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재계가 떨고 있다. 원인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다. 재계의 '박영선 기피증'은 이미 유명하다. 오죽하면 지난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서 박 원내대표의 당선을 막기 위해 일부 대기업이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었다. 박 원내대표를 주시하며 떨고 있는 재계의 속사정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원내대표로 박영선 의원이 선출되자 재계는 속된 말로 '멘붕'에 빠졌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재계와 뿌리 깊은 악연을 가지고 있다. 오죽하면 지난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 원내대표의 당선을 막기 위해 일부 대기업이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까지 일었다.
박영선 기피증?
그동안 재계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금기시 해왔다. 만약 로비 의혹이 사실이라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재계의 '박영선 기피증'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재계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박 원내대표는 MBC보도국 경제부 부장을 지낸 경제전문기자 출신으로 기자 시절부터 재벌의 탈법경영을 강하게 비판해 온 인물이다. 원내에 진입한 이후에는 금산분리에 관한 법을 대표발의 하는 등 번번이 대기업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지난 2005년 박 원내대표는 참여정부에서 다른 금산법 개정안을 내자 여당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특정기업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감히 청와대의 눈밖에 날까 노심초사하는 현 친박계 의원들과 비교하면 당시 박 원내대표의 행동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박 원내대표는 한때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들 중에서도 박 원내대표의 강경파 이미지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올해 1월1일 벌어진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하 외촉법) 논란이었다.
당초 여야는 외촉법의 통과를 합의했었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까지 통과한 이 법은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던 박 원내대표가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허용하는 법으로 사실상 재벌특혜법"이라며 외촉법 통과를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이다.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서는 법안을 통과시킬 방법이 없었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새해예산안도 처리할 수 없었다. 300명에 달하는 전체 국회의원들은 박 원내대표 한 사람만 바라보며 밤을 꼬박 새웠다. 박 원내대표는 동료의원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버티다 "내 손으로는 이 법을 통과시킬 수 없다"며 의사봉을 간사의원에게 넘기곤 퇴장해버렸다.
박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취임 후 <일요시사>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원내대표로서 이루고 싶은 입법과제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과 갑의 횡포를 막아낼 수 있는 법안들을 첫 손에 꼽았다. 정치이슈와 관련한 법안들은 오히려 후순위로 밀려 있었다.
반재벌법 앞세우고 움직일까?
제1야당 전체에 반재벌 기류
그런 박 원내대표가 제1야당의 원내사령탑으로 선출되었으니 재계는 응당 긴장할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세월호 참사도 수습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재계의 걱정은 더 커지고 있다. 박 원내대표가 지금까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구체적인 재벌개혁법안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박 원내대표는 과거부터 재벌총수 사면금지, 재벌세 신설 등을 주장해왔다.
물론 일각에선 재계가 지나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온건파로 분류되는 김한길·안철수 지도부에서 박 원내대표가 자기 목소리만 낼 수는 없을 것"이라며 "또 세월호 참사로 우리 경제가 전체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당장 강력한 재벌 개혁드라이브를 걸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가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적극 추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런 일말의 희망은 사라져가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6%를 내놓아야 한다.
박 원내대표의 등장으로 청와대가 추진해온 각종 규제완화작업에도 급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박 원내대표는 평소부터 규제완화에 반대해온 입장인 데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무분별한 규제완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이 운영해 온 을지로위원회에는 더욱 힘이 실리게 될 전망이다.
을지로위원회는 그동안 남양유업 사태 등 대기업의 횡포와 관련한 사건들에 적극 개입해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 원내대표는 취임 후 을지로위원회의 확대 개편 및 원내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을지로위원회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초법적인 행태로 기업들의 정상적인 영리활동을 방해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공존하는 위원회다.
박영선 공포증?
이밖에도 박 원내대표가 꾸린 원내 지도부에는 초·재선 강경파그룹이 결성한 '더 좋은 미래' 소속 의원들이 대거 진입해 있어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새정치연합 전체가 후반기 국회를 앞두고 강경기류로 변하고 있는 모양새여서 재계의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실제로 야권의 한 관계자는 "보수정권은 그동안 재벌이 잘 돼야 서민도 잘 산다는 낙수이론으로 이른바 재벌 밀어주기를 해왔는데 변한 게 없지 않나? 정치권에는 박 원내대표와 같은 사람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 강경파 의원들은 박 원내대표가 당내 경선을 통과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원내대표 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문제는 제1야당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박 원내대표를 지지했다는 것이고, 박 원내대표를 구심점으로 당내 기류가 반재계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