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군 사이버사 대선개입 관련자 '보은성 인사' 의혹

"그 입 다물라!" 입막음용 대가로 무더기 영전?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국군 사이버사령부(이하 사이버사)의 대선개입 혐의와 관련한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주요 관련자들이 무더기로 '영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군 정치개입'에 관련된 인사들을 해임·면직 등 징계조치하지 않고 오히려 진급시키거나 공기업 수장으로 자리를 이동시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군의 상식 밖 인사 조치에 이들의 입을 막기 위한 '보은성 인사' 아니냐는 의혹이 뜨겁게 제기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국회 국방위·정보위 소속)이 최근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사이버사령부 인사명령'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이버사 대선개입 사건의 주요 관련자들이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줄줄이 진급하거나 공기업 수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특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군 대선개입 관련자
상식 밖 영전 '특혜'

김 의원이 지난 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사이버사 대선개입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인사 10여명은 국방부 조사본부 조사가 시작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진급하거나 공기업 수장으로 '영전'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대선 당시 청와대 국방비서관(2010년 12월~2013년 1월)을 역임했던 윤영범 전 비서관은 지난해 1월 청와대에서 나온 뒤 곧바로 한국철도공사 코레일테크의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직무와 무관한 인사 조치에 '낙하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윤 전 비서관의 후임 국방비서관으로 임명된 연제욱 전 국방비서관(현 교육사 부사령관)의 거듭된 영전은 더욱 의구심을 자아낸다. 연 전 비서관은 지난 대선 당시 사이버사 사령관(2011년 11월~2012년 11월)을 맡았던 사이버사 대선개입 사건의 핵심인사다.


참여정부 말기 대령으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행정관으로 파견되었던 그는 정권이 바뀐 후 이명박정부의 '노무현 색깔 지우기' 행보 속 세 차례나 장성 진급에 실패했다. 이럴 경우 통상 대령으로 군생활을 마치게 된다.

국기문란 관련자에 대한 상식 밖 인사조치
사이버사 대선개입 관련자 '진급 특혜' 지적

하지만 그는 김관진 국방부장관(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취임한 이후인 2011년 10월 임기제(통상1년)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사이버사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군 안팎에서는 김 장관이 연 전 비서관을 각별히 챙긴 것이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두 사람은 모두 독일 육사에 유학한 인연이 있다.

연 전 비서관은 사이버사 사령관 퇴임을 앞두고 임기제 준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소장으로 다시 한 번 진급한 후 국방부의 요직이자, 사이버사를 관리·감독하는 정책기획관을 거쳐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영전하는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이후 국방부 조사본부의 사이버사 대선개입 수사가 7개월째에 접어든 지난 4월 교육사 부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기기는 했지만, 경질이라기보다는 본인 의사에 따른 인사이동이라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연 전 비서관의 후임 국방비서관으로 임명된 장혁 국방비서관도 국방부 정책기획관 시절(2013년 4월~2014년 4월) 소장으로 진급한 뒤 청와대로 영전하는 유사한 코스를 밟았다.

핵심인사
처벌전무


이처럼 연 전 비서관이 사이버사 사령관을 맡은 후 정권을 달리하면서도 승승장구한 것은 사이버사의 정치개입으로 이득을 본 박근혜정부가 보답 차원에서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

이와 관련, 사이버사 고위 간부를 지낸 A씨는 "사이버사가 청와대, 국가정보원과 수시로 교류하면서 인터넷 정치댓글작업 전반을 공유했다"며 "사이버사 심리전단장, 사령관, 국방장관, 청와대 및 국정원으로 이어지는 보고체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이버사의 정치개입을 연 전 비서관, 김 장관은 물론 청와대와 국정원도 알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 장관도 최장수 국방장관(2010년 12월~2014년 6월)을 지낸 후 곧바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박근혜정부 외교·안보 분야의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연 전 비서관의 후임으로 사이버사를 맡았던 옥도경 전 사이버사 사령관은 현재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정책연수 중이다. 또 다른 사이버사 대선개입 핵심인사인 이모 전 심리전단장은 지난해 12월 '정년퇴직'했다. 사이버사 대선개입 핵심인사로 꼽히는 이들 중 군에서 불이익을 받은 인사가 아무도 없는 셈이다.

이외에도 사이버사의 핵심부서인 3·1센터장을 지냈던 신인섭 대령은 지난해 10월 준장으로 진급한 후 확대·신설되는 사이버사 부사령관에 내정됐다. 사이버사 대선개입 핵심부서인 심리전단 운영대장(2010년 1월~2013년 12월)을 맡았던 군무원 박모씨는 지난 1월 3급으로 진급한 뒤 심리전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명박근혜정권 관통한 승승장구
군 사이버사 정치개입 지속되나?

특히 박 심리전단장의 경우에는 심리전 성과 달성, 국정원과 정보사 등 유관기관 정보공유 활성화 공적으로 2010년 11월 국방부장관상 표창, 지난해 2월에는 국정과제 추진 및 숨은 유공자로 선정돼 대통령상 표창을 받기도 했다.

또한 지난 대선 당시 사이버사 정보운영대 정보과장을 역임하며 문재인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글 350건을 게시한 군무원 정모씨도 지난 1월 4급으로 진급해 심리전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울러 사이버사 대선개입 수사의 핵심부서 국방부 검찰단 보통검찰부장을 역임했던 이모씨는 지난 3월 청와대 경호실 법무관으로 영전했다.

이와 같은 인사조치는 사이버사 대선개입과 수사 관련자들에게 ‘보은성 인사’로 특혜를 주는 한편, 사이버사의 정치개입을 지속할 의도가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상식 밖 조치 불구
군 당국은 '침묵'

이에 대해 김광진 의원은 "국방부 사이버사 대선개입 사건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관련자에 대해 진급과 정년을 보장해주는 행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식 밖의 일로 국방부의 납득할 만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군 당국은 공식적인 해명, 11개월째 끌고 있는 사이버사 대선개입 수사결과 발표 등 어느 것도 내놓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국민들의 군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군 사이버사 대선개입 사건 수사 진행상황
축소·은폐, 거짓말…시간끌기로 정치적 파장 최소화?

국군 사이버사령부(이하 사이버사)는 사이버 전쟁을 전담하기 위해 지난 2010년 1월1일 설립된 국방부 직할 사령부다. 예하에는 연구개발을 하는 31단, 사이버전을 담당하는 510단, 대북심리전을 담당하는 530단(일명 심리전단), 교육훈련을 담당하는 590단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예하부대 중 인터넷 정치 댓글 작업과 국내정치 및 대선개입을 했던 조직은 심리전단이다. 이 사실은 지난해 10월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사이버사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 즉 정부·여당에 비판적 인식을 가진 국민들을 대상으로 사이버 공작을 했다는 사실이 야당 의원들에 의해 공개된 것이다.

당시 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군 사이버사 요원들이 대선기간 댓글 작업을 했다" "국정원으로부터 예산을 받고 있다"는 등의 의혹을 최초로 제기했다. 이에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대선개입은 있을 수 없고, 북한이 대한민국 정부의 실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대응하는 활동을 한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당시 사이버사를 이끌던 옥도경 사령관도 "사이버사는 그런 지시를 받은 적도 없고 한 적도 없다"며 강하게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곧바로 사이버사 요원들이 인터넷에 정치적 성향의 글을 올리거나 SNS에 리트윗한 사실이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했다.


군 당국, '사실무근→개인적 일탈→조직적 개입' 말바꾸기
김관진, 사이버사 활동 보고받고도 형사처벌 대상서 제외

특히 새누리당의 댓글 알바단(일명 십자군 알바단)의 리더 격인 윤정훈 목사의 글을 리트윗한 사실과 국정원의 예산을 받으며 그들과 회의를 가진 사실도 드러났다. '사이버사-새누리당-국정원'이 정치와 관련한 편향적 인터넷 댓글 작업을 공유한 정황까지 드러난 것이다.

이에 일부 요원의 '개인적 일탈'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던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국방부 조사본부의 중간조사 결과 발표에서는 말을 바꿔 편향적 정치 댓글 지시자로 이모 심리전단장을 지목하며 "더 이상의 윗선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달 21일 'KBS'는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이버사의 조직적인 정치개입이 있었다고 결론짓고, 형사처벌 대상 19명을 확정했다"고 단독보도 했다. 형사처벌 대상에는 연제욱·옥도경 전직 사령관을 비롯해 현 심리전단장인 3급 군무원 박모씨, 심리전단 예하 2·3대 대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대해서는 당시 국방장관을 맡으며 대북 심리전 성과를 보고받았지만, 정치개입 활동에 대한 보고는 받지 않았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KBS' 보도가 사실일 경우 군 당국이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불법적 정치개입에 이어 축소·은폐, 거짓말을 반복하다 뒤늦게 사이버사의 불법행위를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제외된 점과 수사를 지나치게 오래 끌었다는 점 등을 놓고 군 당국이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처벌 대상자를 축소하거나 속도조절을 한 것 아니냐는 또 다른 의혹도 제기된다.

특히 현재까지도 국방부 조사본부는 공식적인 결과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야권관계자는 "군 당국의 축소·은폐, 거짓말을 이용한 시간끌기로 사이버사의 대선개입 사건이 잊혀가고 있다"며 "사이버사 심리전단의 규모를 감안하면 국정원의 대선개입보다 군의 대선개입 규모가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이 빈약한 수사 결과를 내놓을 경우 특검, 국정조사 등 추가적인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