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없는 CJ그룹 위기론 막전막후

‘수장 부재’ 재계 15위 기업이 흔들린다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회장님 없는 상황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CJ그룹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룹 주요계열사의 지난 2분기 실적은 적자를 기록하거나 이익이 크게 감소했고, 미래 비전이나 신사업 추진이 올스톱 된 상황이다.

이재현 CJ그룹에 대한 '징역 4년, 벌금 260억원'이라는 1심 재판부의 판단이 내려진지 6개월이 지난 8월14일, 항소심 결심 공판이 열렸다. 환자복 차림의 이 회장은 휠체어에 앉아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 그룹 임원들과 함께 10여분 일찍 공판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건강도 잃고
명예도 잃고

지난 1년간 이 회장은 너무나도 나약해져 있었다. 지난해 5월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기조에 따라 재벌기업에 대대적인 칼바람이 몰아쳤고 CJ그룹도 타깃이 됐다. 이 회장은 1990년대 중·후분 조성한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운용하면서 조세포탈·횡령·배임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 수감됐다. 이 회장은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 지난해 8월 신장이식수술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를 신청,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은 이 회장은 법원이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지난 4월 서울구치소로 복귀했다. 이후 다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이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변호인은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치의 의견에 따라 지난 22일 만료된 구속집행정지 연장을 다시 신청했다.

이날 공판장에 나타난 이 회장의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지만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은 그의 상태를 대변했다. 환자복 아래로 드러난 하체 종아리는 뼈만 남아 있는 앙상함 그 자체였다. 60kg이 넘던 몸무게는 수술 후 50kg 안팎으로 줄었다.


이 회장은 지난해 8월 부인 김희재 여사로부터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나빠져 구치소와 병원을 오가며 치료와 재판을 병행해 왔다. 이 회장은 희귀유전병(CMT)과 말기신부전증, 고혈압, 고지혈증 등으로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다.

회장 수감 사이 그룹 날개 없는 추락
미래 비전·신사업 추진 전면 올스톱

이 회장이 앓고 있는 유전병은 '샤르코-마리-투스병'이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손발의 근육이 점점 약해져 심하면 걷지도 못하게 되는 희귀질환이다. 지난해 이 회장이 검찰 출석을 할 때 구부정하게 걷거나 특수신발 등 보조기구를 이용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이 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CMT의 근본치료법은 없다. 증상을 완화할 수 있을 뿐이다. 심해지면 근육 변형을 교정하는 수술을 한다. 인구 10만명당 36명 꼴로 발생하며 50대를 넘어서 급격히 악화된다.

만성신부전증도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이 회장의 신장 기능은 정상인보다 기능이 10% 이하로 감소한 상태. 그는 신장 이식 수술 후 고용량 면역 억제 치료를 받고 있어 감염 위험이 높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또 94년 처음 고혈압을 확인하고 97년에는 뇌경색이 발생해 뇌졸중 판정을 받은 후 약물치료를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신상 이식 수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는 이 회장의 유전병을 악화시켰고 이날 재판에 참석해기 위해서도 이 회장은 면역제와 신경안정제를 투여 받았다. CMT병은 루게릭병의 일종으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면 무릎과 팔꿈치부터 신경과 근육이 퇴화되는 병으로 손발을 못 쓰게 돼 결국 앉은뱅이가 된다.

이 회장의 변호인은 "이 회장이 이식받은 신장의 수명은 10년 정도인데 거부반응으로 인해 수명은 더 단축됐을 것"이라며 "이 회장은 사실상 10년 미만의 시한부 생을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회장님 아프니
그룹도 아프다

이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모든 것이 제 잘못이고, 제 불찰이며,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책임지겠습니다"라며 "살고 싶습니다. 살아서 제가 시작한 문화 사업을 포함한 CJ의 미완성 사업들을 반드시 세계적인 글로벌 생활 문화 기업으로 완성시키려 합니다. 이것이 길지 않은 저의 짧은 여생을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앞서 재판부에 자필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최후진술이 끝나자 이 회장의 부인 김희재 여사와 CJ그룹 임직원들 일부는 눈물을 글썽였다. 재판 종료 후에는 이 회장이 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검찰은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100억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의 지시를 받아 해외 비자금 조성 업무를 총괄한 혐의를 받고 있는 CJ 홍콩법인장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에게는 징역 4년에 벌금 1100억원이, 범행에 가담한 성용준 CJ제일제당 부사장, 배형찬 전 CJ재팬 대표, 하대중 전 CJ 대표에게는 각각 징역 3년 등이 구형됐다.

검찰은 "회사를 투명하고 건전하게 운영해야 할 이 회장이 세금을 포탈하고 회삿돈을 횡령한 만큼 엄히 벌해야 한다"며 구형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또 "CJ가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으로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고 경제에 기여한 바는 크지만 대한민국이 없으면 CJ도 없고, 대한민국의 존립 근거는 국내에 납부하는 세금에 있다"며 "최근 인기를 끈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다'고 말하며 왜구를 물리치러 나갔던 것처럼 물질보다는 건전한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 회장의 변호인은 이번 항소심의 핵심 쟁점이던 603억원의 부외자금 횡령 혐의와 관련해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은 "비자금 조성 자체로는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고 사적 용도로 썼을 때만 횡령죄가 된다"며 "이 사건 비자금은 모두 지원의 격려금 등 공적 용도로 사용한 만큼 이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은 부외자금 사용처에 대해 아무런 입증을 못했다"며 "원심은 검찰 주장에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채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용됐는지 전혀 심리하지 않고 유죄를 선고해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또 "포탈 세액을 모두 납부했고 부외자금 횡령 부분은 유무죄를 다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액 변제했다"며 "이 사건과 관련된 피해액을 모두 변제했고 경영권 확보를 위해 부득이하게 차명주식 거래를 했덤 점, 이 회장이 신장이식 수술 후 사실상 10년 미만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회장 측은 1심에서 포탈 세액을 전액 변제한데 이어 부외자금 횡령액 603억원에 대해서도 모두 변제했다. 서울형사고법은 다음달 4일 항소심 선고를 내린다.

1년 새 급격하게 악화된 이 회장의 모습은 CJ그룹의 현 상황과 투영된다. 비슷한 시기 검찰 수사를 받은 최태원의 SK그룹과 김승연의 한화그룹은 비교적 오너리스크가 덜했지만 그룹 전체가 '1인 독주 체제'로 이뤄진 CJ그룹의 사정은 달랐다. CJ그룹은 이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 6명이 4개 상장계열사 주식을 1조6000억원 가량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98%를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어 1인 경영체제가 확고하다.

이 회장의 경영공백은 고스란히 CJ의 실적악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28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목표인 30조원 달성에 실패했다. 영업이익 목표치는 1조6000억원이었으나 70%(1조1000억원) 수준에 그쳤다.

그룹에 대한 투자도 줄었다. CJ그룹은 2010년(1조3200억원), 2011년(1조7000억원), 2012년(2조9000억원) 등 해마다 투자 규모를 늘려왔다.

특히 2012년에는 문화 사업 글로벌 진출 확대 의지에 따라 당초 계획보다 20%를 초과한 투자를 했다. 하지만 지난해 투자금액은 계획대비 20% 줄어든 2조6000억원에 머물렀다. 올해는 그보다 20% 더 줄어든 2조원을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력계열사인 CJ제일제당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3.9% 감소했다. 상반기 실적도 전년 대비 제자리 걸음을 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3조5635억원으로 0.1% 소폭 줄었다.


영업이익은 1857억원으로 2.1% 감소했다. CJ제일제당 생물자원사업부문은 베트남과 중국 업체를 대상으로 인수·합병(M&A)를 추진했지만 최종 인수 전 단계에서 중단됐다.

CJ푸드빌도 실적 악화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드 DWJDQB 구제 영향으로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린 탓이다. 지난해 매출은 10.8% 향상된 9478억원을 기록했지만 124원의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했다. 지난 5년간 손실만 239억원에 달한다.

자회사 중 지난해 수익을 거둔 곳은 CJ엔씨티와 미국법인 뚜레쥬르 인터내셔널이 유일하다. CJ베이징베이커리는 98억원의 적자를, CJ베이커리베트남은 57억원의 적자를, CJ푸드빌USA는 55억원의 적자를 냈다.

'1인 독주체제'
마땅한 대안 없다

대대적인 브랜드 철수도 이어졌다. 씨푸드오션, 피셔스마켓 브랜드가 폐점했고 루고커리는 본사 푸드월드점을 제외하고 모든 점포를 정리 중이다. 비비고 1호점인 광화문점도 다른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식자재유통·급식기업인 CJ프레시웨이도 지난해 외식경기 침체 직격탄을 맞아 영업이익이 대폭 악화됐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84억9800만원을 기록해 전년대비 68.1% 감소했으며 같은기간 매출액은 1조8769억원으로 0.2% 증가했지만 당기순손실은 141억8000만원으로 적자전환했다.


CJ프레시웨이와 CJ CGV, CJ대한통운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68.1%, 6.7%, 55.1% 줄어드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 1월 충청지역에 물류 터미널 거점 마련을 위해 2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의사 결정이 미뤄지면서 계획 추진이 보류됐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하반기에도 미국과 인도 물류업체 인수를 추진하다 협상단계에서 계획을 미룬 바 있다.

CJ CGV의 해외 극장사업 투자 역시 지연되고 있으며 CJ오쇼핑의 해외 M&A를 통한 사업 확대 계획도 거듭 연기되고 있다.

징역 5년에 벌금 1100억원 구형
"살고 싶다" 재판부에 선처호소

CJ그룹이 야심차게 기획하고 시작한 인천 굴업도 관광단지내 골프장 건설계획은 전면 백지화됐다. 2009년 인천 서해 굴업도에 골프장과 관광호텔, 콘도미니엄 등이 포함된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을 추진 중이었다.

총 예상 투자비는 3500억원으로 CJ 측은 연간 20만명의 관광객, 56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 2만여명의 고용 유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골프장 건설로 인한 환경 훼손을 우려한 환경단체의 반대로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CJ그룹 측은 "골프장을 포기하는 대신 환경친화적인 대안시설을 도입해 관광단지를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핵심 수익시설인 골프장 건설이 무산되면서 사실상 관광단지 개발 자체가 불투명해졌다는게 재계의 분석이다.

'한국판 유니버셜 스튜디오'로 관심을 모았던 동부산관광단지 영상테마파크 사업도 포기했다. 2500억원이 들어가는 건설 투자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지 내 상업시설을 아울렛 사업자에게 임대하려고 했지만 부산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불거지면서 결국 협약을 해지하고 철수한 것이다.

경기도 광주시에 착공 예정이던 수도원택배허브터미널 사업은 무기한 연기했다. 공사비 1500억원, 총 3000억원 규모의 대형 사업으로 하루 130만 상자를 처리해 '수도권 하루 2배송'을 실현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아직 어린 자녀
승계 시기상조

마땅한 대책도 없다. 올해 초부터 이 회장의 삼촌인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필두로 '그룹경영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여전히 CJ그룹을 둘러싼 경영환경은 나아지고 있지 않다. 마땅한 '포스트 이재현'도 없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그간 CJ E&M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관련 분야만 이끌어온 이 부회장은 부적절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장녀 경후씨와 장남 선호씨 등 이재현 2세가 있긴 하지만 둘 다 20대로 어린데다가 각각 2011년 2013년 그룹에 발을 들이는 등 아직 승계는 시기상조라는 시선이 많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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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 윤석열 한가위 플랜

‘산 넘어 산’ 윤석열 한가위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반가운 얼굴과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예민하지만, 또 그만큼 흥미로운 정치 이야기도 한두 마디씩 오간다. 그래서인지 용산은 마냥 웃을 수 없다. 추석을 앞두고 연이어 리스크가 터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연휴 내내 야당이 추석 밥상을 독차지할지도 모른다. 물가는 오르는데 국정 지지율은 내림세다. 추석 연휴 동안 의료 대란은 예견된 문제였다. 야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역풍 맞을 위기에 처한 마당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묘한 거리감도 신경이 쓰인다. 꺼야 할 급한 불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지지율 추락 30% 뚫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20%대인 29.6%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 8월 첫 번째 주 29.3%를 기록한 이후 약 2년 만에 다시 20%대 지지율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6∼3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이 같은 수치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는 66.7%, ‘잘 모름’은 3.6%다. 해당 조사는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2.7%였다. 신뢰수준은 95%에 표본오차 ±2.0%p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치권에서는 의료 대란을 비롯한 물가, 당정 갈등 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했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야당이 의료 공백 문제를 입 모아 지적하면서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의료개혁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를 겨냥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서 의료개혁과 관련해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만큼, 개혁의 본질인 ‘지역, 필수 의료 살리기’에 정책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기존의 뜻을 확고히 했다. 의료진과 대통령의 인식 차이에 대한 질문에는 “의료 현장을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비상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 등의 말을 했다. 이에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혼자서만 달나라에 사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일 국회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중증·난치 환자를 떠나버린 전공의가 제일 먼저 잘못하는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응급실은 중증 환자만 이용할 수 있게 제도화할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정부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지난 4일 윤 대통령은 심야 응급실을 방문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진이 ‘번아웃’되지 않도록 각종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지만 이미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길어지는 의료 대란, 사면초가 한동훈 영부인 공천 논란까지? 상다리 휘는 야 물가 문제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지난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물가상승률은 작년 동월 대비 2.0%로 집계됐다. 이는 1.9%이던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정부는 이 점을 강조하며 물가 안정세를 강조했지만 당초 지난달 물가가 높았던 탓에 국민이 체감하긴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달 정부는 민주당이 발의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에 대해 거부권을 썼다. ‘현금 살포’ ‘표풀리즘’이란 지적이 나와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데 싫어할 국민은 없다”며 “추석을 앞두고 (25만원 지원법을)딱 잘라 거절했으니 이에 맞먹을 대응책을 가져와야 한다.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법안이든 지원금이든 국민이 피부로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윤 대통령은 “기초생활수급자 167만명에게 지급하는 생계급여를 추석 전 조기 지급하라”고 지시하면서 민생경제 분야서 승부수를 띄웠다. 같은 날 민주당은 당론으로 추진하던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역화폐법 개정안)을 국회서 의결하면서 마찬가지로 이슈 선점에 나섰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추진하던 25만원 지원법과 다를 바가 없다며 “내 세금 살포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대표적인 민생 법안을 정쟁 법안으로 활용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유감”이라며 맞불을 놨다. 용산을 향한 야당의 공세가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이에 맞서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권 인사를 겨냥해 수사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공격 대상이 됐다. 김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권오수 전 회장 등의 2심 선고기일이 오는 12일 예정된 만큼 이를 덮기 위한 ‘급발진 수사’를 진행한 게 아니냐는 점에서다. 검찰은 오는 9일 신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공판기일 전 이뤄지는 증인신문에 “문 전 대통령도 참석하라”고 통보했다. 법적으로 따졌을 때 출석 의무는 없지만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보고 있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시 쥔 총자루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는 문 전 대통령과 딸 문다혜씨에 대한 수사를 두고 “추석 명절 밥상에 윤석열, 김건희 대신 다른 이름을 올리기 위한 국면 전환용 기획수사”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부부에 대한 혐의는 덮어주는 검찰이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 대해서는 도의를 무시하는 수사를 전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받는 김혜경 여사도 소환했다. 지난 5일 김 여사가 수원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것을 두고 민주당은 “야당 대표로 모자라 배우자까지 추석 밥상머리에 제물로 올리려는 정치검찰의 막장 행태”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윤정부는 집권 후 추석 밥상마다 이 대표를 올리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며 “검찰은 이번에도 반성은커녕 야당 대표의 배우자마저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겠다고 한다.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 탄압 수사가 검찰의 추석 기념행사냐”고 직격했다. 야당의 사법 리스크가 추석 밥상에 올라오나 싶더니 김건희 여사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뒤집혔다. 김 여사가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당시 5선이었던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야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김 여사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추석 밥상에 올리면서 명품가방 수수 의혹부터 공천 개입 논란까지 전 방향으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대통령실은 김 전 의원이 당초 컷오프된 점을 들며 반박했지만 논란이 쉽게 가라앉진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소문이 무성하던 김 여사의 당무 개입과 선거 개입, 국정 농단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며 “‘김건희 특검법’에 이를 포함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엄포를 놨다. 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당시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한 대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며 “두 사람 모두 대답하지 않을 경우 김건희씨의 국정 농단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야당의 발목을 잡나 싶었지만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이 등장하면서 한순간에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형국이다. 용산이 코너에 몰린 상황서 여당이 난관을 헤치고 새로운 의제로 판을 엎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끝까지 시끌벅적 하지만 ‘N번째 윤-한 갈등’이 불거진 시점서 당에 큰 기대를 하기엔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여당이 합심해 추석 밥상을 차리고 싶어도 자꾸만 손발이 엇나가니 오히려 민주당만 득을 본다는 설명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국민의힘과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 대표가 제3자 특검법을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 야당에 꽃놀이패를 직접 쥐어준 것과 다름없다. 한 대표가 용산과 언제 또 충돌할까 지켜보는 당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하다”고 토로했다. 다음 달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부산 금정구서 만에 하나 국민의힘이 패배한다면 한 대표 사퇴 요구로 이어질 것이란 구설이 여의도 정가를 떠돈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서 국민의힘이 패배하자 김기현 전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처럼 한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아직은 친한(친 한동훈)계 보다 친윤(친 윤석열)계 비중이 큰 만큼 당이 갈라지진 않겠지만 60%가 넘는 당원이 선택한 당 대표를 쫓아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정 갈등마저도 야당의 반찬으로 내어줬다. 용산이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 카드를 제시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용산은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반기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국정 브리핑서도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니라 제가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며 국회 정상화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사실상 이 대표와의 만남을 거절한 셈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첫 영수회담은 지난 4월29일이었다. 윤정부 출범 이후 720일, 4·10 총선이 끝난 지 18일 만이었다. 당시 총선서 국민의힘이 참패하자 국정 전환용으로 ‘소통하는 정부’를 내세웠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온갖 리스크를 꺼내 들고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는 시점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영수회담에 응하지 않겠냐는 설명이 나오는 이유다. 꽉 막힌 국회 탄핵 거부권만 도돌이표 분위기 반전시킬 영수회담 카드 꺼낼까 이 대표는 지난 8·18 전당대회서 재임에 성공한 직후부터 줄곧 대화를 요청해 왔다. 윤 대통령 입장서도 제1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무기한으로 미룰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첫 번째 영수회담처럼 ‘안 만나느니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올 경우, 오히려 용산의 실책으로 이어질 우려가 제시된다. 지난 1일 여야 대표 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만큼 대통령조차 야당 대표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민주당이 “불통” “꽉 막힌 소통” 등 공격적인 논평을 쏟아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수회담이 이뤄져도 꽁꽁 얼어붙은 정국이 풀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지난 5일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제22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여야정 민생협의체’를 제안했다. 하지만 연설 후반부에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조준하자 야당 측 의석서 반발이 터져 나왔고 민생협의체 논의는 뒷순위로 밀렸다. 야당 의원들 사이서 윤 대통령이 보내온 추석 선물을 거부하는 ‘선물 보이콧’도 일어났다.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자신의 SNS에 추석 선물 사진과 함께 “용산 대통령로부터 배달이 왔다”며 “받기 싫은데 왜 또다시 스토커처럼 일방적으로 (선물을)보내시나”라고 글을 게시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스토커 수사’나 중단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선물 보내지 마시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외교도, 장관 임명도 마음대로”라며 “(국회)개원식 불참까지 제멋대로 하더니 안 받겠다는 선물을 기어이 보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은 “당장 눈앞에 택배기사님 고충을 생각하시는 것부터 시작하시라. 참고로 대통령실 명절선물은 지역주민들의 피땀으로 만든 특산품”이라고 말하는 등 국회 곳곳서 잡음이 일기도 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겨도 용산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눈앞에 놓인 국정감사와 예산 심사가 끝나면 수능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4대 개혁(연금·의료·교육·노동) 중 교육개혁이 다시 한번 주목받는 때이기도 하다. 이제 곧 수능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석에 의료개혁이 문제가 됐다면 그다음으로는 교육개혁이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교육개혁이든 의료개혁이든 취지는 좋은데 문제는 이 개혁안을 벌여놓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니 사방서 문제가 동시에 터지는 것”이라며 “의대 증원으로 인해 올해 수능은 ‘초긴장 모드’다. 지난해 ‘킬러 문항’으로 사교육계가 크게 반발한 만큼 정부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협 당직 병원 반발 “추석에 아프면 대통령실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정부의 추석 연휴 당직병원 운영 방침에 크게 반발했다. 앞서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에 약 4000곳을 대상으로 당직 병·의원을 운영할 계획을 밝히자 “민간 의료기관에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아울러 의협은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대통령은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며 “추석 연휴 응급진료 이용은 정부 기관이나 대통령실로 연락하시기 바란다”는 공지를 전송했다. 공지 말미에는 ‘02-800-7070’라는 연락처를 덧붙였다. 이는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제기되던 당시 논란이 됐던 대통령실 번호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