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의 7·30재보선 공천과정을 지켜본 당 관계자들은 한 마디로 '공천참사'라고 표현했다. 명분 없는 전략공천이 난무했고, 당원 간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충돌까지 있었다. 이번 공천을 주도한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에 대한 당내 불만은 폭발 일보직전이다. 다가오는 재보선이 두 사람의 '정치적 무덤'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정치권에 나도는 이유다.
"이제 두 사람(안철수·김한길)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없다."
진통 끝에 7·30재보선의 대진표가 드디어 완성됐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공천 후폭풍에 휩싸여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일부 지역에선 당 지도부의 전략공천에 반발하며 당원 간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충돌까지 있었다.
개혁공천?
공천참사
이번 공천과정에 대해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이제 두 사람은 박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뭐라 말할 자격이 없는 거 아닌가?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두고 '불통'이라고 비판했는데 이번 공천과정을 지켜보니 두 사람이 박 대통령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이번 공천을 주도한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에 대한 당내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당 안팎에선 이번 공천과정에 대해 "개혁공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역대 최악의 회전문 공천"이란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공천참사'라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들은 자칫 이번 공천 결과가 전체 재보선 판세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공천과정을 지켜보며 "국민은 재보선에서 우리 당을 도와주려는데 우리가 걷어차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재보선은 전국적으로 모두 15곳에서 치러진다. 역대 최대 규모로 선거의 승패에 따라 새누리당의 과반의석이 깨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어온 중요한 선거다.
'동지' 조경태 마저 안철수 맹비난
원칙·신뢰 무너진 사상 최악의 공천
당초 선거판세는 새정치연합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세월호 참사 정국과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 GOP 총기 사고 등이 이어지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속절없이 하락했고 새정치연합은 그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공천과정은 새정치연합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우선 이번 재보선에서 유일한 서울 지역구이며 여야의 승패를 판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꼽히던 동작을에는 난데없이 광주 광산을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전략공천 돼 논란을 일으켰다. 기 후보는 당시 광주 광산을에 선거사무소까지 차려놓은 상태였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던 사람을 전략 공천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지난 8일 기 후보의 동작을 출마 기자회견장에는 당초 이 지역에 공천을 신청했던 허동준 전 동작을 지역위원장과 지지자들이 몰려와 항의를 하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됐다. 허 후보는 지난 2000년부터 동작을을 지켜온 인물이다. 기 후보와 허 후보는 486 운동권 출신으로 '20년 지기'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날 양측은 욕설과 고성이 난무하는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낙하산 인사
지역민 우롱
열린우리당 시절 원내대표를 지냈고 법무부장관까지 역임한 천정배 전 의원의 출마로 눈길을 끌었던 광주 광산을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은폐 의혹을 폭로한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 전략공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대선 직후 민주당(현 새정치연합)은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태와 관련해 제보자에게 고위직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이른바 '매관매직' 의혹에 휩싸여 곤혹을 치른바 있다. 그런데 당 지도부가 권 과장을 광주에 공천함으로써 매관매직 의혹에 또 한 번 스스로 불을 지피고 있다는 비판이다.
당장 새누리당은 권 과장이 정치권 진입을 노리고 그동안 허위진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실제로 권 과장이 수사 은폐 당사자로 지목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1, 2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고 재판과정에서 권 과장의 진술은 여러 허점이 노출됐다.
이 같은 의혹이 선거 과정에서 계속 불거진다면 수도권 전체 판세에 악영향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권 과장은 그동안 재보선 출마와 관련해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미 지역에서 다수의 후보들이 선거활동을 펼치고 있던 상황에서 권 과장의 갑작스런 전략공천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공천이 곧 당선으로 통하는 광주 광산을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폭로에 대한 보은 차원이 아니라면 권 과장을 왜 전략공천한 것인지 뚜렷한 명분이 보이지 않는다. 당 지도부의 전략공천에 반발하며 무소속 출마까지 고려했던 천 전 의원은 결국 공천 결과에 승복했지만 당 내에서는 두 공동대표가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속임수까지 쓰면서 '천정배 죽이기'를 자행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외에도 안 대표는 동작을에 출마했던 자신의 최측근인 금태섭 전 대변인을 수원정에 전략공천하고 이미 수원정에 출마한 김한길 대표의 측근인 박광온 대변인을 수원을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막판까지 묻지마 낙하산인사가 횡행했다.
이처럼 새정치연합의 상당수 후보들은 당 지도부가 갑자기 내리꽂은 인물들이라 후보자등록일까지도 주소지를 선거구로 이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운동을 치르는 황당한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다. 제1야당의 후보들이 자신은 투표권조차 없는 상태에서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게 된 것이다.
이번 재보선 공천참사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당장 조경태 최고위원은 권 전 과장의 전략공천을 비판하며 "만약 재보선에서 패배하면 조기 전당대회를 실시하고 두 대표가 책임져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고 나섰다. 조 최고위원은 두 공동대표와 비교적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던 인물이었다.
안 대표가 신당 창당을 추진하던 당시에는 신당 이적설이 끊이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공천 과정을 계기로 조 최고위원마저 두 공동대표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이전부터 두 공동대표에게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던 구민주계 인사들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재보선을 기점으로 조기 전대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필 채비를 갖추고 있다. 공천이 끝난 후 비난의 화살은 온통 두 공동대표에게 집중되고 있는 양상이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이 친노를 위시한 구민주계 부활의 신호탄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친노 부활
안철수 몰락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벌써부터 재보선 승패 기준점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가 치러지는 15곳의 원래 주인을 따지면 새누리당 9곳, 새정치연합 5곳, 통합진보당 1곳이다. 당 지도부에서는 7대8만 나와도 이긴 것이라는 주장하고 있지만 구민주계 인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 박근혜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감안할 때 적어도 10곳 이상에서는 이겨야 성이 차는 선거라는 것이다. 만약 새정치연합이 이번 선거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조기 전대를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는 점점 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두 대표의 원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문제는 또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둔다고 하더라도 동작을에서 패한다면 두 공동대표는 책임론을 피해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두 공동대표가 전략공천을 강행한 기동민 후보는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다. 때문에 당 내에서는 "인지도도 없고 명분도 없는 인사를 가장 중요한 격전지에 꽂아 넣었다"는 비판여론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재보선 승패기준점 놓고 당내 이견
'마음은 콩밭에' 불붙는 조기 전대론
반면 새누리당은 동작을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도 출마했던 거물급 인사인 나경원 전 의원을 공천했다. 나 전 의원과 같은 거물급 인사를 상대로 기 후보가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동작을은 노량진 대방 등으로 이뤄진 동작갑과 달리 사당 흑석 등 여권 지지 성향이 높은 동네로 구성돼 있어 야권으로서는 공략하기 쉽지 않은 지역으로 분류된다.
게다가 당초 새정치연합에 유리할 것으로 평가되던 재보선의 판세는 어느 순간부터 혼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이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상승세로 돌아선 데다 새정치연합의 공천 잡음이 언론을 통해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재보선이 두 사람의 정치적 무덤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정치권에 나도는 이유다.
특히 안 대표는 이번 재보선 말고는 앞으로 특별한 선거가 없기 때문에 이번에 반드시 측근들을 원내로 진입시켜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공천과정에서도 안철수의 사람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떠나간 측근
외로운 철수
오히려 안 대표의 최측근인 금 전 대변인은 동작을 공천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안 대표와 사실상 결별을 선언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번 공천과정을 거치면서 김 대표마저 안 대표에게 등을 돌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측근들이 연이어 안 대표와 결별을 선언하면서 안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재보선은 지난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10년 가까이 여권에 끌려 다니기만 했던 야권이 드디어 향후 정국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명분 없는 공천의 책임을 회피할 유일한 방법은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 뿐이다. 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두지 못한다면 설사 두 사람이 대표직을 유지한다 해도 사실상 허수아비 대표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사 속 기사> 공천참사 비판에 격노한 안철수
"그런 잣대라면 하나님도 비판받는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지난 9일 자신이 7·30재보선 전략공천 과정에서 제 사람만 챙기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그런 잣대로 비판한다면 하나님인들 비판받지 않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안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최적의 후보일 때는 자기 사람 챙기기라고 하고, 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공천되지 않으면 자기 사람도 못 챙긴다고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 대표는 또 "기존 후보로 힘든 상황에서 가용한 인재풀을 총동원해 최적최강 후보를 뽑았고 어떤 사적 고려도 없이 원칙에 따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했다"며 이번 공천과정에 대한 비판에 적극 항변했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