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문재인 '엇갈린' 정치적 명운

추락하는 안철수, 비상하는 문재인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손꼽히는 '안철수-문재인'의 정치적 운명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야권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다투며 첫 인연을 악연으로 맺은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한 지붕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엇갈린 이들의 인연은 한 식구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틀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지난 12~16일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인 정몽준 의원이 1위(21.1%),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2위(14.2%), 안철수 공동대표가 3위(12.3%)를 차지했다. 지난 대선 이후 리얼미터 조사에서 문 의원이 안 대표를 제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조사대상 : 전국 성인남녀 2535명, 조사방식 : 전화면접 및 자동응답전화 유무선 RDD 병행,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1.9%p, 응답률 : 9.2%).

외면 받는 '안'

18대 대선의 패장인 문 의원이 1년6개월여 만에 다시 야권 대권후보 1위까지 오른 것은 경쟁상대인 안 대표의 날개 없는 추락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4월 재보선을 통해 제도권 정치에 들어온 안 대표는 정치입문 1년 만에 제1야당 공동대표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지속적인 헛발질로 꾸준히 지지율을 까먹었다. 여권으로부터 "안철수의 새정치는 철수 정치냐"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그가 던진 정치적 승부수는 번번이 철회됐다.

"100년 가는 정당(신당)을 만들 것이다" "민주당과의 연대는 패배주의적 발상이고 야합이다"(2014년 1월)라는 확고한 발언과 함께 야심차게 준비했던 구 새정치연합 창당 준비는 지난 3월 민주당과의 통합신당 창당(새정치민주연합)으로 귀결됐다.


통합과정에서 5대5로 지분을 나눠 갖기로 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던 안 대표는 지난 4월 통합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기초단체 무공천 약속을 안팎의 거센 비판에 밀려 철회하며 또 한 번 약속을 뒤집었다.

대신 '개혁공천' 카드로 리더십의 상처를 돌파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광주시장 후보(윤장현) 낙하산 전략공천의 배후로 지목되며 '지분 챙기기' 구정치만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새정치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던 안 대표의 정치적 승부수들이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되면서 안 대표의 새정치는 빛이 바랬다.

특히 민주화의 상징적 도시이자 새정치연합의 텃밭인 광주에 내리 꽃은 전략공천은 경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점에서 거센 역풍이 불고 있다. 안 대표는 지난 17일 광주의 한 방송사 현관에서 전략공천에 반발하는 시민 수십명과 맞닥뜨려 달걀세례를 받는 수모를 당했고, 차안에서 50여분간 갇혀있기도 했다.

문제는 지방선거 이후가 더 걱정된다는 점이다. 어렵게 전력공천한 윤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강운태 광주시장, 이용섭 전 의원 간 무소속단일후보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구주류로 밀려난 친노(친노무현)세력이 호시탐탐 재도약의 기회를 노리고 있어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말뿐인 50%의 지분을 가진 안 대표가 당내 최대계파인 친노의 역습을 안정적으로 방어할지도 미지수다.

이러는 사이 안 대표의 지지율은 추락을 거듭했고, 그의 곁에 모여들었던 정치인들은 하나둘씩 떠나고 있다.


안-반복된 헛발질에 야권 차기 대권주자 선두 반납
문-반사이익 속 박 대통령과 대립각 세우며 재부상

반면 문 의원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형국이다. 문 의원은 안 대표 추락의 반사이익과 함께 세월호 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확실한 대립각을 세우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SNS를 통해 참사를 야기한 정부의 무능과 무능력을 질타했던 문 의원은 지난 20일 '특별성명'을 통해 박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성명에서 그는 전날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실망감만 줬다"며 "바뀌어야 할 것은 대통령의 국정철학, 국정운영 기조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이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무너졌다"며 "대통령이 사과를 하는 이면에서 심각한 불통과 억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확실한 대립각을 세웠다.

안 대표 등 당 지도부는 공식적 대청·대여 기조로 정권심판론이 아닌 세월호심판론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야권의 지난 대선후보이자, 당내 구주류의 구심격인 문 의원의 정권심판론 제기에 곤혹스러운 눈치다.

새정치연합 핵심관계자는 "대선후보였던 문 의원의 권위는 인정하지만 당의 기조는 정권심판론보다는 세월호심판론에 무게가 실려 있다"며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분이 이렇게 당의 기조에 대치되는 마이웨이 행보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의원이 세월호 정국에서 '박근혜 대항마'로서 입지를 다지는 한편, 당내 차기 대권 경쟁자인 안 대표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주목받는 '문'

두 사람의 엇갈린 관계는 향후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문 의원은 "역할을 회피하지 않겠다"며 차기 대선 재도전 의사를 밝힌 바 있고, 안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도 대권이라는 점에서 추후 두 사람의 정면충돌은 불가피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복원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며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패하거나, 안 대표가 전략공천 한 윤 후보가 떨어지거나 한다면 안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반면 문 의원은 다시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재인-안철수, 앙금만 남긴 단독회동 역사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와 문재인 의원의 첫 만남은 지난 2012년 11월6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백범기념관에서 이뤄졌다. 18대 대선 열기가 달아오르던 당시 이들은 첫 단독회동을 갖고 야권후보 단일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곧바로 단일화 룰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으며 악연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선거일이 다가오며 다급해진 이들은 같은 달 18일과 22일 두 번째, 세 번째 회동을 차례로 갖고 단일화에 대한 담판을 지으려 했으나,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결국 세 번째 회동 직후 안 후보가 돌연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며 자연스레 문 후보가 야권단일후보가 됐다. 당시 두 사람 사이의 패인 갈등의 골은 후보직을 사퇴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돕지 않고 2주가량 잠행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대선 투표일을 2주가량 앞두고 이들은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에 떠밀려 극적으로 다시 손을 잡았지만,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갈등의 골은 안 후보의 투표 직후 미국 출국으로 이어졌다.

지난 3월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새정치연합이라는 한 배를 타게 됐다. 하지만 창당대회 직전 이뤄진 다섯 번째 단독회동을 앞두고 안 후보의 국정자문역을 맡았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문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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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