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합당할 때는 5대5 지분을 약속했지만 결국 100대0으로 끝났다." 이번 지방선거 공천결과에 대한 새정치계 인사들의 평가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구 민주당계(이하 민주계)의 텃새를 넘지 못했다. 지난 16일 마감된 지방선거 후보등록 결과는 새정치계에 대한 공천학살에 가까웠다. 하지만 민주계의 대반격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라는 분석이다.
'100대0'
드러난 본색
새정치계의 한 인사는 이번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 대해 "합당 할 때만 해도 5:5 지분 이야기까지 나오지 않았나? 물론 당의 규모 자체가 다르니 현실적으로 5:5는 무리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민주계는 새정치계 인물들이 한두 군데 공천 받는 것도 못마땅해서 악다구니를 쓰며 덤비는 격"이었다며 "마치 자기는 음식을 잔뜩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 입에 겨우 들어간 빵 한 조각까지 빼앗아 먹으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새정치연합의 공천과정은 아귀다툼이었다. 합당 당시 지방선거 공천에도 5:5지분이 적용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민주계와 새정치계 인사들은 하나 같이 "민주계와 새정치계가 어디 있나? 합당했으니 모두 한 식구"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되자 민주계와 새정치계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됐다. 공정한 경선은 물 건너가고 한 명이라도 더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아귀다툼만 남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새정치연합이 약속했던 개혁공천은 없던 일이 됐다.
창당 때는 5대5, 결국 '100대0'?
민주계의 역습, 급 후퇴한 새정치
민주계의 반격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새정치연합의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에서 안철수 대표 측 인사들은 줄줄이 탈락했다. 전남의 이석형 전 함평군수, 대전의 송용호 전 충남대 총장,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등은 모두 민주계 인사에게 밀려 공천 탈락했다.
심지어 안 대표가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강봉균 전 장관마저도 전북도지사 경선에서 송하진 전 전주시장에게 패했다. 그나마 전략공천으로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후보를 챙기지 않았다면 광역단체장 경선에서 새정치계 후보들은 전멸했을 것이다.
공천학살
도로민주당
한 새정치계 인사는 "강봉균 전 장관의 경우 전북지사 출마를 결심하자 민주당에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전 장관을 차출하려 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중량감이 있는 인사였는데 정 전 장관과 비교하면 무명에 가까운 송하진 전 시장에게 패했다. 사실상 민주당의 텃새와 조직력에 패한 것"이라며 "차라리 합당하지 않고 창당 후 3자 구도로 갔더라면 새정치계 인사 중 당선될 인물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텃새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고 비판했다.
안 대표의 대표적인 지지세력인 옛 새정치연합 경기도당 발기인 100여명은 지난 15일 "옛 민주계가 불공정한 방식으로 공천을 진행해 새정치계 후보들을 공천학살했다"면서 당 지도부에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계의 반격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평가다. 민주계 인사들은 사실상 공천학살에 가까운 결과를 얻고도 몇몇 지역에서 실시된 안 대표 측 인물의 전략공천을 이유로 안 대표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의원 총회에서 새정치연합 정청래 의원은 "안철수 공동대표의 '공천 만행'을 규탄한다"면서 "제가 선봉에 서서 당 대표 퇴진운동까지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서울지역 국회의원 20명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당 대표 퇴진 투쟁에 나서겠다고 얘기하자 그동안 말렸던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동참하겠다고 얘기했다"며 "내가 퇴진 얘기하면 만류하곤 했는데 1명도 만류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수석대변인이자 전남도당 위원장인 이윤석 의원도 안철수 공동대표에게 "이럴 거면 당을 떠나라"고 말했다. 이를 듣고 안 대표의 비서실장인 문병호 의원이 "이 의원, 당신이 당대표야?"라고 고함을 치자 전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김승남 의원은 단상 쪽으로 뛰어나와 문 의원에게 "왜 말을 막아!"라고 소리치며 항의했다.
이외에도 이날 의총에서는 안 대표에 대한 성토가 2시간 넘게 이어졌다. 특히 지도부의 일원인 수석대변인이 공개석상에서 당대표에게 당을 떠나라고 비난한 것은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박지원 의원은 오히려 이 의원을 두둔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런 마음들이 우리 130명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공통된) 마음이었다"며 안 대표 퇴진론에 힘을 보탰다. 이 의원은 다음 날 대변인직을 사퇴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계 한 인사는 "공천학살을 당한 것은 우리인데 고작 몇 군데 전략공천이 이뤄진 것을 가지고 안 대표를 흔들고 있다"며 "이 정도가 지분나누기라면 민주당은 합당할 때 새정치 쪽에 단 한 곳도 내줄 생각이 없었던 거냐? 지방선거가 끝나면 차라리 독자신당을 만들어 7월 재보선에서 제대로 붙어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비판했다.
윤장현 부메랑
안철수 피할까?
특히 안 대표가 전략공천한 광주 윤장현 후보는 안 대표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서는 윤 후보의 당선 여부가 사실상 안 대표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윤 후보는 정식으로 공천을 받긴 했지만 인지도가 낮고 지역 내 조직도 전무하다.
실제로 윤 후보는 현재 무소속 이용섭, 강운태 후보에게 삼자대결에서조차 지지율이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용섭, 강운태 후보가 단일화까지 추진하고 있는 만큼 아무리 새정치연합의 텃밭인 광주라고 해도 윤 후보의 당선을 장담할 수는 없다. 만약 안 대표가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전략 공천한 윤 후보가 광주에서 패한다면 안 대표는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새정치계에서는 최근 민주계 인사들이 박영선 의원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로 선출한 것도 안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 당시 안철수 대표 측이 지원한 이종걸 의원은 21표를 얻는 데 그쳐 1차 투표에서 꼴찌를 차지했다.
공천학살 당한 새정치계 "억울하다"
똘똘 뭉친 민주계, 더 작아진 안철수
법사위원장인 박 원내대표는 지난해 당 지도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키면서까지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을 반대했을 정도로 강경파로 꼽히는 인물이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와도 여러 사안들에서 대립각을 세워왔다.
또 박 원내대표는 초·재선 강경파 그룹이 결성한 '더 좋은 미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더 좋은 미래 소속 의원들은 여야 협상과정에서 온건한 모습을 보였던 당 지도부의 행보에 사사건건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던 모임이다.
이들은 지난 2월 당시 전병헌 원내대표의 조기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 원내대표가 이번에 선출된 것도 결국 온건파인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과 강한 야성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지지가 결합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박 원내대표의 선출로 중도 개혁을 표방하는 안 대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좁아진 입지
죽어가는 당
게다가 박 원내대표 취임과 동시에 꾸려진 원내 지도부를 살펴보면 더 좋은 미래 소속 의원들과 비교적 강경파로 꼽히는 초재선 의원들이 대거 포함돼 안 대표를 긴장시킨다. 원내 대변인에는 유은혜, 박범계 의원이 임명됐고, 원내 부대표단에는 남윤인순, 진선미, 김승남, 박완주, 김광진 의원 등이 포함됐다.
이중 김승남 의원은 앞서 언급된 의원총회에서 문병호 대표비서실장과 언쟁을 벌인 인물이고, 김광진 의원은 SNS상에서 안 대표에 대한 적나라한 욕설이 담긴 게시물에 호응을 보내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새정치계 한 인사는 "안철수 대표는 새정치연합의 대표브랜드다. 안철수가 살아야 새정치연합도 사는 것"이라며 "당장 공천에 눈이 멀어 안 대표를 이렇게 공격하면 다 같이 죽자는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민주계의 이기주의가 당을 죽이고 있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