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재벌기업 몸집 줄이는 노림수

IMF 이후 최대 새판짜기 “이유 있다”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재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다. 계열사를 합치고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저마다 군살 빼기에 한창이다. 당사자들은 미래 성장동력을 찾고 체질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숨겨진 목적이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같은 듯 다른 구조조정 속살을 <일요시사>가 들여다 봤다.

재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계열사를 합치고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군살 빼기 경쟁에 돌입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16년 만에 최대 규모의 '새판짜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구조조정 바람은 재계 맏형 삼성그룹으로부터 불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9월 제일모직의 직물·패션 사업을 삼성에버랜드로 이관하고 삼성SNS를 삼성SDS와 합병시켰다. 10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삼성코닝정밀소재 보유 지분 전량을 미국 토닝에 매각했다. 11월에는 삼성에버랜드가 영위하던 건물관리업을 삼성에스원에 양도했고 급식업은 삼성웰스토리를 신설해 분리했다. 12월 삼성생명은 비금융계열인 삼성전기,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이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을 취득했다.

삼성 발 구조조정
재계 전방위 확산

지난달 31일에는 삼성SDI와 제일모직 합병을 전격 발표했고 이틀 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병했다. 삼성증권과 삼성생명도 구조조정을 공식화했다. 주력계열사인 삼성중공업은 수익성 악화 등의 이유로 조만간 조직통폐합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 등 건설 부문도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덩치가 가장 커진 건 삼성SDI다. 제일모직과의 합병으로 자산규모 15조원, 시가총액 10조원, 직원 1만4000여명 규모의 거대 계열사로 재탄생했다.


삼성그룹은 구조조정의 이유로 "실적이 떨어지는 사업 부문을 정리하고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며 "미래 신성장동력을 육성하기 위함도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생각은 다르다. 삼성그룹의 입장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3세 승계구도 정리에 목적이 있다는 것. '이재용 몰아주기'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애초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 계열사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과 건설, 화학을,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이 패션과 광고를 맡는 방식으로 분할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번 구조조정으로 삼성SDI의 영향력이 화학 계열사로까지 확대되면서 예상 구도가 깨졌다.

삼성SDI는 제일모직과 합병을 마치게 되면 삼성석유화학, 삼성정밀화학, 삼성종합화학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제일모직이 이들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계열의 정점에 서있는 삼성SDI가 화학 계열사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밝힌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 방식은 삼성종합화학이 신주를 발행해 삼성석유화학 주식과 1대 2.1331의 비율로 교환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합병을 완료한 삼성종합화학의 지분구조는 삼성물산 36.99%, 삼성테크원 22.56%, 삼성SDI 9.08%, 삼성전기 8.97%, 삼성전자 5.25%, 이부진 사장 4.91% 순이 된다.

계열사 정리 직원들 희망퇴직 '군살 빼기'
"살아남기 구조조정"…숨겨진 진짜 목적은?

삼성SDI는 합병 후 삼성종합화학의 최대주주인 삼성물산 지분 7.18%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을 제외하면 삼성SDI다. 여기에 제일모직이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13.1%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삼성그룹의 화학 계열사와 건설 계열사가 삼성SDI 아래에 모이게 됐다는 얘기가 된다.

삼성SDI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지분 0.57%를 보유, 이부진 부회장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삼성그룹이 '이재용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삼성그룹에 이어 재계 2위 현대차그룹도 사업 및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는 지난해 10월 현대하이스코의 냉연강판 부문을 현대제철로 넘기기로 했다. 이전까지 현대차그룹의 열연 공정은 현대제철에서, 냉연 공정은 현대하이스코에서 나눠 맡아왔다.

냉연 공정이 현대제철로 넘어감으로써 현대차그룹의 철강 업무가 한 곳으로 모인 것이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새 순환출자 구조를 완성했다.

지난 1일에는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 통합법인인 현대엔지니어링이 출범했다. 기존 엔지니어링의 플랜트 사업과 엠코의 건축·토목 사업이 합쳐지며 종합건설사로 재탄생한 것. 그룹 측은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합병에 대해 "일관제철 사업의 경영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게 목표"라고 밝혔으며 엠코와 엔지니어링에 대해서는 "전 세계 플랜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의선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제철과 하이스코 합병을 통해 '현대모비스(20.78%)→현대자동차(33.88%)→기아자동차(21.29%)→현대제철(5.66%)→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새로운 순환출자 구조를 완성했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7%를 보유해 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번 합병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수혜자는 정의선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합병 전 현대엠코의 지분 25.06%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현대엠코의 지분 34.86%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의 지분도 31.88%를 갖고 있다. 합병 전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72.55%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던 현대건설은 합병법인의 지분 38.62%를 보유하면서 최대주주 자리를 유지하며 정 부회장은 11.72% 보유해 2대 주주가 된다.

3대 주주는 현대글로비스로 11.67%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현대글로비스를 장악하고 있는 정 부회장이 사실상 현대엔지니어링 최대주주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현대엔지니어링은 그룹 승계를 위한 자금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그룹 승계
열쇠는 삼성물산

최근 정의선 부회장이 '실탄'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도 현대차그룹에서 승계 작업이 이뤄지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정의선 부회장은 이노션에 보유하고 있던 지분 40%를 모건스탠리PE와 스탠다드차타드에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으로 현대차그룹의 지분율이 80%에서 40%로 떨어지면서 지배력이 줄었지만 정의선 부회장은 4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마련하게 됐다.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 따르면 경영 승계를 위해서는 현대모비스 지분 취득이 가장 필요하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등 4개 핵심 계열사 가운데 기아차 지분 1.74%만 보유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이 노릴 수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은 기아차가 보유하고 있는 16.86%다. 현대모비스 주식가치는 지난 17일 기준 1주당 30만8000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16.86%(1642만7074주)를 확보하려면 약 5조600억원이 필요하다.

물론 정몽구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물려받는 형태로도 경영권 승계는 가능하다. 하지만 증여세가 문제다. 정몽구 회장은 현재 현대모비스 지분 6.96%(677만8966주·약 2조원), 현대자동차 지분 5.17%(1139만5859주·약 2조7000억원), 현대제철 지분 11.84%(1380만5299주·약 9600억원)를 가지고 있다. 현행법상 증여세는 약 50%. 모든 지분을 물려받는다고 가정하면 2조8000억원 수준이 든다.

정의선 실탄 확보
이노션, 정성이에?


정의선 부회장이 이노션 지분을 매각함에 따라 정몽구 회장의 장녀 정성이 고문에 대한 경영 승계도 윤곽이 잡혔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기존 이노션 지분구조를 보면 정의선 부회장과 정성이 고문이 각각 40%를, 정몽구 회장이 20%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난해 7월 정몽구 회장은 보유지분 20%를 '현대차 정몽구 재단'에 기탁했고 현대차그룹 오너 일가 중 정성이 고문만이 유일하게 이노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이에 따라 업계는 삼성그룹의 제일기획처럼 이노션도 딸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1인 오너기업이 사업구조 재편을 통한 승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반면, KT와 포스코 같이 신임 수장을 맡은 기업들은 전임자 '색채지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8일 KT는 노사 합의에 따라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명예퇴직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명예퇴직 대상자는 약 2만3000여명, 70% 정도가 해당된다. 앞서 황창규 KT 회장은 취임 직후 조직개편을 통해 전체 임원수를 30% 가량 줄이고, 임원급 직책 규모를 50% 이상 축소했다. 기존에 20개에 달하던 사업부문은 9개로 축소·개편했다.

KT가 대규모 명예퇴직을 단행하기로 한 것은 경쟁사에 비해 무거운 인력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KT 관계자도 "회사가 경영 전반에 걸쳐 위기상황에 처함에 따라 직원들이 고용불안 및 근무여건 악화를 우려해온 것이 현실"이라며 "이에 노사가 오랜 고민 끝에 합리적인 수준에서 '제2의 인생설계'의 기회를 주는 것이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 시각은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황창규 회장이 전임자인 이석채 전 회장이 망친 KT를 대거 퇴직으로 수습하려는 모양새"라며 "임원들 중 '이석채 사람들'을 쳐내더니 이제는 직원들마저 잘라내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황창규 회장은 취임 직후 표현명, 김일영, 김홍진 사장을 업무 일선에서 쫓아내고 이 전 회장 체제핵심업무를 담당했던 코퍼레이트센터를 없애고 대신 미래융합전략실을 신설했다.

또한 스카이라이프와 BC카드 등 7개 계열사 사장들에게 사임을 통보하고 이 전 회장 시절 팽 당했던 인물과 삼성 쪽 인사들로 빈자리를 채워 넣었다.

[삼성·현대차] 경영승계가 배경
[KT·포스코] 전임자 색채 지우기

황창규 회장은 사상 최대 규모의 사기 대출에 연루되어 있는 KT ENS도 버렸다. KT ENS에서 발을 빼는 방법으로 불필요한 잡음을 없앤 것이다. KT ENS는 돈이 묶여있는 시중 은행들의 집단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12일 만기가 도래한 기업어음(CP)을 상환하지 못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사외이사진도 대폭 물갈이 했다. MB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던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과 여성부 장관 후보에 올랐던 이춘호 EBS 이사장 등이 퇴진하고 이 전 회장의 대학동문인 이현락 세종대 석좌교수와 교수 1년 후배인 송종환 주 파키스탄 대사와 김응한 이사회장이 사외이사직을 내놓았다.

이들을 대신해 김종구 법무법인 여명 고문변호사와 임주환 고려대 전자정보공학과 객원교수,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학장, 장석권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박대근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학 장 등 5명이 사외이사로 임명됐다.

포스코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탄소강 부문 스테인리스 부문 등 6개 본부를 철강생산·철강사업 등 4개로 통폐합했다. 경영 담당 임원은 68명에서 52명으로 감축했다.

포스코의 구조조정도 전임자 색채지우기 성격이 강하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취임 직후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성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겠다"며 "신사업에 투자를 너무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임자 정준양 전 회장이 벌려 놓은 사업을 정리하겠다는 얘기가 된다. 권 회장은 또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중단·매각·통합 등 과감하고 신속한 조처를 하겠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사업 분야는 '철강'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정 전 회장이 재임 시기에 시작한 LED 제조, 토목, 생활폐기물 연료화, 경전철 운영 등 계열사 10여개가 정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황창규·권오준
'똥 치우기'

포스코 계열사 중 포스코P&S의 입지가 급격하게 축소되는 것도 정 전 회장 지우기로 해석된다. 울산지검 특수부는 지난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로에 있는 포스코P&S 본사를 압수수색해 철강 거래와 관련한 각종 자료, 컴퓨터 하드디스크, 회계장부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철강제품 가격 담합을 비롯한 이 회사 간부의 비리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P&S는 철강소재와 알루미늄 등의 비철소재를 가동해 국내외로 판매한다. 포스코P&S의 지난해 매출 2조7457억원 중 대부분이 포스코와의 거래에서 발생할 정도로 포스코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포스코가 인수한 대우인터내셔널도 국내외 철강사들의 철강제품을 수출하는 등 포스코P&S와 비슷한 업무를 담당한다. 검찰 수사가 그룹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철강업계는 포스코가 자산규모가 훨씬 큰 대우인터내셔널에 비교적 작은 포스코P&S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선 긋기를 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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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