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1팀] 김성수 기자 =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또 구속됐다. 이번에도 비자금 세탁 혐의로다. 재벌가 안방마님만 수사선상에 오르면 그가 꼭 단골처럼 등장한다. ‘그림 커넥션’으로 얽혀서다. 파란만장한 홍 대표의 흑역사를 되짚어봤다.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지난 16일 가압류 대상인 동양그룹 임원 소유 미술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홍 대표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홍 대표는 법원이 가압류 절차를 밟기 직전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이 빼돌린 미술품 수십 점을 대신 팔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계속되는 시련
미술품 매각 과정에서 미술품 2점의 판매대금 15억여원을 넘겨주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동양그룹 계열사의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중 두 사람 사이의 수상한 돈거래를 포착하고, 서미갤러리와 이 부회장의 개인 미술품 창고에서 국내외 유명 미술작품 수십점을 발견했다.
2011년 오리온 비자금 세탁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3년 만에 또 다시 철창신세를 지게 된 홍 대표는 그동안 검찰의 재벌 수사가 진행될 때마다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의 창구로 지목돼 왔다. '재벌가 화상' '화랑계 큰손'으로 유명한 홍 대표는 정신여자중·고교와 이화여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화랑가에서 미술품 경매를 익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89년 서울 가회동에서 그림 장사를 시작, 2000년대 들어 재벌가 인사들을 대상으로 미술품 중개 활동에 주력해 왔다. 서미갤러리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홍 대표의 작품 보는 눈이 상당히 예리하다는 데 있다.
그는 1990년대 국내에 생소했던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 월렘 드 쿠닝 등의 작품을 들여왔다. 세계적인 작가들이 뜨지 않았을 때부터 주목, 작품을 미리 확보해 뒀다가 한국에 소개해 왔던 것이 신뢰를 쌓게 된 배경이다. 이때부터 홍 대표는 국내 주요 재벌가의 미술 창구 노릇을 하면서 인맥을 넓혀갔다.
올해 61세인 홍 대표의 이름이 처음 언론에 등장한 것은 1996년. 물론 좋은 일이 아니었다. 당시 미술축제 기간 중 피카소와 칸딘스키의 복제품 판화 1점씩을 진품인 것처럼 판매해 한국화랑협회로부터 제명됐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6년 서미갤러리는 준회원 자격을 회복했다.
홍 대표와 검찰의 악연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검찰은 당시 홍 대표를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 약식기소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돈으로 해외에서 고가 미술품을 들여온 혐의다.
홍 대표는 2007년 삼성 비자금과 관련해 특검팀의 수사를 받으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00억원에 달하는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한 눈물'을 낙찰받아 삼성에 넘긴 통로로 지목된 것. 삼성 측이 비자금을 이용해 구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행복한 눈물'은 결국 홍 대표의 소유로 결론 났지만, 이 사건은 재벌가와 홍 대표의 은밀한 거래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동양그룹 미술품 세탁 혐의로 또 구속
2004년부터 비자금 수사 때마다 등장
홍 대표와 재벌가 및 고위층간 '비리 커넥션'은 계속됐다. 특히 재벌가 비리 수사 때마다 이름이 거론되며 '비자금 세탁소'란 오명을 썼다.
이후 또 다시 얽힌 재벌가는 삼성이었다. 홍 대표는 2011년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과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50억원의 물품대금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2009년 8월∼2010년 2월 미술작품 14점을 홍 관장에게 판매했는데, 총 781억여원의 대금 중 531억여원을 받지 못했다"며 "이 중 우선 50억원을 청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도 잠시. 홍 대표는 갑자기 "오해가 풀렸다"며 소를 취하해 의문을 사기도 했다.
2011년엔 이 일만 있었던 게 아니다. 홍 대표로선 돌이키고 싶지 않은 해로 기억될 게다. 당시 홍 대표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서미갤러리에서 사들인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의 부인에게 인사 청탁 대가로 건넨 것으로 드러나 검찰 조사를 받았다.
급기야 오리온그룹의 횡령·배임 사건에 연루돼 재판장에 섰다. 홍 대표는 오리온그룹이 비자금 세탁용으로 사들인 미술품을 임의로 대부업체에 담보로 맡기고 208억원의 대출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같은해 홍 대표는 오리온그룹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지은 고급빌라 '마크힐스' 스캔들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여기서 조성한 비자금 40억원을 입금 받아 미술품을 거래한 의혹을 받았다. 홍 대표는 가수 인순이씨가 "마크힐스 사업 자금 명목으로 23억원을 받아 가로챘다"며 가수 최성수씨의 부인 박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고소 사건에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홍 대표는 2012년 저축은행 비리 수사 때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과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간의 불법 교차 대출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홍 대표는 자신이 보관 중이던 박수근 화백의 '노상의 여인들', 김환기 화백의 '무제' 등 그림 수십점을 담보로 제공하고 미래저축은행으로부터 285억원을 대출받은 데 이어 솔로몬저축은행 유상증자에 30억원을 투자한 의혹을 받았다.
이어지는 악연
뿐만 아니다. 지난해 검찰이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증여세 탈루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홍 대표가 앤디 워홀의 '재키'를 25억원에 구매해 넘겨준 사실이 드러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최근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탈세·횡령 수사 과정에서 이 회장의 미술품 거래를 대행하며 법인세 30억원을 탈루한 혐의가 드러나 재판을 받고 있었다.
재계 호사가들에 따르면 홍 대표가 다시 구속되면서 평소 그와 친분이 있는 대기업 사모님들은 바짝 엎드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똥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서다. 물론 친분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없지만, 괜한 오해와 구설에 오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큰 사업체를 경영하는 기업인을 남편으로 둔 부인으로선 어찌 보면 당연한 걱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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