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보상 제일모직 '이상한 합의' 내막

책임 없다면서 몰래 도장 왜?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제일모직 노동자가 있다. 우측 뇌동맥이 막혀 반신불수가 됐지만 사측으로부터 자녀들 학자금과 치료비를 받으면서 마무리 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 노동자가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도장은 그가 직접 찍었다. 무슨 일일까? <일요시사>가 그를 만나봤다.

지난 8일 오후 8시 전남 여수시 문수동 소재 동인요양병원 로비에서 만난 김모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우측 뇌대동맥이 막혀 몸의 반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휠체어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안면마비 증세로 인해 기자에게 말을 건네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뭔가 찔리니까"

올해 50세인 김씨는 지난 1988년 11월부터 2005년 7월까지 약 17년 동안 제일모직 여수사업장에서 일했다. 2005년 7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3년6개월 가량 병가를 냈다가 2009년 초 퇴사했다. 뇌출혈 발병 초기 김씨는 뇌사 판정을 받았다. 어느 병원을 가도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10일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우측 머리에 보이던 출혈도 며칠 뒤 깨끗하게 사라졌다. 김씨는 산재를 신청했다. 결과는 불인정. 김씨는 심사청구와 재심사청구 절차를 밟으려 했다. 하지만 모든 절차는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

"심사청구 절차를 밟으려고 근로복지공단에 연락했는데 재심사청구 절차까지 이미 끝난 상태라는 걸 알았다. 그날이 재심사 청구 결과가 나오고 딱 90일째 되는 날이었다. 행정소송도 물 건너가 버렸다."


현행법상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에 대해여 이의가 있을 경우 심사청구가 가능하다. 심사청구 결과에 이의가 있는 경우에는 재심사 청구가 가능하며 이후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청구 기한은 모두 90일이다. 김씨는 행정소송 제기 기한 마지막 날 재심사 청구 결과를 알게 된 것이다.

"법적인 절차가 모두 막히자마자 사측에서 합의서를 들고 찾아왔다. 충북 청원에 있는 제일모직 사업장에 부인을 취직시켜주고 자녀들도 청원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자녀들 학자금 등 합의금으로 7000만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관련 내용을 더 이상 발설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김씨는 합의를 거부했다. 명백한 산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씨에 따르면 그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TPM(전사적 생산 보전운동) 명목으로 매월 수십∼수백시간씩 무임금으로 일했다. 하지만 제일모직 측은 "근태시간은 시스템에 의해 관리된다"며 "여수산단 자체가 임금에 대해 민감한 지역이다. 추가수당은 당연히 지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없던 병도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게 김씨의 입장. 그러나 김씨는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부인이 '도장을 찍지 않으면 강제퇴원 시키겠다'며 협박했다. 자녀들 학교도 이미 청원 지역으로 옮겨 놓은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었다."

뇌출혈 장기입원…산재신청 퇴짜
사측…합의 후에도 허위사실 유포

가족들은 그를 떠났다. 합의금은 부인에게 전달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이혼했다. 회사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버림 받은 것이다. 김씨는 합의 내용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관련 내용을 국민신문고, 검찰청 등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다.


"사측은 산재가 아니라고 하면서 합의금까지 줘가면서 합의를 했다. 정말 산재가 아니라면 합의를 할 이유가 없다.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 아니겠냐."

김씨에 따르면 제일모직은 김씨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자녀들 학자금 5000만원과 전 사원 불우이웃돕기 성금 2000만원 등 7000만원을 건넸다.

삼성일반노조가 관련 내용에 대해 제일모직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자 명예훼손으로 김성한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을 고소, 김 위원장은 벌금 500만원을 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제일모직은 수술비용 지원, 개인 간병비 지원, 매월 일정금액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산재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제일모직에서 김씨에게 지원하겠다는 금액은 매월 30만원. 반신불구 상태인 김씨에게는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30만원은 1개월 약값도 안 된다. 휠체어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간병인은 필수인데 산재 인정만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정상적으로 산재가 승인됐다면 매월 죽는 날까지 월 450만원 정도 개인 간병비, 병원비가 나와 병원생활이나 가정사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위로금조로 전달"

제일모직 측 주장은 다르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산재 불인정 판정을 받고도 김씨가 당시 대표를 고소하는 등 일방적 요구를 했고 제일모직은 모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며 "그럼에도 각종 인터넷 게시판 등에 관련내용을 유포해 명예훼손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승소를 한 일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합의에 대해 "다만 오랜 기간 제일모직에서 일을 했고 사측에서는 도의적 차원에서 치료비와 학자금, 직원들의 성금을 모아 합의금 명목으로 전달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측은 김씨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7000만원을 전달하기 전에 치료비를 5000만원 상당 지원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했다"며 "제일모직이 제기한 명예훼손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김씨가 허위사실을 유포할 때마다 강제금이 건당 100만원씩 부과되고 있다. 그럼에도 김씨가 지속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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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