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 희대의 관전포인트 다섯

"선거일이 언젠데요?" 누가 나왔는지도 몰라…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6·4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에서는 세월호 참사 정국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지방선거를 여야의 명운을 좌우할 승부처로 보고 있다. 여당이 승리하면 박근혜정부의 국가개조 기조가 더 탄력을 받고, 야당이 승리하면 박근혜정부 국정운영 동력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향배를 가를 분수령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번 지방선거 5대 관전 포인트를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세월호 사고 발생 41일째인 5월26일 오전 기준 희생자 수는 사망 288명, 실종 16명이다. 이처럼 국가적 재난인 세월호 참사의 구조작업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정치시계는 빠르게 6·4지방선거를 향해가고 있다. 지난 22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전국 광역시·도지사와 교육감 등을 포함, 총 3952명의 지역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조용한 선거
야당에 유리?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로 역대 선거들과는 다른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전 국민적 애도 분위기 속에서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역대 어떤 선거보다도 '조용한 선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홍보를 위해 통상적으로 활용했던 유세차, 로고송, 확성기 등 떠들썩한 선거운동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 됐다.

여야 지도부는 모두 국민적 정서를 감안해 조용한 분위기에서 선거운동을 할 것을 후보자들에게 요청했고, 일부 후보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이를 지키며 조용한 선거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는 사이 유권자들은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20~21일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거주지역에 출마한 광역·기초단체장과 교육감 주요 후보를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14.4%에 불과했다. 광역단체장 주요 후보로 범위를 좁힐 경우에는 55%가 "알고 있다"고 답했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70% 이상이 광역단체장 후보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지방선거는 역대 최악의 '깜깜이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는 여야가 모두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통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만큼 정책의 차별성도 크지 않다.

세월호 참사 여파 유리한 쪽은 어디?
유세차·확성기 줄어든 '조용한 선거' 

이런 분위기로 선거운동이 끝까지 진행될 경우 '정확한 민심을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 투표로 선출되는 당선자들의 대표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한 위기감은 여당이 더 큰 상황이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과 구조 실패에 대한 정부의 무능력·무기력·무책임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반면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야당에서는 이 지점을 공략해 '세월호 심판론' '정권 심판론' 등을 주장하며 공세에 나서고 있다.
 

여야가 '조용한 총력전'을 펼치며 정부와 공동운명체인 여당 내부에서는 지방선거의 핵심지역인 수도권에서 전패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조사에서는 울산, 경남, 경북, 제주 등 4곳만 이기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로 10~20%의 표심이 새정치민주연합 쪽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 원로정치인은 "야당이 꼭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며 "세월호 정국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못 하고 납작 엎드려 있던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감도 크기 때문에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투표율 향방
'앵그리맘' 좌우

선거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투표율의 향방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이 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 투표율이 낮아질 경우 지지자들의 결집도가 높은 여당이 되레 유리해질 수도 있다.


다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사전투표'가 실시되는 만큼 5월30, 31일, 6월4일 등 총 3번의 투표 기회가 있어 투표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통상적으로 투표율이 높아질 경우 야당이 유리해진다고 보고 있다.

한 여론조사전문가는 "지금까지 투표율과 관련한 정치권의 상식이 대부분 통했다"며 "야당의 승리로 끝났던 지난 지방선거 투표율이 54.5%였던 점을 감안해 50% 이상의 투표율이 나온다면 야당이 유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가장 주목되는 세대는 40대 여성이다. 세월호 참사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단원고 학생들(250명 사망·실종) 또래를 자녀로 둔 '40대 앵그리맘'들의 분노가 어떻게, 어디로 표출되느냐에 따라 이번 선거의 판도가 좌우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나와 학생들을 구하지 못한 정부·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표를 던질 경우 높아지는 투표율과 함께 야당의 승리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로 여당에서 이탈한 중도층과 무당층이 최후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도 관심거리다.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뒤 새정치연합으로도 흡수되지 않은 이들 무당층이 얼마나 투표에 참여할지, 어느 쪽을 지지할지는 투표 막판의 주요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역대 최저 투표율이 나올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이반과 함께 정치권 전체에 등을 돌린 무당층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강화시켰다"며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져 투표율 저하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국민담화 후속
인적쇄신 변수

지난 22일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에 맞춰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인적쇄신도 선거의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앞선 대국민담화의 후속 격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새 총리 내정자로 지명했다. 또한 야권이 꾸준히 해임을 촉구해왔던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사표도 수리했다.

개각은 신임 총리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이후인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새 국정원장과 안보실장은 조만간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여당에서는 청와대의 인적쇄신 카드가 지방선거에서 반전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 내정자를 시작으로 참신하고 개혁적인 인물을 지속적으로 수혈할 경우 분위기 반전을 모색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유임된 것을 문제 삼으면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어 인적쇄신의 효과가 상쇄되거나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통령·정당
지지율 변수

박 대통령의 지지율과 정당지지율도 관건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 60%가 넘는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박 대통령은 참사 이후 정부의 허술한 대응과 책임 회피가 이어지며 지지율이 40%대까지 추락했다. 


야권이 제기하고 있는 '세월호 심판론'이 먹히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진 채로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 또 '깜깜이 선거'가 예고되는 만큼 유권자들은 기호, 즉 정당을 보고 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당지지율 추이도 주목된다.

'깜깜이 선거', 사전투표제 투표율 오리무중
김기춘 비켜간 인적쇄신 카드…효과는 의문

세월호 참사 이후 추락하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과 함께 새누리당의 지지율도 하락했으나, 그렇다고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상승한 것은 아니다. 대신 부동층이 대거 늘어났다. 하지만 올초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던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좁혀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이러한 기류가 이어질 경우 야당에 유리한 선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지난 19~22일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가 48%, 부정평가가 41%로 나타났다. 정당지지율은 새누리당 39%, 새정치연합 25%, 무당층 31%로 두 정당의 격차는 14%p로 조사됐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비해 새누리당 지지도는 4~5%p, 새정치연합은 1~2%p 가량 낮아진 것이다(조사대상 : 전국 성인남녀 1204명, 조사방식 : 전화조사원 인터뷰,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2.8%p, 응답률 : 18%).

17개 광역시·도 가운데서는 수도권, 부산·광주지역 선거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지방선거 '빅3'로 불리는 서울, 경기도, 인천 선거는 역대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가늠자 역할을 했다.


당초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이 두 지역에서 이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참사 이후 정부·여당을 향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며 기류가 급변했다.

수도권, 부산·광주
지방선거 가늠자

경기도는 당초 새누리당 승리(남경필 후보)가 예상됐던 지역이지만 최근 새정치연합(김진표 후보)의 추격세가 매섭다. 인천에서는 박빙 양상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새정치연합 송영길 인천시장이 다소 우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에서도 박원순 시장이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많다.

부산은 무소속 오거돈 후보가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며 새누리당 서병수 후보와 박빙을 이룰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어 새누리당이 텃밭인 부산이 흔들릴지 주목된다. 

광주에서는 안철수 공동대표의 '계파 지분 챙기기'라는 비판이 거셌던 새정치연합 윤장현 후보가 얼마나 선전할지가 관심이다. 안 대표의 전략공천에 반발해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강운태 광주시장, 이용섭 후보가 무소속 단일후보를 낼 예정이어서 윤 후보의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된다.

 

<carpediem@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