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유족 두 번 울리는 '세월호 국조특위' 막후

바다 밑에 세월호 두고 탁상 앞에서 허송세월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300여명의 생명이 어이없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국정조사가 지난 2일 90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국정조사계획서 채택 단계에서부터 여야 간 갈등을 빚었던 국조특위가 첫 일정부터 파행 운영되는 등 향후에도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조의 대미를 장식할 청문회 증인, 참고인 채택을 놓고도 여야 간 이견이 커 향후 국조특위 활동이 순조롭게 이뤄질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의 세월호국정조사는 세월호 참사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방 방지책 마련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여야가 지난달 29일 극적으로 국정조사계획서 채택에 합의하며 국조특위가 90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하지만 특위는 시작과 동시에 잇달아 불협화음을 내며 순탄치 않은 국조를 예고하고 있다.

국조 시작부터
여야 불협화음

지난달 29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국조계획서가 재석의원 226명 가운데 찬성 224명, 기권 2명의 압도적 찬성률로 통과됐다. 기권한 2명은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으로, 유 의원의 경우에는 기기 오작동으로 찬성표가 잘못 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조특위 위원장은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맡게 됐으며 여야 간사에는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김현미 의원이 각각 선임됐다. 특위위원 구성은 새누리당 9명(심재철·조원진·권성동·경대수·김명연·윤재옥·이완영·신의진·이재영 의원), 새정치연합 8명(김현미·우원식·민홍철·박민수·부좌현·김광진·김현·최민희 의원), 정의당 1명(정진후 의원) 등 총 18명으로 구성됐다.

국조기간은 총 90일이며 대미를 장식할 청문회는 8월4~8일 닷새간 실시하기로 했다. 다만 여야가 합의한 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에는 기간 연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조계획서에 증인 채택, 청와대 기관보고 공개 여부 등에 대한 여야의 갈등 소지를 남겨 놓아 자칫 정쟁만 벌이다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특히 국조계획서 채택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증인 포함 문제와 관련해서는 조사대상기관에 '청와대 비서실'을 적시하고, '기관보고는 각 기관의 장이 보고한다'는 문구를 넣는 것으로 합의해 향후 여야의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

그간 여당은 관련법 조항이 없다는 점과 더불어 역대 국조에서 계획서에 미리 증인 명단을 구체적으로 정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증인 명시에 강하게 반대해 왔다. 반면 야당은 '핵심 증인'으로 꼽고 있는 김 실장의 이름을 적시할 것을 요구하며 맞섰으나 결국 한 발짝씩 양보해 이 같은 절충안이 마련된 것이다. 

여야, 국조특위계획서 채택부터 기싸움 팽팽
특위 가동 첫날부터 팽목항 '반쪽 방문' 엇박자

이에 따라 야당이 반드시 국조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벼르고 있는 김 실장의 경우 증인 채택 여부가 불투해졌다. 청와대 비서진의 대규모 개편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김 실장이 국조 기관보고 이전에 물러나면 후임 비서실장이 기관보고에 나서게 되기 때문이다.

또 김 실장의 청문회 증인 출석 여부는 '여야는 각자가 요구하는 증인과 참고인은 협의를 거쳐 반드시 채택하기로 한다'고 적시해 추후 여야의 '협의'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김 실장이 기관보고 전에 사퇴하면 그의 출석 의무가 사라진다"며 "김 실장이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준 합의"라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야당은 남재준 전 국정원장,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KBS 길환영 사장, 김시곤 전 보도국장 등의 출석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여당이 이들 모두의 증인 채택에 동의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앞서 민간인사찰국조특위와 국정원국조특위 등도 증인채택과 관련한 여야 간 갈등으로 장기간 공전한 전례도 있다. 때문에 세월호국조가 순탄하게 진행될지 여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국조 대장정
곳곳 지뢰밭

청와대 기관보고 '공개 여부'를 놓고도 여야의 충돌이 예상된다. 여야는 국조계획서에 '국정조사 청문회는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면서도 '국정원 및 위원회가 결정하는 기관은 비공개'라고 예외를 뒀다. '및'이라는 단어를 통해 국정원이 아닌 다른 기관이 비공개 기관보고 기관으로 추가될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야당은 '공개 원칙'에 따라 청와대 기관보고 공개를 강력히 요구할 전망이지만, 여당은 비공개를 요구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또 90일간의 조사가 끝난 후 야당은 기간 연장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지만, 여당이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조사대상과 관련해서도 국조계획서에는 일단 세월호 침몰 원인과 대규모 피해 발생원인, 정부 대응 적절성, 후속대책, 언론의 보도 적절성, 청해진해운의 불법행위 등을 적시했으나 추후 여야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야당은 청와대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등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점을 집중 추궁하면서 청와대 보고과정 등에서 문제점이 없었는지에 집중할 전망이다. 반면 여당은 유병언 일가 및 청해진해운 관련자들의 불법행위, 세월호 선장 및 선원들의 탈출경위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여야가 정쟁만 되풀이하고 제대로 된 국조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첫날 '반쪽 방문'
여야 진실 공방

당장 국조 첫 일정인 지난 2일 진도 팽목항 방문도 야당만 방문하는 '반쪽 방문'으로 이뤄지며 출발부터 '삐걱’댔다. 당초 특위 여야 위원들은 이날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유족과 생존·실종자 가족들과 만나 이들을 위로하고 본격적인 특위활동에 앞서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심재철 위원장과 조원진 간사 등 일부 여당 특위위원들은 출발 직전 용산역에 나와 야당 특위 위원들에게 불참을 통보해 야당 특위 위원들만 현장으로 가게 됐다. 불참 사유에 대해 심 위원장은 "현지에서 가족들이 우리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아 가지 않았다"며 "출발일 당일 새벽 0시30분께 현지에서 이같이 결정돼 연락이 왔는데 밤중이라 너무 늦어 (야당) 특위위원들에게 연락을 못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당 특위위원들은 보도자료를 내고 "어제 아침 심 위원장이 범정부대책본부 측에 연락해 '의원들 일정이 많으니 5일로 연기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김현미 간사에게도 '진도 현장 가족들 요청에 따라 5일로 연기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고 반박했다.

이어 "김 간사가 유족대표 측에 확인한 뒤 심 위원장에게 '유족 측 입장에 변함이 없다, 예정대로 진행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며 "그런데 자정께 위원장이 야당과 협의도 없이 희생자가족 측과 조율한 뒤 일정을 취소하기로 하고 이를 용산역 집결 직전까지 야당 측에 전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6·4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시야에서 진도 모습을 감추려는 의도적 결정"이라며 "향후에도 특위가 일방적으로 결정, 운영돼 진실규명에 난항을 겪게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향후 증인채택, 조사대상 등 놓고도 곳곳 지뢰밭
더 꼬여만 가는 국조특위…정쟁만 하다 끝내나?

야권 핵심관계자도 "세월호를 잊고 싶은 새누리당이 벌써부터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조 일정이 시작된 첫날부터 여야가 엇갈린 행보를 보인데 이어 '반쪽 방문'을 놓고 진실공방까지 벌인 것이다.

이에 대해 실종자가족들은 정치권의 진상규명 의지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한 실종자 관계자는 진도를 방문한 야당 특위위원들을 향해 "날짜 하나 못 맞추면서 실종자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그냥 왔다가 인사치레만 하고 가지 말고 여야가 함께 내려와 며칠이 됐든 우리 얘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구조해낼 건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라"고 성토했다.

정부 불신
국회도 불신

심지어 여야 특위위원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49재가 열린 이튿날에도 엇갈린 행보를 이어갔다. 여당 특위위원들은 이날 오후 경기도 안산에서 열린 49재에 참석했고, 야당 특위위원들은 전날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유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인천시청 앞 미래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세월호 피해자가족들이 2박3일간 국회에서 농성까지 하며 국조를 요구했던 것은 정부가 참사를 키운 당사자로 불신을 받는 상황에서 그나마 국회밖에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국조 시작부터 여야가 파열음을 내며 희생자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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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