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시한폭탄 '입법로비' 천태만상

"국회의원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국회의원들이 그동안 뇌물을 받고 입법활동을 했다?" 검찰이 정치권 입법로비 의혹에 대해 전방위 수사를 시작하면서 국회가 충격에 빠졌다. 입법활동은 국회의원이 가지는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권한이다. 정치권의 반응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로 밝혀진 정치권 입법로비의 실태를 <일요시사>가 추적해봤다.

검찰이 정치권을 정조준하고 있다. 7·30재보선이 끝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시작된 입법로비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국회의원들의 숫자는 어느새 10명을 훌쩍 넘어섰다.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 의원 등이 그 주인공이다.

돈 받고 입법?
수상한 거래

최근에는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이 새정치연합 양승조 의원 등 야당 현역의원 12명과 전직의원 1명을 대한치과의사협회로부터 입법을 대가로 후원금을 받았다고 고발하고 나서면서 입법로비와 연루된 의원들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우선 인천이 지역구인 박상은 의원의 경우는 인천항운노조로부터 지속적으로 쪼개기 후원금을 받아온 것이 밝혀져 수사선상에 올랐다. 지난 2012년에는 4곳의 해운 관련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각각 300~500만원의 후원금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박 의원은 지난 2011년 도서접경지역 항만을 운항하는 선박의 제작비용을 국가가 보태주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선박의 안전관리를 해운조합에 넘기도록 하기도 했다. 항운노조와 해운 관련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받은 후원금이 사실상 입법로비 성격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나머지 의원들의 혐의도 박 의원과 대동소이하다. 특정단체로부터 쪼개기 후원금 또는 출판기념회 축하금 명목 등으로 돈을 받았고, 공교롭게도 해당 의원들은 돈을 받은 전후로 특정단체에 유리한 법안을 발의하거나 통과시키는 데 주력했다.

일부 대기업 직접 법안 만들어 보내기도
쪼개기 후원금 안 걸릴 의원이 더 적어

특히 검찰이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가 로비한 것이라고 지목한 법안은 당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으나 세월호 정국을 틈타 불과 8일 만에 일사천리로 통과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검찰은 해당 법안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통과된 것은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 중진 의원들이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신계륜 의원은 소관 상임위원장으로 법안 처리과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입법로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입법활동은 국회의원이 가진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권한이다. 그런데 의원들이 사익 추구를 위해 돈을 받고 특정단체에 유리한 법안을 통과시켜준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자신들의 가장 신성한 권한을 돈을 받고 판 셈이 된다. 

또 돈을 받은 의원들은 물론이고 ‘특혜법안’을 통과시켜준 국회의원 전체가 공범으로 지목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반 비리의혹 수사보다 입법로비 수사에 대해 정치권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직후 여야 할 것 없이 입법로비 수사가 정당한 입법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다.

끼워 맞추기 수사?
정치권 ‘부글부글’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끼워 맞추기식 수사대로라면 국회의원 중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전직 국회 비서관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특정단체로부터 쪼개기 후원금을 받은 것이 문제라면 걸리지 않을 정치인은 거의 없다고 본다.

연말까지도 모금 한도액을 모으지 못한 의원실은 비상이 걸리는데, 그러면 보좌진들이 이른바 ‘후원금 앵벌이’에 나선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는 아무리 후원금을 모금해봤자 반응이 시큰둥하다. 10만원까지는 전부 세액공제를 받는 데도 그렇다.

결국 이때는 그동안 받은 명함을 전부 책상 위에 꺼내놓고 평소 알고 지낸 인맥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상임위와 연관돼 평소 의원실에 자주 들락거렸던 특정단체 인사들에게도 연락을 안 할 수가 없다. 10만원까지는 세액공제를 받기 때문에 부탁하기 어렵지도 않다.


당연히 의원실에서도 부탁을 좀 한다는 정도지 로비를 받는 것이라고 인식하지는 못한다. 잔뼈가 굵은 단체들은 먼저 접근해오기도 하고 의원실에서 다급할 때 먼저 찾기도 한다. 이 정도는 아마 다른 의원실에서도 일반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이 과정에서 특정단체에 유리한 법안이 발의되는 경우도 있지만 후원금을 받았다고 의원들이 무턱대고 말도 안 되는 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통과될 법이 통과된 것 뿐”이라며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실제로 쪼개기 후원금을 받은 의원들은 해당 단체가 자신에게 후원금을 쪼개서 낸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해당 법안을 발의한 것은 정상적인 입법활동이었을 뿐이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현행법상 쪼개기 후원금을 낸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향후 후원금과 입법 사이에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었는지 밝혀내는 일은 검찰로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디까지를 입법로비로 볼 것이냐를 놓고 법정에서 치열한 해석 공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사례는 이미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11년 벌어졌던 청목회 사건이 대표적이다. 청목회 사건은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이하 청목회) 회원들이 청원경찰의 처우를 개선하는 입법을 목적으로 소관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현 안전행정위) 소속 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금을 냈다 적발된 사건이다. 당시 법원은 돈을 받은 의원들에게 벌금형 또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려 경미한 처벌을 했지만 특정단체로부터 쪼개기 후원금을 받은 것이 유죄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했다.

당시 이를 둘러싼 논란은 대단했다. 이에 대해 김부겸 당시 민주당 의원은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검찰은 부자가 아닌 자가 감히 남의 돈 받아가며 정치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청원경찰들은 정치과정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후원제도를 활용했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다녔던 것”이라며 “해당 법안은 사회적 소수자인 청원경찰의 처우개선을 위해 발의된 법안이다. 그 법이 발의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당연히 공동 발의자로 서명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목회 사건으로 기소된 최규식 전 민주당 의원은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수수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치자금법 제45조2항 제5호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6대3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김부겸 전 의원의 지적처럼 국회가 걸핏하면 입법로비 시비를 겪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현실성 없는 정치자금법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차떼기 불법선거자금’으로 큰 홍역을 치른 정치권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를 만들고 정치자금법 개혁안을 쏟아냈다. 당시 정개특위 한나라당 간사로 개혁법안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라, 이때 만들어진 법은 일명 ‘오세훈법’이라고도 불린다.

오세훈법에 대해 정치권은 이렇게 소액다수로 정치자금을 모금하게 되면 오히려 범법이 끼어들 여지가 많고, 국회의원들을 전부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10만원 이하 후원금 세액공제로) 세금을 내나 후원금을 내나 지출하는 돈이 똑같아 바람직한 정치자금후원회 풍토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로 오 전 시장은 정치자금법 입법을 밀어붙였다.

‘오세훈법’
악법? 호법?

당시 정치권의 우려가 1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세금을 내나 후원금을 내나 똑같아 소액다수후원이 금방 정착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우리나라 정치풍토에선 30년은 이른 법안이었다”며 “현재 후원금 모금한도가 선거가 있는 해는 3억원, 선거가 없는 해는 1억5000만원인데 정말 상임위 관련 기관이나 관련 협회, 기업의 후원을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소액다수후원만으로 후원금 모금한도를 모두 채우는 사람은 현재 국회에 단 한 명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들의 후원을 받는 한 누구든 입법로비 수사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오세훈법이 사실상 모든 의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 버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연봉이 1억이 넘는 의원들이 돈줄이 막혀 입법로비 유혹에 시달린다는 것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그는 모르는 소리라고 항변했다.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의 경우에는 세비와 정책개발비 등으로도 충분히 의정활동을 할 수 있지만 지역구 관리를 해야 하는 의원들은 늘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일례로 의원들이 가장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것이 지역구 사무실 운영비인데 사무실 임대비용과 인건비, 차량 운영비, 공과금 등을 모두 포함하면 연간 1억원 정도는 지출된다고 한다.

사회 일각에선 로비 합법화 주장도
고비용저효율 정치제도부터 바꿔야

이외에도 국회의원이 되면 돈을 써야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일반 국민들은 국회의원이 되면 억대 연봉을 받으며 여유롭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금배지를 달고 나면 빚만 느는 사람도 많다는 하소연이다. 쪼개기 후원금과 함께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도 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좀처럼 포기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출판기념회는 쪼개기 후원금보다 좀 더 노골적인 정치자금 모금 수단이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모금한 돈은 정치자금이 아니라 축의금으로 보기 때문에 선거관리위원회에 회계보고를 해야 할 의무도 없다. 출판기념회를 한 번 열 때마다 아무리 못해도 수천만원의 돈이 현금다발로 쏟아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처럼 돈줄이 막힌 의원들이 음성적인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모금하다 보니 입법로비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일부 기업이나 단체 등에서는 아예 필요한 법안을 만들어 의원실에 보내 입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일부 대기업들이 만들어 보낸 법안의 경우는 완성도가 뛰어나 바로 발의를 해도 될 정도라고 한다.

애매한 기준
치열한 해석 공방


가뜩이나 입법 실적이 부족한 의원들의 경우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법안이라면 발의를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를 모두 입법로비로 처벌한다면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특정 기업을 위한 법이냐, 경제를 살리기 위한 법이냐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일례로 지난해 외국인투자촉진법을 놓고 얼마나 말이 많았나? 대기업 특혜법이라고 야당에서 반대했는데 대통령까지 나서서 해당 법안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도 입법로비를 받은 것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미국처럼 국회의원에 대한 로비를 합법화해 양성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로비가 합법화될 경우 힘없는 일반 사람들은 입법과정에서 소외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고비용저효율의 현재 정치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다.

 

<mi737@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