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각별한 '김기춘 무한신뢰' 속사정

선대부터 이어온 두터운 인연…마지막 버팀목?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김기춘 책임론'을 제기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 보좌 실패에 이어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에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는 두 사안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이에 따라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김기춘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인사권을 가진 박 대통령은 아직까지 요지부동이다. 안팎의 숱한 비판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김 비서실장을 감싸고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로 인한 대규모 인적쇄신 바람에서도 살아남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자진사퇴라는 파고도 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김기춘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결정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 몫이다. 박 대통령의 김 비서실장을 향한 무한 신뢰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무한한 신뢰

지난해 8월 초대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후임으로 임명된 김 비서실장은 그간 '왕실장' '부통령'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며 청와대의 2인자로 군림해왔다. 그의 임명 당시부터 야권에서는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유신헌법의 초안 작성에 참여한 '유신검사', 지난 1992년 대선 직전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지역감정을 조장하려 했던 이른바 '초원복집사건'의 주역이라는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이후에도 야권에서는 청와대발 주요 이슈가 터질 때마다 김기춘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노령연금 지급방식 문제와 관련해 박 대통령과 마찰을 빚으며 사퇴할 당시에도 '김기춘 개입설'이 불거졌고, 야권은 김기춘 사퇴를 요구했다. 또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이 불거졌을 때에도 김 실장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김기춘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변함없는 박 대통령의 신뢰로 꿋꿋이 자리를 지킨 그는 세월호 참사로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청와대의 잘못된 초기 상황 파악과 미숙한 대응에 따른 대통령 보좌 실패론이 불거지며 또 다시 사퇴론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야권의 사퇴요구 목소리가 높았던 핵심 3인방 중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경질하면서도 김 실장은 유임시켰다. 대규모 인적쇄신 바람의 신호탄이 될 인사교체에서도 김 실장이 다시 한 번 재신임을 받으며 그만큼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것이 재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안 총리 후보자의 전격 사퇴로 김 실장은 다시 코너로 몰리게 됐다. 안 전 후보자의 사퇴는 청와대 인사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는 김 실장의 검증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새정치민주연합은 김 실장을 정조준하며 '이번에는 반드시 사퇴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인사검증 시스템의 최종 책임자는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실장"이라고 비판했다.

안 전 후보자 사전검증팀 간사였던 김기식 의원도 "김 실장은 스스로가 안 전 후보자 추천과 낙마 과정에서 어떤 책임이 있는지 알 것"이라며 "안 전 후보자처럼 스스로 결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사퇴를 요구했다.

잦은 구설수 따른 자진사퇴 요청도 대통령이 만류
세월호 참사 보좌, 안대희 검증 실패 파고도 넘나?

여권의 기류도 심상치 않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지난달 29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전면적이고 철저한 인적 쇄신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김 실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같은 당 이철우 의원도 같은 날 "총리 후보자가 사퇴했는데 인사위원장이 책임 없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본인도 그렇게 느끼시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우회적으로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박심(박 대통령 의중)'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친박(친박근혜) 주류는 여전히 김 실장이 박 대통령을 보필하면서 당청관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점과, 그를 대체할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점을 들어 아직까지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선대(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이어온 두터운 인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고 쓰는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상 선대부터 인연을 맺으며 쌓아온 김 실장과의 신뢰를 져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의 원로 참모그룹인 이른바 '7인회'의 중심 인물로,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 유신 집권기인 1974년 공안 검사로 재직하며 고 육영수 여사를 피격한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낸 바 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김 실장이 모친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수를 잡아 준 일종의 은인인 셈이다. 

김 실장은 또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으로 정수장학회 학생들의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지내는 등 박 대통령 일가와 오래 전부터 인연이 깊다. 상청회는 정수장학회 장학금을 받은 대학 졸업생 모임으로 장학금을 받고 있는 대학 재학생 모임인 청오회 회원들이 졸업하면 자동으로 상청회에 가입된다. 

실제로 김 실장이 앞서 지난해 말 불의의 사고를 당한 아들 문제 등으로 두 차례 사퇴의사를 밝혔지만 박 대통령이 "계속 도와 달라"며 만류한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도 김 실장은 책임론이 불거지자 주변에 "나라고 이 자리에 더 있고 싶겠냐. 나도 기회가 되면 나가고 싶다"는 심경을 피력했지만 박 대통령이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김 실장은 사심이 없고 박 대통령의 뜻을 충직하게 이행하고 있어 어느 누구보다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며 "만약 김 실장이 물러나려면 대통령의 가슴 아픈 결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한 관계자는 "당초 박 대통령은 총리 지명에 이은 개각, 그리고 청와대 개편 순으로 인적쇄신을 해 나갈 계획이었다"라며 "김 실장 외에는 이를 맡아서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봤던 것 같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마지막 버팀목'으로 김 실장을 여기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가슴 아픈 결단?

여권 일각에서는 현실적으로 김 실장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김기춘 체제'를 끌고 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 한 관계자는 "국무총리, 국정원장, 국가안보실장을 전부 교체한 마당에 비서실장까지 바꾸면 일은 누가 하겠느냐"며 김 실장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 정부에서 김 실장이 갖고 있는 이러한 위치와 역할을 감안할 때 최소한 지방선거까지는 현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여권 내에서도 사퇴 불가피론이 나오고 있는 만큼 박 대통령은 지방선거 이후 결과 등에 따라 다시 한 번 김 실장의 거취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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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