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검풍 덮친 삼표그룹 막전막후

'철피아' 검은 커넥션 "끝까지 턴다"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은 '관피아' 척결을 위한 칼을 빼들었다. 첫 번째 타깃은 '철피아.' 지난 30년 동안 철도분야에서 성장한 삼표그룹이 수사 대상 1호로 지목됐다. 철도 부품 납품 관련 비리 정황을 포착한 것. 압수수색에 총수 일가 출국금지까지 내려졌다.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가 삼표그룹을 덮쳤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민관 유착 고리가 노출됐다. 검찰은 오랜 기간 쌓여온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달 21일에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전국 고검 및 지검 검사장 22명이 참석한 검사장회의를 열어 민관유착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한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검찰은 '관피아'(관료+마피아) 관행을 척결하기 위해 전국 18개 검찰청에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특히 기업 범죄와 고위공직자 수사를 전담하며 대검 중앙수사부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특별수사부와 금융조제조사부 등 3개 부서가 민관유착 비리 수사를 전담하도록 했다. 다른 지역 검찰청도 실정에 맞는 특별수사본부에서 관할기관과 단체의 관피아 비리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적폐 청산 위해
팔 걷어붙인 검찰

특별수사본부 구성 일주일만에 척결 대상 1순위로 '철피아'(철도+마피아)가 지목됐다. 검찰이 철피아를 정조준 한 것은 2011년 2월 KTX광명역 탈선사고 이후 철도와 지하철에서 대규모 인명피해 전조 증상이 여러 차례 나타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부분의 사고 원인은 '레일체결장치' 불량이었다. 레일체결장치는 열차 하중을 분산하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철도와 침목을 연결하는 핵심 부품이다. 지난해 신분당선에서 400여 개가 파손된 채 발견된 것도 레일체결장치였다.

검찰은 이날 독일 보슬러에서 레일체결장치를 수입, 납품하는 ㈜에이브이티 사무실도 압수수색했다. 에이브이티는 호남고속철도 납품업체 선정과정에서 제출한 시험성적서를 위조했다는 게 드러나 지난해 국회에서 논란이 된 회사다. 검찰은 시험성적서 위조가 밝혀졌음에도 에이브이티가 납품업체로 선정된 경위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업체는 따로 있다. 국내 철도궤도용품 시장의 '큰 손'인 삼표그룹이다. 삼표그룹은 국내 철도궤도 공사 시공능력 1위인 삼표이앤씨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삼표이앤씨는 1980년부터 철도용품을 제작하기 시작해 침목, 레일체결장치, 레일, 분기기 등 철도 관련 핵심 부품들을 만들고 있다. 전체 철도궤도용품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철도궤도 업체다.

검찰은 삼표이앤씨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과 임직원 자택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회계장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한 검찰은 삼표 측이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납품비리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담합의혹도 있다. 검찰은 호남 고속철도 궤도공사 업체로 2012년 7월 삼표이앤씨와 궤도공영이 선정되는 과정에서 가격을 미리 조율한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입찰은 오송~익산(1공구), 익산~광주송정(2공구) 구간으로 나눠 진행됐다.

1공구는 예정가격의 89.03%인 1316억원을 적어낸 궤도공영 컨소시엄(궤도공영·대륙철도·삼동랜드·포스코엔지니어링)이 따냈으며 2공구는 예정가격의 89.48%인 1716억6490만원을 써 낸 삼표이앤씨 컨소시엄(삼표이앤씨·삼표건설·화성궤도·천운궤도)이 공사를 수주했다.

이들은 1단계 저가 심사를 통과한 뒤 2단계 저가 심사를 생략하고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이 투찰가격을 사전에 조작해 두 컨소시엄에 공사를 밀어주고 수주액을 나눠가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담합의혹이 제기됐음에도 발주처인 철도공단은 이를 묵인한 채 계약을 체결했다. 특혜 의혹이 일고 있는 이유다.

철도공단은 수서발 KTX의 레일 장치 공급 계약 과정에서도 삼표이앤씨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지난 3일 <중앙일보>는 철도공단 직원의 말을 인용해 철도공단이 경쟁 입찰 없이 2016년 개통하는 수설발 KTX 건설 사업(수서역∼평택역, 총 길이 61.4km)에서 역차 진행 방향과 레일을 바꿔주는 장치인 '고속 분기기'(열차 선로 전환기) 납품 업체로 삼표이앤씨를 선정해 2일 통보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 의지
'첫 타깃' 철도부품 납품비리 혐의 도마

고속 분기기 38개를 납품하는 이 사업은 총 사업비만 약 200억원. 국가계약법상 5000만원을 초과하는 물품은 경쟁 입찰에 부치도록 되어 있지만 철도공단 측은 입찰 공고도 없이 삼표이앤씨와 수의계약을 추진했다는 얘기다. 논란이 되자 철도공단은 계약 체결을 잠정적으로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철도공단은 성능검증심의위원회가 '부적합' 판정을 내린 삼표이앤씨의 철도 레일 자재 '사전제작형 콘크리트궤도(PST)'를 호남고속철도 등 10여곳에 도입하기도 했다. PST는 레일 아래 자갈을 까는 대신 미리 제작해 놓은 콘크리트패널을 까는 공법으로 레일 표면이 일정해지고 공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PST는 삼표이앤씨가 국산화에 성공, 국내 철도에 전량 공급했다. 현재까지 수주액만 400억원에 이른다. 철도공단은 2011년 삼표이앤씨와 PST 실용화 협약을 맺고 같은 해 8월 중앙선 망미터널, 2012년 7월 경전선 구간에 시험 부설했고 호남고속철도에도 지난달 공사를 마쳤다.

문제는 지난해 6월 망미터널에서 균열이 발생하거나 깨진 충전재가 342곳 발견되면서 불거졌다. 경전선 구간에서도 최대 11mm까지 지반 침하 현상이 발생하고 균열이 생겼다.

철도공단은 같은 해 8월 성능검증위를 열었다. 검증위 일부 위원은 PST가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4차례의 자문위원회를 거친 철도공단의 최종 결정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PST는 전국에서 강행되고 있다. PST 부설이 허가난 철도만 해도 동해 남부선만 10여곳에 이른다.

그렇다면 삼표이앤씨가 철도공단의 무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삼표그룹의 철피아 인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표이앤씨는 2012년 영입한 대표이사 겸 부회장 신모씨를 비롯한 임원 대다수가 철도청·철도공단·서울메트로 등 철도 관련 공기업 출신이다.

담합 알면서도
발주계약 체결

삼표그룹 수사 '키맨'은 신씨다. 경기도 평택 출신의 신씨는 71년 9급으로 국방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80년 국방부 시설국 시설과 사무관으로 승진했고 82년 5월부터 철도청과 인연을 맺었다. 94년 서기관, 99년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면서 시설·건설본부장을 맡았다. 2002년에는 기술직 최초로 기획·예산·조직·인력을 관장하는 기획본부장에 올랐고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2004년 1급인 차장에 임명됐다.

같은 해 10월 신씨는 제 24대 철도청장에 취임했고 이듬해 1월 한국철도공사 초대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철도청을 공사로 전환시키는 시점에서 벌어질지 모를 노조의 반발과 직원들의 사기를 감안한 청와대의 인사였다.

당시 철도청장 공모에는 전·현직 건교부 간부와 현 코레일 사장인 최연혜 당시 한국철도대학 교수 등 여럿이 응모했다. 최 교수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최종 결정권자인 청와대가 재공모를 요구, 애초 공모에도 나오지 않았던 신씨가 지원해 청장으로 결정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사장에 취임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른바 '오일게이트'로 불리는 러시아 사할린 유전개발 의혹 사건 때문에 5개월 만에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신씨는 전문기관의 분석을 무시한 채 러시아 유전사업에 참여했다가 철도공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를 받아 2005년 10월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2007년 6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도원·대현 오너부자 출금
각종 특혜에 비자금 조성 포착

신씨는 지난 2012년 9월 삼표이앤씨 상임고문을 맟으며 삼표와 연을 맺었다. 삼표이앤씨 부회장에는 지난해 1월 취임했다. 삼표그룹이 신씨를 영입하자 업계에서는 "방패막이와 로비 창구로 철도공사 고위급 인사를 영입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삼표그룹 측은 "철도 사업 관련 업무에 밝은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라고 신씨 영입 이유를 밝힌 뒤 "(신씨가) 업계를 떠난지 7년이 넘어 현재 영향력을 발휘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신씨는 2005년 5월 철도공사 사장직을 내놓은 뒤 2007년까지 재판을 받은 기간을 제외하면 철도 업계를 떠난 적이 없다. 신씨는 2008년 5월부터 지난 2012년 9월 삼표이앤씨에 발을 들이기 직전까지 신분당선(주), 네오트랜스(주)의 대표이사로 근무했다. 이 기간 동안 신씨는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도입한 무인운전시스템을 도입, 이를 적용한 신분당선(강남-정자)을 개통하기도 했다.

삼표이앤씨에 신씨가 있다면 철도공단에는 김광재 전 이사장이 있다. 김 전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항공정책실장 출신으로 2011년 8월 철도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가 지난 1월 이사장직에서 사임했다. 김 전 이사장은 무리한 업무와 징계 등의 이유로 노조와 마찰을 빚었고 인사권 남용으로 징계를 남발해 거액의 소송비용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감사원에서 주의 조치를 받는 등 재임 시절 많은 잡음을 일으켰다. 검찰은 김 전 이사장과 철도공단 전현직 간부, 서울메트로 5급 직원 등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고 비리 사슬을 포착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각종 의혹 포착
소환조사 예고

관피아 척결로 시작된 삼표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 회장 일가의 소환조사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검찰은 정 회장과 아들인 정대현 전무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사실이 알려졌다. 단순 납품비리로 총수 일가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이 납품비리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음을 가늠케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정 회장과 정 전무가 궤도 관련 시설공사나 부품 납품을 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 두 사람이 비자금 조성에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에 대해서도 영장을 발부받아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검찰은 이들이 조성한 비자금이 철도공단에 대한 로비 자금으로 사용됐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어서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삼표그룹은 정 회장이 83%, 정 전무가 12%의 지분을 갖고 있다. 삼표는 66년 강원산업그룹이 설립한 삼강운수를 모태로 한다. 74년 삼표산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건설자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4년 7월 지금의 삼표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레미콘 골재 등 건설 기초자재 선두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98년 외환위기 당시 자발적 워크아웃을 선언하는 등 위기도 있었지만 2002년 워크아웃 졸업 후 2년 만에 삼표그룹을 출범시키면서 빠르게 확장했고 지금은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흔치 않은 혼맥
현대·포스코·LS

정 회장은 재벌가에서도 흔치 않은 화려한 혼맥으로 유명하다. 현대차, 포스코, LS그룹 등과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 있다. 정 회장은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지선씨는 지난 95년 현대차그룹의 후계자 정의선 부회장과 혼인했다. 정 회장은 정몽구 회장과 경복고 선후배로 그전부터 친분이 두터운 관계자다. 정 부회장과 지선씨의 사촌오빠 대우씨(정문원 전 강원산업 회장 차남)가 휘문고 동창이라 의선-지선 커플도 어릴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중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차녀 지윤씨는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장남 박성빈 사운드파이프코리아 대표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박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자가 친딸 희경(미국명 캔디 고)씨의 교육감 자질 논란에 대한 폭로 글과 관련해 공작정치의 일환이라며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후보자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정 회장의 외아들 정 전무도 지난 2011년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장녀 윤희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앞서 96년 구자엽 LS산전 회장의 장녀 은희씨가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장남 일선씨와 결혼을 해 LS그룹과 삼표는 겹사돈 관계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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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