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전략공천' 거센 후폭풍

김한길·안철수 ‘그러다 잘 익은 떡시루 엎을라'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최근 광주(윤장현), 안산(제종길) 두 지역에 전략공천을 결정한 이후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김-안 공동대표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전략공천하며 경선조차 없이 낙천한 상대후보들이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예고하고 나선 것이다. 게다가 탈당한 후보들을 지지하던 당원들의 탈당 도미노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화들짝 놀란 당 지도부는 뒤늦게 이번 전략공천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나섰지만, 되레 파문은 더 커져만 가는 형국이다.

새민련의 광주·안산 전략공천 결정이 심각한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새민련은 지난 2일 6·4지방선거 광주시장 후보로 안철수 공동대표의 측근인 윤장현 전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을 전략공천 했다. 또 다음날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수백명의 학생들이 희생되며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경기 안산의 시장후보로 김한길 공동대표의 측근인 제종길 전 의원을 전략공천 했다. 이처럼 두 공동대표의 측근들이 사이좋게 전략공천 혜택을 받으며 무임승차하자 당 안팎에서는 '나눠먹기식 자기사람 심기가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략공천 역풍

특히 광주에서는 예비후보였던 강운태 광주시장, 이용섭 의원이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이들을 지지하는 당원 250여명도 집단으로 탈당했다. "밀실야합 공천" "낙하산 공천" "안철수 지분 챙기기" 등 거친 비난을 연일 쏟아내고 있는 이들은 무소속 후보단일화에도 큰 틀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에는 새민련의 심장인 광주에서 새민련 후보가 당선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윤 후보가 패하기라도 할 경우에는 김-안 공동대표의 리더십은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지역민심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전략공천 이전까지 강 시장과 이 의원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모두 윤 후보에게 2배가 넘는 격차로 앞서며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새민련 지도부의 전략공천 결정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지난 8일 지역지인 <무등일보>와 <광주CBS>가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윤 후보의 전략공천에 반대(33.3%)하는 의견이 찬성(24.8%)보다 8.5%p 더 높았다(조사기간 : 5월4~6일, 조사대상 : 광주·전남지역 성인남녀 각각 700명,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3.7%p).


앞서 지난 3일 다른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의 19세 이상 광주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반대(48.5%) 의견이 찬성(35.8%)보다 12.7%p 더 높았다(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3.1%p).

심지어 광주지역 기독교단체, 변호사모임, 상인대표단 등은 성명을 내고 "광주시장 후보 전략공천은 철회돼야 한다"며 "시민의 의사가 반영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경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경기 안산에서도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긴 와중에 이뤄진 전략공천에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제종길 후보의 경쟁상대였던 김철민 안산시장 측은 "상중에 상주를 바꿨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고, 김 시장의 지지자 수백명은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김 대표의 자택 앞까지 몰려가 항의집회를 열었다.

특히 김 시장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새민련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사고 후 진도 현장에 내려가 희생자 가족을 돌보는 사이 당이 기습적으로 다른 후보를 안산시장 후보로 전략공천 했다"며 "당이 잘못된 공천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중대한 결단을 할 것"이라고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해 안산 지역의 한 중진의원은 "세월호 참사로 안산의 유가족과 온 시민이 참담한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당 지도부의 이번 결정은 시민의 여론과 전혀 다른 결정"이라며 "안산 지역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 안산만이라도 단체장을 무공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야권 전략공천
여성·장애인 등 소수자 진입은 외면
당 거물급 정치인도 비판대열 합류

이처럼 파문이 확산되자 새민련 지도부는 지난 4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에서 추가적인 전략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진화에 나섰다. 또 안 대표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기성정치권 밖의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는 것이 전략공천"이라며 "윤 후보는 30년간 시민운동, 인권운동에 앞장선 시민운동가로 광주의 박원순이 될 수 있는 분"이라고 윤 후보 전략공천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나섰으나 되레 파문은 더 커져만 가는 형국이다.


이러한 행보는 오히려 새민련이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 후 내세웠던 '개혁공천'을 스스로 뒤집는 셈이기 때문이다. 당장 당 지도부의 '더 이상 전략공천은 없다'는 결정에 따라 당초 여성 기초단체장 7곳 전략공천도 없던 일이 되며 여성 의원 및 여성 당원들은 '30% 여성 의무공천'을 이행하라며 농성에 들어갔다. 

여론조사에서 강운태-이용섭 예비후보에게 모두 2배 이상의 격차를 보이며 뒤지던 3등 후보(윤장현)를 당 지도부에서 일방적으로 후보로 낙점한 것도 개혁공천이라 부르기 어렵다. 게다가 안 대표가 사태 진화를 위해 언급한 '윤장현이 박원순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은 박원순 시장이 민주당 후보(박영선 의원)와의 경선에서 당당히 승리해 야권단일후보로 서울시장 재보선에 나섰던 점을 감안하면 어불성설이다.

강 시장 측 관계자는 "민주주의는 과정과 절차가 중요하다. 박 시장은 민주적 과정과 절차, 즉 투명한 경선을 거쳐 서울시장 후보가 된 분"이라며 "박 시장의 경우와 안 대표가 나눠먹기 밀실야합으로 공천장을 준 윤 후보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당의 거물급 인사들도 당 지도부의 전략공천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동아시아미래재단 소상공인 토론회'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광주의 전략공천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며 "전략공천을 해야 될 때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전략공천을 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해 정치참여 기회를 신장해야 하는 경우와 국민과 당원의 의사와 선택권을 뺏어서는 안 되는 경우가 어떻게 구분되는 지는 국민이 잘 안다"고 꼬집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연휴가 시작되는 밤중에 윤 후보를 전략공천함으로써 광주시민과 국민을 우롱한 결과로 나타났다"며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했다"고 비판했다.

잘못된 선택

이처럼 전략공천 파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논란의 당사자 중 한 명인 윤 후보 측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소외된 자와 약자, 혹은 새로운 인물의 수혈을 위한 전략공천이 이뤄졌다"며 "그런 분들에 의해서 선택된 많은 분들이 지금 한국사회, 정치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새민련) 중앙당은 윤장현이라는 사람을 통해 새로운 정치지형을 광주에서 열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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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