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정심정행 정치인' 정갑윤 신임 국회부의장

"정치는 천천히 가더라도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어"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세월호 참사로 엄중한 시기, 19대 국회 후반기를 이끌어갈 국회의장단이 새롭게 선출됐다. 새누리당 출신의 정의화 국회의장과 정갑윤 부의장,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석현 부의장이 그 주인공이다. 국회가 본연의 역할인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요즈음, 이들은 후반기 국회를 이끌어갈 책임자로서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는 새롭게 취임한 후반기 국회의장단을 차례로 만나 향후 국회운영에 대한 구상을 직접 들어볼 예정이다. 지난호(961호)에 정의화 의장을 만난 데 이어 이번호에는 정갑윤 신임 부의장을 만나봤다.

정갑윤 신임 국회부의장은 1991년 경남도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2002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울산 중구에서 내리 4선 의원을 지내며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한 의정활동을 펼쳐왔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설 것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그는 세월호 참사로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경쟁자 간 잡음이 날 것을 우려해 원내대표를 포기했다고 한다. 대신 국회부의장으로 방향을 틀어 지난달 30일 당당히 여당 몫 국회부의장에 선출됐다.

정치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비리에 연루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사회적·도덕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는 '깨끗한 정치인'의 표본인 정 부의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소통과 친밀감'의 정치력을 최대한 발휘해 모범적 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또 "비리와 실망으로 얼룩진 요즘 사회에 필요한 '정심정행(正心正行)'을 국회 내에서 자리 잡게 해 모든 국회의원들이 바른 마음과 행동으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부의장과의 일문일답.


-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역대 국회부의장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감사합니다. 저는 정치에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소통의 정치'를 해왔습니다. 여당 부의장은 국회의장의 당적보유가 금지된 상황에서 야당과의 소통과 중재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2011년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던 시절, 결산안은 정기국회 전 결산심사를 완료해야 한다는 국회법이 2003년 개정된 이후 9년 만에 법정기한을 지켰습니다.

특히 예산안은 당시 '박근혜표 민생예산'을 대폭 증액시켜,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면서도 2007년 이후 5년 만에 여야 합의에 의한 예산안 처리를 이끌어 냈습니다. 여야를 아우르는 '소통과 친밀감'의 정치력을 발휘해 모범적 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앞으로 2년 간 국회부의장으로 함께 활동할 야당 몫 이석현 부의장에 대한 평가와 함께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신다면?
▲ 이석현 부의장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매우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치를 해온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오랜 의정활동에서 여야를 넘나드는 소통과 화합을 보여주며 대립과 갈등을 조정해 발전적 결과를 이끌어 오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국회에 바라는 것은 '국민을 우선하고 섬기는 성숙한 국회'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야 간 소통과 중재자 역할을 함께 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 후반기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들로 어떤 것들을 꼽고 계시는지요?
▲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도 선언했듯이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개조를 이룩하기 위해 국회에서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자행되어 온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를 뿌리 뽑고 이른바 '김영란법'과 '유병언법' 등 후속적인 조치를 빠른 시일 내에 논의해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국회차원의 논의와 처리가 시급한 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하는 국회, 열린 국회를 위해 상시국회로 가는 초석을 다져야 할 것이며 여야 간 소통과 타협을 위해 상시협의체를 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여당 부의장 역할은 야당과의 소통과 중재"
"'소통과 친밀감'으로 모범적 국회 만들 것"

-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 국민들은 '제발 싸우지 말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요구로 우리는 지난 18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국회를 쇄신하고자 노력하기도 했지요. 그 결과 국회에서 거친 몸싸움은 사라졌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아직 성에 차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회가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당리당략에 매몰된 '불통의 정치'를 이어간 것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 이유라 생각합니다.


- 국회가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 국회가 좀 더 성숙한 정치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여야 간 소통과 타협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이 참여하는 '상임위갈등조정회'를 정례화해 서로 간의 이해의 폭을 줄여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 현재 국회의 가장 큰 이슈는 세월호 국정조사입니다. 하지만 기관보고 시기, 자료제출 범위 등을 놓고 여야가 충돌을 거듭하며 국정조사가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 여야는 세월호 국정조사의 기관보고 시기를 두고 '월드컵은 피해야 한다' '보궐선거와 겹쳐서는 안 된다' 등의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월호 국정조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두어야 할 부분은 유가족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유가족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번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고 관련자들이 마땅한 책임을 질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월드컵 이후에 기관보고를 시작하는 것은 보궐선거도 있겠지만, 월드컵 기간인 1개월 동안 국회가 일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습니다. 세월호 국정조사를 하루라도 빨리 실시해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고, 시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으신지요?
▲ 저 역시 어떠한 방법이든지 국회선진화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폭력국회'의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마련된 '국회선진화법'이 오히려 '공전국회' '식물국회'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법안의 처리에 있어 국민이 우선되지 않고 당리당략이 우선되었으며, 정당 간의 대화와 소통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 이전보다 더 많은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하지만, 여야가 의견을 대립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반대로 통과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의결 과정에서 일방적이거나 폭력적인 부분을 개선하고 충분한 소통과 타협을 통해 의결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국회선진화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정 의장께선 '상시 국회'를 열겠다고 하셨습니다.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 시대가 변화하고, 사회가 발전하며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매년 수천 개의 법안이 발의되고, 엄청난 액수의 예산이 집행되며, 거의 매일 새로운 현안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회성 국정감사와 예·결산으로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사회 현안에 적절히 대응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상시국회를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잘못을 시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만, 매번 장관을 부르거나 증인을 세우는 등 비효율적인 지금의 방식과 룰은 지양하고 대화와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당리당략에 매몰된 '불통정치'가 국회불신 원인"
"성숙한 정치 위해 끊임없는 여야 소통·타협 필요"

- 세월호 참사 정국 속에서 열린 6·4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국민들의 현명함에 매우 놀랐으며,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전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쳐, 여당의 선거 참패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안배를 통한 현명한 선택과 결과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집권여당에게는 정국현안을 이끌고 갈 추진력을 남겨주면서 반성과 쇄신을 명령했고, 야당에게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힘을 주면서도 내부 개혁을 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 부의장님의 지역구가 있는 울산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이 시장과 구·군 단체장을 싹쓸이 했습니다. 앞서 19대 총선에서도 울산의 6개 지역구를 새누리당이 싹쓸이 한 바 있어 울산의 보수진영 강세가 날로 강화되는 모양새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울산의 경우 새누리당을 대신할 뚜렷한 대안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그동안 국민들은 진보정당에 대해 많은 기대와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특히, 울산시민들은 진보정당을 울산 제1야당으로 키워주시는 등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통합진보당 폭력사태와 분열, 2013년 이석기 국가 내란음모사건, 정당해산심판청구 등으로 진보정당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진보정당들은 시대와 사회 흐름에 맞는 가치를 제시하고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고자 노력했어야 하는데,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6·4교육감선거가 진보의 압승(13곳 당선)으로 끝난 가운데 여권에서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 이번 교육감선거를 통해 교육감 직선제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진보니 보수니 하며 교육을 정치화시키고 당선에 매몰되어 포퓰리즘이 넘쳐났습니다. 이로 인해 학부모와 아이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선택을 위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개(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수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고 선거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포퓰리즘으로 학부모와 아이들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교육은 선거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와 노력으로 완성되는 만큼 교육감 직선제는 폐지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봅니다.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으시다면. 
▲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소통하며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멀리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도 천천히 가더라도 함께 가야 실수 없이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여야 간의 소통과 중재역할을 충실히 해 국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국회를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비리와 실망으로 얼룩진 요즘 사회에 필요한 '정심정행(正心正行)'을 국회 내에서 자리 잡아 모든 국회의원들이 바른 마음과 행동으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국회부의장으로서 국회를 국민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참된 국회' '민주주의 가치가 존중되는 국회'가 되도록 제 모든 힘을 쏟겠습니다.

 

<carpediem@ilyosisa.co.kr>

 

<정갑윤 국회부의장 프로필>

▲ 경상남도의회 의원
▲ 한국청년회의소 중앙부회장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 4선 의원(16·17·18·19대)
▲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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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