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가 낯선 '연정 열풍' 겉과 속

"어제의 적이 내민 손 덥석 잡기에는 꺼림칙"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6.4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경기도와 제주도 등 몇몇 광역단체에서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른바 '연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제 식구 챙기기에만 바빴던 과거 정치권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지방정가에 난데없이 연정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연정 열풍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지방정가에 난데없는 연정 열풍이 불고 있다. 이미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상대진영에 공식적으로 연정을 제의하고 관련 논의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남 지사는 기존의 정무부지사를 '사회통합부지사'로 이름을 바꾸고 야당 측 인사가 맡아줄 것을 제의했다.

달라진 정치권

원 지사는 좀 더 파격적으로 자신과 선거에서 맞붙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신구범 후보에게 손을 내밀어 상대후보였던 인물이 당선자의 인수위원장직을 맡는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연정까지는 아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서병수 부산시장 등은 상대 진영의 공약과 인재를 적극 활용하겠다며 잇달아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제 식구 챙기기에만 바빴던 과거 정치권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지방정부에서 연정이 시도되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가 끝난 후 야권 단일화를 이룬 지역에서 '공동지방정부'가 구성된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념적 적대 관계에 있는 세력까지 아우르며 도정을 운영하겠다는 시도는 처음이다.

일단 각 지방정가의 연정 시도는 일반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정쟁에 질릴 대로 질린 국민들에게 연정은 분명 신선한 시도고, 반가운 소식이다. 연정이 지방정가에서 성공적으로 싹을 틔워 중앙정치권으로까지 확대된다면 지리멸렬한 정쟁이 조금은 잦아들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 전문가들도 연정이 우리 정치문화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정작 정치권에서는 연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연정을 시도하는 각 광역단체에서는 볼썽사나운 잡음도 있었다. 특히 새정치연합 제주도당의 경우 원 지사가 경쟁자였던 신구범 후보를 인수위원장으로 채택한 것에 대해 "협치를 가장한 협잡이며, 통합을 빌미로 야권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라며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인수위원장직을 수용한 신 후보에 대해서는 탈당까지 권고했다.

새정치연합 측은 또 원 지사가 연정을 제의한 것은 현재 대권 출마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 향후 자신의 정치 행보를 생각해 '이미지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연정의 의미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경기도 역시 연정과 관련해 잡음이 일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남 지사의 연정 제의에 대해 새정치연합 일부 인사들은 "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연정이 이뤄지면 7월 재보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대권 노린 이미지정치?
결국엔 야당 와해작전?


새정치연합이 연정에 협력하게 되면 남 지사와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높이는 기폭제가 될 것이 뻔하다. 심지어 일부 인사들은 남 지사가 제안한 사회통합부지사 직을 받는 사람은 '해당행위자'라는 강경한 입장까지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연정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정치연합 소속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경우는 새누리당이 도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연정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지만 연정은 실효성이 없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최 지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분들(남경필 경기지사·원희룡 제주지사)은 초보 도지사니까 (연정을 시도하는 것)"라며 "지역 행정은 90%가 지역발전을 위한 사업이고 안전성을 추구하다 보니 여야가 극한 정쟁을 벌일 일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도 "서로 너무나 다른 정책과 의견을 가진 양 정당의 인사들이 억지로 한데 섞여 일하게 되면 오히려 정치적 분란과 혼란만 가중시킬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이는 책임정치 구현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유권자들이 어느 한 정당을 투표를 통해 선택한 것은 그 정당이 추구하는 노선과 정책을 지지했기 때문인데 정작 당선 후 연정을 위해 이를 대폭 수정한다면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경기도에선 연정의 진정성을 보이라며 야권이 생활임금조례를 통과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 새누리당의 입장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생활임금조례는 새정치연합이 다수당인 도의회를 통과했지만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해 남 지사의 결정에 따라 실현여부가 결정된다.

생활임금조례안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근로자 및 하도급 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제도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생활임금제가 최저임금제를 무력화시켜 도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고,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경기도가 재원 대책도 없이 일괄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려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권이 연정에 거는 기대는 크다. 특히 남 지사의 경우 과거부터 연정에 큰 관심을 보여 온 인물이라 단순히 이미지정치를 위한 행보는 아닐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남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제안했던 대연정에 대해서도 당론과 달리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국회에서는 줄곧 권력 분산을 강조하며 분권형 대통령제와 4년 중임제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각종 포럼을 통해 독일의 연정 정치를 공부해오기도 했다. 따라서 남 지사의 연정 제의를 그저 정치적 꼼수라고 폄훼할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다.

도의회가 여대야소로 꾸려진 현 경기도에서 연정은 꼭 필요한 선택이라는 주장도 있다. 과거 경기도는 도와 의회간의 불협화음으로 각종 조례가 통과되지 못하는 등 갈등을 겪어왔다. 이 같은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경기도의 발전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높은 불신의 벽

한편 대다수의 정치전문가들은 연정의 성공여부는 진정성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연정이 '정치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성공하려면 여야 모두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는 뿌리 깊은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열쇠는 현 시·도지사들에게 있다. 지방정부의 특성상 시·도지사가 모든 사업의 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정파의 의견을 얼마나 수렴하느냐가 관건이다. 상대진영을 챙기는 과정에서 정작 소외될 수 있는 내부세력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해소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지방정가에 불어 닥친 연정 바람은 정치권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까? 아니면 또 다시 국민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게 될까? 국민들의 이목이 지방정가로 쏠리고 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연정이란 무엇? 우리나라에서는 아픈 기억

연정이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둘 이상의 세력이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해외에서는 이미 흔한 일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척 헤이글 전 공화당 상원의원을 민주당 정권의 국방장관으로 임명했고, 독일에서는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우파 진영과, 좌파 진영이 대연정을 꾸린 바 있다.

연정은 불필요한 정쟁을 피하고 국가정책의 일관성, 지속성, 예측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연정은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김대중정부 때 시도됐던 DJP연합의 경우 내각제 개헌 약속 불이행과 동교동계의 인사 불만 등이 겹치면서 끝내 와해되어 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단 번에 거절당해 대통령이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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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사태’ 결정적 장면 셋

‘하이브 사태’ 결정적 장면 셋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시작은 분명 하이브였다. 하지만 나락에 떨어지고 있는 것도 하이브다. 연예기획사 최초로 대기업에 지정되는 등 업계 1위로 군림하던 상황이라 추락의 속도가 더 빠른 모양새다. 불과 6개월 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요시사>가 ‘하이브 사태’의 결정적 장면을 꼽았다. 내부서 시작된 갈등이 외부로 분출됐다. 여론이 움직이고 대중의 뭇매가 이어졌다. 정치권이 나서자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그사이 연예기획사 하이브는 이른바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오랜 시간 모래 위에 성을 쌓아온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민낯도 드러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이브가 케이팝에 독물을 풀었다’는 말이 돌았다. 업계 1위 나락 갔다 시작은 민희진 당시 어도어 대표이사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었다. 하이브는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해 시행했다. 국·내외서 큰 성공을 거둔 방탄소년단(BTS)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리스크를 낮추겠다는 의도였다. 모회사인 하이브는 산하에 레이블을 인수하거나 편입하는 식으로 체제를 완성했다. 각 레이블은 소속 아티스트의 활동을 전담하고 하이브는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멀티레이블은 ‘독립적 운영’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다. 이 같은 방식은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실제 BTS의 ‘군백기(군대+공백기)’에도 하이브의 매출은 성장세를 보였다. 어도어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 중 하나로 그룹 뉴진스가 소속돼있다. 어도어의 지분은 하이브가 80%, 민 전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20%(민 전 대표 18%)를 보유하고 있다. 민 전 대표는 과거 SM엔터테인먼트서 샤이니, 에프엑스 등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와 브랜드를 맡은 제작자로, 2019년 하이브에 합류했고 2021년 어도어 대표가 됐다. 지난 4월 하이브는 민 전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레이블의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내부 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민 전 대표 측은 하이브의 감사는 내부고발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인 빌리프랩의 소속 가수 아일릿이 뉴진스를 카피했다고 주장했다. 아일릿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프로듀싱을 맡은 걸그룹이다. 민 전 대표 측의 주장으로 전선이 다른 레이블로까지 확대됐다. 대형 연예기획사와 산하 레이블 대표 간의 갈등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궜다. 폭로와 반박이 나올 때마다 여론이 휘청였고 온갖 의혹이 난무했다. 민 전 대표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공개됐고 이 과정서 한 무속인의 존재가 드러났다. 민 전 대표가 자신의 중대사를 무속인과 논의했다는 의혹이 퍼졌다. 4월22일부터 4월25일까지 불과 나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때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졌다. 민 전 대표는 4월25일 법무법인 세종 소속 변호사 2명과 함께 한국컨퍼런스센터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가 자청한 회견이었다. 파란 모자에 녹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민 전 대표는 하이브의 주장에 ‘억울하다’는 입장을 드러내며 반박했다. 민희진에 대한 감사 나비효과 국감에서 다뤄지며 뭇매 맞아 민 전 대표는 중간중간 욕설을 섞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을 ‘날것’ 그대로 쏟아냈다. 2시간 남짓한 기자회견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여론이 급격하게 민 전 대표 쪽으로 기울었고 그가 착용한 모자와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엄청난 화제로 기록됐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대목이다. 이후 둘의 갈등은 법정 공방으로도 비화했다. 첫판은 민 전 대표의 판정승이었다. 민 전 대표는 자신을 해임하기 위한 어도어 주주총회서 하이브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하이브가 민 대표의 해임 사유를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며 인용 결정을 내렸다. 또 하이브가 주장했던 민 전 대표의 ‘경영권 찬탈’ 의혹에 대해 “민 대표가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압박해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팔게 만들어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민 전 대표가 어도어를 독립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런 방법의 모색 단계를 넘어 구체적 실행 단계로 나아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민 대표의 행위가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 전 대표는 가처분 승소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어도어 대표로서 계속 일하고 싶다. 뉴진스와 함께 계획한 것들을 하고 싶다. 그게 하이브에도 이익이다. 그만 싸우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며 화해를 제안했다. 하지만 하이브는 앞서 열린 임시주총서 민 전 대표 측 이사 2명을 해임하고 3명을 새로운 이사로 선임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여기에 아일릿의 레이블 빌리프랩서 민 전 대표가 주장한 뉴진스 카피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사건이 확대됐다. 빌리프랩은 민 전 대표에 대한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레이블 간의 다툼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때부터 팬덤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소속 가수가 직접적인 공격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어도어와 또 다른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쏘스뮤직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쏘스뮤직에는 그룹 르세라핌이 소속돼있다. 한 언론 매체를 통해 어도어 측이 쏘스뮤직의 연습생을 빼앗아 뉴진스를 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레이블 간의 반박, 재반박이 거듭됐다. 또 레이블서 직접 민 전 대표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진흙탕 싸움이 이어졌다. 기자회견 첫 분기점 ‘민-방(민희진-방시혁) 대전’ ‘민-합(민희진-하이브) 대전’은 8~9월 분기점을 맞았다. 역시 선공격은 하이브의 몫이었다. 지난 8월27일 어도어는 “김주영 어도어 사내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며 “김 신임 대표이사는 다양한 업계서 경험을 쌓은 인사관리 전문가로서 어도어의 조직 안정화와 내부 정비를 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 5월 어도어 사내이사가 교체될 때 하이브 쪽 추천으로 들어간 인사다. 민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는 해임됐지만 사내이사직은 유지했다. 어도어는 민 전 대표가 뉴진스의 프로듀싱 업무도 그대로 맡게 된다고 밝혔다. 제작과 경영을 분리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어도어만 예외적으로 제작과 경영을 모두 총괄해 왔다”고 강조했다. 민 전 대표의 권한을 제작으로만 축소하겠다는 뜻이었다. 민 전 대표는 “일방적인 해임”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또 주주 간 계약의 중대한 위반이라고도 했다. 민 전 대표가 뉴진스의 프로듀싱을 맡는 문제도 일방적인 통보라고 주장했다. 어도어의 선공격과 민 전 대표의 반박으로 공은 또다시 법정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등장했다. 뉴진스가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이다. 지난 4월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부터 지난 9월까지 뉴진스가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다. 시상식 등에서 민 전 대표와의 유대감을 표현하거나 뉴진스 멤버의 부모가 목소리를 낸 경우는 있었지만 직접 입장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9월11일 뉴진스는 유튜브 계정을 열고 하이브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토로했다. 이들은 “라이브를 결정한 이유는 (민희진)대표님의 해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스태프들이)부당한 요구와 압박 속에서 마음고생하는 것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저희 다섯명의 미래가 걱정돼 용기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또 버니즈(뉴진스의 팬덤명)까지 나서서 도와주고 있는데 우리만 숨어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방송 배경을 밝혔다. 뉴진스는 “경영과 프로듀싱이 통합된 원래 어도어를 저희는 바란다. 이것이 하이브와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며 “오는 25일까지 어도어를 원래대로 복구시키는 현명한 결정을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날짜를 못 박았다. 당시 뉴진스가 민 전 대표를 복귀시키라면서 특정 날짜를 언급하는 등 ‘최후통첩’에 가까운 발언을 하면서 하이브와 법정 공방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라이브 방송 변곡점 됐다 특히 이날 방송서 뉴진스 멤버 하니가 “(하이브 사옥서)혼자 복도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다른 팀원들이랑 매니저가 지나갔다. 서로 인사했는데, 그분들이 나오셨을 때 그쪽 매니저가 ‘무시해’라고 했다. 제 앞에서. 다 들리고 보이는데 ‘무시해’라고 했다. 제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어이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부분이 ‘직장 내 괴롭힘’ 의혹으로 번졌다. 뉴진스가 전면에 나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의 파급력은 컸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 민 전 대표+뉴진스와 하이브 간의 갈등으로 재규정된 순간이었다. 방송 자체는 3시간 만에 삭제됐지만 뉴진스의 발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던 정치권이 하니의 주장을 문제 삼으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하니를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하이브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에 대해 파헤치겠다는 취지였다. 동시에 인사책임자인 김주영 어도어 대표이사의 증인 출석도 요구했다. 아이돌 따돌림,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관련해 하니에게 묻고 김 대표에게 대응에 대해 질문하겠다는 것이다. 하니가 국감에 출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화제가 일었다. 이날 국감에서는 하니와 김 대표 간의 공방이 벌어졌다. 하니는 다른 레이블 소속 매니저로부터 ‘무시해’라는 발언을 들었고 하이브가 CCTV를 삭제하는 등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김 대표는 서로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라고 맞섰다. 하니의 국감 출석으로 아티스트의 근로자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아티스트는 현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태다.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정 의원은 “(아티스트가)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니까 대응할 수가 없다고 하면 이 문제는 영원히 도돌이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하이브는 아이돌 굿즈 관련한 문제로도 국감서 지적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의혹이 쟁점이 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하이브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이브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은 거셌다. 이 과정서 하이브의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하이브에서는 ‘모니터링’ 문서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업계 동향 보고서’다. 해당 문건의 존재와 내용이 공개되면서 하이브는 바닥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다. 한때 케이팝을 선도한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연예기획사가 타사 아이돌의 외모를 품평하고 방송 출연 모습을 일일이 꼬투리 잡아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팬덤은 물론 대중도 경악하고 있다. 모니터링 문건 대중 반응 최악 뒤에 숨어있는 방시혁 나와야? 엔터 업계서 오랜 시간 일했다는 관계자들도 ‘이런 사례는 보지 못했다’며 손사래를 칠 정도다. 해당 문건에 대한 하이브의 대응은 엄청난 역풍을 불렀다. 앞서 지난달 24일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서 ‘위클리 음악산업 리포트’라는 이름의 문건을 공개했다. 민 의원이 공개한 문건 내용이 파장을 일으키자 하이브는 국감 도중에 입장문을 내고 대응에 나섰다. 문제는 입장문 내용이 ‘적반하장’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당시 하이브는 “국감서 공개된 당사의 모니터링 보고서는 팬덤 및 업계의 다양한 반응과 여론을 취합한 문서”라며 “업계 동향과 이슈를 내부 소수 인원에게 참고용으로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발췌해 작성됐으며 하이브의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보고서에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들, 팬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포함돼있다”며 “보고서 중 일부 자극적인 내용들만 짜깁기해 마치 하이브가 아티스트를 비판한 자료를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외부에 유출한 세력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이브의 입장문에 국회의원들은 “국회가 만만하냐”며 불쾌감을 표했다. 국감 도중에 입장문을 발표한 것도 모자라 제보자를 색출하겠다는 하이브의 태도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결국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있던 김태호 하이브 최고운영책임자 겸 빌리프랩 대표는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회발로 시작된 문건의 파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수천장에 달하는 문건 중 극히 일부만 공개된 상황이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 케이팝 팬들까지 반응하고 있다. 문건을 만든 사람, 본 사람, 공유한 사람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고, 민 전 대표가 이미 지난 4월 첫 번째 기자회견을 했을 때 언급했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대중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하이브는 지난달 29일 이재상 최고경영자(CEO) 명의로 입장문을 게재했다. 문건이 처음 공개된 지 닷새 만에 나온 사과문이다. 이 CEO는 “당사의 모니터링 문서에 대해 아티스트분들, 업계 관계자분들, 그리고 팬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또 부적절한 내용의 문건을 작성한 점을 인정하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하이브의 사과문을 두고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언론을 통해 추가 문건이 공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일부 하이브 소속 가수가 SNS를 통해 말을 얹으면서 사태가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사이 하이브의 이미지는 물론 소속 가수의 호감도 또한 수직 낙하하는 중이다. 정치권발 카운터펀치 결국 방시혁 의장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방 의장은 BJ 과즙세연과의 LA 목격담 이후 두문불출 중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전면에 나선 적이 없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은 계속해서 ‘위’를 향하고 있다. 결국 하이브를 총괄 지배하는 사람은 방 의장이기 때문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