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고장 난' 인사시스템으로 또 한 번 궁지에 몰렸다. 중도 사퇴한 안대희 국무총리 지명자에 이어 새로 지명한 문창극 총리후보자마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문 후보자를 낙마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 하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격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박근혜정부의 고장 난 인사시스템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 가장 큰 원인은 잇따른 인사실패다. 세월호 참사로 이반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2기 내각은 시작부터 파열음을 내고 있다. 우선 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지명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신중에 신중
장고 끝 악수
사실 이번 총리 지명은 매우 중요했다. 안대희 전 총리후보자가 전관예우 문제로 낙마한 후 이어진 인사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인사에서도 악재가 터진다면 이는 곧바로 박 대통령의 레임덕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오는 7월30일로 예정된 재보선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미니총선급' 규모로 판이 커진 7ㆍ30재보선 결과에 따라 국정운영의 판도는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총리 지명을 앞두고 신중에 신중을 기한 이유이다.
상당수의 총리후보자들은 청문회 통과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해 탈락했다. 게다가 관료 출신은 세월호 사고로 인해 '관피아'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여론의 지지를 얻기 힘들었고, 법조계 출신은 박근혜정부 들어 과도한 법조인 기용으로 이미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학계 역시 과감한 개혁 추진에 미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와중에 'PK독식'이란 비판을 의식해 지역안배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때문에 이번 총리 지명을 앞두고는 이례적으로 김문수 경기지사,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김영란 전 대법관,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 등 수많은 후보군들이 거명됐다.
물 건너간 책임총리, 민심수습 포기?
조기 레임덕 코앞까지…이러다 탄핵?
총리 지명이 늦어질수록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도 점점 더 늘어났다. 박 대통령이 인재풀을 풀가동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돌고 돌아 지명된 인사가 문창극 후보자였다. 당장 야권에선 문 후보자의 총리 지명 소식이 전해지자 장탄식이 흘러 나왔다. '장고 끝에 악수를 뒀다'는 악평이었다.
문 후보자는 그동안 총리 하마평에 한 번도 오르지 않은 '깜짝 발탁'이었다. 문 후보자는 언론인 출신으로 <중앙일보> 주필을 지냈다. 정통 언론인 출신을 총리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역대 정부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문 후보자가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충청지역 광역단체장 네 곳에서 모두 참패한 것과 관련해 충청민심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 후보가 정식 임명되면 충북(청주) 출신 첫 총리가 된다.
하지만 문 후보자는 국정경험이 전무한 데다 인지도가 제로에 가깝다는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세월호 사태 이후 박 대통령이 약속한 '책임총리' 자리를 맡기기엔 너무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심지어 문 후보자는 스스로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책임총리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대희 전 총리후보자가 책임총리에 대해 강한 의지를 피력했던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떠나는 충청민심
기름 부은 청와대
야권의 한 관계자는 "기껏해야 청와대 대변인 깜밖에 안 되는 인물에게 총리를 맡겼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문 후보자가 과거에 쓴 극우성향의 칼럼과 발언들도 현재 심각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문 후보자는 자신이 다니던 한 교회 강연에서 "일제 식민지배와 민족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고,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면서는 "일본으로부터 위안부문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야권에선 "박 대통령이 일본 총리를 뽑은 것이냐"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문 후보자에 대해 '건국 이래 최대 인사 참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문 후보자의 과거 발언에 대해서는 여권 내에서도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문 후보자가) 대한민국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라며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이러한 역사인식으로 국정운영을 할 텐데 앞날이 걱정된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새누리당 초선의원 6명은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여론도 크게 들끓고 있다. 야당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과 천주교인들도 문 후보자가 하나님을 욕되게 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위안부 할머니들도 문 후보자의 중도사퇴론에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문 후보자가 지난 2011년 '박근혜 현상'이라는 칼럼에서 "행정수도를 고수한 것이나 영남 국제공항을 고집한 것은 나라 전체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지역이기주의를 고려한 것으로 보여질 뿐"이라고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권 내에서는 문창극 카드가 충청권 민심을 다잡는 데 오히려 역효과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 후보자와 같은 날 지명된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를 보는 정치권의 시선도 곱지는 않다. 이 후보자는 지난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이인제 의원 측에 5억원을 직접 전달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 후보자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정치특보였다.
당시 재판기록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한나라당에 유리한 역할을 해 달라"며 이인제 의원 측 인사에게 2억5000만원이 든 상자 2개를 건넸다. 재판과정에서 이 후보자는 단순 전달자로 파악돼 사법처리는 면했지만, 이후 '차떼기 전달책'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에서 탈락한 바 있다. 아무리 봐도 간첩조작사건 등으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국정원의 개혁을 맡기기엔 부적절한 인사라는 지적이다.
지난 12일과 13일 잇달아 발표된 청와대 개각과 7개 부처 장관 교체 역시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특히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을 정무수석으로 내정한 것과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을 경제부총리로 임명한 것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돌려막기식 '회전문 인사'라며 비판하고 있다.
새로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된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의 경우는 청와대 대변인과 한국인터넷진흥원 초대 원장,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의 여당간사 등을 지낸 인물로 사실상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여성계와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본회의 도중 '취업 청탁' 문자를 받은 의혹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인물이다.
박 대통령이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후임으로 임명한 윤두현 YTN플러스 사장도 MB정부 당시 정부 편향 보도로 논란을 빚었던 인물이라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세월호 참사로 이반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개각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라는 지적이다.
총체적 난국
수구 꼴통?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여권 내에서도 이번 인사를 바라보며 '답답하다' '이해가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이유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특히 문 후보자와 관련해 "인사 검증시스템에 구멍이 난 것인지, 보고가 누락된 것인지, 아니면 이와 같은 사실이 충분히 보고가 됐음에도 대통령이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어느 쪽이든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미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극우 언론인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충분히 느꼈을 텐데 박 대통령이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했다"며 "문 후보자가 능력이 무척 뛰어난 인사라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겠지만 국정운영 경험이 전무하고 본인 스스로 '책임총리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고 이야기 할 만큼 국정개혁에 대한 의지도 없는 인물이다.
어차피 대독총리를 임명한 것이라면 이미지라도 좋은 사람을 고르면 될 텐데 왜 굳이 야권의 반발을 살 인물을 지명한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일본 총리 뽑았나?" 야권 총공세
커지는 '김기춘 책임론' 옷 벗을까?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인사시스템은 왜 고장 나 버린 것일까? 정치권에선 문 후보자의 사례를 예로 들어 박 대통령이 너무 깜짝 발탁에만 집착하다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총리 지명절차가 길어지면서 언론에서 각종 하마평이 나왔고, 이미 하마평이 나온 인사들을 제외하다보니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란 분석이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우선 청문회를 통과하기 위해 후보자들을 평가하면서 병역, 재산 등과 같은 꼭 피해야 할 것들을 피하다 보니 정작 업무능력과 같은 꼭 챙겨야 할 것들을 놓친 인사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찌됐든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인사가 만사
만사 놓친 대통령
때문에 정치권에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여권 내에서도 문 후보자의 발언이 국민적 상식에 반하는 발언이라는 시각이 많다.
교회나 강의 도중 한 발언 같은 경우에는 검증팀이 놓친 것도 이해는 하지만 문 후보자가 쓴 칼럼들도 분명 문제가 있었는데 어떻게 검증을 통과한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한편 야권에서는 김 실장과 문 후보자가 지난해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발기인 총회에서 각각 초대이사장과 초대이사를 맡았던 것을 근거로 문 후보자의 발탁 배경에 김 실장의 영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의 경우도 지난 2002년 대선에서 김 실장이 이회창 후보의 특보단장으로 임명됐을 당시 이 후보자가 정치특보로 발탁된 점을 들어 야권은 김 실장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개각은 세월호 참사를 수습할 최후의 카드였다. 그런데 잘못된 검증으로 오히려 역효과만 내고 있다"며 "취임 후 인사 문제로 번번이 발목이 잡혀온 박 대통령이 고장 난 인사시스템을 빨리 손보지 않으면 조기 레임덕에 시달릴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