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세월호 참사로 중단됐던 지방선거가 본격 재개되면서 여야의 공천 작업도 속도가 붙고 있다. 그런데 공천 신청자들 중에는 무슨 염치와 배짱으로 공천을 신청한 것인지 궁금한 '문제의 후보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공천심사까지 통과한 것으로 알려져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시민들의 대표를 뽑는 게 아니라 범죄자들의 대표를 뽑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일요시사>가 문제의 후보들을 살펴봤다.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으로 곤혹을 치렀던 여야는 이번 지방선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제시하고 철저한 개혁공천을 실시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공천 신청자들 중에는 시민의 대표를 하고 싶은 건지, 범죄자들의 대표를 하고 싶은 건지 헷갈릴 정도의 후보자들도 난립하고 있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각 정당의 공천심사까지 통과한 것으로 알려져 시민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고무줄 공천
우선 호남의 한 군 지역에서는 전과 4범의 군수 예비후보자가 전과자 원천 배제 원칙을 내세운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 중앙당 후보자격심사를 통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후보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상습도박판을 벌인 혐의로 상당액의 벌금을 냈고, 5년 전에는 교통사고를 일으켜 피해자를 뇌사상태에 빠뜨렸다.
또 지난 2010년에는 술집에서 난동을 피워 기물파손 등으로 벌금형을 받았고, 2년 전에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나 새민련 측은 전과가 모두 ‘벌금형’이라 공천 배제 기준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인천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침통해하는 가운데 새민련 광역의원 후보가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해당 후보자는 민주당 인천시당에서 특별위원장을 지낸 인물로 지방선거 경선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 후보자의 후보직은 유지됐다. 새민련 측은 음주운전은 3회 이상 적발돼야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후보직을 박탈당한다고 해명했다.
음주운전과 관련해서는 새누리당도 할 말이 없다. 새누리당은 당초 음주운전 경력 후보자를 경선에서 원천 배제하고자 했으나 황당하게도 공천신청자 상당수가 음주운전 경력이 있어 음주운전 3진 아웃을 제외하고는 구제하는 쪽으로 최근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소속으로 광역의원에 출마한 모 후보자는 공천심사 과정에서 음주운전과 관련된 면접관의 질문에 공천신청서에 작성한 과거 음주운전 기록이 아닌 최근에 단속된 내용에 대해 해명을 해 상습 음주운전이 들통 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새누리당 경북도당에서는 도덕적 흠결이 있는 후보들이 대거 1차 컷오프를 통과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도의원에 출마한 모 후보는 최근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나 단속되고 폭행으로 벌금 300만원을 냈지만 공천 심사를 통과했다.
포항 시의원에 출마한 모 후보도 사기혐의로 300만원의 벌금을 낸 경력이 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 다른 후보자도 지난 2010년 새누리당 경선에 불복해 탈당했다가 지난 2012년에 다시 입당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도박으로 벌금 100만원을 냈지만 컷오프를 통과했다.
이처럼 포항지역은 출마자들의 상당수가 도박 전과, 사기 전과 등의 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무난히 컷오프를 통과해 최악의 공천 심사로 손꼽히고 있다.
"무슨 염치로 공천 신청까지?"
음주운전은 기본, 전과는 옵션
새누리당 부산시당의 경우는 지방선거 후보로 지원한 400여명 중 벌금 100만원 이상의 전과를 가진 후보자가 100명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들은 음주운전은 기본이고 사기, 폭력 전과 5범에 많게는 전과 10범의 후보자도 있었다.
새누리당의 한 후보자는 지난해 현직 구의원 재임 시절 아내가 운영하던 사회복지시설이 국고보조금 횡령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아내의 일이라고 선을 그을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이 시설은 이후 해당 후보자의 친여동생 명의로 다시 개업됐고, 부인은 종사원으로 등록했다.
새누리당 대구시의원 출마자는 현직 시의원 재임 시 구청 우편물을 자신의 사설우체국을 통해 발송해 도덕성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모 지역에서는 살인미수 전력이 있는 후보가 컷오프를 통과해 논란이 일었다. 모 시의원 예비후보는 방화 및 살인미수, 모 구청장 후보는 폭력 및 다수의 전과기록이 있었지만 컷오프에 통과했다. 심지어 충남 서산시에서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모 후보자가 자신을 성추행했다며 피해여성이 직접 기자회견을 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해당 후보자는 최종 공천됐다.
새누리당 경선 관리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는 강화군수 후보경선이다. 4월 초 강화군수선거 컷오프에서 새누리당은 현역 강화군수를 탈락시켰다. 해당 군수는 사기와 공갈혐의로 금고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경선 참여 기회라도 달라는 군수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이후 돈봉투 살포사건이 터졌다. 새누리당의 봐주기식 경선관리가 더 불미스런 사고로 이어진 셈이다.
새민련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전주시장 출마에 나선 한 후보는 지난 1982년 폭력행위로 징역 1년6개월의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사실이 새롭게 알려졌고, 익산시장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 역시 폭력 전과가 뒤늦게 드러났다. 또 다른 후보는 회사 운영 과정에서 사기죄로 거액의 추징금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전력이 드러났다.
경기 안산에서는 도의원 출마를 준비하던 한 후보자가 전과기록을 조회하다 재물 손괴와 상해 등의 벌금을 미납한 것으로 드러나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해당 후보자는 벌금을 미납해 수배된 상태였다. 해당 후보자는 체포 직후에야 벌금을 완납해 석방됐다.
뻔뻔한 후보
한편 이처럼 문제 후보들이 속출하자 당초 공천과정에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겠다던 여야는 슬그머니 약속을 철회하려는 모양새다. 새민련 대전시당은 '부적격 기준에 해당하는 후보 중 공천관리위원회의 출석 2/3 이상의 찬성으로 사유를 인정하는 때에는 예외로 함'이라는 단서조항을 마련했고, 새누리당 인천시당도 전과자라고 해서 모두 공천하지 않게 되면 당선 가능성에서 야당 후보에 뒤질 수도 있다면서 일부 후보자에 대해서는 선별 처리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각 정당들의 고무줄 공천 기준"이라며 "지역 의원이나 중앙당의 입맛에 따라 문제 후보들도 공천 심사를 통과하고 있다. 무공천으로 이러한 폐해를 없애겠다던 다짐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