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허창수 위기론 막전막후

트리플 악재에 ‘휘청’…머리 싸맨 회장님

[일요시사=경제1팀]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흔들리고 있다. 가뜩이나 그룹 실적이 악화돼 뒤숭숭한 가운데 간판 계열사들마저 줄줄 악재에 몸살을 앓고 있다. GS칼텍스는 여수 기름 유출 후폭풍으로 연일 난타전을 치르고 있고, GS건설은 대규모 적자 여파로 구조조정에 진땀을 빼는 중이다. 설상가상 ‘재계 대통령’이라는 전경련 회장 자리마저 위태로운 상황. 허 회장 앞길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운 모양새다.

허창수 회장이 이끄는 GS그룹이 2005년 3월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룹 계열사 중 가장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곳은 국내 정유업계 2위인 GS칼텍스. 전남 여수에서 발생한 우이산호 송유관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사고 당시 기름 유출량을 고의로 축소해 피해를 키웠다는 의혹에까지 휘말렸다.

‘쉬쉬’ 사고 은폐
허진수 고발

최근 여수해양경찰서는 2차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기름유출량은 당초 추정치보다 최대 4.6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해경이 산출한 유출량은 원유 339㎘, 나프타 284㎘, 유성 혼합물 32∼131㎘ 등 최소 655㎘에서 최대 754㎘에 달한다. 이 피해규모는 GS칼텍스가 사고 직후 발표한 유출량인 800ℓ보다 900배 이상 많은 수준.

해경은 당초 알려진 유출량과 크게 차이가 난데는 GS칼텍스의 허위진술이 원인이 됐다는 판단을 내놨다. 해경 측은 “송유관 밸브 차단 시간에 대해 GS칼텍스 관계자들의 허위 진술과 서류 조작 등으로 유출량 산출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GS칼텍스 측이 유출량을 허위로 밝히면서 그 피해가 커졌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해경 조사결과 GS칼텍스 측은 당초 밸브를 잠갔다고 발표한 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밸브를 잠갔고, 사고 당시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관리 감독하는 GS칼텍스 해무사도 부두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골칫거리’ GS건설 적자 수렁서 허우적
‘허창수 체제 2년’ 전경련도 사세 약화

비판 여론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피해지역 어민들과 수협 등은 GS칼텍스 측의 과실의 영향으로 사고 규모가 커진 것은 물론 초기 방제 작업도 실패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실제 전남 여수지역 2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GS칼텍스 원유부두 해양오염 시민대책본부(이하 해양오염 대책본부)'는 지난달 26일 허 회장 친동생인 허진수 GS칼텍스 대표를 고발하기까지 했다.
 

대책본부는 허 대표에 대한 형사 고발장을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제출하면서 “해양환경관리법에 원유부두의 관리자는 사고발생 즉시 오염물질 종류와 추정량 등을 해경 상황실에 신고하고 적법한 방제 조처를 해야 한다”며 “GS칼텍스는 적절한 초기 확산방지 조치를 취하지 못해 피해 규모를 확산시킨 법률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GS칼텍스 측은 피해 복구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부도덕 반환경 기업이라는 오명과 함께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내야할 판이다. 업계에서는 보상금을 포함한 총 피해 규모가 최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피해액을 산정하는 과정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여수 기름유출 리스크’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알짜 계열사
실적 부진 늪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GS칼텍스의 신용등급을 ‘Baa2’에서 투자적격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인 ‘Baa3’로 낮췄다. 한 단계만 더 하락하면 투자부적격 투기등급으로 분류된다.


무디스는 강등 이유에 대해 “GS칼텍스 핵심 사업인 정유와 파라자일렌 영업이 구조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생산 물량의 6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중국, 인도, 중동 생산이 늘면서 앞으로 12∼18개월 동안 경영 환경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실적도 좋지 않다. 2년째 위축된 영업이익이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2조20억원에 달했던 GS칼텍스의 영업이익은 2012년 5109억원으로 떨어졌다. 4분의1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9001억원까지 회복했지만 2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여수 기름유출 후폭풍
천문학적 배상금 예고
신용등급·영업이익↓

업계 전문가들은 매출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정제사업 부진을 실적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GS칼텍스의 정유부문은 지난 4분기에만 1434억원의 적자를 냈다. 순이익도 적자전환 했다. 지난 4분기 GS칼텍스의 순손실은 1031억원에 달했고, 부채비율은 지난해 9월 기준 150%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GS칼텍스는 3년째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2012년 9월에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고 있어 세금 부담까지 떠안을 수 있는 처지다.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GS건설도 허 회장의 고민거리다. 2005년 LG건설에서 GS건설로 사명을 바꾼 후 8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기 때문.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가 9373억원에 이른다. 2009년 5679억원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해 1조원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유동설 위기설도 나오고 있다. GS건설은 현금 1조 8000억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올해에만  5200억원에 달하는 회사채가 돌아오고 있다. 부채비율도 276%를 넘나들 정도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미착공 PF에
미래먹거리는?

GS건설이 타 건설사에 비해 미착공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많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GS건설의 미착공 PF는 한강센트럴자이(2240억 원)를 비롯해 양주 백석도시개발사업(1950억 원)과 평택 동삭2지구(1750억 원) 등 모두 12군데이며 그 규모가 1조 5000억원에 이른다.

미착공 PF는 그만큼 리스크가 높다. 사업성이 떨어져 계속 미착공으로 남을 경우 관련 금융비용에 대한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GS건설 측은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 등을 운영하는 파르나스호텔 매각과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금 확충도 검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당 시나리오가 여의치 않을 경우 합정동 모델하우스 부지와 GS건설의 수처리 자회사인 스페인 이니마를 매각할 것이란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그러나 유상증자를 해도 GS건설의 위기는 여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설상가상 신뢰성에도 금이 갔다. 오는 12일 GS건설은 대규모 실적 악화 발표 전 이를 숨기고 수천억원대 회사채를 발행한 공시위반 혐의로 최대 20억원의 과징금까지 부과 받을 것으로 보인다. GS건설은 지난해 2월5일 38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뒤, 이틀 뒤인 2월7일 4분기 영업이익이 800억원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측은 GS건설이 대규모 적자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누락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간 GS그룹의 성장 열쇠는 LG로부터 분리된 ‘GS건설’과 ‘GS칼텍스’였는데, 두 ‘효자 회사’의 부진으로 허 회장의 고민이 상당히 깊어지고 있을 것”이라며 “딱히 ‘이거다’라고 할 만한 미래 먹거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허 회장은 지난해 말 신성장동력의 일환으로 STX에너지(현 GS이앤알)를 인수했다. 허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STX에너지 인수를 통해 발전 사업 운영은 물론이고 해외 발전 시장 진출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얘기했다. 기존 LNG 발전에 더해 석탄 발전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보겠다는 말이지만, 그 성공여부를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다.

당장은 STX에너지의 자회사인 자원개발업체 STX 캐나다와 태양광 모듈업체 STX솔라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두 자회사 모두 경기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업인지라 ‘의외의 복병’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실제 STX캐나다는 연간 100억원 이상씩 순손실을 내고 있고, STX솔라는 이미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 손실만 130억원을 기록했다. 섣부른 인수가 도리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리더십 부재
연임 자질 논란

거듭된 악재로 재계 맏형격인 허 회장 입지가 점점 좁아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전경련 회장으로서, 그 역할에 대한 비판을 받아온 허 회장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간 소통의 부재, 재벌기업 이익 옹호 등 ‘자질론’에 시달리며 수차례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취임 초기 보였던 소신발언과 구심점으로서의 리더십을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안 좋은 회사 상황 탓도 있었겠지만 허 회장 체제 2년간 전경련은 제자리에 머물렀고,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으며 해체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더욱이 최근 여수 기름 유출 사건으로 허 회장이 전경련은 물론 기업 전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 것은 피할 수 없다”며 “허 회장 어깨에 실린 부담의 무게가 가중되면 전경련 회장직을 내려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향후 허 회장이 실타래처럼 꼬인 그룹 안팎 문제와 위기의 전경련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스펙타클한 살얼음판 레이스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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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