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 청문회' 살생부 리스트

"먼지털기 검증…최소한 3명 발목 잡는다"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집중됐던 야권의 인사검증 칼끝이 다른 2기 내각 후보자들에게로 이동하고 있다. 여권 내에서도 사퇴론이 불거진 문 후보자의 낙마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그간 '문창극 우산' 아래서 보호받고 있던 다른 부적격 후보자에게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야권의 살생부에 이름을 올린 또 다른 후보자는 누가 있을까.

"문창극 사태로 묻혀 있지만 다른 부적격 후보자도 많다."

친일·반민족적 식민사관 논란 등으로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문창극 총리 불가론'이 불거지던 시기 기자와 만난 야권 핵심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다른 2기 내각 후보자들도 '문창극 우산'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을 뿐 치명적 흠결을 가진 부적격자가 한둘이 아니다"라며 "문 후보자는 청문회가 열리더라도 국회 인준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문창극 사태'로 가려졌던 다른 부적격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라고 말했다. 문 후보자의 낙마를 자신하는 한편,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다른 2기 내각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예고한 것이다.

적임자 안 보이는
2기 내각 후보자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대통령의 2기 내각 및 3기 청와대 비서진 인사를 '총체적 인사참사'로 규정하며 '문창극 우산'에 가려졌던 다른 2기 내각 후보자들에 대한 파상공세를 시작했다. 새정치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박영선 원내대표, 대변인단 등이 연일 2기 내각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들을 언급하며 사과 및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야권은 내정된 모든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렵고, '발목잡기'라는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어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 후보자를 선별해 집중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낙마 타깃'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야권이 문 후보자 다음 타깃으로 설정한 후보자는 누구일까. 1순위로는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거론되고 있다. 안철수 대표는 지난 1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도 문제지만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는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며 "북풍사건, 트럭으로 재벌에게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던 '차떼기 사건' 등 온갖 정치공작의 추문에 연루된 이 후보자의 국정원장 지명이 국정원의 정상화나 적폐 해소를 위한 대통령의 답인가"라고 반문했다.

'문창극 우산' 아래 부적격자 타깃
이병기·김명수·정종섭 후보자 정조준

안 대표는 다음날 의총에서도 "온갖 정치공작에 연루되고 도덕적 결함이 있는 분이 (국정원의) 수장이 될 수 없다"며 "예전에 천막당사를 세운 박 대통령 결단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후보자는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의 정치특보로 있으며 이른바 '차떼기' 자금 배달책 역할을 맡았다. 이와 관련해 당시 불법대선자금 5억원을 전달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약식 기소돼 벌금 1000만원을 선고 받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앞서 1997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2차장(해외담당)으로 재직할 때에는 해외동포에게 돈을 주고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대선후보가 북한으로부터 공작금을 수령했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열게 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야권은 전임 국정원장인 원세훈·남재준 전 원장이 각각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연루돼 물러난 상황에서 정치공작 전문가 '이병기 국정원장 카드'는 다시 한 번 정권을 위한 국정원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한정애 대변인은 지난 19일 국회 브리핑에서 "댓글 국정원, 증거 조작하는 국정원을 개혁하라는 국민의 추상 같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치공작 전문가 이병기를 데려와 오히려 차떼기 국정원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며 "이 분은 북풍사건, 차떼기 사건, 의원매수 등 온갖 정치공작 추문에 연루되며 공직자로 있으면서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는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도 "이 후보자는 정치공작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 그가 국정원장이 된다면 국정원은 공작전문기관으로 변질되고 정치개입을 밥 먹듯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정원장 후보자
정치공작 전문가?

이 후보자와 함께 야권이 낙마를 벼르고 있는 2기 내각 후보자는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다. 이미 김 후보자는 제자논문 가로채기가 확인된 것만 8편, 이 중 3편은 연구비까지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논문 4편은 본인이 단독 저술한 것처럼 온전히 자신의 연구실적으로 반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국민이 이미 거부한 친일독재미화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고, 역사교과서를 국정체제로 전환하고자 주장하는 등 시대착오적 이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앞서의 야권 핵심관계자는 "연구자로서의 성실성, 교육자로서의 품위, 공직자로서의 자격 등이 전혀 부합하지 않는 김 후보자는 자라나는 학생들과 미래 연구자들을 위해서라도 도저히 교육 수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박근혜정부가 관행과 적폐를 척결하겠다고 나섰는데, 관행이라며 어설픈 변명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는 김 후보자는 깊이 사죄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역시 야권이 낙마를 벼르고 있는 인물이다. 정 후보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제주4·3항쟁을 공산주의자의 무장봉기로 규정한 데다, '역사교과서 이념 논쟁'을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이 주도하는 뉴라이트 성향의 학술단체 한국현대사학회의 이사를 맡고 있다는 점 등이 표적이 되고 있다.

2기 내각도 참사 "원점서 재검토해야"
역풍 피해 낙마 타깃 설정 '선택과 집중'

또 헌법학의 권위자로 주요 일간지에 정 후보자가 쓴 칼럼도 보수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국민통합에 어울리지 않는 인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10년 4월 정 후보자가 <한국일보>에 실은 '4·19에 돌아보는 이승만'이라는 칼럼에서 그는 독재, 부정선거 등으로 하야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한편,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낡은 사회주의적 가치관에 입각한 좌파수구주의의 정부로 시대착오적 이념타령으로 나라를 망쳤다"고 혹평했다.

이에 대해 제주 4·3도민연대는 "안행부는 4·3특별법 시행과 매년 4월3일 거행되는 국가추념일의 주관부처이고, 안행부는 4·3중앙위원회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주무부서"라며 "문창극씨에 이어 안행부 장관으로 정종섭씨 같은 4·3왜곡인사가 지명된 황당한 사태에 경악하고 이를 원천적으로 반대한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밖에도 그는 김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논문 표절, 논문 중복 게재 의혹과 함께 대기업 사외이사로 있으며 수천만원을 받는 대가로 '기업 측 거수기' 역할만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처럼 야권이 국무총리 외 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쏟기 시작하며 10여명의 공직 후보자 청문회를 동시다발적으로 열어 집중 검증을 피하겠다는 청와대의 의도는 무위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논문표절 교육·안행
장관 후보자 정조준


이에 대해 야권의 한 인사는 "문창극 후보뿐만 아니라 이번 개각 전체가 참사"라며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이번 개각을 통해 적폐 청산을 외치는 정부가 도덕과 상식이 국민보다 한참 밑에 있는 사람들만 이렇게 모아 왔는지, 아연실색할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들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경우 국가개조는커녕 국가개악이 될 것이다. 총리만이 문제가 아니라 2기 내각 모두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거진 '김기춘 책임론'

박근혜정부의 잇단 인사 실패와 관련해 '김기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청와대에서 인사검증을 책임지는 인사위원장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는 기정사실화하고, 다른 부적격 2기 내각 후보자들에게 눈길을 돌리는 한편, 이러한 사퇴를 야기한 원인으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목하고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새정치연합 원혜영 의원은 "국민들은 도대체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이란 게 있기는 한 건지 의아해하고 있다"며 "누적된 인사실패, 불통인사의 중심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같은 당 김현 의원도 "대통령을 보좌하며 친일·극우 인사를 추천한 사람이 김기춘 실장"이라며 "이분이 개조 대상이라는 지적이 있다"고 꼬집었다.

앞서 김 실장은 세월호 참사와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검증 실패 이후 야당의 거센 경질 요구를 받았으나 박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론이 크게 악화된 데다 선거를 앞두고 여권에서도 김 실장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여권의 한 중진의원은 "굳이 김기춘 실장 사퇴론을 꺼내지 않아도 본인이 책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문창극 인사 문제로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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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