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삼양목장의 비밀

박정희 말 안 듣더니…박근혜 공약도 뭉개나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삼양식품이 운영 중인 대관령 삼양목장이 지역 주민들의 원성을 듣고 있다. 목장 운영으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면서 지역 상생에는 관심이 없다는 게 이유다. 목장 운영은 제쳐두고 관광객 몰이에만 급급하다는 것. 한때 4000마리가 넘었던 젖소는 현재 400마리도 채 남지 않았고 대선 공약이던 '대관령 자연순응형 휴양단지' 조성은 삼양목장의 반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대관령 삼약목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됐다. 1970년대 초 박 전 대통령은 놀고 있는 산지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때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지금의 에버랜드자리인 용인 산간지대가, 조중훈 고 한진그룹 회장에게는 현대 제주 삼다수를 뽑아내고 있는 제주도 제동흥산 자리가,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은 대관령 삼양목장이, 국제 로비스트 한모씨에겐 지금 꿩사냥터로 유명한 서귀포 중문단지 옆 100여만평의 척박한 땅들이 각각 맡겨졌다.

1972년 개발
2002년 개방

박 전 대통령은 전 명예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축산입국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대관령 땅을 국가에서 50년간 1년에 평당 100원을 받고 장기 임대가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국유지를 거의 무상으로 임대하게 된 전 명예회장은 72년 2월 삼양축산개발(주)을 설립하고 그해 4월 농림부의 개간허가와 산림청의 국유림대부가 이뤄지자 73년부터 목장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고비는 있었다. 72년 12월 설상파종한 목초 씨앗이 73년 5월이 되어도 싹틀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6월3일 싹을 틔우는 목초가 개간지를 돌아보던 직원의 눈에 들어왔다. 당시 해당 직원이 너무 감격하여 울어 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74년 중장비가 들어오면서 공사가 본격화됐다. 산을 깎아 길을 만들고 교량 등 기반건설 공사가 진행됐다. 목축업은 고산지대에서 적합하지 않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비웃듯 초기 들여온 한우 50마리는 건강하게 자랐다. 이에 전 명예회장은 73년 7월25일자 <강원일보>에 우리나라 최초로 암송아지 매입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후 전 명예회장은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여러나라를 돌아보면서 육우보다 젖소를 사육하는 것이 소득증대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확인, 캐나다와 미국 등지에서 젖소를 들여와 키우기 시작했고 78년 10월 최신시설을 갖춘 착유실을 목장에 설치해 우유 위생도를 높이고 착유 능률을 향상시켰다.

지난해 45만명 방문, 입장료 수익만 36억원
"목장에 소가 없다" 관광객 대다수 헛걸음

삼양식품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대관령 일대는 목장이 개발되기 전에는 화전민이 드문드문 옥수수, 감자 따위를 경작했을 뿐 주변 삼림은 고산지 특유의 잡관목과 넝쿨로 뒤덮여 있어 이용가치가 없는 땅으로 방치되어 있었다"며 "그러나 대관령 목장이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초지농업의 풍요로운 터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고, 8년만인 79년에는 드디어 암울했던 옛 모습을 벗고 600만평의 비단결 같은 초지가 완성되어 수천 두 젖소들의 낙원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대관령 삼양목장 개발성공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삼양축산개척십주년기념탑'에는 "대관령 삼양목장, 황량한 지대 위에 생명의 줄기가 움트기 시작했으며 자연으로 승화시킨 인간의 이상을 신념과 의지로 해발 1400미터의 고산지에 실현한 장엄한 서사시이며 생동하는 화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리한 선견지명과 뜨거운 정열, 불굴의 의지로 다져진 삼양식품의 창조적 산물이기도 하다"고 새겨져 있다.

목장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초지는 600만평, 목장 부지 가운데 삼양식품이 10만평, 삼양축산이 90만평 등 삼양이 100만평을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 500만평은 국유지다. 현재 이곳엔 1·2단지 축사 21개동, 착유실 1개동 등의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목장 내 도로는 모두 합하면 120km나 된다. 목장을 한 바퀴 도는 주도로만 22km, 차량을 이용해도 1시간30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은 빛바랜지 오래다. 한때 4000마리가 넘었던 젖소는 현재 400마리 수준으로 줄어들어 목장을 찾는 관광객들이 젖소 구경을 하기 힘들 정도다. 젖소 보다 양이 많아 '양떼목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을 정도다.

지역 상생 요청
회사 묵묵부답


삼양목장은 지난 2000년 초와 2011년 초 구제역 파동의 직격탄을 맞았다. 삼양목장은 구제역 예방을 위해 2010년 12월7일부터 목장관람을 중단했지만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아 한우·젖소 등 목장 내 900여마리의 소를 모두 살처분했다. 같은 해 4월26일 삼양목장은 목장 관람을 재개했다.

서울에서 3시간을 꼬박 달려 목장을 찾았다는 김모씨는 "어린 딸에게 미안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홈페이지 어느 곳을 봐도 온통 소 사진과 소 그림뿐인데 정작 목장에는 소가 없었다"며 "모처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도시에서 보기 힘든 젖소도 보여주고 사진도 찍어주려 했는데 기분만 상했다"고 말했다.

삼양목장이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소는 볼 수 없었다. 삼양식품은 홈페이지 목장소식 게시판에 "양, 타조, 토끼, 거위는 관람이 가능하나, 젖소는 당분간 관람이 불가능하다"는 게시글을 올린 게 전부였다. 구제역 파동을 거치면서 삼양목장의 소는 줄어만 갔다. 삼양목장은 2011년 중순 젖소를 다시 입식했지만 그마저도 100여두가 다였다.

대관령면진흥회 관계자에 따르면 삼양목장은 매년 목장을 찾는 관광객들로 막대한 수익창출을 하고 있으면서도 지역 사회에는 관심이 없다. 이 관계자는 "삼양 목장은 연간 5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 몰이에, 1인당 8000원이라는 입장료와 내부에서 삼양식품 제품 판매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음에도 지역 상생의 움직임은 전혀없다"고 주장했다.

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후 평당 30만→50만
삼양, 산림청 측 국유지 회수 제의에 'NO'

삼양목장은 2002년 8월15일 관광객들에게 전면 개방한 이래로 2003년 4500원, 2004년 5000원, 2007년 7000원, 2012년 8000원 등 꾸준히 입장료를 올려왔다. 평창군에 따르면 지난해 삼양목장을 찾은 관광객은 45만2000여명. 지난해 입장료로 벌어들인 수익만 36억1600여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목장 내부에서 판매 중인 삼양식품 제품 판매 수익까지 합치면 40원억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역 상생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관령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 한모씨는 "주말마다 수천명의 관광객이 대관령면을 통해 삼양목장으로 들어가지만 그로 인해 대관령면 주민이 얻는 수익은 전무하다"며 "그동안 면 차원에서 수차례 삼양목장에 상생을 요청했지만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삼양목장이 목축업보다는 관광레저사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평창올림픽 유치 기대감이 커진 2003∼2005년 사이다. 당시 삼양식품은 2005년 한국관광공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레저업을 준비했다. 삼양목장을 친환경 관광지와 체험관광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 그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 평창올림픽 유치에 실패하면서 사업을 접었다.

삼양목장 부지
노른자위 땅

하지만 2011년 7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뒤 삼양식품이 추진하던 삼양목장의 레저시설 개발이 재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단 부동산 시세가 크게 상승했다. 삼양목장이 평창동계올림픽 메인 경기장을 들어설 용평 알펜시아 인근으로부터 불과 6km 떨어진 노른자위 땅이기 때문이다. 평당 30만원이던 시세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결정 직후 10만원이 올랐다. 삼양이 소유한 목장 부지는 총 100만평, 3000억원이던 부동산 가치가 4000억원으로 뛰어오른 셈이다. 지금은 더 올랐다. 인근 부동산 업체에 따르면 1평당 50만∼60만원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당시 삼양식품 측은 "2018 동계 올림픽 유치는 분명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호재"라며 "장기 비전 차원에서 종합리조트 사업 진출 프로젝트가 가동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평창올림픽 유치 결정 당시 삼양목장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추가적인 개발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동계올림픽 기반 시설 건설이 본격화 되면 제한이 풀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고 실제로 강원 평창군은 지난해 4월부터 한시적으로 제한해 왔던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을 해제하기 시작해 지난 2월21일 모든 제한면적을 해제 완료했다. 여기에 최근 정부는 초지에 축산체험시설·운동시설 등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한 초지법 시행규칙을 올해 상반기 중 개정키로 해 삼양목장 개발 계획에 탄력이 붙게 됐다.


삼양식품은 450억∼500억원을 투자해 삼양목장을 복합관광단지로 만들 예정이다. 앞서 목장을 운영하는 계열사 법인명도 삼양축산에서 에코그린캠퍼스로 변경했다. 삼양식품은 개발 첫단계로 양떼몰이 전용 돔 건축물을 세울 계획이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사시사철 양떼몰이를 관람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겠다는 것. 이와 함께 목장을 찾는 관광객이 직접 젖소·양의 젖을 짜고 이를 치즈 등 유제품으로 만드는 프로그램과 함께 목장에서 방목하고 있는 육우·젖소를 활용한 양질의 스테이크 요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목장에 라면박물관을 건립하겠다는 방침이다. 박물관 안엔 자판기 형태로 라면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시설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실적 부진…영업·순이익 감소
'라면'보다 관광·레저에 치중?

삼양식품이 목장 개발에는 열을 올리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정부 주도의 개발 사업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양목장은 평창동계올림픽 특구로 지정됐다. 정부는 이 곳을 1차(목축)+2차(낙농)+3차(관광)산업이 결합된 대관령 자연순응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올해 초 정부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특구종합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이에 따라 올림픽 개최지인 평창, 강릉, 정선 일원의 올림픽 특구에 대한 개발이 본격 추진된다.

올림픽특구는 2018년까지 1단계, 2032년까지 2단계로 국비 3641억원, 지방비 2828억원, 민간자본 2조6594억원을 투자한다.

앞서 2012년 강원도는 삼양목장 인근 130m² 규모의 부지에 올림픽특구 개발의 일환으로 자연순응형 휴양지구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동부지방산림청과 강원도는 삼양목장이 사용하고 있는 국유지를 회수하는 방안을 삼양목장과 협의 중이지만 삼양은 임대 국유지 회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관령면진흥회 관계자는 "2012년 10월께 삼양목장 인근에 수목원을 조성하는 사업이 검토됐지만 곧 없던 일이 됐다"며 "삼양목장 측에서 산림청 쪽으로 로비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삼양목장이 자체적으로 계획한 체험형 테마 목장 단지는 약 30만평에 불과한데 600만평을 점유 중인 삼양목장이 수목원을 위한 일부 부지를 내놓지 않는 것은 욕심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대관령면 발전을 위해서는 수목원 조성이 필수"라고 토로했다.

전체 매출의 80% 가량이 ‘라면 사업’에서 나오는 삼양식품의 실적은 레저·관광사업 확대와 맞물려 떨어지기 시작했다. 매출은 2010년 2726억원, 2011년 2947억원, 2012년 3153억원 등 꾸준히 올랐지만 영업이익은 다르다. 2008∼2009년 250억원 수준이던 영업이익은 2010년 141억원, 2011년 151억원, 2012년 81억원으로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118억원으로 일부 회복된 모습을 보였지만 광고선전비를 전년대비 25억원 가량 줄인 효과에 불과했다. 순이익 역시 5년 전 188억원에서 지난해 59억원으로 감소했다.

올림픽 특구 지정
개발 사업 탄력

이와 관련해 삼양식품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삼양목장 인근에 수목원을 조성하는 사업은 산림청과 의견 교환 정도만 이뤄진 정도"라며 "아직 반대·찬성 여부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목축업 보다는 레저·관광사업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삼양목장이 박정희 정부 목축사업 일환으로 시작한 것은 맞지만 현재는 정부의 지원이 끊긴 상태"라며 "지원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목축업만으로 목장을 유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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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