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뉴타운 '이상한 각서’ 보니…

'현대판 을사조약'이 따로 없네∼

[일요시사=경제1팀] 왕십리뉴타운 2구역 입주가 시작됐다. 하지만 연일 이어져야 하는 이삿짐 트럭이 보이지 않는다. 입주가 시작된 지 2주가 지났음에도 단지 내에는 사람이 없다. 상상 이상의 추가분담금 때문이다. 조합원 대부분이 입주를 거부하자 '확약서'까지 등장했다.

지난 1월3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성동교육지원청 건물 4∼5층 사이 난간에서 고공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를 벌인 이모씨는 왕십리뉴타운 2구역 조합원. 이씨의 요구사항은 방만하게 운영된 조합 때문에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하는 분담금이 늘어났으니 새 조합장 선임 절차를 승인해달라는 것이었다.

왕십리에 무슨 일이?

그는 "더 이상 조합을 믿을 수 없다"며 "성동구청이 새 조합장 선임에 필요한 행정사항을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성동구청 측은 관련 규정상 구청이 해당 사항에 개입할 수 없다며 이씨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씨는 이날 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

약 2달이 지난 뒤인 2월 말 뉴타운 2구역 입주가 시작됐다. 입주 첫날 단지 내로 통하는 정문에는 ‘어깨’들이 늘어섰고 그들은 일일이 차량을 막아서서 동·호수를 물어봤다. 드나드는 차량은 적었다. 지난 12일 기준 조합원 420여가구 중 10여가구만 입주하는 데 그쳤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아파트 잔금과 추가분담금 납부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왕십리뉴타운 2구역 조합원들은 추가분담금으로 가구 당 평균 1억3000여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추가추가분담금'이다. 뉴타운 사업이 시작된 후 조합원들은 이미 한 차례 억대의 추가분담금을 낸 바 있다.


본래 소유하고 있던 집은 감정평가액으로 보상받고 지어질 아파트를 일반분양가의 20% 할인된 선에서 분양받으면서 차액을 부담한 것이다. 추가분담금은 2구역 미분양이 장기화되면서 두 차례 실시한 할인분양 등으로 인해 입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2구역의 조합원은 총 423명. 1억3000만원씩 추가분담금을 걷으면 약 550억원이라는 자금이 모인다.

아파트에 살 기대를 품고 갖고 있던 주택을 내놓은 조합원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실제 3층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1∼2층에는 세를 놓고 3층에 거주하던 A씨는 아파트와 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선뜻 주택을 내놓았다.

그런데 입주를 한 달 앞두고 현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1억3000여만원을 더 내놓아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A씨는 "건설사가 분양에 대한 수요를 잘못 예측해 할인분양을 실시해 놓고 그 손해를 조합원들에게 부담시키는 작금의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다"며 분노했다.
 

왕십리뉴타운 2구역 조합원들에 대한 개발이익률은 당초 110%였다. 하지만 2년 전 사업성 악화로 95%대로 낮아지더니 조합은 지난달 28일 느닷없이 70%로 인정하겠다며 총회를 개최했다. 반발하는 조합원들에 의해 총회는 부결됐고 조합은 77%로 상향된 조건으로 다시 총회를 개최했다. 조합원들은 개발이익률이 낮아진 것에 대한 근거 제시를 조합 측에 요청, 확실한 증거자료를 받지 못하자 또 한 번 총회를 무산시켰다.

1가구당 평균 1억3000만원 추가분담금 발생
조합원 대부분 입주 거부하자 '확약서' 등장

그러자 '확약서'가 등장했다. 조합원들에 따르면 왕십리 뉴타운 2구역 컨소시엄인 드림사업단은 확약서를 쓰지 않으면 아파트 잔금과 추가분담금을 내더라도 아파트 열쇠를 줄 수 없다는 '배짱'을 부렸다. 조합원들이 공개한 확약서는 '왕십리뉴타운 제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원 ○○○(○○○동○○○호 입주예정자)는 동사업의 아파트 입주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귀 사업단에 확약합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확약서는 "컨소시엄이 조합으로부터 공사비와 사업경비 대여금을 모두 상환 받지 못하는 경우 조합에 대해 신축 건축물의 인도를 거부할 수 있는 바 이로 인해 상기 본인이 관리처분계획에 따라 조합이 부과한 분담금을 완납하였다고 하더라도 건축물을 인도받을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본인은 이러한 사태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정비사업비를 부담할 의무가 있는 조합의 전적인 책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이에 본인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귀 사업단이 제시한 입주조건 및 개별 분담금액을 면밀히 검토하였고, 이에 귀 사업단의 제안을 받아들여 개별 분담금을 납부하고 입주하는 것으로 결정하였으며 이에 관하여서는 추후에 민·형사상의 소송 등을 비롯하여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아니할 것임을 확약한다"고 적혀 있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납부한 개별 분담대금은 귀 사업단의 공사비 및 사업경비 대여금의 상환을 위한 것이며, 향후 조합원 총회에서 최종 확정된 관리처분계획의 내용에 따라 조합으로부터 분담금을 환급받거나 또는 추가로 납부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확인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합원들은 확약서에 대해 '현대판 을사조약'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조합원 B씨는 "한마디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향후 건설사의 잘못이 밝혀지더라도 반항하지 말라는 말"이라며 "조합원들이 살 집의 열쇠를 무기로 불평등한 협의서를 강제로 쓰게 하는 만행을 국내 대기업이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왕십리뉴타운 2구역 컨소시엄인 드림사업단은 GS건설, 현대산업개발, 삼성물산, 대림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주가 진행 중인 2구역은 드림사업단이 시공한 '텐즈힐'이 들어서 있다. 텐즈힐은 지하 8층 지상 25층 14개동 규모로 총 1148가구가 들어선 대단지다.

"반항하지 마!"

조합사무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왕십리뉴타운 2구역은 시행자가 조합원들이다. 조합원이 주체가 되어 건설사에게 아파트 건설을 맡겼다는 얘기다"며 "분양이 안 되는 상황에서 물량은 털어내야 하고, 경기불황에 상가분양마저 어려워지면서 할인분양을 실시하면서 비례율이 77%까지 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할인분양으로 인해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늘어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총회가 지속적으로 무산됨에 따라 건설사 입장에서 비례율을 72%로 가확정하고 입주를 시키기 위해 확약서가 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1일 예정되어 있는 총회가 무사히 통과된다면 조합에서는 비례율이 75∼77%는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럴 경우 조합원들은 돈을 되돌려 받게 된다. 추가분담금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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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