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PK 파워인맥' 대해부

국가 의전서열 톱10 장악 "우리가 남이가?"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박근혜정부의 PK(부산·경남) 인사 편중이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 의전서열 1~10위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1위, 대구 출신), 이인복 중앙선거관리위원장(6위, 충남 논산 출신),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공동대표(8위, 일본 출생), 야당 몫 이석현 국회 부의장(9위, 전북 익산)을 제외한 모든 자리를 PK 출신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때에도 있었던 '지역안배'가 사실상 사라진 인사편중에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는 'PK 파워인맥'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행사의 주체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통상적인 국가 의전서열은 ▲ 대통령(박근혜, 대구) ▲ 국회의장(정의화, 경남 창원) ▲ 대법원장(양승태, 부산) ▲ 헌법재판소장(박한철, 부산) ▲ 국무총리(정홍원, 경남 하동) ▲ 선관위원장(이인복, 충남 논산) ▲ 여당 대표(공석) ▲ 야당 대표(김한길 - 일본, 안철수 - 부산) ▲ 국회 부의장(정갑윤 - 울산, 이석현 - 전북 익산) ▲감사원장(황찬현, 경남 마산) 순이다.

PK 전성시대

국가 의전서열 1~10위 중 박근혜 대통령, 이인복 선관위원장, 공석 중인 여당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공동대표, 이석현 국회 부의장을 제외한 7명(야당 대표 2명, 국회부의장 2명)이 PK 출신으로 가히 'PK 전성시대'라 불릴 만하다.

특히 국가권력의 3대 축인 행정·입법·사법부의 수장들이 모두 PK 출신들로 채워지며 지역 편중 현상이 역대 최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국회의장과 부의장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3대 권력의 요직을 모두 PK 출신 인사로 채웠다고는 볼 수 없다.

청와대 측도 "자리에 맡는 인사를 찾다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지역을 감안하고 의도적으로 인사를 한 결과는 아니다"라며 "국회의장, 부의장은 청와대가 관여하는 것이 아니고, 양승태 대법원장의 경우도 전임 이명박정부에서 임명해 현 정부와 무관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박근혜정부 '실세 중의 실세'라 불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경남 거제), 청와대의 사정라인을 책임지고 있는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경남 마산),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관여했던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경남 창녕), 장관급인 박흥렬 경호실장(부산), 4대 권력기관 중 하나인 검찰의 수장도 경남 사천 출신 김진태 검찰총장이 맡고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PK독식 논란은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선후보 시절 박 대통령은 "집권하면 대탕평인사를 하겠다"며 "인재등용에 있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분들을 적재적소에 모시겠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의지"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인사 배치를 대탕평이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사람을 쓸 때 인위적으로 지역 출신을 배분한다는 인식이 별로 없다"며 "오히려 그렇게 되면 능력 있는 인재가 역차별 당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오히려 지역을 안 따지고 능력만 보고 적재적소에 걸맞은 사람을 골라 쓰면 저절로 지역 탕평이 이뤄질 수 있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선관위원장 제외 국가 의전서열 상위 PK 장악
행정·입법·사법 'PK 편중' 심각…김기춘 작품?

청와대와 여권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과연 능력을 감안한 인사였는지는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수습되는 대로 물러날 예정인 정홍원 총리는 그간 대독 총리, 대리 사과 총리 등의 역할을 하며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는 리더십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며 결국 사퇴를 선언한 상태다. 정 총리의 후임 인사로 청와대가 내정했던 안대희 전 대법관도 지명 6일 만에 각종 의혹에 시달리다 자진 사퇴한 애초에 자격이 없는 후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야권에서는 PK 편중인사를 정치쟁점화 하려는 모양새다. 특히 PK 편중인사의 배경으로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PK의 대부' 김기춘 비서실장을 지목하고 있다.


야권 핵심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개조를 위해서라면 지역 안배부터 신경 썼어야 했는데,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던 안대희 전 대법관(경남 함안)도 그렇고, PK 편중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청와대의 인사검증 책임자인 김 실장이 부임한 이후 이러한 기류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의 인사는 PK 편중, 검사 편중으로 요약이 가능한데, 이 두 가지의 공통점에 위치한 사람이 김 실장"이라며 "그를 중심으로 지연, 학연, 검찰 선후배 등 연줄이 있는 사람들이 (요직에) 채워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김 실장이 임명된 이후로 PK 출신 황찬현 감사원장, 김진태 검찰총장,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차례로 사정 라인으로 채워졌다.

김기춘 작품?

PK 인사편중 논란이 가열될 조짐을 보이자 여권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집권을 도운 원로그룹 '7인회' 멤버인 강창희 전 국회의장은 지난달 27일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퇴임을 앞두고 국회 출입기자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PK 인사편중에 대해 "군사정부 때도 지역안배를 했다. 이제는 지역안배를 해야 한다"며 "자기 시야에서만 보면 좋은 사람이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PK 인사편중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향후 인사쇄신 과정에서 지역안배를 고려한 탕평인사를 할지 주목된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TK 대통령' 아래 홀대받는 'TK 인사'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이후 PK 출신 인사들이 잇달아 중용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TK(대구·경북) 인사들의 존재감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이상 참모진 가운데 TK 출신 인사는 전무하다. 현직 수석비서관 9명의 출신지를 보면 경남 2명, 서울 2명, 충남(대전) 2명, 경기 1명, 전남 1명, 강원 1명이다.

전체적인 지역안배는 고르게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박 대통령의 출생지인 TK 출신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를 거쳐 간 전직 참모진으로 범위를 넓혀 봐도 TK 인사는 곽상도 전 민정수석 한 명에 불과하다. 이는 전남(2명)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반면 전·현직 참모진 15명 중에서 PK 출신은 가장 많은 5명이다. 참모로 분류되진 않지만 대통령 경호업무를 총괄하는 박흥렬 경호실장 역시 부산 출신이다.

감사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국가정보원장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 인사를 보면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황찬현 감사원장(경남 마산), 김진태 검찰총장(경남 사천) 등 핵심 사정기관장 2명이 PK 출신인 반면 TK 출신은 없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대구 출신인 박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감 때문에 동향 출신 인사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고, 현 PK 인맥의 대부인 김기춘 비서실장의 독자적 작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출신지역보다 자신과 업무방식이 맞는 인사를 기용하는 것이고, 공교롭게도 PK 출신 인사들이 이런 방식에 맞아떨어진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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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