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일가 부의금 촌극 풀스토리

재벌 집안 맞아? 낯 뜨거운 ‘조의금 전쟁’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롯데일가에서 꼴사나운 모습이 연출됐다. '왕회장'이 여동생에게 건넨 부의금을 두고 조카들이 낮 뜨거운 법정 다툼을 벌인 것. 부의금 수십억원을 남매들이 빼돌렸으니 자신의 몫을 돌려달라는 게 주된 내용이었는데 재판부는 수십억원대 부의금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부의금 액수는 결국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동생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장남 신 회장을 비롯, 철호-소하-경애-춘호-경숙-선호-정숙-준호-정희 등 10남매다. 신 회장과 막내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의 나이차만 24세에 달한다.

수십억 vs 천만원
누구 말이 진짜?

'가지 많은 나무엔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롯데일가는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형제간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잦았다. 신 회장과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이 그랬고, 신철호 전 롯데제과 사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도 신 회장과 불협화음을 냈다.

최근 발생한 부의금 촌극도 마찬가지다. 신 회장이 건넨 부의금이 문제가 됐다.

가족끼리 부의금·축의금 등을 놓고 다툼을 벌이는 것은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일이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터라 다소간의 불편한 잡음이 생기는 것.


부의금의 귀속주체에 관한 판례를 보면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 부조금 또는 조위금 등의 명목으로 보내는 부의금은 상호부조의 정신에서 유족의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고 장례에 따르는 유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줌과 아울러 유족의 생활안정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증여되는 것"이라고 부의금을 정의하고 있다.

또한 "장례비용에 충당하고 남는 것에 관하여는 특별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사망한 사람의 공동상속인들이 각자의 상속분에 응해 권리를 취득하는 것으로 봄이 우리의 윤리감정이나 경험칙에 합치된다고 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례비용은 민법 제1000조 및 제1003조에 규정된 상속의 순위에 의해 가장 선순위에 놓인 자들이 각 법정상속분의 비율에 따라 부담함이 원칙'이라고 설명한 가정법원의 판단도 있다.

"내 1억 내놔라" 조카들 법적 분쟁
법원 '증거 부족' 원고 패소판결

장례나 혼인비용을 치르고 남은 금액은 가족의 지위에 상관없이 법적 상속분대로 분배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상속 1순위일 경우, 장남, 차남, 장녀, 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상속 비율이 같기 때문에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법적인 해결방법으로 일반적인 통념은 각자 받은 부의금을 가져가는 게 맞다는 것이다. 다툼이 발생하더라도 당사자들의 원만한 합의에 따라 해결되는 게 일반적이다. 간혹 '법대로 하자'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유족이 있을 경우에만 법원의 판단을 구한다. 신 회장의 첫째 여동생 신모씨의 자녀들이 부의금을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인 것도 유족 간 원만한 합의가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씨는 서모씨와 결혼해 2남3녀를 뒀다. 신씨는 2005년 1월 사망했고 신 회장은 장례식에 부의금을 보냈다. 장례식은 잘 끝났고 그 후 8년이 흘렀다. 그런데 신씨의 둘째 딸 A씨가 첫째 오빠, 언니, 여동생을 상대로 "내 몫 부의금 1억여원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신 회장의 부의금으로 수십억원을 전달했는데 다른 남매들이 돈을 빼돌려 보관하고 있다는 것.


A씨는 "네 앞으로 10억원 정도를 만들어 놨다"고 말한 둘째 오빠의 녹취록을 법정에 제출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남매들은 신 회장의 부의금은 1000만원이었고 A씨 몫은 647만원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재판에서 피고 남매들이 구입한 아파트 비용이 신 회장 부의금이라고 주장했다. A씨의 첫째 오빠는 2011년 11월 서울 강남의 20억원대 아파트를 구입했고 비슷한 시기 여동생은 고양시 아파트를, 언니는 이듬해 11월 서울에 수억원대 아파트를 마련했다. 여동생은 기초생활수급자였다.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여동생이 아파트를 산 것은 본인 돈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 조사 결과 첫째 오빠는 아파트 구입 시기를 전후해 막내 여동생에게 수년간 매달 250만원을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신 회장을 증인으로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초수급자가
돌연 아파트 구입

하지만 피고 남매들은 정상적인 자금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신 회장의 부의금을 포함해 장례식에 들어온 부의금은 5000만~6000만원. 장례식에 들어간 여타 제반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돈은 2500만원 정도였는데, A씨의 몫은 둘째 오빠가 가지고 있다는 것.

재판부는 피고 남매들의 손을 들어줬다.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6부(부장판사 조규현)은 A씨가 낸 소송에서 "신 회장이 수십억원대 부의금을 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A씨의) 주장은 이유없어 기각하기로 한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A씨는 "재판부의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할 뜻을 밝혀 법적 공방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이 낸 부의금의 정확한 액수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롯데그룹도 "신 회장의 개인적인 일이라 확인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8년전 장례식에선 무슨 일이
신격호 회장 동생 죽음 애도
정말 수십억원 줬나 '의문'

축의금·부의금은 현금거래로 발생하는 지하경제의 일종이다. 한 번에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현금이 들어오지만 세금을 물지는 않는다. 엄밀히 따지면 과세 대상이지만 그간 과세당국은 사회 통념에 따라 관행적으로 세금을 매기지 않았다. 하지만 재벌가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자칫하다가는 탈세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5000만원(미성년자의 경우 2000만원)까지는 증여공제에 의해 증여세 부담이 없다. 이 금액을 초과한 경우에는 증여세를 부담해야 하는데 과세표준이 1억원 이하인 경우 10%를, 1억원 초과 5억원 이하인 경우 20%를, 5억원 초과 10억원 이하인 경우 30%를 세금으로 부담하게 된다. 또 10억원 초과 30억원 이하인 경우 40%를 부담하게 되며 3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무려 50%라는 증여세의 부담이 있다.

신 회장이 A씨의 주장대로 수십억원의 부의금을 냈다면 마찬가지로 수십억원의 증여세를 부담해야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신 회장이 수십억원의 부의금을 냈다는 것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라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신 회장은 대표적 '짠돌이' 경영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롯데=껌장사'라는 기업이미지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신 회장의 경영철학은 '거화취실(去華就實)',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소공동 롯데호텔과 백화점이 건설될 당시 상량식과 관련된 일화만 봐도 신 회장의 씀씀이를 알 수 있다. 상량식은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으로서 고사상 위 돼지머리의 입과 코에 '봉투'를 끼워 넣으며 번성과 발전을 기원한다. 과거에는 '봉투'대신 마룻대에 '보따리'를 연결해 마지막에 걷어 올려 확인을 하기도 했다.


"짠돌이 회장" 1000만원도 많다?
롯데 "개인 일이라 알 수 없다"

롯데호텔 상량식과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여의도 63빌딩 상량식에서는 2000만원이 넘는 거금이 나왔던 터라 롯데호텔 상량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와 비교도 되지 않는 거금이 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보따리에는 1000만원도 안 되는 돈이 들어 있었다. 다들 신 회장이 따로 줄 것이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보따리에 100여만원씩을 넣었던 계열사 사장들이 신 회장에게 불려가 야단을 맞았다. "공사비를 다 지급하는데 왜 계열사 돈을 마음대로 썼냐"는 식이었다.

단단히 혼이 난 계열사 사장들은 이후 열린 롯데월드 현장 호텔 상량식에서 봉투를 넣지 않아 소공동 호텔 상량식 때보다 더 적은 금액이 올라왔다. 절반이 넘는 400만원은 당시 호텔 내장공사를 담당했던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이 넣은 것이었다.

신 회장의 경영철학은 지금의 신동빈 회장에게 이어졌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그룹 직원 평균 보수를 조사한 결과 롯데그룹은 3801만원으로 '꼴찌'를 기록했다. 임원 평균 보수도 마찬가지다 5억8649만원으로 10대 그룹 가운데 9위다. 그래서인지 롯데그룹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8.7년으로 500대 기업 평균인 10.3년에 비해 2년 이상 차이가 났다.

즉시 항소 예고
재판 길어질 듯

취업사이트엔 "롯데그룹 사원은 해 뜨기 전 출근하고 해 지고도 퇴근을 못하지만 연봉이 3000만원 초반에 불과하다" "취업 준비생들은 롯데그룹은 가장 마지막으로 고려하는 대기업이다"는 글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짠돌이로 소문난 신 회장이 여동생 부의금으로 수십억원을 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부의금이 1000만원이라고 가정해도 깜짝 놀랄만한 일"이라고 전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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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