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재보선 '안철수·김한길 무덤론' 막전막후

최악의 공천참사 "지방선거 그렇게 말아먹더니 또?"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의 7·30재보선 공천과정을 지켜본 당 관계자들은 한 마디로 '공천참사'라고 표현했다. 명분 없는 전략공천이 난무했고, 당원 간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충돌까지 있었다. 이번 공천을 주도한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에 대한 당내 불만은 폭발 일보직전이다. 다가오는 재보선이 두 사람의 '정치적 무덤'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정치권에 나도는 이유다.

"이제 두 사람(안철수·김한길)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없다."
진통 끝에 7·30재보선의 대진표가 드디어 완성됐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공천 후폭풍에 휩싸여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일부 지역에선 당 지도부의 전략공천에 반발하며 당원 간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충돌까지 있었다.

개혁공천?
공천참사

이번 공천과정에 대해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이제 두 사람은 박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뭐라 말할 자격이 없는 거 아닌가?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두고 '불통'이라고 비판했는데 이번 공천과정을 지켜보니 두 사람이 박 대통령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이번 공천을 주도한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에 대한 당내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당 안팎에선 이번 공천과정에 대해 "개혁공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역대 최악의 회전문 공천"이란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공천참사'라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들은 자칫 이번 공천 결과가 전체 재보선 판세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공천과정을 지켜보며 "국민은 재보선에서 우리 당을 도와주려는데 우리가 걷어차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재보선은 전국적으로 모두 15곳에서 치러진다. 역대 최대 규모로 선거의 승패에 따라 새누리당의 과반의석이 깨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어온 중요한 선거다.

'동지' 조경태 마저 안철수 맹비난
원칙·신뢰 무너진 사상 최악의 공천


당초 선거판세는 새정치연합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세월호 참사 정국과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 GOP 총기 사고 등이 이어지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속절없이 하락했고 새정치연합은 그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공천과정은 새정치연합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우선 이번 재보선에서 유일한 서울 지역구이며 여야의 승패를 판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꼽히던 동작을에는 난데없이 광주 광산을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전략공천 돼 논란을 일으켰다. 기 후보는 당시 광주 광산을에 선거사무소까지 차려놓은 상태였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던 사람을 전략 공천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지난 8일 기 후보의 동작을 출마 기자회견장에는 당초 이 지역에 공천을 신청했던 허동준 전 동작을 지역위원장과 지지자들이 몰려와 항의를 하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됐다. 허 후보는 지난 2000년부터 동작을을 지켜온 인물이다. 기 후보와 허 후보는 486 운동권 출신으로 '20년 지기'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날 양측은 욕설과 고성이 난무하는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낙하산 인사
지역민 우롱


열린우리당 시절 원내대표를 지냈고 법무부장관까지 역임한 천정배 전 의원의 출마로 눈길을 끌었던 광주 광산을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은폐 의혹을 폭로한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 전략공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대선 직후 민주당(현 새정치연합)은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태와 관련해 제보자에게 고위직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이른바 '매관매직' 의혹에 휩싸여 곤혹을 치른바 있다. 그런데 당 지도부가 권 과장을 광주에 공천함으로써 매관매직 의혹에 또 한 번 스스로 불을 지피고 있다는 비판이다.

당장 새누리당은 권 과장이 정치권 진입을 노리고 그동안 허위진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실제로 권 과장이 수사 은폐 당사자로 지목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1, 2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고 재판과정에서 권 과장의 진술은 여러 허점이 노출됐다.

이 같은 의혹이 선거 과정에서 계속 불거진다면 수도권 전체 판세에 악영향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권 과장은 그동안 재보선 출마와 관련해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미 지역에서 다수의 후보들이 선거활동을 펼치고 있던 상황에서 권 과장의 갑작스런 전략공천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공천이 곧 당선으로 통하는 광주 광산을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폭로에 대한 보은 차원이 아니라면 권 과장을 왜 전략공천한 것인지 뚜렷한 명분이 보이지 않는다. 당 지도부의 전략공천에 반발하며 무소속 출마까지 고려했던 천 전 의원은 결국 공천 결과에 승복했지만 당 내에서는 두 공동대표가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속임수까지 쓰면서 '천정배 죽이기'를 자행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외에도 안 대표는 동작을에 출마했던 자신의 최측근인 금태섭 전 대변인을 수원정에 전략공천하고 이미 수원정에 출마한 김한길 대표의 측근인 박광온 대변인을 수원을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막판까지 묻지마 낙하산인사가 횡행했다.

이처럼 새정치연합의 상당수 후보들은 당 지도부가 갑자기 내리꽂은 인물들이라 후보자등록일까지도 주소지를 선거구로 이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운동을 치르는 황당한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다. 제1야당의 후보들이 자신은 투표권조차 없는 상태에서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게 된 것이다.

이번 재보선 공천참사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당장 조경태 최고위원은 권 전 과장의 전략공천을 비판하며 "만약 재보선에서 패배하면 조기 전당대회를 실시하고 두 대표가 책임져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고 나섰다. 조 최고위원은 두 공동대표와 비교적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던 인물이었다.

안 대표가 신당 창당을 추진하던 당시에는 신당 이적설이 끊이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공천 과정을 계기로 조 최고위원마저 두 공동대표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이전부터 두 공동대표에게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던 구민주계 인사들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재보선을 기점으로 조기 전대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필 채비를 갖추고 있다. 공천이 끝난 후 비난의 화살은 온통 두 공동대표에게 집중되고 있는 양상이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이 친노를 위시한 구민주계 부활의 신호탄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친노 부활
안철수 몰락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벌써부터 재보선 승패 기준점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가 치러지는 15곳의 원래 주인을 따지면 새누리당 9곳, 새정치연합 5곳, 통합진보당 1곳이다. 당 지도부에서는 7대8만 나와도 이긴 것이라는 주장하고 있지만 구민주계 인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 박근혜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감안할 때 적어도 10곳 이상에서는 이겨야 성이 차는 선거라는 것이다. 만약 새정치연합이 이번 선거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조기 전대를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는 점점 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두 대표의 원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문제는 또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둔다고 하더라도 동작을에서 패한다면 두 공동대표는 책임론을 피해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두 공동대표가 전략공천을 강행한 기동민 후보는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다. 때문에 당 내에서는 "인지도도 없고 명분도 없는 인사를 가장 중요한 격전지에 꽂아 넣었다"는 비판여론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재보선 승패기준점 놓고 당내 이견
'마음은 콩밭에' 불붙는 조기 전대론

반면 새누리당은 동작을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도 출마했던 거물급 인사인 나경원 전 의원을 공천했다. 나 전 의원과 같은 거물급 인사를 상대로 기 후보가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동작을은 노량진 대방 등으로 이뤄진 동작갑과 달리 사당 흑석 등 여권 지지 성향이 높은 동네로 구성돼 있어 야권으로서는 공략하기 쉽지 않은 지역으로 분류된다.

게다가 당초 새정치연합에 유리할 것으로 평가되던 재보선의 판세는 어느 순간부터 혼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이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상승세로 돌아선 데다 새정치연합의 공천 잡음이 언론을 통해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재보선이 두 사람의 정치적 무덤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정치권에 나도는 이유다.

특히 안 대표는 이번 재보선 말고는 앞으로 특별한 선거가 없기 때문에 이번에 반드시 측근들을 원내로 진입시켜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공천과정에서도 안철수의 사람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떠나간 측근
외로운 철수

오히려 안 대표의 최측근인 금 전 대변인은 동작을 공천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안 대표와 사실상 결별을 선언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번 공천과정을 거치면서 김 대표마저 안 대표에게 등을 돌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측근들이 연이어 안 대표와 결별을 선언하면서 안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재보선은 지난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10년 가까이 여권에 끌려 다니기만 했던 야권이 드디어 향후 정국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명분 없는 공천의 책임을 회피할 유일한 방법은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 뿐이다. 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두지 못한다면 설사 두 사람이 대표직을 유지한다 해도 사실상 허수아비 대표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공천참사 비판에 격노한 안철수
"그런 잣대라면 하나님도 비판받는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지난 9일 자신이 7·30재보선 전략공천 과정에서 제 사람만 챙기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그런 잣대로 비판한다면 하나님인들 비판받지 않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안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최적의 후보일 때는 자기 사람 챙기기라고 하고, 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공천되지 않으면 자기 사람도 못 챙긴다고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 대표는 또 "기존 후보로 힘든 상황에서 가용한 인재풀을 총동원해 최적최강 후보를 뽑았고 어떤 사적 고려도 없이 원칙에 따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했다"며 이번 공천과정에 대한 비판에 적극 항변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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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