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여야 신임 원내대표 이완구·박영선

첫 충청·첫 여성…‘궁합’ 잘 맞을까?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19대 국회 후반기 첫 1년간 원내 활동을 지휘할 여야 신임 원내대표가 선임됐다. 새누리당은 충청 출신의 이완구(64·충남 부여·청양) 의원을, 새정치민주연합은 경남 출신의 박영선(54·서울 구로을) 의원을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새로운 원내대표 체제로 각각 재편성됨에 따라 향후 세월호 참사 수습과 선거정국에 충돌이 예상된다. 여야 원내 사령탑의 궁합이 어떨지 지켜봐야겠다.
 

 
새누리당 이완구(충남 부여·청양)·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서울 구로을) 의원이 지난 8일 여야 원내사령탑이 됐다. 이들은 19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협상 등을 주도하게 된다. 

새 원내대표
동시 선출

여야 신임 원내대표는 이른 시일 내에 협상력과 정치력을 평가 받을 것으로 보인다. 두 원내대표는 임기 초반부터 국회에서 세월호 참사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를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여야는 참사의 원인과 당국의 책임을 밝히고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지만, 시기와 방식에 대해선 견해 차이를 보인다. 새누리당은 국정조사를 미루고 우선 수습에 주력하자고 나오는 반면 새정치연합은 명확한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두 원내대표는 전임 원내대표들이 마무리하지 못한 6월 국정감사와 국회선진화법 개정 문제도 풀어야 하는 입장이어서 이런 문제들이 새 원내대표들의 협상력과 리더십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19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문제에 관해서는 둘 다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장단 선출과 상임위원장 배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의 소지가 없어 보이지만, 새누리당 일각이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 관련 업무를 별도 상임위로 분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어 야당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 전반기와 달라진 정당별 의석분포를 이유로 여야 어느 한 쪽에서 상임위 정수조정을 요구할 경우 여야 간 이해가 첨예하게 맞선다는 점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에 친박계 3선인 이완구(충남 부여·청양) 의원이 지난 8일 선출됐다. 앞으로 이 의원은 19대 국회 후반기 첫 1년간 새누리당의 원내 활동을 지휘하게 된다.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는 비박계인 3선의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이 당선됐다. 이완구·주호영 의원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 총회에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 후보로 단독 출마해 표결 없이 박수로 만장일치 합의 추대됐다.
 
이 원내대표는 당선 뒤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건강한 당·정·청 긴장관계가 필요하다”면서 “엄중한 시기에 집권당 원내대표라는 중역을 맡아 정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군림하는 느낌의 대표가 아닌 당의 심부름꾼인 총무가 돼서 당의 의견을 정부와 대통령과 언론에 잘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께 어려운 고언의 말씀을 드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과를 보면 지역적으로는 충청권과 텃밭 TK의 구성이고, 계파로 보면 친박과 비박 인사의 조합이다. 비교적 무난한 모양새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영남권이 지역 기반인 새누리당에서 충청 지역 출신 의원이 원내 사령탑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충남 청양이 고향인 이 신임 원내대표는 충남지사를 역임한 여권의 대표적인 충청권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경제 분야 관료 출신이지만 충북·충남경찰청장을 지낸 평범하지 않은 이력으로 정치권의 문을 두드려 15·16대 의원을 지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에 당선됐지만, 2009년 당시 세종시 원안을 고수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면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지사직을 사퇴했다. 


‘합의 추대’이
‘여성 최초’박
 
주 신임 정책위의장은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 특임장관을 지내는 등 판사 출신으로 친이계의 핵심 인사였지만, 합리적인 성품 덕에 계파를 뛰어넘어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원내대표와 주 정책위의장은 당선 직후 원내 수석부대표와 정책위 수석부의장으로 재선의 김재원 의원과 나성린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추대로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 원내대표는 취임 초기부터 험난한 정국을 헤쳐가야 할 전망이다.
 
이 원내대표는 시작부터 정치력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야당이 세월호 참사 후속 대책과 관련해 특별검사와 국정조사, 국정감사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정부·여당의 책임론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 원내대표는 야당의 특검·국조·국감 요구에 대해서 “희생자의 49재가 있고 아직 35명 정도의 실종자가 남아있기에 이런 문제를 제쳐놓고 특검·국조·국감을 한다면 현장에 있는 해경 요원이나 해군 관계자가 다 국회로 와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신중하게 야당과 협의하고 언론의 양해와 의원들의 동의를 받아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 새로운 체제 재편 ‘강대강’ 불가피
세월호 참사 수습과 선거정국 대충돌 예상
 
이처럼 새누리당이 국정조사 수용 입장을 정한 것을 두고,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월호 참사 후폭풍에서 벗어나려는 출구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참사 수습 후 국정조사 실시’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원내대표는 야당의 특검 요구와 관련해선 “특검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수사 결과가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됐다고 판단될 경우 실시하면 될 일”이라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혔다. 야당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국가 대개조 문제는 대통령도 말했지만 여야와 이념, 정파 문제가 아니다”라며 “야당의 쓴소리도 들어야겠다. 야당의 협력도 받아내야겠다. 진정한 집권당으로서 책임의식을 갖고 이 문제 해결에 접근해야겠다”고 강조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 원내대표는 1974년 행정고시(15기) 합격 후 재정경제원에서 경제개발계획에 참여했다. 그는 홍성경찰서장을 거치며 치안직으로 자리를 옮겼고 충북·충남 경찰청장을 역임한 뒤 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97년 대선을 치른 뒤 정권교체가 되자 여당행을 선택해 충청 지역정당인 자유민주연합(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그는 당 대변인과 원내총무 등 주요 당직을 두루 맡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겨서 철새 정치인으로 비난받았다. 그 후 2003년 한나라당 소속 의원 11명이 ‘스카우트비’ 등의 명목으로 당 재정국이 불법 모금한 대선자금 중 2억원 이상씩을 전달받았다는 ‘이적료 파문’에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미국으로 떠나 UCLA 교환교수로 1년여를 지낸 뒤 2006년 귀국해 한나라당 충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지사직을 내려놓은 2009년에는 다발성골수종(혈액암) 때문에 치료에 전념했다. 건강 악화로 2012년 총선 출마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부여·청양 재보궐 선거에서 77.40%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화려하게 여의도 재입성에 성공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충남도당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친박계 의원들이 주축으로 만든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 명예대표로 참여했다. 이 포럼에 함께 참여한 주호영 신임 정책위의장과 이때부터 러닝메이트로 원내대표 경선 참여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국회는…
고지전 준비 중?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원내대표에 3선의 박영선 의원이 선출됐다. 헌정 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에 오르는 신기원을 열었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원내대표 경선은 지난 8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3선 노영민(충북 청주흥덕을)·최재성(경기 남양주갑)·박영선(서울 구로을), 4선의 이종걸(경기 안양만안) 의원 간의 4파전으로 치러졌다.
 
전체 130명 중 128명이 투표한 1차 투표 결과, 노영민 의원이 28표, 최재성 의원이 27표, 박영선 의원이 52표, 이종걸 의원이 21표를 얻었다. 무효·기권표는 없었다. 아무도 과반 투표를 얻지 못하면서 관련 규정에 따라 노영민·박영선 의원 간 결선투표가 곧바로 진행됐다. 전체 130명 중 128명이 투표한 결선투표에서 박영선 의원은 69표를 얻어 59표를 얻은 노영민 의원을 10표 차로 앞섰다.
 
박 원내대표 당선에는 이른바 강경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의 지지가 바탕을 이룬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의 지지로 1차에서 압도적으로 앞선 후, 2차 투표에서 3, 4위에 그친 최재성, 이종걸 후보를 지지했던 의원들의 표를 노영민 후보와 나눠가지면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특히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등 지도부 측에선 친노·민평련의 지지를 받고 있던 노영민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지도부와 원내대표 간의 갈등을 제어하기 힘들다고 보고, 2차 투표에선 박영선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원내대표도 강경 성향이기는 하지만 계파색이 없기 때문에 협력관계를 맺기 쉽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의 정견발표가 당선에 한몫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박 원내대표는 정견발표에서 진도 팽목항을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애절함을 나타냈다. 이 과정에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여 장내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강한 대여투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국면에 제1야당의 원내수장으로 뽑힌 박 원내대표는 세월호 문제와 함께 6·4지방선거와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원내 지원도 지휘하게 된다.
 
[이] “대통령에 고언할 것”
[박] “대통령과 맞설 것”
 
박 원내대표는 당선 뒤 “올바른 대한민국, 새로운 야당, 새로운 정치를 여는 힘을 모으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제가 해야 할 첫 일은 세월호특별법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일”이라며 5월 국회 소집을 위한 여야 원내대표 협상을 조속히 시작하자고도 제안했다.
 
무엇보다 박 원내대표는 ‘존재감 있는 야당’을 강조했다. 그는 당선소감에서 “국민 앞에 우뚝 서는 새로운 새정치연합을 보여드리겠다”라며 “국민들에게 당당한 야당으로, 존재감 있는 야당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원내대표는 2004년 초 MBC 선배인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에 의해 당 대변인으로 발탁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방송 기자와 앵커 경력으로 다진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당의 입’으로 맹활약해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을 확보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돼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기획재정위원으로 활동하며 금산분리법 통과 등 재벌개혁에 앞장섰다. 특히 금산분리법을 소급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2007년 대선 때는 정동영계의 핵심 측근으로 대선 후보 비서실장을 지내며 ‘BBK의혹’을 주도적으로 파헤쳐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듬해 총선에서 야당의 수도권 참패 분위기 속에서도 서울 구로을에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18대 국회에서는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보위원회 간사로 활약하면서 이명박 정부를 전제하는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했다. 천성관 검찰총장, 김태호 총리 후보자 낙마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사법개혁특위 검찰소위 위원장을 맡아 검찰 개혁에 팔을 걷어붙였다. 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으로 기용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데도 앞장섰다.

정국 순항
‘시계제로’
 
2011년 5월 여성으로는 처음 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돼 이른바 ‘3+1(무상 급식·의료·보육+반값 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 정책을 설계했다. 같은 해 치러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천정배 추미애 신계륜 의원 등 쟁쟁한 경쟁자를 모두 제치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돼 주가를 높였다.
 
비록 무소속 시민사회 후보로 나선 박원순 현 서울시장과의 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패해 본선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무조건 양보’로 박 시장의 당선을 도와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다.
 
이후 당과 국회에서 잇따라 ‘여성 최초’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2012년 1·15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에 뽑혀 한명숙 대표와 함께 민주당에서는 최초로 여성 선출직으로 지도부에 입성했고, 19대 총선에서 구로을에 출마해 3선에 성공한 뒤 첫 여성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 올랐다.
 
이후 국회 본회의의 관문인 법사위를 맡아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반대하고, 검찰 개혁법안인 상설특검법과 특별감찰관법을 관철하는 등 제1야당의 선명성을 강조했다. 법안 처리와 관련해 새누리당으로부터 ‘월권을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법사위 내에서는 여야 협의에 따라 원만한 운영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khlee@ilyosisa.co.kr>
 

[이완구 원내대표는?]
 
▲충남 청양 출생
▲양정고 졸업
▲성균관대 행정학 학사
▲미국 미시건주립대 석사  
▲단국대 행정학 박사
▲행정고시(15회)·경제기획원
▲홍성경찰서장
▲LA총영사관 영사
▲충북·충남지방경찰청장
▲15·16대 국회의원
▲UCLA 교환교수
▲2006∼2009 충남도지사
▲2010 새누리당 충남도당 명예선대위원장
 
 
[박영선 원내대표는?]
 
▲경남 창녕 출생
▲수도여고 졸업
▲경희대 지리학 학사
▲서강대 언론대학원 석사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MBC 보도국 기자, LA 특파원
▲MBC 보도국 경제부장
▲17·18·19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대변인
▲국회 정보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간사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
▲민주당 정책위의장
▲민주당 최고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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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