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 청문회' 살생부 리스트

"먼지털기 검증…최소한 3명 발목 잡는다"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집중됐던 야권의 인사검증 칼끝이 다른 2기 내각 후보자들에게로 이동하고 있다. 여권 내에서도 사퇴론이 불거진 문 후보자의 낙마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그간 '문창극 우산' 아래서 보호받고 있던 다른 부적격 후보자에게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야권의 살생부에 이름을 올린 또 다른 후보자는 누가 있을까.

"문창극 사태로 묻혀 있지만 다른 부적격 후보자도 많다."

친일·반민족적 식민사관 논란 등으로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문창극 총리 불가론'이 불거지던 시기 기자와 만난 야권 핵심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다른 2기 내각 후보자들도 '문창극 우산'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을 뿐 치명적 흠결을 가진 부적격자가 한둘이 아니다"라며 "문 후보자는 청문회가 열리더라도 국회 인준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문창극 사태'로 가려졌던 다른 부적격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라고 말했다. 문 후보자의 낙마를 자신하는 한편,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다른 2기 내각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예고한 것이다.

적임자 안 보이는
2기 내각 후보자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대통령의 2기 내각 및 3기 청와대 비서진 인사를 '총체적 인사참사'로 규정하며 '문창극 우산'에 가려졌던 다른 2기 내각 후보자들에 대한 파상공세를 시작했다. 새정치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박영선 원내대표, 대변인단 등이 연일 2기 내각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들을 언급하며 사과 및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야권은 내정된 모든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렵고, '발목잡기'라는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어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 후보자를 선별해 집중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낙마 타깃'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야권이 문 후보자 다음 타깃으로 설정한 후보자는 누구일까. 1순위로는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거론되고 있다. 안철수 대표는 지난 1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도 문제지만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는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며 "북풍사건, 트럭으로 재벌에게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던 '차떼기 사건' 등 온갖 정치공작의 추문에 연루된 이 후보자의 국정원장 지명이 국정원의 정상화나 적폐 해소를 위한 대통령의 답인가"라고 반문했다.

'문창극 우산' 아래 부적격자 타깃
이병기·김명수·정종섭 후보자 정조준

안 대표는 다음날 의총에서도 "온갖 정치공작에 연루되고 도덕적 결함이 있는 분이 (국정원의) 수장이 될 수 없다"며 "예전에 천막당사를 세운 박 대통령 결단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후보자는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의 정치특보로 있으며 이른바 '차떼기' 자금 배달책 역할을 맡았다. 이와 관련해 당시 불법대선자금 5억원을 전달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약식 기소돼 벌금 1000만원을 선고 받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앞서 1997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2차장(해외담당)으로 재직할 때에는 해외동포에게 돈을 주고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대선후보가 북한으로부터 공작금을 수령했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열게 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야권은 전임 국정원장인 원세훈·남재준 전 원장이 각각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연루돼 물러난 상황에서 정치공작 전문가 '이병기 국정원장 카드'는 다시 한 번 정권을 위한 국정원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한정애 대변인은 지난 19일 국회 브리핑에서 "댓글 국정원, 증거 조작하는 국정원을 개혁하라는 국민의 추상 같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치공작 전문가 이병기를 데려와 오히려 차떼기 국정원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며 "이 분은 북풍사건, 차떼기 사건, 의원매수 등 온갖 정치공작 추문에 연루되며 공직자로 있으면서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는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도 "이 후보자는 정치공작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 그가 국정원장이 된다면 국정원은 공작전문기관으로 변질되고 정치개입을 밥 먹듯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정원장 후보자
정치공작 전문가?

이 후보자와 함께 야권이 낙마를 벼르고 있는 2기 내각 후보자는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다. 이미 김 후보자는 제자논문 가로채기가 확인된 것만 8편, 이 중 3편은 연구비까지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논문 4편은 본인이 단독 저술한 것처럼 온전히 자신의 연구실적으로 반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국민이 이미 거부한 친일독재미화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고, 역사교과서를 국정체제로 전환하고자 주장하는 등 시대착오적 이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앞서의 야권 핵심관계자는 "연구자로서의 성실성, 교육자로서의 품위, 공직자로서의 자격 등이 전혀 부합하지 않는 김 후보자는 자라나는 학생들과 미래 연구자들을 위해서라도 도저히 교육 수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박근혜정부가 관행과 적폐를 척결하겠다고 나섰는데, 관행이라며 어설픈 변명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는 김 후보자는 깊이 사죄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역시 야권이 낙마를 벼르고 있는 인물이다. 정 후보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제주4·3항쟁을 공산주의자의 무장봉기로 규정한 데다, '역사교과서 이념 논쟁'을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이 주도하는 뉴라이트 성향의 학술단체 한국현대사학회의 이사를 맡고 있다는 점 등이 표적이 되고 있다.

2기 내각도 참사 "원점서 재검토해야"
역풍 피해 낙마 타깃 설정 '선택과 집중'

또 헌법학의 권위자로 주요 일간지에 정 후보자가 쓴 칼럼도 보수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국민통합에 어울리지 않는 인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10년 4월 정 후보자가 <한국일보>에 실은 '4·19에 돌아보는 이승만'이라는 칼럼에서 그는 독재, 부정선거 등으로 하야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한편,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낡은 사회주의적 가치관에 입각한 좌파수구주의의 정부로 시대착오적 이념타령으로 나라를 망쳤다"고 혹평했다.

이에 대해 제주 4·3도민연대는 "안행부는 4·3특별법 시행과 매년 4월3일 거행되는 국가추념일의 주관부처이고, 안행부는 4·3중앙위원회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주무부서"라며 "문창극씨에 이어 안행부 장관으로 정종섭씨 같은 4·3왜곡인사가 지명된 황당한 사태에 경악하고 이를 원천적으로 반대한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밖에도 그는 김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논문 표절, 논문 중복 게재 의혹과 함께 대기업 사외이사로 있으며 수천만원을 받는 대가로 '기업 측 거수기' 역할만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처럼 야권이 국무총리 외 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쏟기 시작하며 10여명의 공직 후보자 청문회를 동시다발적으로 열어 집중 검증을 피하겠다는 청와대의 의도는 무위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논문표절 교육·안행
장관 후보자 정조준

이에 대해 야권의 한 인사는 "문창극 후보뿐만 아니라 이번 개각 전체가 참사"라며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이번 개각을 통해 적폐 청산을 외치는 정부가 도덕과 상식이 국민보다 한참 밑에 있는 사람들만 이렇게 모아 왔는지, 아연실색할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들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경우 국가개조는커녕 국가개악이 될 것이다. 총리만이 문제가 아니라 2기 내각 모두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거진 '김기춘 책임론'

박근혜정부의 잇단 인사 실패와 관련해 '김기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청와대에서 인사검증을 책임지는 인사위원장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는 기정사실화하고, 다른 부적격 2기 내각 후보자들에게 눈길을 돌리는 한편, 이러한 사퇴를 야기한 원인으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목하고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새정치연합 원혜영 의원은 "국민들은 도대체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이란 게 있기는 한 건지 의아해하고 있다"며 "누적된 인사실패, 불통인사의 중심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같은 당 김현 의원도 "대통령을 보좌하며 친일·극우 인사를 추천한 사람이 김기춘 실장"이라며 "이분이 개조 대상이라는 지적이 있다"고 꼬집었다.

앞서 김 실장은 세월호 참사와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검증 실패 이후 야당의 거센 경질 요구를 받았으나 박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론이 크게 악화된 데다 선거를 앞두고 여권에서도 김 실장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여권의 한 중진의원은 "굳이 김기춘 실장 사퇴론을 꺼내지 않아도 본인이 책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문창극 인사 문제로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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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