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 카운트다운> 바빠진 재벌 총수들 '베팅열전'

일꾼 자처한 회장님 “후원 결실 맺을까”

[일요시사=경제팀] 한종해 기자 =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대규모 스포츠 행사가 열리면 기업들 사이에서 이색 응원풍경이 펼쳐진다. 현대산업개발 직원들은 축구를, SK는 핸드볼을, 현대자동차는 양궁을 응원한다. 기업 총수가 해당 스포츠 단체장을 맡고 있어서다. 하반기 국내에서 가장 큰 행사인 ‘인천 아시안게임’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단체장을 맡고 있는 총수들은 선수들의 좋은 성적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오는 9월19일부터 10월4일까지 16일 동안 우리나라 하반기 최대 행사인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23개 종목에 42개국 6000여명의 선수 및 임원들이 참가해 열전을 펼친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2위를 지키겠다”는 포부다. 최종삼 태릉선수촌장은 지난달 태릉선수촌에서 ‘인천아시안게임 D-100’ 미디어데이를 열고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많은 격려와 관심 부탁드린다. 선수들은 국민께 힘을 드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면서 “아시아 2위를 지키겠다. 메달 목표는 90개 이상”이라고 밝혔다.

재벌 오너들의
스포츠 경영
 
국가대표 선수들은 찜통더위 속에서 좋은 성적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선수들을 뒤에서 지원하는 스포츠 단체장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특히 기업을 이끌고 있는 단체장들은 성적이 기업의 이미지와 연결되기 때문에 선수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23개 종목 중 기업 총수 혹은 경영진이 단체장을 맡고 있는 종목은 무려 16개다. 수영, 육상, 양궁, 사이클, 승마, 펜싱, 골프, 체조, 유도, 조정, 사격, 탁구, 레슬링, 요트, 볼링, 근대5종 등이다.
 
먼저 ‘BMX’ ‘MTB’ ‘도로’ ‘트랙’ 등 4개의 세부 종목으로 나뉘어 총 18개의 메달이 걸려있는 사이클은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지원한다. 구 회장은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2009년 제24대 연맹 회장을 처음 맡은 이후 2013년 재선임되면서 2017년까지 연맹을 이끌게 됐다.
 
구 회장은 재계에서 알아주는 자전거 마니아다. 3000m 높이의 알프스 고지대를 7박8일 동안 650km 완주해야 하는 ‘트랜스 알프스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자전거에 각별한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다. 수차례 4대강 자전거 길을 완주한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지금도 주중 두 차례 이상은 자전거를 즐길 정도다.
 
구 회장은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한 후원회도 만들었다. 대표팀 육성, 전지훈련 비용 등 필요한 예산 55억원 가운데 10억원을 후원회에서 책임졌고 나머지 비용의 상당 부분은 구 회장 사재를 털었다.
 
메달 획득은 당연하고 색이 문제일 정도로 세계 최정상급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양궁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후원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대한양궁협회장으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정 부회장의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해 4차례나 연임할 정도로 양궁을 사랑해왔다. 지금도 명예회장 직함을 갖고 있을 정도다.
 
구자열 회장 남다른 자전거 사랑
양궁 버팀목 정몽구·의선 부자
 

정 회장은 주요 대회 때마다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간식과 식사까지 챙겼다. 시끄러운 야구장과 경륜장에서 훈련하기, 최전방 철책선 근무, 다양한 극기 훈련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렸고 국민들의 기대에 항상 부응했다.
 
아들인 정 부회장은 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을 겸임하면서 지난 8년간 양궁 발전을 위해 장비 지원, 저개발국 순회 지도자 파견, 합동훈련, 코치 및 심판 세미나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 부회장은 세계 양궁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양궁연맹에서 수여하는 황금화살상을 받기도 했다. 현대차가 한국 양궁에 투자한 금액은 약 300억원에 이른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직을 수락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탁구협회장과 아시아탁구연합 부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엔 국제탁구연맹 특별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탁구의 위상 강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피스 앤 스포츠’ 대사 활동 등을 통해 스포츠로 세계 평화에 기여한 부분이 높게 평가된 것이다.
 
조 회장은 ‘피스 앤 스포츠’ 대사로 활동하면서 지난 2011년 11월 카타르에서 분쟁 국가 중심으로 10개국이 참여해 다른 국가의 선수와 팀을 이뤄 탁구경기를 치르는 ‘2011 카타르 피스 앤 스포츠 탁구컵’을 후원해 20년 만에 남북한이 탁구 단일팀을 이뤄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12년 12월에는 UN 사무국인 UNOSDP와 저개발 국가 청소년 대상 차세대 리더 양성 프로그램에 20만 달러 규모의 후원을 결정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특히 대한탁구협회장 취임 후 선수육성 지원, 심판 및 지도자 양성 등 제도 개선으로 한국 탁구 발전 전기를 마련했으며 아시아탁구연합 부회장으로서 중국, 러시아, 스웨덴 등과 탁구 교류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박순호의 세정
요트 공식후원
 
이런 조 회장의 강한 의지에 따라 한진그룹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최고 후원 등급인 프레스티지 파트너로서 항공권, 수하물 등 항공과 관련된 부문에 대해 후원을 하기로 했다.
 
인천아시안게임 대한민국선수단장으로 선임된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은 대한요트협회를 이끌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2003년 11월 대한요트협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 회장직을 수행하며 요트를 중심으로 비인기종목 육성에 많은 지원과 애정을 쏟아 왔다. 
 
 
세정그룹의 대표 아웃도어 브랜드 센터폴은 지난 2012년 2월 대한요트협회의 공식 후원기업으로 선정되어 제15회 아시아 요트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10개 대회를 후원했으며 박 회장은 재임 기간 중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해마다 4억∼4억500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했다.

조양호 회장 스포츠로 세계평화 기여
비인기 근대5종의 영원한 파트너 LH
 

박 회장의 노력 덕분에 2007년 옵티미스트급이 소년체육대회 시범종목으로 채택됐으며 전 세계 요트임원 500여명이 참가하는 ‘2009 세계요트연맹 연차회의’ 부산 개최를 유치해 우리나라의 요트 위상을 더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은 인천아시안게임이 다가오면서 어깨가 무거운 단체장 중 한명이다. 허 회장이 이끌고 있는 대한골프협회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3연패를, 2016년 브라질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올해로 골프 구력 50년째다. 그의 부친은 대한골프협회와 한국프로골프협회 회장 등을 지낸 고 허정구 회장이다. 그 영향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골프를 쳤고 첫 라운드는 고교 시절부터다. 단순한 취미라고 하기에는 그의 실력이 뛰어나다. 한국남자프로골프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를 정도고 젊은 시절에는 7언더파 65타를 수차례 기록했다. 68세라는 골프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도 드라이버샷은 260야드 정도 나간다.
 
허 회장은 지난해 2년 연속으로 ‘한국골프계를 움직인 10대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허 회장은 취임 이래 2015 프레지던츠컵,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등의 국제대회 준비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아마추어 골프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 60년 동안 이어온 ‘허정구배’가 대표적이다.
 
2연패를 도전하는 남녀유도대표팀은 남종현 그래미 회장의 지원을 받는다. ‘여명808’ 개발로 유명한 남 회장은 지난해 5월 대한유도회장에 취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프로축구 K리그 강원 FC의 대표를 역임했을 정도로 체육계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남 회장이 유도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철원의 한 초등학교 유도부를 후원하면서다. 남 회장은 이후 2009년 대한 유도회와 함께 여명컵 전국유도대회를 만들었으며 선수촌부터 전지훈련까지 선수들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
 

특히 남 회장은 파벌과 심판 공정성 문제로 시끄러웠던 기존 유도계를 주류와 비주류를 떠나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집 있게 밀어붙이며 ‘정직한 유도’를 만들어 나가는 데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미는 남 회장의 이런 뜻을 받들어 유도뿐만 아니라 철원 DMZ국제평화마라톤 대회를 10년째 메인스폰서로 후원하고 있으며 K리그 공식 후원사로 16개 지역 축구장에서 무료시음회를 펼치는 등 비인기 종목이나 다른 스포츠에도 관심을 갖고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마추어 골프 캡틴
허광수 삼양인터 회장
 
근대5종의 영원한 파트너 LH는 1985년부터 대한근대5종연맹을 후원하면서 역대 LH 사장이 이 연맹의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현 LH 사장인 이재영 사장은 지난해 7월 제16대 대한근대5종연맹 회장과 제12대 아시아근대5종연맹 회장에 취임했다. LH는 근대 5종에서 4개 팀으로 구성된 스포츠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양궁, 레슬링 스포츠단도 운영 중이다.
 
이밖에 이기흥 우성산업개발 대표이사는 대한수영연맹을, 최진식 심팩 회장은 대한조정협회를, 임성순 아로마소프트 대표이사 겸 위피진흥협회 회장은 대한레슬링협회를, 김길두 다이아몬드호텔 대표이사는 대한볼링협회를 각각 이끌고 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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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