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손에 쥔 '여의도 X파일' 막전막후

여기서 밀리면 빈손 "갈 데까지 가보자"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검찰과 정치권이 제대로 한판 붙었다. 이미 현역의원 3명을 구속한 검찰은 정치권을 대상으로 한 전방위 수사를 더욱 확대하고 있고, 정치권은 검찰개혁을 부르짖으며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당장 새정치연합은 ‘야당탄압저지대책위’까지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가뜩이나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성추문으로 체면을 구긴 검찰은 이번만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여의도 X파일’을 들이밀며 맞불을 놓고 있다.

서초동과 여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7·30재보선이 끝나자마자 검찰의 칼끝은 정치권을 향했다. 벌써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현역의원의 수가 20명을 넘어섰다. 현역의원들이 이처럼 무더기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초강경 검찰
초강경 정치권

게다가 검찰이 최근 내사를 벌이고 있는 정치인들이 추가로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은 잔뜩 긴장한 모양새다. 지금은 내사단계지만 검찰은 이미 뇌물을 줬다는 진술과 자료를 확보한 상태로 곧 수사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여의도 X파일’이다.

덧붙여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대화록 유출 사건’ 등의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될 정치인의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정치권의 이목이 서초동으로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검찰의 정치권 사정은 연례행사처럼 있어왔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인 검찰의 초강경 대응에 정치권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검찰은 지난달 19일 기습적으로 여야 의원 5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어 21일 의원들이 일제히 영장심사기일 연장을 신청하자 검사 3명과 수사관 40명을 국회로 보내 강제구인을 시도했다. 현직 국회의원에 대한 강제구인 시도는 10여년 만에 처음이었다.

'방탄국회' 열자 강제구인까지, 선공 날린 서초동
'감히 우리를 건드려?' 여의도, 검찰개혁안 만지작

검찰이 구인장 집행에 나서자 자신의 의원실에서 버티거나, 어디엔가 숨어 있던 의원들은 결국 자진출석을 약속하며 백기를 들고 말았다. 시쳇말로 의원들은 모양이 빠졌고, 이는 정치권이 검찰에 백기를 든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검찰이 이처럼 초강수를 둔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검찰 측은 이날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 국회 회기가 이어지면서 수사가 장기화될 수 있고, 세월호 참사 이후 관료조직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 인사들만 처벌하지 못할 경우 법집행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측은 자택에서 뭉칫돈이 발견된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의 해운비리 의혹과 철피아 비리 의혹에 연루된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 등 여당 의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어지자 이를 ‘물타기’ 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검찰이 이번에 유독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한 것을 놓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과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문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공연음란행위까지 충격적인 사건이 이어지면서 검찰에 쏠린 비판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기획수사는 아닌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검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정치권 비리를 내사해 왔는데 김수창 지검장 사태가 불거지면서 물타기를 당한 쪽은 오히려 우리”라며 “공들여 준비해온 수사가 폄훼당하고 있는 것이 화가 나고 가슴 아프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정치권 탄압?
검찰 탄압?

한편 새정치연합은 검찰의 이번 수사를 표적수사, 끼워넣기수사, 물타기수사라며 강력 반발하면서 검찰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죄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검찰이 기습작전하듯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강제구인을 시도한 것은 명백한 야당탄압이라며 ‘야당탄압저지대책위’까지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해당 대책위는 조정식 사무총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았고, 간사를 맡은 진성준 의원을 비롯해 김현미·김영록·진선미·박수현·박범계·전해철·정청래 의원이 참여한다. 당 법률위원장이자 원내대변인인 박범계 의원은 “검찰에 의한 야당 탄압에 결연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사실상 검찰에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검찰이 최근 수사에서 정치권의 쪼개기 후원금과 출판기념회를 불법정치자금 수집통로로 지목한 것을 놓고 벌집을 건드린 셈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오세훈법 시행 이후 쪼개기 후원금과 출판기념회를 통한 정치자금의 모금은 공공연히 허용되어왔던 문제인데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방식의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비리 정치인 명단에 오를 수 있다는 공포가 여의도 전체에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반응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유무죄 여부를 떠나서 정치인으로서는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치명적이다. 이런 일로 매스컴의 플래시 세례를 받고 나면 다음 선거에서 살아 돌아오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일단 여야 정치권은 바짝 엎드리면서도 속으로는 검찰 수사에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검찰에 유리하게 흘러가던 전투는 새정치연합 신계륜, 신학용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청구가 기각되면서 반전되기 시작했다. 일단 새누리당 박상은, 조현룡 의원과 새정치연합 김재윤 의원을 구속시키면서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지만, 야당탄압 주장에 대해 증거로 말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던 검찰의 체면은 구겨지고 말았다.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검찰은 입법로비 당사자인 김민성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이사장의 진술 외에는 별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새정치연합 소속 의원들 중 유일하게 구속된 김재윤 의원의 경우는 김 이사장과 김 의원이 만난 당일 김 의원의 보좌관이 국회 내부 ATM에서 계좌로 받은 돈을 입금하는 장면이 CCTV에 잡혀 구속이 결정됐다.

검찰은 법원의 결정에 대해 ‘몸통’은 풀려나고 ‘깃털’은 구속됐다며 추가 수사의지를 불태우며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계획이지만 구속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새정치연합에선 검찰의 부실수사, 표적수사가 드러났다며 반발하고 있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야권이 체포동의안 통과를 거부할 명분이 생긴 데다가 김 이사장의 진술 외에는 별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안 속도?
정치권개혁 속도?

법원의 영장기각 이후 새정치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대한민국 검찰이 늘 정기국회를 앞두고 8월이면 연례행사처럼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야비한 장난을 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때문에 검찰이 섣부르게 정치권을 건드린 대가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검찰개혁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 들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수사가 야당 탄압이 분명하다며 이미 강경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우리를 잘못 건드린 것”이라며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이처럼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국민들이 검찰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정권의 하수인처럼 움직여온 검찰을 개혁할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죄 판결나도 비리명단 오르면 이미지 끝장
복수 다짐하지만 속으론 납작 엎드린 정치권

실제로 정치권이 쥐고 있는 패는 다양하다. 정치권이 검찰개혁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 검찰의 권한이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정치권에서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등을 법조계 외부 인사로 임명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개혁안이 관철된다면 검찰은 물론이고 법조계 전체가 무척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또 검사장을 절반으로 줄이고 고위급 검찰인사 임명 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케케묵은 갈등인 검경 수사권 문제에서도 정치권이 경찰의 손을 적극적으로 들어줄 가능성도 있다. 기소권의 독점으로 높은 도덕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검찰이 잇따라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거나 도덕적 해이현상을 보이면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이미 충분한 명분을 쌓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정치권은 검찰의 그간 비리를 다시 들춰내면서 검찰의 뼈를 깎는 쇄신책을 요구하고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최근 공연음란행위가 적발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해임되지 않고 스스로 사표를 쓰고 나가면서 별다른 제재 없이 공무원 연금을 받고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기도 했다. 일각에선 정치권과 검찰의 진흙탕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수사에 올인
판 커진 도박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검찰은 더욱 물러설 수 없게 됐다. 만약 이번 수사에서 다수의 정치인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된다면 검찰을 향한 비판여론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검찰 개혁안에 속도를 낼 명분을 얻게 된다.

반대로 검찰이 여야 정치인들의 비리의혹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들을 찾아낸다면 정치권의 검찰개혁 주장은 오히려 검찰탄압으로 둔갑하게 된다. 검찰이 이번 수사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 이유다. 같은 이유로 정치권 역시 당분간은 검찰 흔들기에 몰두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난데없이 벼랑 끝 승부를 펼치게 된 서초동과 여의도.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여의도 X파일을 쥐고 있는 서초동의 움직임에 여의도와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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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