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한 업체 직원들이 주차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주차장 때문에 판교 직장인들은 출퇴근 시간마다 주차전쟁을 벌인다. 이면도로에는 불법주차 단속을 경고하는 가로막이 붙어있지만 버젓이 주차된 차량들이 즐비하다. 신도시를 무색하게 만드는 주차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한국판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판교밸리’는 그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 20만 평의 판교테크노밸리에는 지난 2월 기준 634개 기업에 3만8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올 연말이 되면 입주기업이 1000개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판교밸리의 완공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주차난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상 방치상태
신분당선 판교역에 도착하니 잘 정돈된 신축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공사 중인 건물도 눈에 띄었다. 타워 크레인과 덤프 트럭들이 오가며 흙먼지를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는 불법주차 단속을 경고하는 가로막이 붙어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가로막 앞에 버젓이 주차된 차량이 많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판교밸리 도로변은 거대한 주차장이었다.
심지어 버스정류장 앞도 일반차량이 점령한 상태였다. 서울로 이어지는 대왕판교로 왕복 8차선로 가운데 양쪽 2차로는 주차장이나 다름없었다. 공영주차장은 마치 ‘깜지’처럼 어지러웠다. ‘어떻게 차를 빼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밀착주차 돼 있었다. 인근 아파트 근처도 사정은 비슷했다. 판교밸리 직장인들의 복장은 캐주얼로 편안한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차량은 답답해보였다.
판교밸리 한 게임회사에 근무하는 이모(32)씨는 매일 아침 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른 시간 출근길에 나서지만 차량을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 주차공간이 부족해 인근 주차장을 이용하지만 불꽃 튀는 주차경쟁에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
오전 7시가 되면 대부분의 주차장은 만차가 된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혼잡한 다 시간도 오래 걸려 포기했다. 신분당선의 경우 노선이 짧고 환승이 불편하고 판교역과 판교밸리 간 거리가 애매하다. 걷기도, 버스를 타기도 어중간하다. 주차 전쟁은 퇴근시간대에도 이어진다. 공영주차장은 차들이 3∼4중으로 주차하기 때문에 일과시간에는 차를 뺄 엄두도 못 낸다.
이씨는 업무를 보다가도 오후 6시만 되면 주차장으로 달려가 30분 이상 차를 빼주는 행렬에 동참해야 한다. 지옥 같은 주차전쟁 때문에 판교가 헬(hell)교로 불리고 있다는 것. 이씨는 “차라리 불법 주차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라며 탄식했다.
실제 판교밸리 내 A사는 100명의 직원 중 건물 주차장을 할당받은 직원은 15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직원 중 절반은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한다. 35명은 공영주차장 등 주차공간을 찾아 이용해야 한다. 문제는 공영주차장이 판교역 환승주차장 단 1곳뿐이라는 것.
아직 착공하지 않은 건물용 부지 3곳을 임시 주차장으로 활용 중이지만 주차난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주차장 추가 건립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익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차장 이용요금도 급등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차라리 벌금내고 말자…주차난 속수무책
업무 스트레스보다 큰 '주차 스트레스'
그렇지만 주차장이 마냥 부족한 건 아니다. 주차장법과 조례에 따라 업무용 시설은 30평당, 교육연구시설은 60평당 1대꼴로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판교밸리 일대 건물들은 모두 법적 기준에 맞춰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다. 즉 대중교통이 불편해 자가용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일부 빌딩 지하에는 거대 암반이 자리 잡고 있어 지하층을 충분히 만들지 못하는 것도 주차난의 이유 중 하나다.
이처럼 판교밸리 주차난이 알려지면서 일부 기업체는 황당한 구인난을 겪기도 했다. IT업체인 B사의 경우 최근 경력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합격자가 주차난을 이유로 입사를 거절하기도 했다. 결국 이 회사는 출근시간을 오전 10시로 늦췄다. 일부 기업에서는 주차난 때문에 이직을 고려하는 직원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교밸리에는 광역버스 10개, 시내버스 7개, 마을버스 6개 노선이 있지만 출퇴근 시간대 배차간격이 길고 노선도 부족해 외면받고 있다. 성남시는 판교부청사 부지에 임시 주차장을 마련했지만 역부족이다. 미매각 용지 4곳도 임시주차장으로 확보했으나 주차난 해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판교밸리 주차난은 2009년 첫 입주 이후 갈수록 심화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태다.
말로는 불법 주·정차 차량을 단속한다지만, 단속 주체도 난감한 건 어쩔 수 없다. 성남시 경제교통과 관계자는 “불법 주·정차 차량을 단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며 “현실을 고려해 때에 따라서는 탄력적으로 단속하며 유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개발연구원에 따르면 판교밸리 임직원 중 80%는 성남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 살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를 타려면 길게는 50분까지 기다려야 한다. 현재 출퇴근 시간대 서울~분당을 운행하는 광역버스들은 혼잡도가 130%에 이른다.
분당선도 이용객이 급증해 상황이 비슷하다. 자가용으로 눈길을 돌리려 해도 주차전쟁이 걱정되는 것이다. 경기개발연구원 관계자는 “노외주차장 건설 전 임시로 노상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차난은 주차장을 늘리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는 것. 일각에서는 현실을 고려해 불법 주·정차 단속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물 주변 ‘빙빙’
한편, 경기도와 성남시, 경기개발연구원은 ▲12개 도로 8.6km에 900대 분의 노상주차장 확충 ▲노상주차장 조기 착공 및 미착공 부지 주차장으로 활용 ▲주차정보시스템 도입 등을 주차난 해소책으로 제시했다. 이 같은 대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판교테크노밸리 통근버스 vs 마을버스
판교테크노밸리내 주차장 부족으로 일부에서는 회사별로 통근버스를 운행했다. 규정대로라면 각 회사 별로 한 곳의 버스 업체와 계약해 그 회사 직원들만 이용해야 하는데, 대표적인 게임업체 넥슨의 경우 4개 계열사가 업체 한 곳과 계약해 함께 이용하고 있는 게 문제가 됐다.
이 지역 운송업체인 서현교통은 ‘영업권 방해’라는 주장을 펼치며 성남시에 민원을 제기했다. 성남시는 이를 해당 셔틀버스 운행 업체가 위치한 송파구에 고발했다. 그러나 송파구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