화 의장은 평의원 때부터 줄기차게 호남을 옹호해주고 야당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입니다. 심지어 정 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위원장까지 맡은 전력이 있습니다. 19대 국회 하반기에 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의장으로서 어찌 고민이 없겠습니까?

국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지 정 의장이 국회법을 무시하고 직권 상정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아직도 날짜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야 대표가 합의를 해야 하고 저는 합의가 되리라고 봅니다. 정 의장은 여야가 합의하라고 압력을 가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정 의장님을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 야당에는 ‘호기’가 될 수 있는 정부의 세금 인상안에 대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잇따른 세제 인상안 발표로 민심이 흔들리고 있는데 새정치연합이 이 문제를 집중 공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저도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SNS에 올렸더니 가장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국민들은 우리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이 누가 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빨리 세월호법 통과시키고 국회에서 일해라, 경제 좀 살려줘라 합니다. 세월호 정국을 틈타서 정부가 사실상 증세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서민 돈 걷어다가 부자들 도와주는 것입니다.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부자 감세만 철회해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우리 당은 현재 경제전문가인 김진표, 이용섭 이 두 분이 안 계시기 때문에(※ 지난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 사퇴) 정부의 경제정책을 효과적으로 비판도 못하고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두 의원의 공백이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분이 비록 원외에 있지만 당직을 맡게 해서 이런 것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담뱃값 인상은 증세가 아니라고 했지만 얼마나 웃긴 이야기입니까? 하루에 담배 1갑을 피는 흡연자가 내는 1년 세금이 9억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내는 1년 재산세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런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새누리당에서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보수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고 혁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혁신이 더 시급한 새정치연합은 정작 별다른 혁신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처럼 ‘정치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자신의 대권 경쟁자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보수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보고 김무성 대표가 정말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새누리당이 부러웠습니다. 우리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처럼 인물을 키우려 하지 않고 경쟁자를 자꾸 없애려고 합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누가 뭐라 하더라도 수도권의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였습니다.

원래 수원 영통에 출마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팔달로 보내서 낙선하게 했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 지금도 현역 정치인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을 몰고 다니는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을 4개월 실패했다고 해서 버려야 되겠습니까? 모두 다 링 위에 올라와서 경쟁하고 협력하고 투쟁하면서 당원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국민으로부터 검증받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어야 합니다. 새누리당은 이렇게 장을 깔아주는데 우리는 장을 걷어 버리는 것을 보고 큰 실망을 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차기 당대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 대표가 되신다면 당을 혁신시킬 복안은 무엇입니까?
▲ 아직 출사표도 안 던졌습니다. 지금 당이 어려운 시기에 제가 벌써부터 당권 관련 이야기를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다만 당의 중진으로서 자중지란을 겪었던 당을 잘 수습하고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들을 잘 실천해서 당을 혁신시키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mi737@ilyosisa.co.kr>

 


<박지원 전 원내대표 프로필>

▲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
▲ 미국 뉴욕한인회 회장
▲ 제14, 18, 19대 국회의원
▲ 제2대 문화관광부장관
▲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 민주당 원내대표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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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