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황태자 ‘도둑장가’ 속사정

‘쉬~쉬’ 몰래 결혼한 이유가 ‘헉!’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보령제약 후계자 김정균 이사가 '도둑 결혼'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미스코리아 출신 장윤희씨와 5월 백년가약을 맺은 것. 둘의 결혼은 회사에서도 몰랐을 정도로 은밀하고 조용하게 진행됐다.

겔포스·용각산으로 유명한 국내 중견 제약사 보령그룹의 후계자 김정균 보령제약 전략기획실 이사와 2008년 미스코리아 미 출신 장윤희씨가 결혼식을 올린 사실이 알려졌다.

2달전 깜짝결혼
"알릴 이유없다"

재벌가 상속남과 미스코리아 출신 재원의 결혼 소문은 올 초부터 재계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결혼 소식을 최초 보도한 <더팩트>에 따르면 미스코리아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장씨가 서울 청담동 소재 스튜디오에서 웨딩 사진을 촬영하면서다. 재계 호사가들은 이번에는 어떤 유력 가문에서 미스코리아를 데려갈지에 대해 각종 추측을 내놨다.

김 이사와 장씨는 지난 5월 중순께 서울 모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은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재벌가 후계자와 미스코리아의 만남인 만큼 재계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이날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100여명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결혼 사실을 알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언론 보도가 나올 때까지 몰랐을 정도다.

회사 관계자는 "(결혼을) 알릴 이유가 없다"면서도 "회사에서도 몰랐다. 친지·가족끼리 조용하게 진행하려고 한 것 같다"고 전했다.


보령제약 후계자 김정균 결혼 뒤늦게 확인
미스코리아 출신 장윤희씨와 5월 백년가약

보령가에 입성한 장씨는 주변의 권유로 2008년 미스코리아대회에 출전해 미스 서울진과 미스코리아 미로 뽑혔다. 특별상 중 포토제닉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진으로 뽑힌 나리의 외모와 비교되면서 '진보다 예쁜 미'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인형 외모를 자랑한다.

166.6cm의 키에 46kg, 34-23-34의 몸매를 지녔다.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출신으로 <크레딧코리아>라는 교양지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영어자기계발서 <The Little Book of Secrets>를 번역한 <키위>를 펴낼 정도로 지성도 갖췄다. 취미는 재즈 댄스와 플루트, 특기는 스킨스쿠버와 영어다. 부친은 레저스포츠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스킨스쿠버는 부친을 따라 시작했다.

대회 이후 안면도꽃박람회 홍보대사, 충남도 홍보대사, 예물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면서 방송 출연 제의도 많이 받았지만 연예계에 발을 들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꿈은 패션뷰티 관련 CEO다. 모 화장품 회사 전속 모델로 활동하는 등 화장품 사업에 관심이 많다.

장씨는 미스코리아 대회 출신의 이지선씨, 조은주씨, 이금영씨와 친분이 두텁다. 2011년 10월 이지선씨 결혼식을 앞두고 마지막 '싱글파티'를 열기도 했다.

미스코리아를 며느리로 들인 보령그룹은 김승호 ㈜보령 회장이 종로 5가에 세운 '보령약국'을 전신으로 한다. 현재 13개 계열사를 보유, 총 매출 규모는 1조원에 가깝다. 핵심 계열사인 보령제약의 지난해 매출액은 3275억원, 순이익은 14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 기준 제약업계 13위다.

'유씨→김씨'
성 바뀐 이유는?


지주사인 ㈜보령의 지난해 매출액은 83억4000만원, 영업이익 40억원, 당기순이익 4억8000만원으로 2011년(매출액 81억원, 영업이익 34억5000만원, 당기순이익 3억1400만원)과 2012년(매출액 79억6000만원, 영업이익 36억8000만원, 당기순이익 3억6000만원)에 이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약12년에 걸친 연구기간을 통해 지난 2011년 3월 발매한 고혈압신약 '카나브'가 세계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2011년 10월 멕시코 스텐달사와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2012년 10월에는 브라질 아쉐사, 지난해 1월에는 러시아 알팜사와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1월에는 중국 글로리아사와 라이선스아웃 계약을 체결했다.

카나브가 이끈 보령제약의 매출 성장 수치는 어마어마하다. 보령제약의 1분기 영업이익은 52억19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1.5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5.14% 늘어난 763억6900만원, 당기순이익은 511.2% 뛴 58억8000만원으로 지난해 4분기에 이어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보령은 보령메디앙스(24.68%), 보령제약(29.37%), 금정프로젝트금융투자(40%)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보령메디앙스는 보령제약의 지분 5.32%를, 보령제약은 금정프로젝트금융투자의 지분 10%를 가졌다.

충남 보령 출신의 김 회장은 약국 운영으로 돈을 벌어 64년 보령약품(현 보령제약)을 설립했다. 79년 보령메디앙스(유아용품), 86년 킴즈컴(광고·출판), 90년 ㈜보령(지주회사), 91년 바이오파마(생명공학), 96년 비알네트콤(정보·통신), 2004년 보령수앤수(건강식품), 2012년 A&D메디칼(의료기기)이 차례로 출범했다.

'007작전' 방불케 한 은밀한 결혼식
하객 100여명뿐 "회사도 몰랐다" 

김 회장은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딸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줬다. 아들이 없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지분 교통정리가 진행되면서 2세 체제로의 전환이 완료된 상태다. 김 회장은 부인 고 박민엽 여사와 사이에 딸만 넷(은선-은희-은영-은정)을 두고 있다.

이 중 장녀와 막내딸이 경영 전면에 나서 있다. 차녀 은희씨와 셋째 은영씨는 주주명단에만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 경영과 멀다. 이들은 각각 의사, 외교관과 결혼한 전업주부로 회사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 

맏이인 김은선 회장은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와 1986년 보령제약에 입사해 2000년 보령제약 사장을 거쳐 2001년 부회장, 2009년 회장에 오르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막내인 김은정 부회장은 가톨릭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은 후 2003년 유아용품 전문업체 보령메디앙스 부사장으로 입사, 2009년 언니와 함께 승진해 보령메디앙스 부회장이 됐다. 제약은 장녀가, 메디앙스는 막내가 각자 맡은 것.

김 회장은 두 딸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전인 2008년 이미 네 딸의 지분을 정확히 정리하면서 경영권 분쟁을 사전 차단했다. 이후 김은선 회장은 2008년 자신이 보유하던 보령메디앙스 지분 모두를 김은정 부회장에게 넘겼다.

앞서 은희씨와 김은정 부회장은 각각 5.18%씩 보유하고 있던 보령제약 지분을 같은 해 지주사인 ㈜보령에 매각했다. 이후에도 은선-은정 자매는 각자 보유하고 있던 보령제약, 보령메디앙스 지분을 사고팔며 서로의 독자 경영에 힘을 실어줬다.


안정된 2세 경영 체제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김은선 회장의 외아들 김 이사가 경영 전면에 등장하면서다. 사실 김 이사는 보령그룹 주요주주 현황에 꾸준히 등장해왔다. 각각 계열사별로 2009년까지 '유정균'이라는 이름으로 주주명단에 등재되다가 2010년부터 '김정균'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됐다. 성씨를 바꾼 것. 김은선 회장은 1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씨 개명은 2008년 1월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가능하게 됐다.

김 이사는 2009년까지 ㈜보령 지분이 10%에 그쳤지만 2010년 25%로 크게 늘었다. 은희, 은영, 은정의 세 이모가 각각 15%씩 보유하던 지분을 5%씩 조카에게 넘긴 것이다. 김 이사는 보령제약 지분도 1.39%(10만1823주)를 갖고 있다. 또한 가정용 및 병원용 의료기기를 만드는 계열사인 보령수앤수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다. 보령수앤수는 또 다른 계열사 보령바이오파마의 지분 96.4%를 보유, 지배하고 있다.

아들 없는 집안
외손자가 승계?

재계는 보령그룹이 3세 경영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전초 작업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성씨 개명도 혹시 모를 이종사촌 형제 간 후계 다툼을 차단하고 보령 적통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말들이 많다. 너무 어린 김 이사의 나이 때문이다. 김 이사는 보령제약 등 주주명부 비고란에 계열사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그룹 내 공식 직함은 보령수앤수 사내이사다. 김씨가 1985년생으로 올해 30세인 점을 감안하면 선임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임원을 맡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경영 능력에 대해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11년 중앙대학교 약학과를 졸업, 삼정KPMG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 퇴사해 2년 째 그룹 승계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게 알려진 전부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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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