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김기춘 못 버리는 세 가지 이유

‘흥선대원군’도 울고 갈 ‘기춘대원군’ 무한신뢰 “대체 왜?”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인사 참사, 세월호 참사 등의 파고를 무사히 넘어선 모양새다. 한동안 여야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왔던 ‘김기춘 사퇴론’이 잦아들고 있는 것이다. 인사권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끝까지 감싼 결과다. 김 실장이 청와대에 입성한 후 불거진 각종 청와대발 악재들을 감안하면 벌써 내쳐졌어야 했지만 김 실장은 결국 살아남았다. 단순히 박 대통령의 신뢰가 깊기 때문이라는 설명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버리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 가운데 김기춘 실장만큼 자주 구설에 오르내렸던 인물은 없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의 배후로 지목됐고,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과정에서는 대통령 보좌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세월호 정국에서 탈출하기 위한 새 국무총리 선정 과정에서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 후보 선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무려 2명의 총리 후보자(안대희·문창극)가 청문회까지 가지도 못하고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비서실장 책임론에
꿈쩍 않는 대통령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김기춘 책임론’을 묻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김 실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실 김 실장은 임명 당시부터 뒷말이 무성했다. 지난해 8월 김 실장이 박근혜정부 2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자 야권에서는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한 ‘유신검사’ ‘초원복집사건을 일으킨 지역감정 조장의 주역’이라는 이유 등을 내세워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야권의 ‘김기춘 비토론’은 박 대통령에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실수도 반복되면 더 이상 실수로 보기 어렵다. 무능이거나 고의다. 마찬가지로 김기춘발 구설과 악재가 연달아 터진 것도 무능하거나 고의로 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청와대 비서실의 수장을 계속 이어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김 실장 감싸기는 변함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끊이지 않는 구설 불구 무한한 ‘기춘 신뢰’
선대 때부터 이어온 두터운 인연 때문?


첫째, 선대(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이어온 두터운 인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고 쓰는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상 선대부터 인연을 맺으며 쌓아온 김 실장과의 신뢰를 져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유신집권의 근거가 된 유신헌법의 초안 검사로, 박 대통령의 모친 육영수 여사를 피격한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기여한 데 이어 박 대통령에게는 모친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수를 잡아 준 은인인 셈이다.

또한 김 실장은 박 대통령 일가와 인연이 깊은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으로 정수장학회 학생들의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상청회는 정수장학회 장학금을 받은 대학 졸업생 모임으로 장학금을 받고 있는 대학 재학생 모임인 청오회 회원들이 졸업하면 자동으로 가입된다.

둘째, 김 실장이 박근혜정권의 브레인으로 사실상의 대통령 역할을 하고 있어 사퇴가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현실적으로 김 실장 외에 지금과 같은 역할을 할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김기춘 청와대 체제’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김 실장에 대한 사퇴요구가 높아지던 지난 5월 “김 실장이 정권의 브레인으로서 사실상 대통령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김 실장 없이는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또 “김 실장은 박 대통령에게 라스푸틴 같은 존재로 문제가 있어도 계속 갈 수밖에 없다”며 “그 역할을 누가 대신하겠나?”라고 꼬집었다. 라스푸틴은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 때 국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했던 러시아 정교회 수도사다.

정권 브레인
‘기춘대원군’


실제로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잇달아 셀프 낙마한 이후 사퇴 의사를 밝혔던 정홍원 총리 유임이라는 황당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은 청문회제도 탓을 했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 실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로 읽히지만 국민들의 시선과는 한참 동떨어진 발언이다.

대신 김 실장이 지난달 발간된 <신동아>를 통해 “(인사실패에 대해) 잘못된 점은 책임을 통감한다”고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사퇴에 대해서는 “앞으로 인사수석실을 잘 운영해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자리를 지킬 뜻을 분명히 밝혔다.

셋째,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른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김 실장을 청와대에 둘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대표는 원조 친박(친박근혜) 좌장격 인사였으나, 현재는 친박의 테두리를 벗어난 탈박 인사로 분류된다.

당 지도부에 속한 친박 인사 중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미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에게 큰 표 차이로 패하며 무릎을 꿇었다. 이완구 원내대표도 김 대표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이 원내대표가 틈만 나면 김 대표를 견제하려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김 대표는 이를 잘 피해가며 자신의 세를 넓혀가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민생행보에 주력하며 청와대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아직 박근혜정부가 2년 차에 불과한 만큼 김 대표가 엎드려 있는 모양새지만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은 시기의 문제일 뿐 충돌이 불가피하다.

김 대표 견제를 위해서는 행정·입법·사법부의 고위직을 두루 거친 김 실장만한 방패막이를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미래권력 견제
방패막이 역할

김 실장이 지난해 8월 박근혜정부 2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될 당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현 교육부 장관)는 “입법·행정·사법 3부를 다 거쳤고 당·정·청을 두루 경험한 어른”이라며 “(박근혜정부의) 로켓이 돼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형국은 김 실장이 로켓인지 정부 그 자체인지 모를 정도로 김 실장의 그림자가 커졌다.

실제로 당·정·청이 한목소리로 약속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김 실장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의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무려 90일간 진행됐지만 별 소득 없이 지난달 활동을 마쳤다. 국조의 하이라이트인 청문회를 앞두고 증인 협상과정에서 김 실장과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 비서관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에 대한 여야 간 이견으로 시간만 끌다 국조기간이 끝난 것이다.

정권 브레인…사실상 대통령 역할도?
‘김무성 견제’ 위한 최고의 방패막이

야권은 청문회 개최를 위한 2차 국정조사를 주장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야당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진실 규명을 위한 청문회는 반드시 열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여야 대표회담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청문회 증인 채택을 합의한 뒤 2차 국조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세월호특별법으로 구성될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최대 현안인 세월호특별법 제정 논의와 관련해 여야, 유가족 측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며 국회가 멈춰선 것과 관련해서도 김 실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명료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김 실장의 뜻이 여야 원내대표 협상이나 새누리당 입장에 반영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는 것이다.

끝까지 감쌀 경우
대통령에 악영향

이처럼 김 실장과 관련한 구설이 지속되는데도 박 대통령이 끝까지 감싸기를 이어갈 경우에는 결국 비난의 화살을 박 대통령이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감싸면 감쌀수록 김 실장과 관련한 구설들은 박 대통령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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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