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돈되는' 금융상품의 비밀-NH농협 하트적금

‘고금리 유혹’에 빠졌다간 큰일

[일요시사=경제2팀] 시중은행 금리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가운데 우대금리 조건을 내건 NH농협은행의 '하트적금'이 각광을 받고 있다. 우대이율 최대 3%를 받으면 기존금리에 더해 6%대의 금리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대이율을 받는다면 웬만한 저축은행들보다 높은 수치다. 그러나 우대금리를 받으려면 농협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회공헌에 이바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트적금의 취지가 조건충족에 따라 변색되고 있는 분위기다.

"헌혈 당일 날 받은 봉사증과 기부권은 한꺼번에 우대금리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헌혈을 하셨으니 0.5% 우대금리 받으실 수 있고요."

하트적금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 NH농협은행을 찾은 이모씨는 허탈했다. 하트적금의 까다로운 우대금리 조건 때문이다. 지난해 이씨는 친구의 소개로 NH농협의 하트적금을 가입했다. 우대금리 요건을 채우기 위해 최근 헌혈을 했다. 헌혈 후 이씨는 헌혈증과 헌혈로 인한 봉사증과 헌혈기부권을 받았다. 이씨는 농협은행에 준비한 3종류의 서류를 내밀었지만 헌혈증에 대한 우대금리만 받을 수 있었다. 헌혈 당일 받은 헌혈증과 봉사증, 기부권은 한꺼번에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한 요건

이씨는 "가입을 추천한 친구는 헌혈증과 헌혈로 인한 봉사증, 헌혈 기부권을 인정받아 한꺼번에 우대금리를 받았는데 나는 헌혈만 인정받았다"면서 "겨우 3.2% 금리를 받으려고 헌혈까지 한 것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NH농협은 사회공헌 활동을 하면 우대금리를 준다는 조건으로 '하트적금'을 출시했다. '하트적금'은 평소 금융상품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하트적금의 높은 우대금리 때문이다.


농협 하트적금의 기본금리는 2.6∼2.8%(3월 기준)로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우대이율 조건을 채운다면 기존금리에 더해 최대 6%까지 금리를 받을 수 있다.

우대금리를 채우기 위한 조건은 빼곡하다. 가입자는 자신이 헌혈자, 사회봉사자, 사회기부자, 모범납세자, 국가유공자, 장기기증서약자, 다자녀가구세대주, 노부모부양 세대주 등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각각 0.5% 우대금리를 챙길 수 있다. 우대이율은 최대 3%까지 받을 수 있다.

정기적금 가입 날 하트정기예금까지 동시 가입하면 0.1%를 받을 수 있다. 모든 우대금리를 합치면 기존 금리에 더해 최대 6%대까지 받을 수 있다. 하트적금의 가입기간은 1년 이상에서 3년까지다. 납입금액은 1만원 이상, 월 300만원 이내로 적립할 수 있다.

가입자들은 하트적금 우대금리를 비교적 쉽게 받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왔다. 가입자들 사이에서는 헌혈 한번으로 헌혈증, 봉사활동, 기부를 한꺼번에 인정받을 수 있는 '1타3피' 작전이 퍼져 있었다.

'1타3피' 작전은 이렇다. 헌혈의 집에서 헌혈을 한 후 헌혈증을 받는다. 헌혈 후 영화티켓이나 기념품이 아닌 '기부권'을 요구하면 후원금 납입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헌혈증을 대한적십자 사이트에 등록하면 헌혈증 1개당 봉사시간 4시간이 나와 봉사증을 받을 수 있다. 한 번의 헌혈로 세 가지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시중금리 곤두박질에 우대금리 내걸어 각광
까다로운 조건에 난감…'1타3피'꼼수 등장

그런데 지난달 농협이 하트적금의 우대금리 조건을 변경한 것으로 파악됐다.

농협은 홈페이지를 통해 우대이율 조건에 “1회 헌혈한 경우 1개 항목에 대해서만 적용 가능 (성명과 일자를 확인할 수 있는 헌혈증, 사회복지자원봉사실적인증서, 헌혈기부권 중 1개에 한하여 적용)”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한 번의 헌혈을 이용해 한꺼번에 우대금리를 받는 가입자들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전까지는 가입자들이 헌혈증과 함께 (헌혈로 받은) 봉사활동 실적, (헌혈로 받은) 헌혈 기부권을 각각 인정해 한꺼번에 우대금리를 줬지만 올해부터는 증명서를 따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농협은 우대금리 조건을 변경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우대금리 조건이 변경된 게 아니고 애당초부터 헌혈 당일 받는 헌혈증과 봉사활동, 기부증은 한꺼번에 인정되지 않는다"며 "(작년에는) 일부 고객들이 헌혈과 함께 받는 봉사활동, 기부증을 한꺼번에 증명서로 제출해 우대금리를 (한꺼번에)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알고 있지만 일부 지점에서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조건을 높인 것이 아닌 헌혈증을 이용한 가입자들의 꼼수를 막기 위해 추가로 설명했다는 부연이다.

농협의 입장에서는 가입자들이 우대금리를 쉽게 받기 위한 꼼수를 막고, 본연의 취지를 살려보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농협이 우대금리 조건을 변경해 벽을 높이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농협이 우대금리 조건을 높일수록 소비자들의 꼼수도 늘어날 전망이다. 가입자들은 또다시 봉사활동증명서를 쉽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분위기다.

농협 하트적금 한 가입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헌혈증과 헌혈로 인한 봉사증, 헌혈기부권까지 한꺼번에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데 올해부터는 조건이 까다로워진 것 같다"면서 "귀찮더라도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봉사활동과 기부방법을 찾아보고 있다"고 고백했다.

일부 가입자들은 "선플운동본부에서 선플 20개를 달면 봉사활동 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며 "ARS 같은 곳에서 1000원 기부하고 기부증명서를 받으면 될 것"이라고 손쉬운 방법을 제시했다. 하트적금 가입자들의 꼼수를 막기 위한 취지는 또 다른 꼼수를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잘못된 발상

전문가들은 농협의 하트적금에 대해 잘못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농협의 마케팅 기법이 소비자들에게 잘못된 정보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애초에 사회공헌 활동을 마케팅에 끌어들였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라며 "초기에 6%대의 고금리를 준다고 상품을 광고해놓고 이러저러한 옵션을 달아놓는데, 사회공헌 활동을 금융상품과 연계했다는 것 자체가 씁쓸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사회활동의 진정성을 흐려놓는다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누가 우대금리를 받겠다고 헌혈도 하고 직접 봉사활동을 하고, 인체기증, 기부까지 하겠느냐"며 "그렇게 착한 사람들이 이런 상품을 알기나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솔직히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금융상품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며 "금융 상품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사람들이 악용할 가능성만 크다"고 지적했다.

 

박효선 기자 <dklo21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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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