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장 릴레이 대담>⑥ '대권행보 가속도' 홍준표 경남도지사

"결단 없는 정치는 무책임한 정치"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지방선거가 여야의 격전 끝에 절묘한 무승부로 끝이 났다. 여야 어느 쪽의 손도 확실하게 들어주지 않은 선거결과는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준엄한 경고장이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당선된 각 광역단체장들은 일제히 민선6기의 임기를 시작했다. 국민들이 보낸 경고장을 받아든 그들은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전국 신임 광역단체장들과의 릴레이 대담을 준비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무척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검사 출신인 홍 지사는 평검사 시절 자신에겐 그야말로 까마득한 상관인 고검장을 구속기소하는가 하면,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당시 대통령의 친형을 구속시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광주지검으로 쫓겨났다가 급기야는 수사부서에서 아예 배제돼 검찰을 떠나야만 했다. 그만큼 홍 지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은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외골수였다.

하지만 정치에 입문한 후 홍 지사의 외골수적 성격은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됐다. 지난 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진주의료원 사태가 대표적이다. 홍 지사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당 내에서조차 홍 지사가 너무 독단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정작 홍 지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독단적이라는 비판에 ‘독단’이 아니라 ‘결단’이라고 항변한다.

홍 지사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통도 중요하지만 소통에 발목이 잡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결단 없는 무책임한 정치로는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없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재선에 성공하며 대권행보에 더욱 가속도가 붙은 홍 지사를 만나봤다.
다음은 홍 지사와의 일문일답. 
   
- 늦은 감은 있지만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홍 지사께서 계획하고 계신 민선6기 도정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입니까?
▲ 민선6기 도정에서 제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는 ‘경남미래 50년 사업’과 ‘서부권 대개발 사업’입니다. 경남은 과거 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만든 기계산업과 조선산업으로 40년을 먹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한계에 직면해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합니다. ‘경남미래 50년 사업’을 통해 경남이 50년간 먹고 살 산업을 임기 내 완성하겠습니다. 아울러, 면적은 경남 전체의 절반이 넘지만 인구는 22%, GRDP는 17%에 불과한 서부경남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 서부 대개발을 추진하겠습니다.

- 두 사업을 통해 앞으로 경남의 산업지도를 확 바꾸겠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입니까?
▲ 우선 18개 시군별 성장잠재력에 맞는 40개 전략사업을 발굴해낼 것입니다. 이미 전략사업 중 항공우주, 나노융합, 해양플랜트 3개 국가 산단은 지난 3월 정부에서 국가지원 특화산단으로 선정돼 임기 내 조성이 마무리될 것입니다. 또 진해 글로벌 테마파크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됩니다.

이를 통해 38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항공우주산업과 항노화 산업은 서부권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도청 서부청사를 조기에 건립하고 도 산하 일부 공공기관을 서부권으로 이전하겠습니다. 남부내륙고속철도와 함양-울산 간 고속도로를 조기에 완공해 산업인프라의 혁신을 이루겠습니다.

"진주의료원 사태, 독단 아닌 결단"
"복지 인색은 오해, 선택적 복지일 뿐" 


- 홍 지사께서는 지난해 폐원된 진주의료원 건물을 경남 서부청사로 전용하겠다고 밝히셨습니다.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복지부에서도 반대 의견을 내놨습니다. 진주의료원에 들어설 서부청사는 어느 정도 규모이며 어떻게 운영될 예정입니까?
▲ 서부청사는 지역 균형발전과 행정편의 개선을 위해 서부경남의 중추도시인 진주에 도청 기능 일부를 이전하는 사업입니다. 용역결과를 바탕으로 (구)진주의료원 리모델링을 위한 행정절차를 조속히 이행해 내년 하반기까지 서부청사를 개청토록 하겠습니다. 서부청사에는 본격적인 서부권 대개발을 위해 지역 산업과 연관이 많은 부서 3~4개국을 이전토록 할 계획입니다. 또 정무부지사를 서부부지사로 임명해 서부청사 실국의 결재권을 줄 것입니다.

-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로 홍 지사께서 복지에 너무 인색한 것 아니냐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경남 복지정책의 방향과 과제는 무엇입니까?
▲ 저는 생활이 어려운 서민들이 행복하고 체감할 수 있는 복지안전망을 확대하는 일에는 전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기보다는 생활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가 더 많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적 복지’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이는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맞춤형 복지’와 흐름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우리 도는 선택적 복지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금년도 복지예산으로 전체 예산의 35.7%인 2조3575억원을 투입했으며, 사상 처음으로 복지예산이 2조원이 넘었습니다.
 

- 경남도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요 복지사업은 무엇입니까?
▲ 경남도가 실시하고 있는 주요 복지사업으로는 취약계층의 자립·자활을 돕는 ‘희망울타리 지킴이 사업’, 홀몸 노인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르신 5~10인 공동생활 사업’, 60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및 차상위계층에 개안 수술비를 지원하는 ‘시력 찾아주기 사업’, 여성·가정육아 지원을 위한 ‘우리 아이 함께 키우기 조성 사업’ 등이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도는 사회적 약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복지 실현에 최선을 다하고 이를 위한 복지정책을 적극 추진하되, 소중한 세금이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습니다. 안전한 경남도를 만들기 위한 대책은 무엇이 있습니까?
▲ 이번 세월호 사고 대응을 거울삼아 ‘도민 안심 경남 안전망’을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도민 안심 경남 안전망’은 시설물 안전을 점검하는 하드웨어부터 재난대응시스템 확립과 사회 취약계층별 재난예방, 안전문화 확산에 이르는 소프트웨어까지 유기적으로 잘 결합된 사회 안전망입니다. 또한 2기 도정 취임 후 단행한 조직개편에서 안전총괄과를 건설방재국으로 이관해 안전건설국을 신설했습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모든 재난·재해에 대한 초동 대응부터 복구까지 안전건설국에서 총괄해 현장중심의 재난 대응체계를 확립해 나갈 것입니다.

- 지난 7월16일 경남도가 ‘20세기 폭스사’ ‘빌리지로드쇼사’와 글로벌테마파크 3자 MOU를 체결했습니다. 그동안 타 지자체에서도 글로벌테마파크를 건설하려다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무엇입니까?
▲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내 웅동지구에 조성될 진해 글로벌테마파크 조성사업은 86만평 부지에 약 3조5천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FOX 브랜드 테마파크, 영화관, 프리미엄 아울렛, 6성급 호텔, 카지노, 콘도미니엄, 수상스포츠시설, 골프코스 등 복합리조트를 건설하는 사업입니다. 지난 6월20일 미국에서 FOX사와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7월16일에는 서울에서 <FOX사>, <빌리지로드쇼사>와 3자 MOU를 체결했습니다.

연말까지 투자자 모집과 총괄개발사업자 선정, 사업을 추진하게 될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게 될 것입니다. 진해 글로벌테마파크가 조성되면 연간 1000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와 1만명 이상의 고용창출효과와 5조원의 경제유발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최근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직자들의 비리 문제가 연이어 불거져 나오면서 국민들의 실망감이 큽니다. 깨끗한 경남도를 만들기 위한 대책은 무엇이 있습니까?
▲ 저는 지난 민선5기 도지사 취임 때부터 부패척결을 도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부패척결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도의 청렴도 향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부패연루자는 공무원이나 민간인 구분 없이 적발 즉시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등 사소한 잘못도 일벌백계해 공직사회에 만연한 부패 척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특히, 하반기부터는 공직기강 확립과 부패척결에 중점을 두고 우리 도는 물론이고 시군과 산하기관에 대한 감찰역량도 강화해 비정상적 관행과 고질적 비리를 찾아내 척결하겠습니다.


- 하필 홍 지사와 정치적 앙숙으로 유명한 안상수 전 대표가 창원시장이 됐습니다. 경남도와 창원시는 앞으로 도청 이전 등의 문제로 갈등이 예고되는데, 두 분 다 강성이라 지역민들의 걱정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 기우에 불과합니다. 저희 두 사람은 지난 선거운동 기간 중에 공동유세를 하며 경남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도에서는 서부권 지역 발전과 창원시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공기관을 이전할 것입니다. 인재개발원 자리에는 경남도립도서관을 건립하고 보건환경연구원 건물은 18개 시군 및 도청의 기록물보관소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적정한 시기에 창원시와 상생발전 방안을 협의해 나갈 것입니다.

- 지리산댐 건설과 남강댐 물 부산 공급 등 이른바 ‘물 문제’가 경남도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물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생각입니까?
▲ 물은 국가적 자원입니다. 수자원은 특정지역에서 ‘우리 것이다’란 개념으로 보면 안 됩니다. 남강댐 물 공급에 대해 반대가 워낙 심하니까 그 대안으로 문정댐(지리산댐) 건설이 나온 것입니다.

문정댐(지리산댐) 건설에 찬반양론이 있다면 해당 지역인 함양군 주민의 투표로 결정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경우 식수 및 물 관리정책이 아주 잘못됐다고 봅니다. 유럽의 경우 85% 정도가 식수 댐을 쌓거나 지하수를 개발해 물을 공급하고 하천수는 15%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하천수가 51%가 넘고 경남의 경우 63% 이상이 하천수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처럼 강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강물에 의존하는 식수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비싼 돈을 들여 수돗물을 만들어도 대부분 그대로 먹지 않습니다. 화장실이나 설거지, 청소 등에 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화장실은 빗물이나 원수를 쓰고 식수는 바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중수도 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하천 표류수에 의존하는 식수정책을 식수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 재선 직후부터 유난히 물 문제에 대한 발언을 많이 하셨습니다. 일각에선 대권을 염두에 둔 홍 지사가 부산-경남의 해묵은 갈등인 물 문제를 해결해,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 살아오면서 자리나 이익을 목적으로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대권도 마찬가지 입니다. 경남지사로서 도정을 잘 이끌고 그 성과에 대해서 도민들과 국민들이 ‘저 정도면 국정을 맡겨도 되겠다’하는 평가를 해주시면 대권의 기회도 같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 평소 ‘정치는 자기 경쟁력으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대권주자로서 본인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정치에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어떤 계파에도 속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웃사이더’라는 말도 듣지만 정치는 자기책임으로 하는 것입니다. 무리의 힘에 얹혀서 하는 정치는 자기 정치가 아닙니다. 책임과 원칙이 ‘홍준표식 정치’의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제가 대권주자로서 적합한 인물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항시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이나 국가에 대한 사명감, 이런 것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다음 대선에서 국민들이 어떤 리더십을 원하고 시대정신이 어디에 방점이 찍힐 것인가 하는 것은 적어도 2년 정도는 지나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치 입문 후 지금까지 어떤 계파에도 속해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홍 지사를 친이계로 분류합니다.
▲ 저는 지금까지 정치하면서 어떤 계파에도 속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지만 저는 친이계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어떤 계파에 속해서 계파 수장의 지시를 받고 정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 차기 대통령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세월호 참사에서 국민들이 가장 분노한 것은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소통도 중요하지만 소통에 발목이 잡혀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정치적 결단이 없는 시대, 무책임한 정치로는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당단부단 반수기란'(당연히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여 처단하지 않으면, 훗날 그로 말미암아 도리어 화를 입게 됨)이라는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국민 원하는 리더십은 시대 따라 변해"
"계파정치 안한 것은 가장 큰 장점"

- 취임사에서 경남발 혁신으로 대한민국 대개조의 첫걸음을 내딛겠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 우리 사회의 기본부터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자는 것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복지로 우리사회의 헤게모니가 급격히 전환되는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와 민주적 질서, 기본적인 사회적 정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걸 다시 한 번 점검해보고 근본적으로 체질을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취임하면서 기념식수를 무궁화로 했는데, 이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과거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권리만 주장하고 공동체나 국가에 대한 어떤 의무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 사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경남도민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 지난 1년6개월 동안의 ‘홍준표 도정’을 믿고 다시 선택해 주신 데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선거기간 동안 도내 전역을 돌면서 도정에 대한 기대가 1년6개월 전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절실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2기 도정은 경남미래 50년 사업과 서부권 대개발을 위해 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세부적인 추진계획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조기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서민경제 회복과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 도정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살림살이 걱정, 자식들 취업걱정 덜어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민만을 바라보고, 도민을 섬기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자세로 당당한 경남시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대담=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홍준표 경남지사 프로필>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제15~18대 국회의원
▲ 한나라당 원내대표
▲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 제35~36대 경상남도 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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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