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최대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각종 선거 때마다 박사모가 새누리당 내부 경선의 승패를 좌우하는 막후실세 역할을 해왔다는 의혹 때문이다. 지난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기점으로는 박사모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성찰의 목소리가 들끓기도 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박사모)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대 팬클럽이다. 지난 2004년 정광용 회장이 인터넷카페로 시작한 것이 현재 온라인회원 7만여명, 오프라인회원 18만여명에 달하는 거대 팬클럽으로 성장했다.
거대 팬클럽
경선 텃밭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박사모 회원들은 유세장 곳곳을 누비며 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박사모는 박 대통령의 공식 팬클럽은 아니다. 박 대통령의 공식 팬클럽은 호박가족(회장 임산)이다.
호박가족이 박사모를 제치고 박 대통령의 공식 팬클럽으로 지정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박사모의 정광용 회장은 지난 2007년 17대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의 경선에서 패배한 후 이 후보에 대한 지지유세에 나서겠다고 하자 이에 반발해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선후보캠프에 합류했다.
일부 회원 여전히 부적절한 정치개입 의혹
감사 사각지대, 박사모 관리 손 놓은 친박
그러자 박사모 회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고 일부 팬클럽 회원들이 정 회장에게 맞서기 위해 만든 것이 호박가족이다. 이후 박 대통령도 호박가족을 공식 팬클럽으로 지정해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박사모의 위상은 여전하다. 온라인회원 7만여명, 오프라인회원 18만여명의 거대 조직은 각종 당내 경선에서 판세를 단숨에 역전시킬 수도 있는 황금 텃밭이다.
박사모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조직망이 탄탄한 것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회원 수는 수만명에 달해도 실제 활동하지 않는 유령회원이 대다수인 여타 팬클럽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경선이 열릴 시기만 되면 박사모 회원들이 러브콜에 시달리는 이유다. 그러나 현재 박사모의 공식적인 입장은 당내 경선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팬클럽이 당내 경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게 되면 잡음이 일 수밖에 없다. 다만 새누리당의 후보가 결정되고 나면 해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힘을 모은다는 것이 박사모의 공식입장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박 대통령의 여타 팬클럽들이 새누리당 박완수 경남지사 경선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에 나섰을 때도 박사모는 참여하지 않았다.
새누리 막후실세
의원보다 힘세다
그런데 이러한 내부 규칙이 물밑에서도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지난 새누리당 7·14전당대회를 전후해서는 박사모와 관련해 온갖 풍문이 무성했다. 당시 김무성 후보와 서청원 후보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전당대회에서 박사모 회원들이 대거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후보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회원들은 자신이 박사모 회원임을 내세워 개별 후보 측과 접촉하면서 마치 선거브로커처럼 행동했다는 풍문이 무성했다.
또 일부 회원은 박사모 팬클럽 카페에서 회원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게시판지기 등의 직책을 이용해 박사모 회원의 명부나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유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있었다. 결국 박사모 정광용 회장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 같은 내부 투서가 줄을 잇자 ‘박사모의 기본정신을 망각하지 말라’는 성명까지 발표해 회원들의 자제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결과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었다. 과거부터 일부 박사모 회원들이 각종 선거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휘둘러 왔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내 경선에서 박사모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집단도 드물다. 당연히 경선을 앞두고 온갖 청탁과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대부분의 회원들은 순수하게 박 대통령을 좋아해서 박사모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과 박사모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도 일부 존재 한다는 것을 박사모 회원들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사모의 엄청난 영향력은 과거 선거과정에서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친이(친이명박)계의 핵심이었던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방호 사무총장이 박사모의 낙선운동 끝에 텃밭인 경남 사천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에게 패했다.
이 후보는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서 친박학살 공천을 주도한 인물이라 박사모의 표적이 됐다. 선거 초반 강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을 때만 해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박사모가 본격적인 낙선운동을 시작하자 선거 판세는 금세 뒤집어졌다. 당시 선거결과는 18대 총선 최대 이변으로 꼽히기도 했다.
친이계 후보와 친박계 후보가 맞붙었던 지난 2009년 경북 경주 재선거도 박사모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박사모는 당시 선거에서 친박 성향의 무소속 정수성 후보를 적극 지원해 당선시켰다.
친이계 정종복 후보는 한나라당의 정식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박사모의 조직력에 밀려 텃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수성 후보에게 패했다. 박사모 정 회장은 당시 정수성 후보의 선거연설원으로 등록해 직접 지원유세에 나섰고, 박사모 회원 수백 명도 선거기간 경주에 머물며 유세장 바람잡기와 전화 돌리기를 통해 정수성 후보를 지원했다.
이 같은 조직력과 영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는 “웬만한 초재선 의원들보다 박사모 간부진이 훨씬 힘이 세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박사모에 찍히면 현역 사무총장도 텃밭에서 날아가는 것을 똑똑히 봤는데 감히 누가 박사모를 무시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박사모가 새누리당 후보 지원 외에 공식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적은 없지만 물밑에선 박사모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박사모는 이처럼 힘 있는 조직이지만 공식적으로 팬클럽을 관리하는 기관은 없어 사실상 감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감사 사각지대
이제라도 관심을
과거 정치인 팬클럽의 대명사 격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노혜경 전 대표는 민주당(현 새정치연합) 공천비리와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은 사례가 있다. 단순 팬클럽으로 출발한 단체였음에도 규모가 커지다보니 각종 이권 관련 청탁이 들어오게 되고, 결국 일부 간부진이 비리와 연루되고 말았던 것이다.
향후 박사모 관련자들이 비리와 연루되거나 사고를 일으킨다면 박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을 관리하는 민정수석실은 박 대통령의 팬클럽까지는 관리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여권에서는 박사모를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지만 뾰족한 수는 없는 실정이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인 만큼 박 대통령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선거 등 필요할 때만 '단물' 쏙
박사모 내부서도 성찰의 목소리
박 대통령과 친박계 의원들은 박사모의 일탈 가능성에 대해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박사모가 논란을 일으킬 때면 “박사모의 모든 행위는 박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다”며 과거부터 여러 차례 선을 그어왔던 것이 고작이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괜히 섣부르게 박사모 일에 개입했다가는 향후 박사모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을 위해 열심히 활동을 하는 박사모를 모른 체 할 수도 없어 박 대통령과 박사모의 관계는 한 마디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 가까이 하기도 멀리 하기도 어려움)의 관계”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공천 청탁 같은 거창한 비리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실 팬클럽의 지도부는 마음만 먹는다면 관광차 대절비, 현수막 제작비, 식비 등 다양한 곳에서 착복이 가능한 구조다. 박사모는 비교적 투명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돈이 도는 곳이다 보니 잡음이 생길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했다.
예고된 사고
막을 수 있을까?
이 같은 논란을 이미 예상했기 때문인지 박사모는 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박사모의 존폐 여부를 놓고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박사모의 정 회장은 “당초 박사모는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해체하기로 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했으니 박사모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박 대통령의 5년을 지켜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며 회원들을 대상으로 박사모 해체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하지만 회원들의 투표결과 박사모는 압도적인 표차이로 존립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한 정치전문가는 “박 대통령의 팬클럽인 박사모와 관련된 사고는 결국 박 대통령에게도 도의적 책임이 지어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부터라도 박사모를 비롯한 개인 팬클럽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