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국회 속’ 일 안하는 국회의원 집중해부

문만 열어놓고 개점휴업 "국민 위해 일하는 거 맞아?"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회를 향해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각종 민생법안들이 여야 정쟁에 가로막혀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지금 정치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인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작심발언을 쏟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일 안하는 국회를 집중해부해봤다.


지난 7월 아산정책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한민국 주요기관 11곳 중 국회가 신뢰도 꼴찌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같은 여론조사에서 신뢰도 꼴찌를 차지했던 국회는 신뢰도가 0.46점이나 더 떨어져 10점 만점에 2.85점을 얻는데 그쳤다.

졸속 국회
신뢰도 꼴찌

하지만 최근 국회의 행태를 보면 신뢰도를 2.85점이나 준 것도 후한 점수를 준 것이라는 평가다. 국회는 지난 5월2일 76건의 법안을 처리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당시 법안 통과도 4월 임시국회 기간 내내 정쟁만 거듭하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마지막날 법안을 졸속으로 무더기 처리한 것이었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무려 3개월 동안이나 법안을 단 한 건도 처리하지 못한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정치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인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꼬집은 이유다.

각종 민생법안, 정쟁에 올 스톱
국회, 이유 있는 신뢰도 '꼴찌'


특히 여야의 정쟁 탓에 지금 계류되어 있는 법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분노가 치민다. 현재 국회에는 복지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송파세모녀 방지법,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김영란법,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는 주택법과 크루즈산업육성법,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법안만 통과되면 민생에 큰 도움이 될 텐데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어) 가슴이 시커멓게 탄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국회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한림대학교 김인영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역설적인 특권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리 긴 여야 간 정쟁으로 인하여 어떠한 법안을 만들어내지 못해도 처벌이나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점으로, 이것이야말로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의 진정한 특권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를 ‘입법 독재시대’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통계로 본 국회의 민낯은 더욱 실망스럽다. 여야는 올해 들어 매달 빠짐없이 국회를 열었다. 얼핏 보면 국회가 매우 바쁘게 일한 모양새다.

하지만 지난 3월 시민단체인 법률소비자연맹이 발표한 ‘2월 임시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의 회의 현황 조사·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 달간 각 상임위의 총 회의시간은 평균 7시간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제대로 된 법안심사가 가능했겠느냐는 비판이 나왔던 이유다. 특히 한 달간 단 1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한 상임위도 3곳이나 됐다. 상임위에서 게으름을 피웠던 국회의원들은 본회의 출석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역시 법률소비자연맹이 발표한 19대 국회의원 2차연도(2013년 6월 1일~2014년 5월 31일) 의정활동 종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국회의원들의 출석률은 높지만 끝까지 머물러 있는 재석률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에서 본회의 출석률은 유권자들에게 곧장 공개가 되지만 재석률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유권자들은 적다는 점을 노린 얌체 출석체크다. 

특히 국회 대정부질문의 출석률은 낮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전반기 국회부의장이었던 박병석 의원은 지난 해 4월 대정부질문을 속개하면서 이례적으로 의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출석상황을 체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재석 중인 의원은 전체 300명 가운데 고작 59명뿐이었다. 박 의원의 출석체크는 그동안 각종 국회일정에 저조한 출석률을 보이던 의원들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었다.

국회에 난립하고 있는 비상설 특별위원회도 일 안하는 국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12년 8월에 만들어졌었던 ‘남북관계발전특위’는 5개월 동안이나 유지됐지만 특위 첫날 20분가량 회의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운영비 600만원가량을 꼬박꼬박 챙겼다. 19대 국회 들어 운영된 비상설특위는 국회쇄신특위, 남북관계발전특위, 학교폭력대책특위, 지방재정특위, 태안유류피해대책특위, 평창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지원특위, 아동여성대상 성폭력대책특위, 국무총리실 산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등 모두 8개였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그나마 19대 국회 개원 초에는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지키겠다며 원구성이 지연되자 세비를 반납하기도 하더니, 올해에는 국회가 3개월 가까이 공전되고 있지만 세비를 꼬박꼬박 타가면서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눈치”라며 “선거 때마다 혁신하겠다고 부르짖는 국회가 과연 스스로 혁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19대 국회는 지난 2013년도 예산심사 과정에서도 불명예스런 진기록을 세웠다. 예산안 처리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겨 진행된 것이다. 당시 국회는 여론의 난타를 당했으나 올해 예산안도 해를 넘겨 늑장처리하고 말았다.

법안심사는 졸속, 해외출장은 속전속결
대형사고, 이슈 멀어지면 '나 몰라라'

특히 지난 2013년도 예산처리 과정에서는 이른바 ‘쪽지 예산’이 기승을 부려 논란이 됐으며, 졸속으로 예산 심사를 마친 후에는 예결위 소속 의원들이 중남미 3국과 아프리카 3국을 방문해 해외 예산시스템을 연구하겠다며 곧바로 집단 외유를 떠나 국민들을 분노케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일부 예결위원들은 외유일정을 취소하거나 중도에 귀국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피워야 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의원 해외출장의 적폐가 그대로 드러난 보고서도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발표한 ‘국회 의회외교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외유성 논란을 일으켜 온 국회의원 해외출장 중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출장 일정도 느슨했다.

또 해외출장을 다녀온 후에는 보고서 제출 규정을 지키지 않거나, 부실한 보고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모 의원실 관계자는 해외 출장 중 관광 일정이 다소 포함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로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올해 국회 하한기인 8월을 맞아 해외출장에 나선 의원은 30여명이나 된다. 외유논란이 끊이질 않자 일각에서는 아예 출장 심사제를 도입해 불필요한 해외출장을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입법 독재시대
브레이크가 없다

박 대통령의 “정치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인지 자문해봐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만한 사례는 또 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의 관심이 안전에 쏠려 있는 가운데 과거 대형사고 때마다 제출됐던 법안들은 대부분 폐기되거나 여전히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이 집중 될 때는 재발방지를 외쳤던 국회의원들이 정작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에는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매번 대형참사가 반복되고 있는 간접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일례로 지난 2011년 발생했던 우면산 산사태 관련 법안들은 6건 중 무려 4건이 자동 폐기됐고, 2건은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왜 국회를 향한 여론의 질책이 갈수록 따가워 지는지 이제는 의원들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며 “부디 국회가 ‘무능국회’ ‘빈손국회’ ‘식물국회’의 오명을 벗어던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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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