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청 120억 부실장비 도입 의혹

납품업체에 속았나, 알면서도 속였나

[일요시사 사회2팀] 이창근 기자 = 경찰청에 납품된 통신장비가 애초에 발주한 규격을 충족시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일선 경찰청 및 산하기관에 배치되어 있음이 확인됐다. 경찰청은 장비의 규격을 스스로 정해놓고도 규격미달의 장비를 조달함으로써 업무수행 능력에 의구심을 받고 있다.

 

 

경찰청은 본청과 16개 지방청의 노화된 통신장비를 교체하기 위한 입찰계획을 조달청을 통해 발표했다. 2012년 소요예산만 51억원. 이어 2013년 2차 사업에도 70억원을 집행했다. 지난 2년간 경찰청의 노화된 통신장비 교체에 투입된 국민세금은 120억원 규모다.

그런데 이렇듯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교체한 통신장비가 경찰청 스스로가 내놓은 규격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장비로 납품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청이 조달청을 통해 수급한 이 장비는 입찰업체 선정과정은 물론 장비 납품에 대한 검수과정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난맥상을 노출하고 있다.

정전 되면 구형된다?

이번에 드러난 통신장비의 문제점은 ‘전원 공급장치’에 대한 부분이다. 경찰청이 규격기준표(시방서)를 통해 적시한 공통규격에는 ‘최고급형, 고급형, 일반형 IP 전화기, IP Phone 확장버튼’ 등의 전력공급방식에 대하여 ‘AC아답터와 PoE방식을 모두 지원해야 한다’고 적시되어 있으나 실제 납품된 장비 중 ‘IP Phone 확장버튼’이라는 장비는 위 규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규격 외 장비임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AC아답터 방식이란 말 그대로 아답터를 통해 전원을 연결하는 방식이고, PoE(Power of ethernet)방식은 이더넷을 통해 전화기까지 전원을 공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규격 미달 장비 도입하고
담당들 조직적 비호 정황

문제가 되는 확장버튼은 쉽게 말해 전화기 단축버튼 기능을 특화한 장비로 조직이 방대한 경찰청의 주요간부들을 빠른 시간 안에 연결시키는 기능을 목적으로 장착되었다. 유사시 각 부처별 책임자 전화번호를 찾느라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최소 40버튼 이상 지원하도록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기관 통신망에 이 두 가지 전원공급방식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고 적시한 것은 전력이 끊겨 정전이 되는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정전이 되서 AC아답터가 전력을 상실하더라도 PoE 장치로부터 랜 케이블을 통해 확보된 전원을 이용하여 통신망이 유지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2012년과 2013년에 납품된 장비를 확인해 본 결과 IP전화기는 AC아답터와 PoE 방식을 모두 충족하는 장비였으나 확장버튼 장비는 AC아답터만 지원할 뿐 PoE 방식은 지원되지 않았다.(사진) 이른바 스팩아웃(Spes-out) 제품이 납품된 것이다.

확장버튼에 PoE 방식이 지원되지 않으면 정전과 같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일선 지서 및 경찰서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평소 확장버튼을 통해 연락을 취해왔던 핵심간부들의 의사소통에는 큰 혼선을 빚을 것이 자명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경찰청의 모든 간부가 각 부처별의 직통 전화번호를 40개 이상 외우고 있을 것이라고는 쉽게 추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경찰청 노후교환기 교체사업은 국민의 혈세를 바탕으로 시행되는 사업인 만큼 정전만 되면 최고급 사양의 장비가 교체 이전에 쓰던 일반형 장비로 전락하는 체계의 구축은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향후 국가재난망의 근간이 될 것이 경찰청 통신망이기에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경찰청에 규격미달의 장비가 납품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과정이다. 지난 2년 동안 경찰청에 스팩-아웃된 장비의 제조사는 L사이고, A사는 L사의 제품을 바탕으로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하는 파트너 회사이다.


그런데 지난 5월, L사가 ‘국군통신사령부(국통사)의 노후교환기 교체사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확장버튼의 경우는 아답터와 PoE 동시 충족하라는 공통규격을 수정해 달라”는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확장버튼의 경우는 ‘동시 충족 예외’로 해주거나 아니면 ‘PoE 및 아답터 방식’, 즉 둘 중 하나의 방식만 지원해도 규격 만족으로 수용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는 L사의 40버튼 이상 확장버튼 장비가 아답터 방식만 지원할 뿐 PoE 방식으로는 지원되지 않는다는 고백과 다름 아니다. 또한 A사가 지난 2년간 경찰청에 납품한 장비가 규격미달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경찰청 납품에 이어 국통사에도 통신장비를 넣고 싶었던 제조사의 욕심이 A사의 지난 과오를 들춰낸 셈이다. 이 사안은 질의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 업체 납품협상 1순위
또 짜고 치는 고스톱 의심

그러나 국통사의 입찰공고로부터 3개월 후에 공고된 ‘2014년 3차 경찰청(서울청) 노후교환기 교체사업’에서 다시 A사가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서서히 수면위로 떠올랐다. A사가 3년 연속 경찰청 사업을 따내는 쾌거를 이룬 것은 곧 경쟁사인 B사의 3연속 아픔일 수밖에 없었던 것.

쓰디 쓴 고배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던 중 마침 L사가 국통사 입찰에서 이의를 제기한 부분이 발견된 것이다.

B사는 지난 2년간 A사가 경찰청에 납품한 장비가 스팩아웃임을 알아차렸다. 또한 이번 서울청 계약에서도 자사 제품의 결함을 철저히 숨긴 채 입찰에 임했고 저가 정책으로 1순위 협상대상자가 된 것도 밝혀낸 것이다.

“A사의 확장버튼 장비가 아답터와 PoE를 동시에 지원하지 못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국내외 대부분의 장비들이 지원하는 기본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의심을 안했다. 우리의 실력과 노력이 부족한 줄만 알았다. 이제 보니 모두가 속았던 것이다.”

B사가 조달청과 서울청에 민원을 제기했음은 당연한 수순. 그러나 B의 이의제기는 순순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일요시사>가 제보를 받아 취재해보니 조달청측은 “납품업체 선정에 있어 심사는 외부 교수진으로 이뤄진 평가단에서 수행하는 것이고, 검수는 해당 수요처(경찰청)에서 하는 것”이라고 경찰청에 공을 넘겼다.

경찰청 담당자는 “스팩아웃이 아니다”는 입장만을 강력히 고수했다. 그러면서 “공동규격 부분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 해석 논쟁으로 화제를 몰고 가더니 종국에는 “정전이 발생한 가능성은 극히 미미하고, 전화는 PoE 지원을 받아 기능을 수행한다”고 해명했다.

어떤 말을 붙이든 규격미달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L사가 5월 국통수 입찰에는 ‘확장버튼 공통규격을 PoE 및 아답터’로 해 달라 요청한 바 있는데 L사 장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A사로부터 2012년이나 2014년, 금년 입찰에 확장버튼 공통규격에 대한 이의제기를 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부분에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반칙해도 3연속 계약

A사와 우선협상을 벌이고 있는 서울경찰청 담당자들은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청 내부 관계자는 “서울청 계약을 뒤집을 경우, 본청이 진행한 사업의 과오를 인정하는 꼴이라서 잘못을 알고도 강행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결국 경찰청을 기만하고 이득을 취한 업체는 그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과오를 덮으려는 담당자들의 비호아래 3년 연속 경찰청 사업을 독점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만을 당했는지 뒤로 짬짜미를 했는지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공공기관 계약 하나 따보겠다고 숱한 밤을 밝히고 있는 다수의 중소개발회사 입장에서는 참으로 힘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manchoic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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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