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중수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대해부

'정치권 새 저승사자’ 출동에 숨죽인 정치권 '나 지금 떨고 있니?'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지난해 폐지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중수부)를 대신해 굵직한 특수사건을 담당하게 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부(이하 특수부)의 칼끝이 정치권을 정조준하고 있다. 관피아(관료+마피아)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특수부가 수사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이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압수수색, 소환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것이다. 특히 여야 현직 의원 5명이 줄소환되며 정치권은 초긴장 상태다. 새로운 정치권 저승사자로 떠오른 특수부를 <일요시사>가 집중 해부했다.

과거 대검 중수부는 권력 핵심층과 재벌들에 대한 과감한 수사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 척결에 앞장섰다. 그러나 무리한 수사·기소, 정치권 개입 의혹 등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다가 지난해 4월 결국 간판을 내렸다. 그리고 중수부의 역할은 중앙지검 특수부가 대신하게 됐다.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기존 특수1·2·3부에 더해 특수4부를 신설하고, 올초 법무부 검찰 중간인사를 통해 인선을 완료하며 명실상부한 '포스트 중수부' 체제를 갖췄다.

'포스트 중수부'
관피아 수사 올인

이로써 특수1·2·3·4부는 소속 검사만 25명 안팎에 이를 정도로 중수부 못지않은 수사력을 발휘할 인적 토대를 갖게 됐다. 또한 필요에 따라 대검과 다른 검찰청의 최정예 인력도 언제든 데려올 수 있어 인력 면에서는 중수부보다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특수부의 모든 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불거진 관피아 척결을 위한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수1부(부장검사 김후곤)는 철피아(철도+마피아) 민관유착 비리, 특수2부(부장검사 임관혁)는 교피아(교육+마피아) 입법로비 및 유착 의혹을 수사 중이다.  

특수3부(부장검사 문홍성)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국가보조금 유용 혐의, 특수4부(부장검사 배종혁)는 이동통신설비 사업에서의 민관유착 비리 등 통피아(통신+마피아)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처럼 특수부가 총동원된 전방위적 관피아 수사가 이뤄지고 있던 상황에서 특수1·2부는 여야 현역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이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7·30재보선 이후 이들에 대한 사실상의 공개수사를 선언했다.

대검 중수부 대신하는 정치권 새 저승사자 활동 개시
정치권으로 옮겨온 관피아 수사…'위기의 검찰' 출구전략?

이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유병언 수사' 실패 등으로 인해 검찰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던 상황에서 정치권에 대한 수사로 여론의 초점을 돌리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역 의원에 대한 수사는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효과는 확실하다"며 “이번에는 관피아 척결이라는 명분도 있는 만큼 위기에 몰린 검찰이 국면을 전환할 절호의 기회다. 이를 검찰이 몰랐을 리 없다"고 말했다.

여, 해운·철도 비리
야, 교육 비리 연루?

구체적으로 특수1부는 최근 철피아 비리에 연루된 정황이 있는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 운전기사와 지인 등을 전격 체포, 압수수색한 데 이어 조 의원에 대해서도 지난 6일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한 뒤 다음날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국토해양부 고위공무원 출신인 조 의원은 2008년 8월~2011년 8월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을 지낸 뒤 2012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 경남 의령·함안·합천 지역구에서 당선돼 국회 국토해양·국토교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수1부는 조 의원이 철도시설공단 이사장 재직 시절과 퇴직 후 국회에 입성해 철도 관련 상임위인 국회 국토해양·국토교통위원으로 활동하며 철도 부품 납품업체 삼표이앤씨에 특혜를 주고 1억6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조 의원 소환에 앞서 특수1부는 그의 운전기사 겸 수행비서와 지인들을 통해 "삼표이앤씨로부터 금품을 받아 조 의원에게 그대로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2부는 철피아와 함께 대표적 관피아로 지목되는 교피아(교육+마피아)에 대한 수사 도중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이하 서예종) 임직원들이 교비를 빼돌려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김재윤·신학용 의원 등에게 입법로비를 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재보선이 끝난 이후 이들 측근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실시한 특수2부는 당사자에 대한 소환도 통보했다. 또한 전현희 전 의원에 대해서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조사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민주통합당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전 전 의원은 신계륜·김재윤 의원과 김민성 서예종 이사장, 장모 서예종 겸임교수와 함께 '오봉회'라는 친목모임을 만들어 활동한 바 있다. 그러나 전 전 의원 측은 김 이사장이나 장 교수와는 안면만 있을 뿐 친분은 깊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수2부는 신계륜 의원이 지난해 9월 직업학교에서 '직업'이라는 이름을 삭제할 수 있는 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후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지난 4월29일)하는 과정에서 김재윤·신학용 의원 등이 힘을 쓴 대가로 김 이사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신계륜 의원이 법안 통과 과정을 주도했지만, 상임위와 본회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수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의 협조가 필수라는 점에서 새누리당 의원에게도 입법 로비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입법로비 수사와 관련해) 현재 수사대상은 야당 의원 3명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에 당사자들뿐 아니라 당 차원에서 나서서 "조현룡·박상은 의원 등 새누리당 비리 의원들 수사에 대한 '물타기' 아니냐"며 강하고 반발하고 있다.

당사자 강력 부인…
정치권 반응 엇갈려

이외에도 인천지검 해운비리 특별수사팀(팀장 송인택 1차장검사)은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을 지난 7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박 의원 소환에 앞서 그의 운전기사 김모씨가 지난 6월 박 의원의 승용차 뒷자리에 있던 뭉칫돈 3000만원을 들고 인천지검에 신고하며 공천헌금 수수 의혹이 제기했고, 주변인들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박 의원의 아들 집에서 현금 6억원이 발견되기도 했다.

박 의원은 또 해운업체 수십 곳으로부터 쪼개기 형식의 후원금을 수수한 의혹과 특별보좌관의 임금 대납 및 비서에게 후원금을 강요한 의혹도 받고 있다. 이 같은 검찰의 정치권 수사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수사 기간에 비해 결과가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수1부가 지난 5월말 철피아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이후 2개월 이상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다 최근에야 정치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수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지만 수개월간 별다른 진척이 없다가 최근에야 속도를 내고 있다"며 "권력형 비리 수사는 신속성이 중요한데, 수사 개시 후 수개월이 지나 이뤄진 압수수색, 소환은 늦은 감이 있다. 특수부도 중수부와 마찬가지로 권력 핵심층의 눈치를 보면서 권력층에게 휘둘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금품수수 사건의 경우 신속하게 범죄혐의자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하고 계좌추적·압수수색·소환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수사의 ABC이지만, 특수부가 뒤늦게 수사에 착수해 범죄혐의자들이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얘기다. 특히 관련된 의원 모두가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은 무리한 수사라는 시각도 있다.

여, 조현룡·박상은 비리 혐의 소환…김무성호 새출발에 '찬물'
야, 신계륜·김재윤·신학용·전현희 줄소환 예정…'물타기' 반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새누리당은 '김무성호'가 갓 새출발을 한 시점에서 불거진 소속 의원들의 비리 의혹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관련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한 당직자는 "사실 재보선 이전부터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얘기지만, 혁신을 강조하며 '김무성 대표' 체제가 이제 막 출범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겨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특수부 수사에 대해 '물타기' '국면전환용 야당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핵심 관계자는 "검찰이 새누리당의 조현룡·박상은 의원 수사에 쏠리는 국민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꺼내든 물타기용 수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법조계 일각에서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 실패로 궁지에 몰린 검찰이 국면전환용으로 정치권 사정을 기획하고 나섰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고 꼬집었다.

특수3·4부
통피아 수사

한편 특수3·4부는 통피아(통신+마피아)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수3부는 정부 산하기관인 정보통신산업진흥원과 민간업체 간의 유착정황을 포착, 지난달 17일 진흥원을 압수수색하고 본격 수사에 나섰다.


특수4부도 다음날인 18일 이동통신설비 사업에서의 민관유착 비리 의혹과 관련,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공용무선기지국 전문업체인 한국전파기지국을 압수수색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현재 진행상황을 말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에 대해선 상당부분 실체를 확인했고, 향후 수사과정에서 드러나는 추가 의혹에 대해서도 낱낱이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9월 정기국회와 이어지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강도 높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때문에 8월 중으로 정치권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근혜정부 들어 처음으로 현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사정에 나선 특수부가 어떤 성적표를 내놓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그 결과에 따라 위기에 빠진 검찰의 미래도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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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