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정부에 쓴소리한 미술평론가 정준모

"돈 주는 걸 정책이라 해선 안 되죠"

[일요시사=사회팀] 미술은 시각행위다.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듯 그래서 심장이 뛰듯 그림은 보이는 것이고, 반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림을 다른 맥락에서 본다. 그들에게 그림은 사치품이며, 때로는 비자금이다. 그 틈에는 '인간'이 없다. 인간이 배제된 이데올로기만 존재한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문화를 화두로 이야기를 꺼냈다. 문화가 말라버린 사회. 그것은 '인간됨'을 잃어버린 사회나 다름없다고 했다. 우리는 산업화란 미명 하에 '한강의 르네상스'를 이뤘지만 역설적이게도 본질적 의미의 '르네상스'는 도외시했다. 정 실장은 "이제라도 문화정책 전반을 손봐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예술은 종교와 결합했다. 성직자 집단은 예술가를 지원했고, 예술가는 미술을 포함한 건축·도예 등의 분야에서 각각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미술품은 공공재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예술가를 후견하는 집단은 성직자가 아닌 부호가 됐다. 이들은 화가의 그림을 사들이고, 미술관과 같은 전시공간을 만듦으로써 '문화'를 형성했다.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이들의 취향은 '공공의 장'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득이다.

부호가 수집한 미술품은 미술관이란 목적지에 도달하면서 특정계급의 사유물이 아닌 범의의 '공공재'가 된다. 정 실장은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슈퍼리치들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미술품 수집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유병언 일가 수사 과정에서 미술품은 또 다시 비자금으로 둔갑했다. 전재국씨의 미술품 소장이 탈세를 위한 수단으로 비춰진 것처럼 말이다.


가장 큰 책임은 이를 확대·재생산한 집단들에 있다. 언론도 그중 하나다. 정 실장은 "매번 미술계를 파렴치한 것처럼 매도해 놓고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며 "언론도 신속하기만 했지 정확성은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전두환 일가가 은닉한 그림이 수백억원대라는 보도가 있었죠? 그런데 정작 시장에 나오니까 얼마였습니까? 73억원인가 그랬죠? 그럼 잘못된 보도에 대해 누군가는 해명을 했어야 했는데 아무도 안 했습니다. 증거를 갖고 말했어야죠. 이번에도 똑같이 유대균씨가 수집한 미술품이 수백억원대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글쎄요. 과연 몇 점이나 갖고 있을까요."

정 실장은 순수예술이 대중예술에 비해 사회적 대접은 박하면서도 책임은 많이 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독일의 경우는 작가마다 후원회가 있는데 후원자 각자의 취향에 맞춰 마음에 드는 작가를 단체로 후원하는 문화가 있다. 이는 이제 갓 미술계에 발을 들인 작가가 시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도태되는 일을 방지하며, 궁극적으로 '문화적 종 다양성' 확보에 기여한다. 또 정부는 이들의 후원행위에 세제감면 혜택을 준다. 정부가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효과적으로 예술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앙에서 세금을 거두면 입법부로 편성권이 갔다가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쳐 다시 문화예술위원회(이하 위원회)로 예산이 분배되고 이 돈이 다시 민간에 투입되는 행정낭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관리 비용은 일차적인 문제고요.

더 큰 문제는 돈을 쥐고 있는 위원회에 '권력'이 생긴다는 거예요. 한정된 예산을 타내기 위해 문화·예술단체가 이른바 '관피아'에 목을 매야 하는 구조죠. 또 정부는 전시의 '질'은 뒷전이고 오직 관람객 '수'로 예술을 계량화합니다. 장기적인 정책은 없고 당장 돈 되는 사업만 하겠다는 거죠."

'미술품=비자금' 극히 일부 사례
경제성장 과정서 문화수립 뒷전

정 실장은 "박정희정부 때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생긴 최초이자 마지막 문화정책"이라며 씁쓸해했다. 당시 정부 정책을 살펴보면 '민족문화창달'이라는 기조 아래 광화문을 복원하고, 동상을 세우며 역사화를 보급하는 등 나름의 계획적인 예술 지원이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월남전에 파견됐던 '종군화가단'이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전두환정부 때 생긴 '국풍81'의 포맷이 지금도 쓰이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철학 없이 '돈'을 수단으로 문화를 육성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돈 주는 걸 정책이라 해서는 안 되죠.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시스템이 없으니까 경제는 선진국인데 문화는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문 것 아닙니까. 돈보다는 문화적인 혜택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고, 국민 스스로가 문화적 자존감을 갖게 해야 합니다."

'진짜' 정책 절실

정 실장은 지난 2012년 국내 저명 예술단체 등과 함께 '미술품 기부에 대한 세제혜택'을 골자로 하는 입법을 추진한 일이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서미갤러리 사건 등으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법제화에 반대했다. 그런데 당시 미술계 입장은 "금고 안에 있는 미술품을 공공의 영역으로 꺼내야 한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도적 보완 없이 구호만 외친다면 결국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문화 애호가가 사회적 존경을 받고 그가 환원한 작품들을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일. 우리에게는 너무나 먼 미래의 일일까.

 

<angeli@ilyosisa.co.kr>

 

[정준모는?]

▲중앙대 졸업, 홍익대 석사 (미술학)
▲광주비엔날레(1995) 전시부장 겸 대변인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전 덕수궁 미술관장
▲전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2011) 총감독
▲국민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논문 <미술품은 땅인가> <제3의 미학, 새로운 출구> <한국의 모던이즘, 모더니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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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