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1년> 옥중 총수들 희비

최태원·이재현 울고 김승연·구자원 웃고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재계는 유례없는 폭풍전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경제민주화 광풍 속에 내로라하는 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그간 양형공식처럼 여겨지던 이른바 ‘3-5 법칙(징역 3년 집유 5년)’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듯 했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총수들을 향한 사법부의 판단이 냉탕과 온탕사이를 오가고 있어서다.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전후해 옥중에 있는 재계 총수들의 운명이 갈렸다. 당초 재벌들의 수난이 예상됐지만 뜻밖의 훈풍이 불어오는 듯싶더니 이내 매서운 한기가 불어 닥쳤다.

450억 횡령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에 대한 실형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10대 재벌그룹 회장 중 처음으로 실형이 확정된 사례가 됐다. 이미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온 1년 가량을 제외하고, 남은 형기를 채워야한다.

혹시나 했는데…

지난 27일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최 회장에 대해 징역 4년을, 동생 최 부회장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가 범행을 ‘공모’했다고 본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펀드출자가 갑작스레 결정되고 펀드가 결성되기도 전 이례적으로 선지급된 점,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송금된 돈을 최 회장 형제가 대출을 받아 메꾼 점,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최 회장 형제가 공모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바탕으로 최 회장 형제가 범행을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 측의 “(핵심증인인) 김원홍 전 고문에 대한 증인신문 없이 선고됐으니 파기환송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김원홍을 증인으로 신문해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하는 것이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의 정신에 비추어 바람직한 조치일 수 있으나 증인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 조치가 증거채택에 관한 재량권 한계를 벗어나 위법하다고까지 평가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최 회장 형제는 김 전 대표와 공모해 2008년 SK계열사로부터 펀드출자금 선지급금 명목으로 465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횡령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지만 최 부회장이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가 함께 범행한 것으로 보고 최 부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모조리 집유…양형공식 ‘3-5 법칙’ 옛말
경제민주화 광풍 속 총수들 줄줄이 구속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14일 실형을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용관)는 1657억 원의 탈세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했다. 또 이 회장의 금고지기로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이 회장은 CJ그룹 직원들과 공모해 수천억대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546억원의 조세를 포탈하고, 963억원 상당의 국내외 법인 자산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 회장의 건강상태에 비춰봤을 때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5일 뒤 이 회장 측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3개월의 구속집행정지 연장도 신청했다. 법원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의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 김앤장은 서울중앙지법에 항소장과 함께 건강상의 이유로 2번째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회장 측은 바이러스 감염이 우려돼 병원에서 면역요법을 받아야 한다며 구속집행정지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장의 실형 선고가 있기 직전, 재계에는 한때 온기가 돌기도 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나란히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고 지난 11일 석방됐기 때문이다.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 회장은 파기환송심까지 가는 사투 끝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합의5부(재판장 김기정)는 특경가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원과 사회봉사 300시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결론적으로 보면 김 회장의 배임 행위로 계열사에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과 김 회장이 피해회복을 위해 1597억원을 공탁한 점,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들어 이같이 선고했다.

같은 날 같은 재판부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구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아들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도 징역 4년으로 감형됐다.

재판부는 “LIG그룹 총수 일가의 범행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무너뜨린 매우 중대한 기업범죄”라고 지적하면서도, “피해자 570명의 피해액 834억여원이 회복 됐고, 사실상 피해자 전원과 합의한 점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돌아오는 총수들

이밖에 경제민주화 광풍과 함께 기소됐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조석래 효성그룹의 1심 재판은 진행 중이다. 조석래 회장은 세간의 예상을 깨고 고령과 병력 등의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돼 논란이 일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에 성명을 내고 “전형적인 재벌 봐주기다. 2012년 대선 이후 기대했던 ‘유전무죄 무전유죄’ 관행 개선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며 강하게 비판했지만, 재계는 사법부의 칼날이 어느 방향을 향하게 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법부의 판단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지만, 일부 사례로 법리적 판단보다 정무적 판단이 우선시 됐다고 보긴 어렵다”라며 “앞으로 재벌총수들에게 내려질 판결에 따라 결정될 일”이라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감 몰아주기’특혜 의혹
계열사 밀어줘도 ‘괜찮아’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법이 본격 시행됐지만 ‘6개 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그룹은 오너 일가의 지분을 계열사에 매각하는 꼼수로 규제를 피해간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 51곳 가운데 총수가 있는 43개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대중공업과 금호아시아나, 한라, 한솔, 동국제강, 한국투자금융 등 6개 그룹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총수일가가 직접 보유한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계열사와 20% 이상인 비상장계열사에 적용된다. 해당 기준을 충족한 그룹이 내부거래를 통해 일감을 몰아줄 경우 매출 5% 이내의 과징금과 함께 형사 처벌을 받는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지분이 10.15%에 그쳐 내부거래를 통해 일감을 몰아줘도 규제를 받지 않는다. 상장사 4개를 거느리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 5.5%, 금호타이어 지분 2.83%을 소유하고 있어 역시 일감몰이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한라그룹은 정몽원 회장이 한라 지분 23.58%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준치인 30%를 밑돌아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한라그룹은 이인희 고문은 10개 상장사 가운데 한솔제지 지분만 3.51% 보유하고 있어 일감몰아주기 규제망을 피했고, 장세주 회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 대주주가 19명이나 되는 동국제강 역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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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