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장 릴레이 대담> ⑩‘창조경제 전도사’ 김기현 울산시장

“창조·품격·희망 가득한 울산 미래 그려가겠다”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지방선거가 여야의 격전 끝에 절묘한 무승부로 끝이 났다. 여야 어느 쪽의 손도 확실하게 들어주지 않은 선거결과는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준엄한 경고장이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당선된 각 광역단체장들은 일제히 민선6기 임기를 시작했다. 국민들이 보낸 경고장을 받아든 그들은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전국 신임 광역단체장들과의 릴레이 대담을 준비했다. 이번 호에 <일요시사>가 만난 광역단체장은 ‘창조경제 전도사’ 김기현 울산시장이다.

김기현 울산시장의 시정 화두는 ‘품격있고 따뜻한 창조도시 울산’이다. 여기에는 지난 50년간 공업화로 국내 최대 산업도시로 성장한 울산을 ‘창조’ ‘품격’ ‘희망’을 키워드로 새롭게 그려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울산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변방도시라는 한계와 주력산업인 조선, 중공업, 석유화학산업 등이 침체국면에 접어들며 숱한 난제와 도전에 직면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 시장이 역대 울산시장선거 사상 최다 득표(65.4%)로 당선된 것은 ‘김기현이라면 울산의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시민들의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판사 출신의 3선 국회의원(울산 남구을)으로 중앙정치무대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을 눈여겨봤던 시민들이 울산에서도 중앙정치무대에서와 같은 활약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 시장은 국회 입성 후 10여년간 새누리당 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정책위의장 등 중책을 맡아 성공적으로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국회의원 본연의 업무인 입법활동에도 충실해 무려 88개의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근혜정부의 대표적 경제기조인 ‘창조경제’도 김 시장이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시절 기틀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창조경제는 울산의 재도약을 위해 김 시장이 강조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김 시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도 “울산은 지금 ‘창조’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재도약의 기로에 서 있다”며 “울산이 우리나라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중추도시로 나아가도록 이끌겠다”며 창조경제 전도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사법·입법부 경험에 이어 행정까지 경험하게 된 김 시장은 시장임기를 어떻게 수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개인적으로도 정치적 도약기를 맞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제 민선6기 울산시장으로 새로운 울산의 미래를 그려나갈 김 시장의 진솔한 이야기를 <일요시사>가 들어봤다.

다음은 김 시장과의 일문일답.

- 울산시장으로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임기 중 해결해야 할 과제 가운데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는 무엇을 꼽고 계시는지요?

▲ 우선적으로 창조산업 아이템 발굴 및 육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업 등의 주력산업을 고도화하는 한편 IT 등과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충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창조경제정책관’을 두고, 민·산·관 합동으로 창조경제기획단(가칭)을 설치해 미래 거점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나갈 것입니다.

- 이외에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현안들이 있으시다면?

▲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인프라구축이 적기에 조성되는 것은 물론이고 석유거래 관련 금융인프라를 성공적으로 구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한 울산의 주력산업인 자동차와 전지산업이 결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입니다. 아울러 전력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의 결합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인 이른바 ‘스마트 그리드 사업’ 육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 취임사에서 ‘품격있고 따뜻한 창조도시 울산’을 만들겠다고 밝히시며, 울산의 미래상을 대변하는 키워드로 ‘창조’ ‘품격’ ‘희망’을 제시하셨습니다. 각 키워드로 어떻게 울산의 미래를 꾸려갈 것인지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 ‘창조’는 울산의 새로운 성장 동력,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창조경제 실현을 의미합니다. 이는 일자리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품격’은 행복한 삶의 질 제고와 직결되는 문화 인프라를 확충해 품격있는 도시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끝으로 ‘희망’은 ‘희망도시 울산’으로 나아가기 위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인프라로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시민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찬 울산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창조산업 아이템 발굴 및 육성 중점 추진”
“품격 있고 따뜻한 창조도시 울산 만들 것”


-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 등 노후 원전에 대한 폐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기간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의 노후 원전 폐쇄 등 탈핵 공약 제안에 긍정적으로 답변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노후 원전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 노후 원전의 지속적 사용은 시민의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특히 (원전) 사고들이 빈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후 원전 사용연장이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검증된 것이냐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많은 사전적 절차와 합의를 거친 부분인 만큼 당장 이를 중단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때문에 국가 전체의 전력수급 문제와 에너지 공급원 등 제반여건을 충분히 고려해 중장기 원전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아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장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이 효율적인 대안이 될 것입니다.

- 경기침체와 재정난 등을 이유로 장기 과제로 밀린 경전철 사업의 재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고령화 사회, 도시환경 문제 등에 직면한 현실을 감안하면 대중교통수단의 다양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에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중교통체계 전반을 검토할 계획입니다. 경전철 사업은 대중교통 다양화의 한 방안으로 종합적인 시각에서 고려할 생각입니다. 다만 지방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만큼 재정운영에 미치는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시민들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모색할 예정입니다.

- 김 시장께서 지난 1일 새로 선보인 인사가점제도(실적가산점제도 활성화 방안)에 ‘시장 칭찬항목’을 비중 있게 두신 것과 관련해 현실적으로 평직원이 시장과 직접 대면이 어려운 만큼 실·국장에 대한 줄서기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 칭찬항목은 개개인에 대한 칭찬이 의례적인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닌 즉각적인 인사고과 인센티브로 명확하게 반영해 열심히 일하는 공직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로 도입했습니다. 이 제도가 효과적으로 정착되기 위해 평소 업무에 관해 평직원들과 기탄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주요 업무에 대해서는 실무자들과 활발한 토론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이 제도를 통해 소신 있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울산은 산업단지가 많아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편입니다. 안전한 울산을 만들기 위한 대책이 있다면?

▲ 울산은 대규모 산업단지가 많고 액체위험물 취급량은 전국 최대입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 안전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다시 설계해 안전정책부서를 행정부시장 직속으로 기능을 강화하고, 산단안전팀을 신설했습니다. 또한 대형 재난사고 예방 및 대응체계 구축을 위한 울산 U-CITY 통합관리센터를 설치하고 종합소방훈련장 조성 및 전문인력 양성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 지방자치단체들이 재정난으로 힘겹게 지자체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와 해법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재정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지방자치는 허구입니다. 현재 제도상 중앙과 지방이 세입은 8 대 2, 세출은 4 대 6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재정난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지방재정력 확충을 위한 지방소비세율 인상, 지방교부세율 인상, 보조금 포괄위임 등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또한 국가사업의 지방부담 전가 해소 등을 통한 실질적 지방자치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 울산에서 근래 치러진 총선, 지방선거, 보궐선거를 모두 새누리당이 석권하며 새누리당 일색의 정치지형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를 하시는지요?

▲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창조의 틀을 바탕으로 새로운 울산을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시민들의 강렬한 희망이 투영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안정적이고 확실한 지역발전을 바라는 시민의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더욱 큰 책임감을 갖고 시민의 열망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앞선 질문과 관련해 견제와 균형이 무너졌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의회와의 관계를 우려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의회출신으로 의회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의회에 여당이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시민들을 대표해 모인 자리인 만큼 시민들의 입장에서 비판할 것이 있다면 충분히 비판해주시고,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판단된다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시정에 반영할 예정입니다. 의회와는 견제와 균형을 기본으로 객관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소신 있고 열심히 일하는 공직분위기 조성”
“경제지표 1위 넘어 행복지수도 1위 만들 것”

- 4년 뒤 울산시민들에게 어떤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 울산은 지금 ‘창조’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재도약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울산이 우리나라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중추도시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한편 단순한 경제적 지표, 소득지표에서만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행복지수도 1위가 되도록 울산을 변화시켜 보겠습니다. 아울러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가교역할을 해 울산의 새 시대를 연 시장, 도시의 틀을 바꾼 시장, ‘희망의 사과나무’ 씨앗을 뿌린 선견지명이 있었던 울산시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울산시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존경하고 사랑하는 120만 시민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약속드리겠습니다. 항상 섬김과 나눔의 낮은 자세로, 우리 울산이 도시 역량에 걸맞는 위상을 정립하고 명실상부한 일류도시로 나아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은 저와 함께 시정을 이끌어나가시는 주인공이십니다. 새로운 울산, 변화된 울산을 위해 우리가 힘을 합쳐 뛰어야 할 때입니다. 저는 시민 여러분들이 여태까지 해 오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시민 여러분도 저에게 많은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carpediem@ilyosisa.co.kr>


[김기현 울산시장 프로필]

▲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 판사
▲ 울산광역시 고문변호사
▲ 울산 YMCA 이사장
▲ 17·18·19대 국회의원(울산 남구을)
▲ 한나라당 대변인
▲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 민선 6기 울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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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