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후보 빅4 '아킬레스건' 집중해부

약점 물고 뜯는 살벌한 '수도 쟁탈전' 열렸다

[일요시사=정치팀] 6·4지방선거 최대승부처인 서울시장선거 후보군이 4명으로 좁혀졌다. 야권에서는 박원순 현 시장이 사실상 확정됐고, 여권에서는 '빅3(이혜훈·정몽준·김황식)' 동시 출격이 현실화됐다. 이와 함께 '여 vs 야' '여 vs 여' 복합구도 속 상대 후보의 약점을 들춰내 물어뜯는 진흙탕 선거전도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차기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빅4의 '아킬레스건'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 2011년 10·26서울시장 재·보궐선거는 네거티브 선거전 양상으로 전개되며 범야권의 박원순 후보에 비해 1억 피부과, 부친 사학재단 논란 등 치명적 의혹이 더 많았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의 패배로 마무리됐다. 승리한 박원순 시장도 병역기피, 아름다운재단 공금 횡령 등 각종 의혹 공세에 시달렸지만 더 센 의혹이 제기된 나 후보가 결국 패한 것이다.

치명적 약점이
승패 가른다?

이외에도 약점을 공략하는 네거티브 선거전략은 역대 선거에서 숱하게 사용됐고, 때로는 잘나가던 후보를 한 방에 주저앉히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후보들의 약점은 성패를 가르는 주요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초 야권은 안철수 의원의 '지방선거 전 신당 창당' 선언으로 분열된 채 지방선거를 치를 뻔했지만, 지난 2일 현실정치의 벽을 뼈저리게 절감한 안 의원과 새로운 동력이 절실했던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전격 합의로 통합을 이뤘다. 이와 함께 야권 서울시장후보도 박 시장으로 단번에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박 시장은 현역 프리미엄, 소통의 리더십 등을 바탕으로 확정된 후보군 중 현재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지난 17일 <국민일보>와 글로벌리서치가 서울 거주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박 시장은 여권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에게 49.4% 대 43.8%로 5.6%p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조사방식 : 유·무선 전화 RDD 전화조사,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 : 17.5%).


하지만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정도여서 사소한 네거티브 공세에도 지지율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여권후보들은 아직 후보가 확정이 안돼 견제구를 날리는 선에서 박 시장에 대한 비판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경선이 끝나고 본선이 시작되면 박 시장의 모든 것을 탈탈 털어 약점을 찾아 공세의 수위를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

'박원순 vs 이혜훈·정몽준·김황식' 대진표
'야 vs 여' '여 vs 여' 복합구도 속 진흙탕

다만 보수 일각에서는 박 시장 아들 주신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재차 제기하며 '박원순 흔들기'에 이미 나섰다. 인터넷 <민족신문> 김기백 대표는 지난 10일 "박 시장이 서울시장 지위를 이용해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꺼내지 못하도록) 서울시민과 국민들을 협박했다"며 박 시장을 '협박죄'로 고소했다. 앞서 지난달 25일에는 한 보수인사가 주신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재차 제기하는 청원서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주신씨의 병역비리 의혹은 이미 수차례의 검·경 수사에서 무혐의로 밝혀진 상황이다. 이와 같은 무차별적 네거티브 공세에 대해 박 시장 측은 선거전이 시작된 만큼 강력히 대응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이혜훈·정몽준·김황식
내부경쟁부터 넘어야

여권 서울시장후보는 지난 15일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마지막으로 합류하며 앞서 출마를 선언한 이혜훈 최고위원, 정몽준 의원 간 3파전이 확정됐다. 이와 함께 상대후보는 깎아내리고 자신은 돋보이게 하기 위한 치열한 내부 비방전도 시작됐다.  

이들의 약점을 한 명씩 들춰보면 우선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내 서울시장후보 적합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정 의원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부자이미지'가 가장 큰 약점이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 의원은 지난 2월 기준 1조6979억원 상당의 지분(10.15%)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갑부다.


지난 2008년에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버스 기본요금을 묻는 질문에 "한 번 탈 때 70원 하나요?"라고 답해 '서민의 삶을 전혀 모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유력한 내부 경쟁자인 김 전 총리도 "(정 의원이) 돈이 많다는 게 흠은 아니지 않냐"면서도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어 약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행정경험이 전무하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목된다. 서울시장은 서울시의 행정을 담당하는데 정 의원은 7선 의원, 여당 대표 등 여의도 정치경험은 풍부하지만 행정경험은 일절 없다. 또 출마의 계기가 중진차출론에 의한 등 떠밀린 결과라는 점도 약점이 될 수 있다. 차기 대권을 노리다 급하게 서울시장후보로 등판한 만큼 지역맞춤정책 등 공약 선정에서 허점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정 의원은 선거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인 병역과 관련해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시절 ROTC 후보생이 돼 학군13기로 병역을 이행했고, 장남 기선씨 역시 학군43기로 임관해 장교로 병역의 의무를 마쳐 문제가 없다.

부자, MB맨, 인지도…
약점은 누구나 있다

김황식 전 총리는 이명박정부 시절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명박정부 공동운명체라는 점이 가장 큰 약점이다. 특히 '4대강 책임론' 등은 선거전 내내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김 전 총리는 "4대강 사업은 가뭄·홍수에 대비하고 수질을 개선하고 주변 환경을 정비해 발전시킬 수 있는 사업"이라며 "일부 지적이 타당한 부분도 있지만, 총체적 부실이라거나 부적절한 사업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납득하지 못한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여론은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또한 후보 가운데 가장 고령(만 65세)이라는 점과 정 의원과 마찬가지로 새누리당의 권유로 뒤늦게 출마를 선언한 만큼 준비가 부족하다는 약점도 있다. 실제로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출마 기자회견에서 그는 "서울은 희망의 도시가 아니라 절망의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며 "사람이 죽어가는 서울을 사람을 살리는 서울로 만들겠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지만 구체적 방안은 아무것도 내놓지 못했다.

여권 경선 과열…상처투성이 승자 배출
자신 약점은 감추고 상대방 약점 공략?

박심(박근혜 대통령 의중)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도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선에서 당원의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만큼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3월15일 새누리당 입당) 그에게 박심은 이를 메워줄 훌륭한 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박계의 반발이 이미 상당한 상황이고, 지방선거에 내려진 박심은 여론의 역풍을 야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선 법관, 행정경험 등 40년간의 공직 경험은 풍부하지만 선출직 정치인은 이번이 첫 도전인 만큼 정치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이혜훈 최고위원은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을 60대 후반까지 하신 분이 자기주도적 결정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말 바꾸기 전례가 많다는 점도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법관→감사원장→국무총리' 등을 역임하며 3차례의 인사청문회를 거친 그는 병역, 재산관계 등의 의혹에 대해 그때그때 다른 해명을 내놔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2005년 대법관 인사청문회 당시 판사 시절 자녀 유학비 등 지출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자녀 유학기간 재산이 증가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누나와 장모의 지원'이라는 해명을 했다가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때는 '자기부담'으로 말을 바꿨다.


대법관 임기를 3년4개월여 남기고 감사원장직을 수락하며 사법부 안팎의 비판에 시달릴 때에는 "총리 제안을 받았으면 안 간다. 감사원장이기 때문에 간다. 마지막 임명직이라고 생각한다"고 해명했지만, 2년 뒤 국무총리로 자리를 옮겼다.

병역 미필도 다시 한 번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김 전 총리는 지난 1972년 군 신체검사에서 양쪽 시력이 5디옵터 가량 차이가 나면서 부동시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제 받았다. 그런데 앞선 두 차례의 신검에서는 갑상선 이상으로 재검 판정을 받았다가 1971년 법이 개정돼 부동시가 면제사유에 포함되자 세 번째 신검에서 갑자기 부동시 진단서를 제출해 결국 병역면제 처분을 받아 '고의로 병역면제를 받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과거부터 받아왔다.

여권후보 중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한 이 최고위원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이다. 때문에 본인도 다양한 언론 인터뷰, 대학 강연 등으로 대중과의 접촉면 확대를 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효과는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

차기 서울시장
약점을 감춰라

또 '원조 친박'으로 지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2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될 정도로 당내에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잦은 쓴소리로 박 대통령에게서 멀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여권 일각에서는 '빅3' 경선이 과열될 경우 흥행이라는 기대효과 외 후보 간 비방 등 네거티브 경선으로 인한 본선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새누리당 핵심관계자는 "경선 승자가 치열한 내부 전투 과정에서 상처를 너무 많이 입어 정작 박원순 시장과의 본선 게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는 근심이 커지고 있다"며 "본선에서 박 시장을 이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경선 이후 후유증 없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여권의 후보가 최종 확정되지 않은 만큼 본격적인 네거티브 선거전은 여권 내부를 중심으로 조심스레 시작된 상황이다. 하지만 내달 25일 여권 경선이 마무리되고 '박원순 대항마'가 정해지면 역대 선거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살벌한 네거티브 선거전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자신의 약점을 최소화하고 강점을 최대화하는 선거 전략을 짜야 한다"며 "네거티브 공세에 약점이 크게 부각될 경우 어려운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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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