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빅매치' 판 커진 7·30재보선 막전막후

대권 노리는 '올드보이의 귀환'…국민들은 과연 반길까?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정치권의 관심이 7·30재·보궐선거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6·4지방선거가 사실상 여야 무승부로 끝난 데다, 최소 14곳 이상의 '미니총선급' 규모 재보선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각 선거구에는 예비후보 등록이 이어지며 벌써부터 재보선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게다가 여야 거물급 인사들의 총출동 가능성이 점쳐지며 재보선이 정치권의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6·4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7·30재보선을 향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지방선거가 사실상 여야 무승부로 마무리되며 재보선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여야의 2라운드 '격돌의 장'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소 14곳에서 최대 16곳에 이를 정도로 재보선의 규모가 커지며 '미니총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적 의미도 커져 여야는 사활을 걸고 다시 한 번 제대로 맞붙을 태세다.

지방선거 무승부
재보선서 연장전

우선 재보선이 치러지는 지역부터 살펴보면 현역의원들의 지방선거 출마로 무려 10곳에서 공백이 생겼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지방선거 출마로 공석이 된 지역은 서울 동작을(정몽준), 부산 해운대·기장갑(서병수), 경기 김포(유정복), 대전 대덕구(박성효), 울산 남구을(김기현), 경기 수원병(남경필), 충북 충주(윤진식) 등 7곳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출마한 경기 수원정(김진표),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이낙연)과 새정치연합에서 탈당해 무소속으로 광주시장 후보에 나섰던 이용섭 전 의원의 지역구 광주 광산구을 등 3곳도 재보선 지역이다.

여기에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이 확정된 곳도 경기 평택을(새누리, 이재영), 경기 수원을(새정치연합, 신장용), 전남 나주(새정치연합, 배기운), 전남 순천·곡성(통합진보당, 김선동) 등 4곳에 이르러 최소 14곳에서 재보선이 열릴 예정이다.

게다가 서울 서대문을(새누리, 정두언), 충남 서산·태안(새누리, 성완종)도 해당 의원들이 불법정치자금 수수 및 불법기부행위 등으로 오는 26일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어 재보선 지역은 2곳이 더 추가될 여지가 있다.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는 해당 의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확정 받거나, 회계책임자가 벌금 300만원 이상의 형을 확정 받으면 해당 의원은 그 즉시 의원직을 잃게 된다. 

이처럼 재보선 규모가 14~16곳에 이를 정도로 큰 데다, 수도권에서만 6~7곳에서 재보선이 치러져 사실상 무승부로 끝난 지방선거의 연장전 성격을 띤 치열한 재보선이 펼쳐질 전망이다. 이미 각 지역에서는 예비후보 등록이 줄을 이으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고, 조만간 거물급 인사들도 대거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 동작을
대선 전초전?

정몽준 전 의원이 새누리당 서울시장후보로 나서며 재보선이 열리게 된 서울 동작을의 경우에는 이미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후보들 면면이 '미니대선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까지 나온 재보선 지역 중 서울은 동작을 한 곳뿐인 상황에서 수도 서울의 국회의원이라는 정치적 중요성을 감안해 원외에서 기회를 엿보던 거물급 인사들이 출마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당장 새누리당에서는 김문수 경기지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이혜훈 최고위원, 나경원 전 의원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이름도 거론된다. 이 전 수석이 나설 경우 '정권 심판론'이 다시 한 번 재현되며 야권에서도 거물급 인사를 출격시켜 맞설 것으로 보인다.

미니총선급 규모…여야 거물급 인사 출마설
여야, 지방선거에서 못낸 승부 재보선서 결판?

당장 새정치연합에서는 김두관·손학규·정동영 상임고문 등 대권잠룡들과 함께 천정배 전 법무장관, 이계안 최고위원, 금태섭 대변인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정의당에서도 당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노회찬 전 대표와 천호선 현 대표 등 만만찮은 인사들이 동작을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외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고려대 특임교수도 아직 입당을 하지는 않았지만, 새정치연합 후보로 동작을에 나서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6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번 7·30재보선에 새정치연합 동작을 후보로 출마하고자 한다"며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 중 새누리당에서는 김문수 경기지사의 동작을 출마가 유력한 상황이다. 김 지사의 한 측근인사는 "차기 대권을 노리는 김 지사는 6월말 도백 임기가 끝나면 재보선을 통해 원내에 진입을 하거나 7·14전당대회를 통해 여의도 정치권에 진입해야만 한다"며 "기회가 된다면 동작을 출마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장후보 경선에 나섰던 김황식 전 총리와 이혜훈 최고위원, 그리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나경원 전 의원의 경우에는 본인들이 출마를 강하게 부인하거나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정현 전 수석은 공개적으로 출마를 언급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 전 수석 주변을 통해 "재보선 출마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이 전 수석의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생각을 가장 잘 읽는 이 전 수석이 당·정·청 연결고리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고, 다른 쪽에서는 "이 전 수석이 나설 경우 야권이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며 판을 키울 여지가 농후해 나서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이 전 수석이 지금 주변 사람들 반응과 언론 등을 통해 분위기를 보는 것 같다"며 "본인은 출마 의지가 있는 것으로 알지만, 정권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될 경우 방향을 틀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소극적인 여권
적극적인 야권

이처럼 거론되는 여권 인사들이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반면, 야권 인사들은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동영 고문은 동작을 출마설에 대해 "저는 당선 확정이나 다름없는 전주 지역구를 스스로 떠나 강남에도 출마했던 사람이다. 지역은 중요치 않다"며 "당과 나라를 위해 (재보선 출마가) 꼭 필요한 것인지 숙고 중"이라고 가능성을 열어 놨다.

지난 18대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며 경남지사 직을 던졌던 김두관 전 지사는 더욱 적극적이다. 김 전 지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동작을 출마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며 "중량감 있는 여권 인사와 빅매치를 해보고 싶다. 이번 재보선에서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수도권에 입성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손학규 고문의 경우에는 동작을과 함께 남경필 경기지사 당선인의 지역구인 수원병 출마설이 동시에 거론되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만약 김문수 지사가 동작을 출마로 가닥을 잡는다면 지도부 결단으로 손 고문에게 동작을 출마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손 고문도 거절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수원병이 남 당선인이 작고한 부친 남평우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15대 국회 재보선 때부터 내리 5선을 달성했을 정도로 여권 성향이 강한 곳이라는 점을 이유로 손 고문이 나서 주기를 바라는 기류도 있다.

박지원 의원은 지난 10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특정인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번 재보선은 경기도가 5석이 포함돼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중진이 필요하다"고 우회적으로 손 고문의 출마를 요구했다.

승부 향방
오리무중


승부의 향방은 재보선까지 아직 기간이 40여일 남은 데다 세월호 국정조사, 박근혜정부 인적 쇄신 및 내각 후보자 인사청문회, 각 정당의 공천 등 선거판을 뒤흔들 변수가 많아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변수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우선 세월호 국정조사가 재보선 기간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박근혜 지키기 vs 세월호 심판론' 구도의 선거가 치러질지 주목된다. 이를 경계하는 여권에서는 당장 브라질 월드컵이 열리는 6월 중 기관보고 등을 마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자칫 세월호 국조가 묻힐 수도 있는 월드컵 기간을 피해 재보선 기간인 7월 중 기관보고를 요구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또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여야가 '경고'와 '기회'를 동시에 받은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인적 쇄신 작업, 국가 개조 작업 등이 기대 이하에 그칠 경우에는 여권에게 불리한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국민의 쇄신 요구에 맞는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 개편을 이룬다면 야권이 내세울 것으로 보이는 '세월호 심판 동력'은 상실되고 여권에 유리한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김문수·나경원·오세훈·이혜훈·이정현 거론
야-김두관·손학규·정동영·천정배·김현철 채비

야권의 경우에는 공천이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지방선거에서 당 지도부의 광주·안산 전략공천이 거센 역풍을 야기했고, 아직까지도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선거에서 전면에 내세웠지만 지키지 못했던 ‘개혁 공천’을 이번에는 지키면서 당력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선전이 예상되지만, 또 다시 공천 갈등에 휩싸인다면 승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야권에서 벌써부터 공천 관련 잡음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당내 486계 등 신진세력들은 '거물급 귀환'을 '올드보이 귀환'으로 규정하고, 새정치와 세대교체를 위해 이들의 귀환에 반대하고 있다. 486계의 대표주자인 우상호 의원은 지난 11일 초재선 모임 '더 좋은 미래' 토론회에서 "재보선 공천에서는 혁신적인 세대교체형 후보들이 돼야 당이 변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며 "올드보이로 찍힌 분들은 나오려고 하면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도 "당의 미래를 위해 재보선이 '중진 부활의 장'이 아닌 '신진 등용의 장'이 돼야 한다"며 "그것이 진정한 새정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보선에서 여야 간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선거 승리도 중요하기 때문에 일부 거물급 차출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당 핵심관계자는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며 "중진과 신인 간의 조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물급 생환 여부
대권·의석수 영향

한편, 당내 거물급 인사들의 출마가 현실화될 경우 이들의 '생환' 여부에 따라 지방선거 과정에서 한 차례 재편된 잠룡 간 차기 경쟁 구도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재선에 성공하며 약진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외에도 추가로 부상하는 잠룡들이 생겨나며 잠룡 간 경쟁구도가 '군웅할거' 양상을 띠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현재 국회의석수 분포가 새누리당 149석, 새정치연합 127석, 통합진보당 5석, 정의당 5석인 상황에서 재보선 결과에 따라 현재의 여대야소 구도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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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