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긍긍 박근혜 대박 승부수 통준위 실체 해부

화려한 포장 속 실속은? "글쎄올시다"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통일준비위원회(이하 통준위)가 공식 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 초부터 야심차게 내세웠던 '통일대박론→드레스덴 선언'을 구체화할 기구가 마침내 출범한 것이다. 통준위는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거의 유일하게 호평이 많았던 대북관계와 관련한 청사진을 그리는 역할을 맡을 예정으로, '세월호 참사'에 이은 '인사 참사' 정국을 돌파할 박 대통령의 승부수로 꼽힌다. 그러나 실효성 등을 놓고 벌써부터 뒷말이 무성하다. 일각에서는 '통일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내세운 '전시성 기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통준위는 박 대통령이 집권 2년차 양대 국정목표로 경제 활성화와 함께 제시한 '통일대박론'을 구체화할 대통령 직속기구다. 당초 지난 4월 출범을 목표로 했지만 세월호 참사 등으로 3개월여 늦춰져 지난 15일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출범 하루 전까지도 인선을 마무리 짓지 못해 전전긍긍했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위원으로 선정된 인사들도 보수적 성향의 인사들이 많아 국민을 아우르는 통일 준비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면전환 승부수
통준위 공식출범

청와대는 이날 위원장인 박 대통령을 포함한 50명의 통일준비위원 명단과 향후 운영방안을 발표했다. 50명의 위원은 박 대통령 외에 민간위원 30명, 정부위원 11명, 국책연구기관장 6명, 여야 정책위의장 2명으로 구성됐다.

부위원장에는 류길재 통일부장관과 정종욱 인천대 석좌교수(전 주중대사)가 각각 정부·민간 측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정 교수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인사는 아니지만 학계와 관계, 남북관계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적임자라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통준위의 출범은 박근혜정부가 통일대박론을 중요한 정책 기조로 삼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통일 대박론→드레스덴 선언’의 연장선에서 나온 결정이다. 통일대박론은 지난 1월6일 박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처음으로 언급하며 화제가 됐고, 드레스덴 선언은 지난 3월28일 박 대통령이 통독의 상징도시인 드레스덴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다.


구체적으로 드레스덴 선언은 ▲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통일 청사진' 마련 위한 대통령 직속기구 출범
통일부·민주평통 등 유사조직 존재…'옥상옥' 우려

박 대통령이 양대 국정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는 통일대박론을 구체화하기 위한 기구인 만큼 외견도 화려하다. 위원만 50명에 자문단 등을 합치면 통준위에서 활동하게 되는 인원만 150여명에 이른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고건 전 국무총리,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협동과정 교수,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실장, 문정인 연세대 교수,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상임고문 등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

통준위의 기본목표는 통일시대 기반구축을 위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의 연구·논의를 수행함으로써 통일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 전문가와 시민단체, 정부 간 상호 소통과 협업으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통일 청사진'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통준위는 민·관 협업을 통한 내실 있는 평화통일기반구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며 "정부와 민간 위원이 협력해 통일한국의 미래상과 통일 추진의 구체적 방향성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악화된 남북관계
실효성은 미지수

그러나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통준위가 기대와 목표에 부응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통일의 파트너인 북한의 협조가 없이는 통준위에서 아무리 좋은 통일 청사진과 대북지원 방안 등을 내놓아도 무의미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드레스덴 선언을 '흡수통일론'으로 받아들이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장선에서 통준위도 흡수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기구로 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최근 북한은 한·중 정상회담 이후 군사분계선(MDL)이나 비무장지대(DMZ)와 가까운 지역을 향해 탄도미사일과 해안포·방사포를 잇달아 발사하는 등 군사적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처럼 '통일대박론→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큰 상황에서 통준위의 출범과 활동은 북한을 더 자극해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북한 전문가는 "박 대통령이 대북관계 기조로 내세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핵심은 신뢰 형성"이라며 "통준위의 출범은 자칫 신뢰가 아닌 흡수통일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북한에 보내 남북관계 개선을 오히려 망치는 악수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위원 인선과 관련한 뒷말도 무성하다. 박 대통령이 통준위 출범을 언급한 지난 2월25일 이후 5개월이라는 준비 기간을 거쳐 기구가 출범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위원 인선 발표 하루 전까지도 인사를 확정하지 못하고 일부 전문가들에게 통준위 참여를 묻는 전화를 돌렸다는 후문이다.

당시 전화를 받았던 한 전문가는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더니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기에 의아했는데, 다음날 명단이 발표됐다"며 "박 대통령이 양대 국정목표 중 하나로 통일대박론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실현을 위한 기구 구성은 졸속으로 진행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보수 일색
진보 미비

또한 분야별로 나름 구색을 맞춘 인선을 하기는 했지만, 보수성향 인사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진보성향 인사의 참여는 적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통일논의를 주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외교·안보 분야 위원에 선정된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실장의 경우 탈북자 출신이며, 정치·법제도 분야 위원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상임고문과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는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펴온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 인사들이다. 특히 제 교수의 경우 참여정부에서 극우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를 맡았던 노골적인 반북성향의 인사다.

진보인사 소외…내실 있는 성과 낼지 의문
국민 혈세만 축내는 유명무실 위원회 전락?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에 있어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는 진보진영의 인사들이 좀 더 균형 있게 배치되지 않아 아쉽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인적 구성에서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아 실제 성과를 낼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진보성향의 민간위원 중에는 현 시점에서는 통일준비보다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준비 병행' 또는 '남북관계 개선 우선'을 주장하는 인사들도 있어 내부 논의과정에서 충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민간위원은 "통일준비는 국민, 남북, 국제사회가 함께 해 나가야 한다"며 "현재 통준위에는 이 셋 중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통준위가 유사한 성격의 대통령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와 대북정책 주무부처인 통일부 등 기존 조직과 역할 차별화를 하지 못할 경우 유명무실한 '옥상옥 기구'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민주평통, 통일부 등과 통준위는 역할이 중복되지 않는다"며 "통준위는 통일준비를 위한 민·관 협의 및 연구가 주요 역할이라는 점에서 민주평통이나 통일부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해명했다.


유사기구
이미 존재

그러나 통일과 관련한 준비 및 관련 연구는 이미 통일부, 민주평통,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에서 이미 충분히 되어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통준위의 목표인 '통일준비 관련 제반 분야의 과제 발굴·연구' 등을 굳이 통준위에서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야권 핵심관계자는 "당 지도부가 통준위에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사실 큰 기대는 없다"며 "출발 자체가 '통일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전시성 기구’에 불과하다. 위원 면면만 보더라도 통일에 대한 보수·진보진영의 견해를 좁히고, 꽉 막힌 남북관계 개선을 논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옥상옥 기구로 국민의 세금만 축내는 유명무실한 위원회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민 10명 중 7명 "통준위 필요하다"

국민 10명 중 7명이 통일준비위원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TV <한반도 통일시대 연다> 제작진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 15일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한 통일준비위원회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의 31.0%가 '매우 필요'하다고 답했고, 35.7%가 '필요한 편'이라고 답해 전체 응답자의 66.7%가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불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19.3%에 불과했다.

'통일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꼽는 응답자가 45.8%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제 발전(22.9%)' '북한주민의 생활 개선(10.7%)' '이산가족의 고통 해소(7.7%)' 등이 뒤를 이었다.

국민 66.7%, 통일준비위원회 필요성 공감
국민 66.9%, 통일비용조성하면 참여할 것

'통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답한 6.9%의 응답자들만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31.1%가 '경제적 부담 증가'를 꼽았다. 이어 '사회적 혼란 증가(25.7%)' '통일보다는 평화교류가 더 적합하다(19.3%)' 등이 뒤를 이었다.

'정부가 미리 통일비용을 조성한다면 어느 정도 참여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25.7%가 '적극 참여', 41.2%가 '참여 고려'라고 답해 66.9%가 통일비용 조성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사를 내비쳤다. 한편 리얼미터의 이번 조사는 지난 16일 유선전화 임의걸기(RDD)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7%p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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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