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초보’ 안철수 ‘새정치실험’ 완패 진짜이유

‘안방’(광주) 차지하려다 ‘사랑방’(당권·차기대권)까지 빼앗겼다

[일요시사=정치팀] 이민기 기자 = ‘안철수 대망론’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도 야권 내 부동의 1위를 달리던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최근 지지율은 3위로 곤두박질 쳤다. ‘안철수 신드롬’의 주인공인 안 전 대표가 급락세를 타는 이유가 뭘까? 지난 6·4지방선거와 7·30재보선 당시 민주화 성지로 불리는 광주에 잇따라 ‘공천 패착’을 뒀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와 함께 ‘철수(撤收) 정치’가 끝이 없는 점도 안 전 대표의 위상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7·30재보선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를 대상으로 ‘정치실험’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광주 민심을 우습게 본 것이라는 시각도 적잖다.

‘안철수 대망론’ 흔들
민주화 성지에서 패착

이런 가운데 안 전 대표가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밀어붙이기식 내 사람 심기’를 계속했던 것을 두고 새정치연합의 정신적 지주이자 민주화 성지인 광주를 수중에 넣은 뒤 차기 대권가도를 달리려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가 지향하는 새정치와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면서까지 광주에 ‘집착’한 점을 볼 때 저의(底意)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최근 안 전 대표의 결정적 패착이 지방선거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는 풀이가 심상찮게 퍼져 나온다. 지방선거 때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안 전 대표는 당시 온갖 반발에도 불구하고 최측근인 윤장현(현 광주시장) 후보에게 야권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광주의 전략공천장을 끝내 쥐어줬다.

나란히 유력주자로 거론됐던 강운태·이용섭 후보가 당내 경선을 통해 공정하게 경쟁하자고 촉구했으나, 윤 후보에게 공천이 돌아간 것이다. 강·이 후보는 탈당 후 후보단일화 카드로 맞서는 등 강력 반발했다. 
 
새정치의 시작 개혁공천, 전략공천으로 둔갑   
연거푸 밀어붙이기식 내 사람 심기 점입가경

안 전 대표가 지난 3월말 옛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안철수 신당) 간 창당 당시 얻은 공천 지분을 통해 최측근을 챙겼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새정치연합의 공천은 곧 당선이란 등식이 성립하는 지역이고, 특히 민주화의 상징성을 띄고 있는 광주에서 타 후보들의 민주적 경선을 통한 공천 주장을 외면하고 전략공천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점은 의아스러운 대목으로 읽힌다는 게 기저에 깔려 있다.

실제 안 전 대표는 개혁공천을 시종일관 부르짖었다. 그는 4월11일 6·4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장단 회의에서 “선거 승리를 위해선 깨끗한 후보, 능력있는 후보를 엄선 추천해야 한다”며 “성패는 개혁공천 성공여부에 달려있다”고 역설했다.

안 전 대표는 옛 민주당과 신당 창당에 합의할 때도 새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기초선거 무공천을 앞세울 정도로 공천 문제를 새정치의 시발점으로 여겼다. 이랬던 그가 광주에서 연속적으로 전략공천 카드를 꺼낸 것이다.

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개혁공천을 하자던 안 전 대표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를 한 것”이라며 “최근 안 전 대표를 두고 추락하고 있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겠느냐”고 꼬집었다.

여기에 안 전 대표는 7·30재보선에서도 광주 광산을에 권은희 후보(현 국회의원)를 전략공천하는 데 한몫을 했다. 개혁공천을 통해 정치개혁을 이루려던 그가 또 한 번 패착을 둔 것으로 거론되는 대목이다.  

‘권은희 낙하산 카드’에 대해 당내 반발이 거세게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전 대표와 김한길 전 대표가 내리 꽂은 것이다. 공천을 신청한 천정배 전 법무장관은 배제됐고,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서울 동작을로 급유턴, 전략 투입됐다. 권은희 카드는 당내에서조차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전략공천이었다.

결국 재보선 뒤 권 후보 남편의 재산축소 신고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6곳(총 15곳 재보선)의 수도권 판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기 수원병과 평택에 각각 출마했던 손학규 후보, 정장선 후보가 7월 초 여론조사에선 새누리당 후보와 비교해 앞서 있다가 권은희 카드 이후 하락세를 탔고 나란히 낙선했다는 것이다.   

광주 광산을의 전략공천이 같은 호남권인 순천ㆍ곡성의 민심에까지 반발심리를 심어줘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당선되는 최대 이변이 연출됐다는 시각도 적잖다.


광주 광산을은 15개 재보선 지역 가운데 가장 낮은 22.3%의 투표율에 불과했다. 광주민심이 전략공천에 반발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부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권 후보가 당선은 됐으나, “권은희만 얻고 모든 것을 잃었다”는 얘기가 당 안팎에서 나온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와 김 전 대표는 재보선을 11대4로 완패한 다음날 동반퇴진 했다.

안철수 개혁공천 천명
광주엔 잇따라 전략공천

안 전 대표가 평소의 개혁공천이란 지론을 접고 왜 연거푸 광주에 전략공천을 했을까? 일각에선 두 가지로 풀이한다. 먼저 그가 차기대권을 지나치게 의식, 야당의 심장격인 광주를 자신의 텃밭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해석이다. 지방선거 당시 윤장현 후보를 위해 밀어붙이기식으로 내세운 것을 두고 이런 얘기가 나온다.

안 전 대표가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선 당의 최대 지지기반인 지역의 민심부터 수중에 넣으려 했다는 게 골자다.

즉 새정치연합의 정치적 뿌리인 광주를 점해야 대권가도를 달리는데 상당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정치적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광주는 야당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주당의 2002년 대선후보 경선이다.
 

당초 노무현 전 후보는 타 권역에서 ‘대세론’을 탔던 이인제 후보에 밀려 고전했으나, 광주에서 승리한 뒤 이른바 ‘노풍’이 크게 불어 나머지 지역 경선을 휩쓸며 후보직을 꿰찬데 이어 대선판까지 이겼다. 광주표심이 타 권역에 방향타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2007년 대선 때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의 광주·전남 경선에서 47.4%로 1위를, 2012년 대선에선 문재인 후보가 광주·전남 경선에서 1위(48.46%)를 각각 차지하며 대선후보직을 따낸 바 있다.


광주표심이 대선후보를 가리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때문에 부산출신으로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안 전 대표가 최측근인 윤 후보를 광주에 내리꽂는 노림수를 뒀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야당 차기 대권후보 관문의 분수령 광주
‘권은희 낙하산’ 정치적 계산 작용했나

권은희 전략공천과 관련해선, 안 전 대표가 광주를 새정치의 실험장으로 이용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안 전 대표가 ‘야권 내 스타 경찰’ 출신이고, 정치초년생인 권 후보를 새정치 공천의 모델로 삼아 광주에 투입해 간을 봤다는 것이다.

앞서 권은희 의원은 경찰 재직 시 국정원의 대선개입 댓글사건을 폭로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나아가 야권 내에선 ‘정의의 아이콘’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이런 만큼 2012년 대선 레이스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이후 줄곧 “새 정치”를 역설하고 있는 안 전 대표가 신선감과 인지도가 있는 권 의원을 자신의 새정치 모델로 낙점해 광주 광산을에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썼다는 얘기다.

호남출신 야당의 한 관계자는 “광주에 권 의원을 전략공천한 것을 두고 여러 말이 무성한데 일각에서 안 전 대표가 권은희 카드를 갖고 광주에서 정치실험을 해 본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광주 절실했던 안철수
‘권은희 카드’는 실험용?

결과적으로 민주화의 성지이자 새정치연합의 심장부인 광주에서 정치초년병인 안 전 대표의 정치실험은 철저하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윤장현·권은희 두 명은 건졌으나 당의 간판급 거물들을 잃었음은 물론 자신의 차기 대권가도마저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mkpeace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안철수의 철수(撤收) 정치?
“남자가 칼을 꺼냈으면 썩은 무라도 찔러야지”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정치는 철수(撤收)로 시작해서 아직도 철수에 머무는 모양새다.

그는 지난 2012년 9월 새정치에 기대를 건 무당파와 중도층을 기반으로 무소속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대선판을 통해 정치권에 공식적으로 첫 발을 디뎠으나, 그해 11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를 이루며 예비후보직을 사퇴했다. 두 번째 철수였다.

이에 앞서 안 전 대표의 첫 번째 철수는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였다. 보선 출마의사를 내비쳤다가 박원순(현 서울시장)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에게 조건없이 후보직을 순순히 양보했다. 이에 대해 안 전 대표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던 만큼 일각에선 의아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가 비록 대선 레이스를 포기했으나, ‘안철수’란 이름의 파괴력은 대선 이후에도 식지 않았다. 여전히 무당파와 중도층에선 기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3년 4월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6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국회에 입성한 뒤 이른바 ‘안철수 신당’ 창당 얘기가 구체성을 띄기 시작했다.

안 전 대표는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등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창당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결국 세 번째 철수정치로 막을 내렸다. 안 전 대표와 옛 민주당 김한길 대표 간 3월 2일 제3지대 신당 창당을 합의한 것이다. ‘안철수 신당’ 창당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뜻한다.

안 전 대표는 옛 민주당과 신당 창당 때 새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기초 선거 무공천을 앞세웠으나,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공천 53.44% VS 무공천 46.56%) "국민과 당원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또 물러섰다.

마지막 철수는 7·30재보선 서울 동작을 공천에서였다.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 최대 승부처로 꼽혔던 이곳에서 정의당에 공천을 양보하면서 안 전 대표가 다섯번째 철수정치를 했다는 비아냥이 터져 나왔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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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