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수상한 전략공천' 막전막후

'통곡의 땅' 안산은 지금 전략공천으로 '쑥대밭'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이게 새정치입니까?"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의 전략공천 파문을 취재하기 위해 경기도 안산을 방문한 취재기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갑작스런 전략공천 결정으로 지역은 그야말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가뜩이나 세월호 침몰 사고로 비통에 빠진 안산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새정치연합의 수상한 전략공천 막전막후를 들여다봤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이 '광주-안산' 전략공천 파문으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지난 2일과 3일 새정치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광주광역시장 후보에 윤장현 전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 안산시장 후보에 제종길 전 국회의원을 잇달아 전략공천했다.

거세진 반발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러 연휴가 시작되는 날 전략공천을 발표하는 '꼼수'를 부렸지만 당 지도부의 바람과는 달리 후폭풍은 거셌다. 전략공천 사실이 발표되자 경쟁후보들은 격렬히 항의했다. 일부 후보자의 지지자들은 서울로 상경해 당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기도 했다. 특히 야권의 안방 격인 광주시장 후보와 세월호 참사 피해지역인 안산시장 후보를 전략공천했다는 점에서 당 안팎의 반발은 더욱 거셌다.

안산이 지역구인 새정치연합 김영환 의원은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참석한 의원총회에서 안산시장 전략공천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고, 정청래 의원은 당대표 퇴진운동까지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두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일부 의원들은 "잘했어!"라며 맞장구를 쳤다.

또 경쟁후보들과 그들을 따르던 당원들까지 집단 탈당하는 등 후폭풍이 더욱 거세지자 당 지도부는 결국 지난 4일 광주시장과 안산시장을 마지막으로 전략공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각 시·도당에는 경선 실시 방침을 내려 보냈다. 고육지책이었다. 이 때문에 기초단체장 7곳에서 검토되던 여성 전략공천도 전면 백지화됐다. 새정치가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를 결정하며 대신 내세웠던 개혁공천은 없던 일이 됐다.

사실 광주의 경우는 전략공천이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17개 광역단체장 후보 중 현재 새정치계 인물이 단 한 명도 낙점받지 못한 상황에서 최소한 광주 한 곳 정도는 민주당계가 양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광역단체장 후보를 전부 민주당계로 선출하게 되면 새정치가 '도로 민주당' 프레임에 갇히게 될 우려 때문이었다. 전략공천이 실시되기 전 지역 국회의원들이 새정치계 윤장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안산의 경우는 전략공천에 대한 미스터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우선 제종길 후보는 안철수계도 아닐뿐더러 정치신인도 아니다. 제 후보는 1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의원 임기가 끝난 뒤엔 오랫동안 정치권을 떠나있던 인물이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제 후보를 전략공천한 이유에 대해 "중소공단이 모여 있는 안산의 특성상 국회 환경노동위원을 역임하고 지역에서 노동 관련 활동을 오래 해온 제 후보가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개혁공천'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 후보는 국회의원 시절 환경노동위원을 역임했을 뿐 노동전문가는 아니다. 당 지도부의 설명은 명분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다수 지역주민 "전략공천 잘못됐다"
세월호 참사 터진 곳에서 '위험한 도박'


중앙당에서는 또 현 김철민 안산시장의 각종 의혹들을 나열하며 개혁공천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물론 김 시장이 전혀 허물이 없는 후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략공천을 실시해야 할 만큼 결정적인 허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지역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지역주민은 "공산주의나 다름없다"고 일갈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안산시장 후보를 전략공천하기 전에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과도 전혀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의 경우에도 전략공천은 했지만 최소한 지역 국회의원들에게는 먼저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구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역신문인 <안산시민신문>에 따르면 안산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이번 전략공천 결정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잘못한 결정(52.7%)'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잘한 결정(20.4%)'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응답은 26.9%로 집계됐다. 



게다가 안산은 세월호 사태로 많은 학생이 사망한 단원고가 소재해 있는 도시다. 안산이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전략공천으로 잡음이 생긴다면 전체적인 선거판세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당 지도부가 왜 하필 안산에서 무리한 전략공천을 실시했을까?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게 지역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당장 안산지역 경쟁후보들은 김-안 공동대표가 세월호 참사로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안산시민들의 민의를 유린했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뭐가 그리 급했던 것인지, 뭐가 그리 중요했던 것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공천이라는 주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오는 것이 '음모론'이다. 가장 먼저 김한길 대표의 지분 챙기기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제 후보는 과거 '민생모임(2007년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의원들의 계파 모임 중 하나)'을 함께한 문병호, 정성호, 천정배 등과 같은 인사들과 가까운 사람"이라며 "그렇게 보면 신주류니까 김한길 대표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오비이락 격인지는 모르겠지만 17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 후 그동안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던 제 후보는 김한길 대표가 민주당 대표에 오른 뒤 갑자기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역정가에 밝은 한 인사는 "제 후보는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에는 사실상 은퇴수순을 밟았던 인물이다. 한국해양연구소 연구원이었는데 평소 해양생태 연구하러 다니고 강연하러 다니고 늘 그렇게 다녔다. 그런데 지난 연말부터 갑자기 안산시장 출마설이 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출마를 앞두고 김한길 대표와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정황이다.

김한길-안철수 당 지도부를 흔들기 위한 당 일각의 음모라는 이야기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누군가 두 사람을 전략공천해도 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당 지도부에 준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두 사람(김한길-안철수)의 판단 실수든지, 누군가의 함정에 걸려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흔들린 리더십

실제로 광주-안산 전략공천 이후엔 마치 짠 듯이 당내 반발이 이어졌고 예상됐던 전략공천은 전면 중단됐다. 그 결과 광역단체장 후보 중 광주 윤장현 후보를 제외하고는 새정치계 인물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계 한 인사는 "안철수의 사람심기라고 하지만 역대 당대표 중 선거에서 이정도도 사람을 심지 않은 경우가 있었나? 특히 새정치계 사람들은 조직과 인지도 면에서 민주당계 사람들과 상대가 되지 않는데 무조건 경선하자고 하니까 공천학살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도왔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이 끝난 후 친박계가 공천학살을 당하니까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했는데, 그야말로 나도 속고, 국민도 속고 안철수도 속은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빠져있던 '통곡의 땅' 안산에서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미스터리한 전략공천의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mi737@ilyosisa.co.kr



<미니 인터뷰> 김철민 안산시장 
"밀실공천 용납 못해, 끝까지 완주할 것"

- 이번 공천심사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나?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종길 후보는 지난 17대 국회의원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하셨던 분이다. 지역에서 별로 활동도 안 하시고 해양연구원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생업에만 열중해왔던 사람이다. 제가 진도에서 피해주민들과 슬픔을 같이 하며 다독거리는 사이에 그런 분을 갑자기 개혁공천이라며 내세웠다. 누가 보더라도 온당치가 않은 처사다.

- 이번 전략공천으로 세월호 사태 수습에는 영향은 없었나?
▲ 아무래도 상중에 상주를 바꾼 셈이니까 영향은 있지 않겠나? 세월호 사태 중 이런 잡음이 발생해 피해주민들을 만나 뵙기도 송구스럽다. 하지만 사고대책시스템은 이미 완벽하게 구축해놨고, 안산시 공직자들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큰 공백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 전략공천 사실을 발표하면서 김철민 시장의 비리의혹도 거론됐는데.
▲ 공천심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전 자격심사위원회의 자격심사를 거쳤는데 저는 한 군데도 걸리지 않았다. 100% 법률적으로 하자가 없었다. 그런데 후보를 결정지으면서는 마치 제가 부정부패가 있는 것처럼 호도해서 그런 명분으로 저를 떨어트렸다. 그렇다면 최소한 의혹에 대해 소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맞는데 소명기회도 주지 않았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후보를 선정하기 위해 떠도는 유언비어들을 마치 사실인양 취급하고, 그것을 빌미로 저를 탈락시킨 것이다.

- 그렇다면 김 시장께서 공천에서 탈락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제가 당 수뇌부와 친하지 않고 당 수뇌부에 고개 숙이지 않고 이런 것 때문에 제가 공천에서 탈락되었다고 본다. 최소한 현직 단체장을 바꿀 때는 명분은 만들어 줘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정치하실 분들은 앞으로 매일 중앙당에 가서 실세들을 알현해야 미래가 보장되는 것 아니냐? 참담한 심정이다.

- 이런 항의에 대해 중앙당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 중앙당 관계자가 사석에서 일정부분 이번 공천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공당인 만큼 공천을 취소하면 지도부의 위상이 흔들리기 때문에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 야권 무소속 후보단일화 가능성은 열려있나? 이대로라면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승리할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대의를 위해 일단 양보할 생각은 없나?
▲ 단일화 방식은 아직 논의된 것이 없지만 검토는 하고 있다. 현재 제종길 후보와 저의 지지율을 비교하면 제가 더 앞서 나가고 있다. 제가 사퇴해 제 후보와 새누리당 후보가 1:1 구도가 된다고 해도 제 후보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대의를 위해 양보하더라도 제 후보가 양보해야 한다.



안산=김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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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