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키즈'의 반란 막전막후

간큰 초선들…당·청 선긋고 마이웨이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일명 '박근혜 키즈'라 불리는 새누리당 초선의원들 일부가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시절 공천을 받고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해 '친박(친박근혜) 성향'이 강한 이들이 당·청의 입장과 배치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새누리당 전체의원(148명)의 과반 이상(78명)을 차지하면서도 그간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던 이들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당·청에 반기를 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막 여의도 정치에 입문한 초선의원들의 역할은 당내 분위기 쇄신을 북돋고, 때로는 거침없는 쓴 소리로 경직되고 고착된 당을 젊고 생동감 넘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년 새누리당 초선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핵심인사들이 장악한 당을 위한 '신종 거수기' 역할에 충실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이들이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뜻과 배치되는 주장을 정면으로 내세우며 눈길을 끌고 있다.

변화하는 '박근혜 키즈'

새누리당 초선의원 6명(김상민·민현주·윤명희·이재영·이종훈·이자스민)은 지난 12일 성명을 내고 "국무총리와 같은 국가 지도자급의 반열에 오르려면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확고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일제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든지, 일본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등의 인식을 가진 문창극 총리후보자는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인사검증에 실패한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이고 대대적인 손질도 강력히 요구한다"며 "국민에게 희망이 아닌, 걱정과 우려를 안겨주는 인사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사실상 청와대의 인사검증 책임을 맡고 있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사퇴를 요구했다.

당시 청와대와 당 지도부가 '일단 청문회까지는 간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던 상황에서 나온 이들의 이러한 행보는 친박 핵심인사들로 구성된 당 지도부의 당 장악력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실 당 지도부와 '박근혜 키즈' 간의 이상기류는 앞서 지난달 후반기 국회의장 선출 때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차기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당내 경선에서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황우여 전 대표가 초선의원들의 이탈 현상으로 비주류인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압도적으로 밀린 것이다.

최근 친박 핵심인사인 홍문종 전 사무총장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놓고 '탈박(탈박근혜)'으로 분류되는 진영 의원과 맞붙어 불과 8표차로 신승한 것도 '박근혜 키즈'의 집단 이탈 결과로 분석된다.

여, 초선의원 일부 '문창극 사퇴' 촉구
친박 당 장악력 균열 조짐…정략적 선택?

이는 지난 2년간 이들이 보여줬던 모습과 확연히 다르다. 새누리당 초선의원들이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이후 정치세력으로서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 평가다.

그간 청와대의 '신종 거수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을 정도로 독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은 박 대통령 취임초 정부조직개편안 협상 교착,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등 정국의 분수령마다 침묵하거나 당 지도부 의견에 묵묵히 따랐다.

다만 청년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상민 의원 정도만이 간간이 제 목소리를 내왔다. 박 의원은 지난해 12월에 박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공약'이 미뤄질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 "국민과의 약속인 공약을 지켜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반값등록금 실시를 주장했다.
 

또 지난 1월에는 카드 3사 개인정보 대량 유출 문제로 온 국가가 들썩이던 때 현오석 경제부총리,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등 내각 경제팀의 책임을 강하게 물으며 총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박 의원 외에는 튀는 행동을 자제해왔던 '박근혜 키즈'들이 최근 파격적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년간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 끌려오면서 쌓인 불만과 자괴감이 표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초선의원은 "당 지도부나 청와대가 국민정서에서 동떨어진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선거도 준비해야 하고 그대로 따를 수만은 없다"며 "이제야 당 지도부의 지시에서 벗어나 일인 헌법기관답게 자기 의사대로 의견을 밝히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박근혜 키즈'의 반기는 친박계의 분화와 함께 새누리당이 당권재편 시기에 접어든 만큼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초선 비례대표 모임인 '약지회'와 이완구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7일 회동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기까지 했다. 이 자리에서 김상민 의원은 이 비대위원장에게 "청문회는 정치공방이 될 것이고, 표결에서 (여당표가) 분열될 게 뻔하다"며 "이런 부분을 걱정하는 초선들의 마음을 '반란' '몇몇 소수의견'이라고 무시하고 있다"고 문 후보자의 청문회 이전 사퇴를 촉구했다.

실제로 이들이 공론화한 '문창극 사퇴' 목소리가 여당 내에서 확산될 경우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하더라도 인사청문회 이후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치는 과정에서 여당 내 이탈표가 발생해 후보자가 낙마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이 비대위원장은 "강행이 아니다. 저는 강요했거나 심지어 설득도 하지 않았다"면서도 "절제된 처신, 절제된 말씀이 집권여당으로서 입장이 아닐까 말씀 드린다. 저희는 정당이라는 하나의 결사체에 몸담고 있다"고 맞받아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초선의원들 다수는 공식적으로 문 후보자의 거취 문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청문회까지 가서 해명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익명을 보장한 답변에서는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고 밝히고 있다.

'문창극 사퇴' 여론↑

결국 당 안팎의 심상찮은 기류에 청문회까지 가서 문 후보자의 해명을 지켜보자는 입장이 강했던 '친박 맏형' 서청원 의원도 입장을 바꿨다.

서 의원은 지난 17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회 청문회법상 후보자 청문절차를 거친 뒤 국민이, 그리고 의회에서 판단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최근 문 후보자 지명 이후에 언행을 하나하나 보고 국민의 여론을 많이 경청해본 결과 지금은 문 후보자 스스로 언행에 대한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심각한 자기 성찰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사실상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김무성 의원과 함께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로 꼽히고 있는 서 의원이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 '문창극 사퇴' 의견이 71%에 이를 정도로 국민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과 7·14전당대회 등을 고려해 '박근혜 키즈'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와 관련해 여권 관계자는 "초선의원들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주요 사안에 당론과 배치되는 목소리를 냄으로써 자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정략적 의도도 들어있을 것"이라며 "이들의 행보가 당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부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당 안팎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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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