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김무성 ‘불안한 동거론’ 전말

7·14잔치 친박 ‘쪽박’ 비박 ‘대박’…‘박’ 깨질 일만 남았다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새누리당 7·14전당대회에서 향후 2년간 당을 이끌어갈 대표로 비박(비박근혜) 비주류 대표격 인사인 김무성 의원이 선출됐다. 4명의 선출직 최고위원에는 친박(친박근혜) 맏형 서청원 의원, 비박 김태호·이인제 의원, 친박 김을동 의원이 당선됐다. 비박계에서 더 많은 당 지도부가 배출되며 그간 당을 장악해온 친박 주류가 몰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김무성 신임 대표가 “청와대에도 할 말은 하겠다”며 기존의 수직적 당·청관계 재편을 예고해 ‘박근혜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새누리당과 여전히 당을 손안에 쥐고 있으려는 청와대 간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의리 vs 미래’

새누리당 7·14전당대회 과정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던 양강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각각 내세웠던 프레임이다. 결과는 ‘미래’를 앞세운 김 의원의 압승. 비박 비주류 대표격 인사인 김 의원이 친박 맏형 서 의원을 압도적으로 제친 것은 ‘세월호 사고 수습 실패’ ‘인사 참사 반복’ 등의 실책을 잇달아 범하면서도 독단적 국정운영을 고집하고 있는 박근혜정부에 대해 국민들과 새누리당 당원들이 경고장을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비박 부상
친박 추락

김무성 의원은 지난 14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대에서 당원 투표(70%)와 국민여론조사(30%)를 합산한 결과 총 5만2706표(득표율 29.6%)를 얻어 3만8293표(21.5%)를 얻은 서 의원을 1만4413표(8.1%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새누리당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어 3위는 경남도지사 출신의 비박 비주류 김태호 의원(2만5330표, 14.2%)이 차지했고, 4위는 6선 관록의 비박 비주류 이인제 의원(2만782표, 11.7%)이 차지했다. 5위는 친박 핵심 홍문종 의원(1만6629표, 9.2%)이 차지했지만, 여성 몫 최고위원 한 명을 당연직으로 임명한다는 당헌·당규에 따라 6위를 차지한 친박 성향의 김을동 의원(1만4590표, 8.2%)이 홍 의원을 대신해 최고위원에 입성했다.


주목할 부분은 당대표로 비박 비주류인 김 대표가 선출됐다는 점과 당 지도부에 비박 비주류가 더 많이 입성했다는 것이다. 특히 친박 핵심인사인 홍 의원이 비주류인 김태호·이인제 최고위원에 밀렸다는 것은 박 대통령과 친박계에 뼈아픈 대목이다.

여권, 김무성시대 개막…당·청관계 재정립?
달라진 새누리 지도부, 청와대에 ‘쓴 소리’

게다가 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여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사실상 서 의원에게 힘을 실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서 의원이 2위에 그친 것을 두고 박 대통령과 그간 당을 주도해온 친박 주류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실 김 대표는 최근 비박 비주류의 대표격 인사로 통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비박은 아니다. 과거 원조 친박, 친박 좌장으로 불렸던 그는 이명박정부를 거치면서 박 대통령과 애증의 관계를 반복하며 멀어졌고,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비박 비주류의 대표격 인사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그는 전대 과정에서도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외치는 한편 “여당이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박 대통령이 ‘하극상’을 싫어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김 대표가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한다’는 선거전략을 내세웠다는 것은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김무성-박근혜
애증관계 반복


<동아일보>의 지난해 5월25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7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경선후보캠프 좌장을 맡았던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이 가장 잘 쓰는 말로 ‘하극상’을 꼽으며 “박근혜가 초선으로 당 부총재를 했는데 선수도 많고 나이도 많은 의원들이 자기를 비판하니까 ‘하극상 아니냐’고 화를 냈다.

그만큼 서열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 그 다음으로 잘 쓰는 말이 ‘색출하세요’다(언론에 자기 얘기가 나갔을 때 누가 흘렸는지 색출하라는 것). 그 다음이 ‘근절’이고…. 하여간 영애 의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동아일보>는 “박근혜와 동지가 되려 했던 김무성에게 ‘신하’가 필요했던 공주(박근혜)와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가 박 대통령이 하극상으로 받아들일 선거전략을 들고 나왔다는 것은 더 이상 청와대에 끌려 다니지만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김 대표가 기존 수직적 당·청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을 시도하면서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부딪히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럴 경우 김 대표 측과 당내 친박계 인사들과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친박 몰락, 비박 부상’으로 요약되는 전대 결과로 인해 박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근혜 효과’가 전대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효과'가 힘을 잃을 전조는 지난 6·4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경선에서 이미 나타났다. 비박 정몽준 전 의원이 경선에서 ‘친박 후보’를 자처한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압도한 것. 또 지난 5월23일 치러진 새누리당 국회의장 후보자 선출 투표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당초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황우여 의원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비박 정의화 국회의장이 101표를 얻어 46표 획득에 그친 황 의원을 압도적으로 눌렀다.

힘 빠진 ‘박근혜 효과’
조기 레임덕 빠지나?

주목할 대목은 이 같은 변화가 일시적인 흐름이 아니라 시대적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여당 일각에서는 차기 정권 창출을 위해 현직 대통령과 갈등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기류까지 감지된다.

그렇다면 당·청관계는 정말 수평적으로 바뀌게 될까. 박 대통령의 최근 행보에는 여전히 독선적 ‘1인 통치’를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을 까먹는 주요 원인인 ‘인사참사’와 관련해 김명수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 후보자 지명철회 및 황우여 후보자 지명, 정성근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자진사퇴 등 주요 인사 사안에 대해 김 대표는 전혀 언질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정 전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밝히기 몇 시간 전 김 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다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과 달리 과장되게 알려져 있고, 억울한 면도 많이 있는 것 같다”며 “그러한 모든 걸 감안해서 최종 결정된 만큼 협조해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린다”고 정 전 후보자를 두둔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김 대표를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기존의 수직적 당·청관계를 이어갈 뜻을 지속적으로 내비친다면 취임일성으로 “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고 밝힌 김 대표의 태도도 조만간 바뀔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무성호 새누리, 박근혜당 탈피하나?
박 대통령 ‘1인 통치’ 변화여부 주목

다만 7·30재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당장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름휴가 기간과 재보선 투표일이 맞물린 데다 전통적으로 재보선은 투표율이 낮아 고연령층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새누리당은 이번에도 ‘박근혜 마케팅’이 일정부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조할 것은 협조하되 할 말은 하겠다”는 차기 대선주자급 인사가 당대표가 됐는데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당장 신임 최고위원에 선출된 비박 비주류 최고위원들은 취임 직후 청와대를 향해 거침없는 쓴 소리를 쏟아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가 새누리당이란 표현도 있다”며 “당이 제대로 역할을 못했다는 반성을 해야 되고, 저는 그런 차원에서 중심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다른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당·청관계가 본질적으로 달라지 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 대표도 재보선 이후 친박 핵심인 윤상현 사무총장을 교체하는 등 실무 당직자들을 개편할 것을 예고했다. 김 대표는 당대표 선출 직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재보선이 끝나고 난 뒤 대탕평 인사를 하도록 하겠다”며 “그동안 당에서 소외받았던 인사를 중심으로 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당권을 잡고 있던 친박 핵심인사들을 내치고 비주류 인사들을 대거 기용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본격적 대립각을 세우는 변곡점은 잇단 인사참사의 핵심 책임자이지만 박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아무런 책임을 지고 있지 않은 ‘기춘대원군’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 요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권력지형
지각변동

한편 당·청관계가 불안한 동거 형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 반면, 대야관계는 비교적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대표가 한나라당 원내대표일 때는 대야관계가 비교적 좋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김 대표는 또 지난 연말에는 당시 민주당 박기춘 사무총장과 물밑대화로 철도노조 파업 철회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김무성 당대표 시대가 열린 것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박근혜 의원이 사실상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리며 여당 내 야당 노릇을 한 것과 같이 김 대표도 그런 역할을 할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며 “박 대통령 ‘1인 통치’의 현 집권세력 내부 권력지형이 김 대표 선출을 계기로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무성의 과제

새누리당의 미래를 이끌어갈 당대표에 선출된 비박 비주류 대표 김무성 의원에게는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가 두 가지 있다.

우선 시급한 것은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한 친박계와의 갈등 봉합이다. 경선 과정에서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이 ‘줄세우기 논란’ ‘친박 살생부 논란’ ‘여론조사 조작 논란’ 등 진흙탕 싸움을 벌인 탓에 ‘비박 3대 친박 2’로 짜여진 당 지도부가 마찰음 없이 순항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 안팎에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이 나란히 앉아 주요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사건건 대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서 최고위원은 전대 이후 첫 최고위원회의는 물론 청와대 오찬에도 불참하는 등 초반 당무를 전혀 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서 최고위원 측은 ‘건강 이상’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전대 때마다 과열양상을 보이다 뒤끝을 남기는 전례가 한두 번이 아니어서 이번에도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아울러 당장 열흘가량 앞으로 다가온 ‘미니총선급’ 7·30재보선은 김 대표가 공천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대표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첫 번째 무대다. 김 대표가 눈앞에 놓인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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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