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에 수상한 거액의 기부금이 유입된 정황이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기부금이 유입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각각 재단의 이사장과 이사로 재직하던 시기다. 과연 기부금의 정체는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추적해봤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하 박정희재단)에 수상한 거액의 기부금이 유입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해 7월에서 9월 사이 누군가가 박정희재단에 약 15억 가량의 거액을 기부했다. 특히 이 시기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각각 박정희재단 이사장과 이사로 재직하던 시기라 눈길을 끈다.
수상한 기부금
김 실장은 박정희재단이 사단법인에서 재단법인으로 전환된 직후인 지난 해 6월21일 초대이사장으로 취임했는데, 우연찮게도 김 실장의 이사장 취임 시기와 기부금의 유입 시기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박정희재단은 그동안 회보를 통해 기부금 내역을 3개월 단위로 공개해왔는데 해당 기간만 기부액과 기부자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재단 홈페이지에 공개된 재단 손익계산서에 따르면 재단은 지난해 6월21일부터 12월31일까지 기부금 수입 15억6700여만원, 이자수입 7억3000여만원을 벌어들여 6개월 동안 18억여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회보에서 공개한 지난해 10∼12월 기부액 1566만원을 제하면 재단 측이 공개하지 않은 7∼9월 기부액은 15억5000여만원으로 추정된다.
보통 분기당 5~600만원 수준으로 모금되던 기부금이 김 실장의 이사장 취임 이후 15억 가량으로 급격히 증가한 셈이다. 김 실장은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두 달이 채 안 돼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김 실장이 퇴임한 이후에는 박정희재단의 기부금 수입액이 다시 1000만원대로 폭락했다. 여러 모로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때문에 김 의원실은 재단의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을 관리 감독하는 안전행정부를 통해 박정희재단의 기부자 및 기부내역을 파악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안행부는 박정희대통령사업회에 기부금품 모집 허가를 내줄 당시 기부금 모집 및 사용기간을 '사업완료 시까지'로 기재해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내역을 재단에 요청하지 않았고, 재단도 제출 의무가 없어 현재까지 재단의 구체적인 기부금품 모집 내역은 파악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박정희재단이 사실상 감사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것이다.
참고로 1999년 설립된 (구)박정희기념사업회는 정부로부터 500억원의 기부금 모집을 허가받았고, 해산(2013년 5월)시까지 487억5천만원을 모금해 박정희 기념관 건립 등에 사용했다. 잔여재산 50억원은 2013년 6월 박정희기념재단의 기본재산으로 출연한 바 있다.
한편 본지가 박정희재단의 회보를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박정희재단이 회보를 통해 기부금 내역을 공개하기 시작한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모금한 모든 기부금을 합쳐도 김 실장이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단 2개월 남짓한 시기 모은 기부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문, 알고 보니 박정희재단 멤버
각종 의혹, 퇴색한 동서화합의 상징
김 의원 측은 이에 대해 "권력의 힘으로 기금을 모집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실장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에 취임하기 전이었고 별다른 직책도 없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 자문 그룹 7인회의 멤버로서 정치권에서는 이미 막후 실세로 지목되고 있던 시기였다.
게다가 꼭 김 실장이 아니더라도 당시 이사진의 면면이 워낙 화려해 기부금의 대가성이 얼마든지 의심될 수 있는 상황이다. 재단 설립 당시 이사진은 김 실장과 문 후보자 외에도 전경련 부회장 출신의 현 손병두 이사장, 이정무 전 건설교통부장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김성호 전 법무장관, 성상철 전 서울대병원장,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가 참여했다.
도대체 15억의 거금을 누가 무슨 이유로 갑작스럽게 기부하게 된 것인지 이후 기부자에 대한 특혜는 없었는지 철저한 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재단 측은 기부자가 원하지 않아 기부 내역을 해당 회보에서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관련 의혹에 대해 모두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의혹은 또 있다. 재단 측의 해명처럼 기부자가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면 해당 기부자의 성명과 기부내역만 제외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재단 측은 이상하게도 해당 기간 회보에서 기부 내역 전체를 삭제해버렸다. 그동안 재단 측이 1만원 이하의 소액 기부자조차도 빼놓지 않고 모두 공개해왔던 전례와 비교하면 무척 이상한 일이다.
또 김경협 의원실에 따르면 "이사들은 매월 2회씩 모여 사업회 운영을 논의했다고 회보를 통해 밝힌 만큼 박정희재단 이사인 문 후보자도 매월 정기적으로 재단 운영상황을 점검하고 참여했을 것"이라며 해당 기부금과 문 후보자의 관련성도 의심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각에서는 박정희재단이 그동안 재정난에 시달려 왔으나 김 실장의 이사장 취임 이후 갑자기 재정난이 모두 해결됐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박정희재단 측은 현재 각종 의혹들에 대한 답변을 전부 거절하고 있는 상태라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본지는 박정희재단 관계자에게 반론권을 포기할 경우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며 최소한의 답변을 해줄 것을 재차 요구했으나 박정희재단 측은 끝까지 답변을 거부했다.
박정희재단은 지난 해에는 서울·경기 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예스코로부터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기부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기부금은 당초 빈민 낙후지역 도시가스 배관 교체 등 에너지 복지에 쓰여야 할 돈이었다. 하지만 정확한 기부금의 내역은 당시에도 기부금이라는 이유로 밝혀지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출처
정치권에서는 박정희재단은 사실상 현직 대통령과 연결되어 있는 민감한 곳으로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을 경우 정권의 로비창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전두환 정권 시절 미얀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으로 순직한 희생자들의 유족에 대한 지원과 장학사업을 목표로 발족한 일해재단의 경우 강제성금 모금 등이 문제가 돼 5공 비리의 핵심으로 지목당하기도 했다. 지금부터라도 박정희재단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투명한 관리가 요구되는 이유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정희 재단은?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든 동서화합의 상징이다. 김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공약해 영남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았고 정권을 잡은 후에는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예산 200억원을 지원했다. 지난 1999년 7월엔 기념관 건립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현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가 발족됐다. 김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기념사업회의 명예 회장을 맡았다. 김 전 대통령의 오른팔인 권노갑 전 의원은 부회장으로 참여했다.
당시 기념사업회 회장으로는 신현확이 취임했고, 한나라당 부총재이던 박근혜 대통령도 부회장을 맡았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