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2팀] 펀드시장 지각변동이 시작될 전망이다. 오는 17일부터 소득공제 장기펀드(이하 소장펀드)가 출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5년 이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자의 자금이 몰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소장펀드의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소장펀드는 지난해 말 국회에서 세법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도입됐다. 주식시장에 장기 투자자금을 유치해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고,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투자한 개인들에게 절세 혜택을 주자는 것이 소장펀드의 도입 취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소장펀드에 대해 지난해 3월 출시 이후 판매가 부진한 ‘재형저축펀드’와 닮은꼴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효성 논란
소장펀드의 가장 큰 장점은 '절세효과'다. 근로자가 매달 최고 50만원씩 연간 600만원을 5년 이상 납입하면 납입금액의 40%, 연간 24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기간에 돌려받을 수 있는 세금은 최고 40만원이다. 연간 수익으로 따지면 절세만으로 1년간 투자금액의 2.5%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셈이다.
가입 조건은 연간 급여액이 5000만원 이하인 근로자다. 다만 부동산 임대 등으로 다른 종합소득이 있는 사람은 가입할 수 없다. 월급은 적지만 다른 수입이 많은 이들이 '무임승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달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소장펀드 상품 출시가 본격화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개 자산운용사들이 금융당국에 소장펀드 상품 약관을 접수했다. 현재까지 30여개 운용사가 소장펀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사들은 전환형(엄브렐라)으로 소장펀드를 구성했다.
대형사 중에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가장 많은 소장펀드를 선보인다. '미래에셋소득공제장기컨슈머G펀드(주식)', '성장유망중소형(주식)' 등 4개의 소장펀드를 내놓을 예정이다. 하나의 모펀드 아래 주식형과 MMF, 채권형, 혼합형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해 시장상황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바꿀 수 있는 전환형이다. KB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은 각각 2개의 소장펀드를 선보인다.
대형사와 달리 독립운용사나 중소형사는 전환이 불가능한 단품형을 출시한다. 장기투자를 지향하며 과도한 펀드 갈아타기를 막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소장펀드에 대해 소비자의 펀드 선택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운용을 잘하는 회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결국 마케팅을 잘하는 운용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서 "소비자들은 가입한 소장펀드가 손실을 내도 세금 혜택 때문에 억지로 유지하거나 펀드를 해지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펀드선택권이 없다는 지적이다. 금융사가 소장펀드를 운용하는 능력이 아닌 마케팅에 따라 소비자들이 상품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일반 펀드들은 자유롭게 판매사를 바꾸는 '펀드 이동제'가 운영되고 있다. 펀드 이동제는 투자자가 환매 수수료 부담 없이 판매회사를 변경할 수 있는 제도다. 고객이 판매회사에 대해 만족하지 못할 경우 다른 회사로 이동할 수 있다. 펀드 판매회사의 서비스 차별화 등을 통해 투자자들의 선택권 확대를 돕기 위해 지난 2010년 1월 말부터 시행됐다.
KB자산운용 관계자는 "고객이 가입한 소장펀드가 손실을 낼 경우 다른 운용사의 펀드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사의 소장펀드 내에서 원하는 상품으로 전환할 수 있다"며 "금융당국의 지시에 따라 소장펀드는 다른 운용사의 펀드로 옮길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소장펀드의 이동에 대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수익률에 따라 갈아탈 수 있는 연금 상품과 달리 (소장펀드 이동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며 "펀드 전환은 운용사 내의 소장펀드상품 내에서만 가능하고, 다른 운용사의 펀드를 선택하려면 해지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절세효과?…5년 이내 해지하면 토해내야
실패작 재형펀드 닮은꼴 "투자여력 낮아"
가장 큰 문제는 5년 이상으로 묶인 가입 기간이다. 소장펀드의 세금 혜택은 가입자가 같은 펀드를 5년 이상 가입했을 때에만 받을 수 있다. 그 전에 펀드를 해지하게 되면 돌려받은 세금을 모두 정부에 반환해야 한다.
금소원 관계자는 "가입 기간도 7년 이상을 유지해야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라며 "재형저축을 발행한다고 했을 때 너무 오랫동안 돈을 묶어놓아야 했던 단점 때문에 가입자 수가 떨어졌던 것처럼 결국 소장펀드도 그렇게 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소장펀드는 주식시황이 좋지 않으면 손해를 입을 수 있다. 국내주식에 40%이상을 투자하는 실적배당형 상품이라 소비자는 원금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펀드는 예금자 보호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금융투자협회는 소장펀드의 유지기간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과거와 비교해 봐도 5년 이상 장기 투자할 경우 손해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투자기간이 길어지면 평균단가가 수렴되고 주가변동성에 따라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처럼 '장기투자 성공' 공식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펀드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펀드 555개(3년 이상 운용 중인 장기펀드 대상)의 최근 3년 평균 수익률은 7.7%다. 지난 3년간 코스피 상승률(1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장기투자자들 중 아직까지 원금을 회복 못한 사례도 많다"며 "갈수록 펀드를 향한 믿음이 떨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펀드판매규모는 2008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주식형 펀드의 감소세가 두드러진 상황이다. 때문에 지속적인 저금리 추세에도 펀드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은 부진한 모습이다.
펀드 사각지대
또한 20∼30대의 투자여력이 낮아 큰 시장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차치훈 우리금융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가입요건과 적용대상 상품의 제약 등으로 인해 펀드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을 통한 시장 활성화에는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차 연구원은 "가입대상자와 기간, 한도의 제약으로 수혜자가 제한되어 있는 만큼 펀드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여는 제한적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투자흐름의 전환을 위해서는 소득공제 장기펀드의 사각지대에 있는 개인들을 투자시장으로 유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년도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신입사원이나 장기휴직자는 가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효선 기자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형펀드 '찬밥신세' 왜?
서민 목돈 마련을 위해 도입된 재형저축펀드가 출시 1년 만에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재형저축펀드와 비슷한 소득공제 장기펀드 출시 소식과 낮은 수익률 때문이다. 재형펀드는 연 소득 5000만원 이하인 근로자가 연간 1200만원을 투자하면 이자·배당소득(15.4%) 등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는 금융상품이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2월 한 달간 재형펀드로 들어온 자금은 총 43억원으로 집계됐다. 재형펀드가 출시된 지난해 3월 유입액(99억원)과 비교하면 반토막으로 전락한 셈이다. 재형저축을 해지하는 사람도 늘었다. 작년 12월 기준 재형저축의 누적 계좌 수는 164만872개로 한 달 만에 9930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재형저축 펀드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작년 5월 이후에는 신상품 출시도 끊겼다. <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